소설리스트

12시간 뒤-79화 (79/198)
  • # 79

    마스터T

    카이게임즈의 신동우 사장은 나를 데리고 카이게임즈의 이사들을 한 명 한 명 소개시켜주었다.

    “이 분은 개발총괄의 채중선입니다.”

    “채중선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한상훈입니다.”

    나는 내게 다가오는 손을 붙잡고 흔들었지만, 신경은 온통 다른데 가 있었다.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탁준기 이사에게.

    ‘언젠가 만나게 될 줄은 알았지만... 그게 오늘이 될 줄은...’

    그는 이 카이게임즈의 3대 주주이긴 했지만, 나와 비슷하게 경영에 직접적으로 간섭을 하는 스타일은 아닌 듯 했다. 그는 사외이사 같은 정식적인 직함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사들과 그저 인사를 하는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누가 1대주주가 되었나 구경이라도 하러 왔나?’

    나는 슬쩍 슬쩍 그를 보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신 사장이 새로운 얼굴을 데리고 나타나 내게 소개를 시켜주었다.

    “이분은 재무이사 김영지”

    “반갑습니다.”

    “예 반갑습니다.”

    인사가 끝나갈 무렵, 마지막이 돼서야 탁준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움직이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움찔하면서 비켜서는 게 보인다. 그들은 마치 왕의 행차에 비켜서는 무수리들처럼 몸을 굽히며 자리를 내어준다. 탁준기는 앞으로 나아온다. CEO인 신 사장 역시 옆으로 자리를 비켜서며 말한다.

    “이분은 저희 회사 3대 주주이신 탁준기 이사십니다.”

    겨우 지분 5%를 가지고 있는데, 그래도 상전 취급을 해준다. 아무래도 재벌가의 3세라는 점, 그리고 투자계의 큰 손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을 하는 것 같다. 나는 그와 마주했다. 그는 키가 꽤 컸다. 180cm미터정도, 나보다 살짝 크다. 나는 고개를 올려다 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가든 엔비에서 멀리서 잠깐 봤을 때와 확실히 이미지가 또 다르다. 눈썹도 진하고 코도 크고 날렵해 전체적으로 거물느낌이 나는 반면, 눈은 작고 길게 째져 있어서 속을 알 수 없을 것 같이 생겼다, 거기에 입술도 얇고 작아서 옹졸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는 내게 손을 건네며 말했다.

    “탁준기입니다. 반갑습니다.”

    나는 지난 번 카이지를 밖에서 만났던 때처럼.

    “처음 뵙겠습니다. 한상훈입니다.”

    그렇게 인사를 했다. 엔비 가든에서의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런데 그는 나를 보더니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네 한 대표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 눈빛은 마치 ‘네가 가든 엔비에 왔다갔다는 것을 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뭐야...’

    나는 의중을 한 번 떠 보았다.

    “오 그러십니까? 제 이야기를 어디서 들으셨는지...?”

    그런데 그 말에 그는 씨익 웃더니

    “여기저기서요.”

    그렇게 뭉개고 말았다. 나는 적당히 그의 손을 놓으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 확실히 경계를 풀 수 없는 상대다...’

    가든 엔비가 뱀들의 소굴이라면, 이 사람은 그 뱀들을 움직이는 거대한 뱀, 이무기와도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 것이니까. 그와의 악수를 마지막으로 나는 신 사장의 안내에 따라

    “그럼 우리 회사의 대주주가 되신 한상훈 대표님께서 한 말씀 하시겠습니다.”

    단상위로 올라갔다. 나는 OH엔터테인먼트 때 만들어두었던 연설문을 이름만 카이게임즈로 바꾼 수준에서 다시 입에 발린 말을 해두었다.

    “...카이게임즈에게 전폭적인 투자와 지지를...”

    OH엔터테인먼트 때와 같은 ‘영지 위임식’같은 절차는 필요 없었다. 이미 창업자인 신동우 사장을 구심점으로 회사가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 나는

    “저는 카이게임즈의 성공에 대한 확신으로...”

    연설을 하면서도 신동우 사장을 살짝 보았다. 그는 마치 하트가 그려진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 그도 그럴 만 할 것이다. 나는 OH엔터테인먼트 때처럼.

    ‘저는 게임 개발에는 일체 손대지 않겠습니다. 게임만 잘 만들어 주세요.’

    그렇게 말을 해둬서, 이제 그는 누구 구애도 받지 않고 게임 개발에 몰두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를 듣기로 전에 있던 중국계 이사들은

    ‘이렇게 하얀 백골이 나오면 안 됩니다.’

    ‘이건 빨간색으로 하지요.’

    ‘중국에서 먹힐만한 것으로 해주세요.’

    그런 주문을 해 와서,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내가 회사를 인수하면서 그 중국계 이사들은 모두 사퇴했으니, 이제 신동우 사장은 누가 개발에 이래라 저래라 할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눈엣가시를 빼주었으니 그는 나에게 고마워하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개발에도 더 충실할 것이고.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짝 짝 짝 짝 짝’

    다들 박수를 친다. 열성적으로. 새로운 주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지만 단 한 사람 탁준기 이사는 마치 북쪽에 있는 수령님처럼, 손바닥을 위아래로 교차시켜 천천히 박수를 칠뿐이었다.

    ‘그래 너 어떻게 잘 하나 보자.’

    그런 식으로.

    ‘흥 그래 본인은 로열패밀리라 이건가.’

    그는 아마도 박수를 치기보다는 박수를 받아오며 살아왔을 것이다. 이사진과의 만남이 끝난 후, 나는 신 사장의 안내에 따라서 회사 전체를 둘러보았다. 게임 개발사를 돌아보니 확실히 흥미롭다. 내가 하던 게임이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걸 보면. ‘미래의’ 대박작인 판타지 워 그라운드도 보인다.

    “요새 흥행하는 배틀로얄 장르인데, 현대전을 판타지식 싸움으로 옮겨온 작품입니다. 총 대신 검, 활, 그리고 마법으로요. 곧 일반 유저들을 상대로 CBT에 들어갈 겁니다.”

    이 게임은 바로 전 세계 게이머들을 홀릴 초대박작이 된다. 그렇게 회사를 모두 둘러본 나는

    “그럼 마지막까지 열심히 해주시길 바랍니다.”

    “네 물론입니다.”

    신 사장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지하주차장으로 왔다. 차에 타자마자 서 비서가 한 마디를 한다.

    “그 판타지 워 그라운드 말입니다.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까 확실히 재밌어 보이더군요. 흥행할 것 같던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성공할 것 같다고.”

    서 비서는 백미러로 나를 보며 말했다.

    “역시 사장님은 안목 하나는...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정말.”

    “아니 뭘...”

    그런데 그러던 때 였다.

    ‘위잉~’

    휴대폰이 울리더니, 문자 하나가 왔다. 모르는 번호. 하지만 문자 내용을 보면 누가 보낸지 알 수 있었다.

    ‘마스터T요. 카이게임즈 앞 건물, 2층 카페에서 봅시다. 듀로스님’

    마스터T 탁준기 이사. 그는 대놓고 가든 엔비의 닉네임을 그대로 써서 보냈다. 역시 그는 알고 있었다. 예전에 내가 그가 주최한 모임에 참석했던 사실을.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나는 복기를 해보았다. 나는 그 모임에 딱 한 번 나갔을 뿐 그곳에서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다. 얼굴도 내가 그를 멀리서 한 번 봤을 뿐이다. 그는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나를 볼 겨를도 없었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지금 생각나는 건 두 가지 정도다. 첫째, 카이지 이원재 이사가 그에게 발설을 한 것. 둘째, 나에게 가든 엔비를 초대장을 보냈던 김혜숙 과장이 정보를 판 것.

    ‘...누구지?’

    내가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부웅~’

    서 비서가 차 시동을 걸었다. 물론 퇴근을 하기 위해서다. 나는 그를 제지했다.

    “잠깐 서 비서.”

    “네?”

    “여기서 잠깐 기다... 아니다. 퇴근해. 나는 여기서 내릴게.”

    “네에?”

    “이 주변에서 개인적으로 볼일이 있어서 그래. 먼저 가봐.”

    내 말에, 서비서는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도, 내 명령에 따랐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나는 파란 불에 맞춰 횡단보도를 건넜다. 카이게임즈 맞은 편 건물 2층에는 탁준기 이사가 말한대로 커다란 디저트 카페가 있다. 나는 그 건물에 들어서며 생각했다.

    ‘이 사람 왜 나를 부르는 거지...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아무래도 의심이 간다. 하지만, 그 누구인들, 나에게 사기를 치거나 할 수는 없다. 나는 미래를 보는 눈이 있으니까. 누군가 거짓말로 나를 얽매려고 한다 할지라도, 나는 그걸 뿌리칠 자신이 있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안쪽 구석에 탁준기 이사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나는 그 앞에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하셨는지?”

    내 말에, 그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니 뭐...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사적으로요. 알다시피... 저는 뛰어난 투자자들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29세에 600억대 자산을 쌓은 사람이라... 참 흥미로웠습니다.”

    그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자산만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600억이 아니라 1600억이다.’

    그는 내가 300억 증자를 하고도 두 달 동안 개인 계좌에서 600억을 더 벌었는지 상상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역시 아무리 로열패밀리의 일원이다 해도,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어떤 권력자도 미래를 알 수는 없다. 그 말인 즉, 아무리 내 앞에서 폼을 잡는다고 해도, 내 눈에는 우습게만 보인다. 그는 카이게임즈가 보이는 창문을 딱딱 손가락으로 두 번 치며 말했다.

    “그나저나 물어보고 싶군요. 이 회사는 왜 사신 겁니까?”

    나는 단순하게 대답했다.

    “게임 잘 만드는 회사라고 생각해서요.”

    그는 그 뱀 같은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단순히 그것뿐입니까?”

    “네. 저는 본래 게임회사에 투자하는 것을 즐깁니다. 게임회사는 게임이 매출의 전부지 않습니까? 단순해서 좋지요. 게임이 흥행하면 주가가 오르고, 망하면 떨어진다. 저는 그런 점에서 접근했습니다. 특히 이번 시작이... 요즘 유행하는 배틀 로열 장르에 판타지를 섞어서, 안정성과 참신함을 모두 갖춘 그런 작품으로 여겨지더군요.”

    탁준기 이사는 턱에 손을 괴며 말했다.

    “흠...”

    그는 게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하다. 40대 나이도 그렇지만 ‘배틀 로열 장르’이야기를 할 때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게 느껴졌다.

    ‘하긴 재벌집 아들이면 게임을 했겠어? 차라리 그 시간에 골프치고 해외여행이나 하고 있었겠지.’

    나는 그런 생각에 그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사님은 어째서 이 회사를 사신 겁니까?”

    내 말에 그는 다시 한 번 씨익 웃으며 말했다.

    “더 비싸게 팔 자신이 있어서요.”

    나는 넌지시 그에게 물어보았다.

    “음... 탁 이사님도 게임을 좋게 보셨나보지요?”

    여기서 아는 척을 하면 100% 거짓말이다. 그런데 내 말에

    “하하하하”

    그는 대놓고 웃기 시작했다. 내가 고개를 갸웃 하는데, 갑자기 그는 웃다말고 정색을 하더니 한 마디를 더 했다.

    “저는 게임은 모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발언이다. 게임을 모르는데 게임 주식을 샀다니. 하지만 그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주식은 알지요. 한 대표도 잘 하니까 알겠지만. 주식이라는 건 일종의 피라미드 사기고, 속임수 게임이니까요.”

    그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느꼈다.

    ‘이 사람 위험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더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주식시장에서는 위기는 곧 기회니까. 이 사람이 나를 위험에 빠뜨리려고 한다면, 그것 역시 기회가 될 것이다. 나는 그의 말에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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