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두 번째 인수
‘띵~동’ 벨소리가 울린다. 나는 누가 벨을 울렸는지 알고 있다. 지금 우리 집 문 밖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집주인 이아영이다. 그 사건이 있었던 지 이틀이 지난 오늘, 오전 즈음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혹시 오늘 언제 퇴근하시는 지 물어도 될까요?’
당시, 집에서 HTS를 보고 있었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퇴근도 하지 않는 것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충
‘오후 여섯 시 즘 퇴근합니다.’
남들 퇴근하는 시간으로 답장을 남겨두었다. 집에서 있다고 하면 조금 한심해 보일 지도 모르니까. 실상은 남들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네 그러면 오후 여섯시 조금 넘어서 한상훈 씨 댁에 들릴게요.’
“왜?”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답장을 보냈다.
‘네 알겟습니다.’
나는 거울을 한 번 보고
‘큼흠’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뒤, 현관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집주인 이아영이 오늘도 화려한 미모를 뽐내고 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살짝 입술이 불어보이는 것이, 화장을 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그 점이 오히려 보는 사람으로 설레게 만든다.
‘OH엔터테인먼트에서도 이정도 예쁜 여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오현주 밖에는’
연예인을 해도 충분한 외모다. 직업이 뭔지 모르겠지만.
‘하긴 직업이 없어도... 괜찮겠지. 아마’
이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월세만 가지고도, 그녀는 사치를 부리고도 한참 남을 것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들고 온 무엇을 내게 건넸다.
“저 이거”
그런데 그녀가 건네는 것보다 눈에 띄는 건 그녀의 겉옷이다. 그녀는 오늘 긴 연두색 가디건을 입고 있는데, 하필 그 때 본 속옷색깔과 비슷하다. 술에 취한 그녀의 바지를 벗기던 백인 아가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살짝 굳어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지난 번 일 답례로 쿠키를 만들어봤어요.”
나는 그걸 받으며 기계적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직접 하셨다고요?”
“월세를 조금 빼드릴까 했는데. 그건 너무 인간미가 없는 것 같아서.”
월세를 빼준다니, 그 말은 조금 웃기다. 그녀도 역시 100억 원 전후 부자이지만,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에 있는 돈과 주식을 생각하면, 얼마 전 내 자산은 1000억 원이 넘었다. 나는 속으로 웃었지만, 겉으로 그걸 티내지는 않았다.
“아 네 감사합니다.”
“뭘요 감사는 제가 해야지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자기 집. 우리 옆집으로 들어 가버렸다. 나는 그녀가 준 쿠키를 들고 와서 TV 앞에 앉았다. 그녀가 만들어준 쿠키들은 꽤나 귀엽게 생겼다. 동그란 바탕에 각종 동물문양이 그려져 있다. 나는 그걸 하나 들어 먹어보았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맛없어...”
솔직히 말하자면, 편의점에서 파는 쿠키보다 맛이 없다. 조금 딱딱하고, 별로 달지도 않다.
‘아니 이럴 거면 차라리 사다 주지.’
하지만, 부자인 그녀가 이걸 직접 했다는 걸 생각하면, 이편이 이웃 간의 정은 더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맛없는 쿠키를 몇 개 더 집어 먹었다. 만든 정성을 생각해서.
*
나는 창밖을 보았다. 싸래기눈이 창에 와 닿고 있다. 나는 그걸 보며 말했다.
“11월 달인데 눈이 오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서 비서도 말했다.
“그러게요.”
지금은 11월 중순. 중국계 투자회사와 카이게임즈 양수도 계약을 맺은 지 두 달, 그리고 공시가 나간 지 하루가 지났다.
“그래서 미팅은 언제라고?”
“오후 2시입니다.”
“점심 먹고 바로 가면 되겠네?”
“네 사장님”
오늘은 카이게임즈 경영진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지난번 권오혁 사장에게
‘OH엔터테인먼트의 영지를 하사하노라.’
하는 것처럼 카이게임즈도 가서 왕의 모습을 보여주는 행사를 하는 것이다.
‘휘우 이제 두 개째로군.’
물론 여기까지 오는데 모두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마음을 먹은 이후로 여기까지 오는데 두 달. 두 달 동안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매매에 집중했다. 카이게임즈를 인수하고도, 지분을 더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대박 아이템은 나 혼자 독식하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금융감독원’에서.
인수를 앞두고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식회전률을 너무 높였던 게 독이 된 것일까. 아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저 올 것이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미친 수익률을 계속해서 내고 있었으니 언젠가 한 번쯤은 마주칠만한 일이었다. 나는 최대한 의연하게 대처했다. 내가 무슨 불법을 저지른 건 아니니까. 아니나 다를까, 내 계좌, IP, 컴퓨터 등등을 조사한 금감원 사람들은.
‘놀라운 수익률이로군요. 저희가 잘 못 짚긴 했지만... 이건...’
‘개인 혼자서 IP 한 개로 이렇게 큰 수익을 내는 건 처음 봅니다.’
‘투자의 천재시군요. 정말’
오히려 내게 칭찬을 하며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당연한 일이긴 하다. 나는 미래 뉴스를 보고 주식을 매매할 뿐이니까. 주가조작을 위해서 자전거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뉴스를 조작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오를 만한 주식을 먼저 사고, 먼저 팔았을 뿐.
오히려 거래과정은 깔끔했다. 오르든 내리든 나누어서 사고, 나누어서 팔고를 반복했으니까. 리스크를 줄이는 아주 정석적인 방법을 썼을 뿐이다. 나를 조사한 사람들 대부분은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다가도, 나중에는
‘부럽다.’
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들은 내게
‘혹시 좋은 종목 하나만 알려주시면...’
은밀하게라도 그렇게 물어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긴 금융감독원 사람들도 사람인데, 왜 돈이 탐이 나지 않겠는가. 직업적 특성 때문에 주식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오히려 주식매매기록보다 오히려 매달 나가는 100억. 구독료의 목적을 묻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금감원 사람들이 그럴 권한이 없는지, 아니면 의지가 없는지, 아니면 고객센터에서 ‘비밀’스러운 힘으로 막아버렸는지. 어찌되었든 그 누구도 매달 날아가는 100억의 행방을 묻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깔끔하게 주식을 어마어마하게 잘하는 ‘예측의 천재’로 공무원들에게 명성을 얻었을 뿐. 무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무혐의라고 할지라도 이번 일의 시사점이 있었다. 바로 법적으로 깔끔하게 운영할 것. 개인이 돈이든, 회사 돈이든. 나는 서 비서에게 물었다.
“서 비서. 법무팀 강화하는 건 어떻게 되어가고 있대?”
“장 부사장님 말로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합니다. 본인도 법조계 인사는 잘 모르시다고. 과거 인맥 동원하셔서 알아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잘 모르시면 신중하게 하시는 게 좋겠지.”
“네”
나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정확하게는 ‘장 부사장의 조언’에 대해서. 금감원 조사를 받으면서 나는 경험이 많은 장 부사장 고민 상담을 했다.
‘우리 집에 금감원이 찾아왔습니다.’
웬만하면 개인사를 밝히는 게 싫었지만,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까. 내 말에 장부사장은
‘사장님 본인이 떳떳하시다면 별일 없을 겁니다.’
라는 정석적인 말과 동시에 살짝 색다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될 수 있으면 정계에도 연줄을 만들어 놓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 말이지요.’
이게 사실 조금 잘못하면 바로 위법이고 정경유착인데, 현실적으로 그 선을 잘 타야하긴 하는 듯 했다. 정부나 공무원들 눈 밖에 나면 나나 회사나 쓸데없는 태클이 걸릴지 모르니까. 그럴 땐 인맥도 도움이 되긴 될 것이다. 고위 공무원들과의 인맥이. 뭔가 대가성 물건을 주고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정치인들과도 안면을 터놓아야 한다.
‘정치인들이라...’
그다지 끌리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긴 하다.
‘돈만 많이 벌면 다 될 줄 알았는데... 귀찮게스리...’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서 비서가 모는 차는 청담동을 지나 삼성동 안으로 들어섰다. 멀리 삼성동 모 빌딩에
‘카이게임즈’
그 간판이 보인다.
‘이제... 이것도 우리 회사의 것...’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든 생각에 휴대폰을 들어서 카이게임즈 주식게시판에 가보았다. 인수공시를 낸지 하루가 지난 시점이다. 게시판에서는 우리 회사에 대한 품평이 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인빅투스? 이거 뭐냐? 돈 좀 있는덴가?
판워택 성공시키려면 돈 있는 사람 오는 게 더 좋은데 제발 투자랑 광고 좀 빡세게 해다오
개듣보잡이네. 짱깨들 딱 해보고 감 와서 일부러 토한 듯.
보니까 최근에 OH엔터테인먼트 인수한 회사네요. 중국계 오너보단 나을 것 같은데.
엔터도 사고 게임도 사고 마구잡이네 이 회사는.
한상훈 이 새낀 뭐야. 29살? 좆만한 새끼가 돈은 많네 이거.
주식게시판은 언제나 난장판이다. 내 욕도 쓰여 있다.
‘주가만 오르면 바로 환호할 사람들이...’
나는 이번엔 주가를 체크해보았다. 우리 회사가 카이게임즈를 인수했다는 말에 주가는 살짝 오르는 듯하더니, 바로 그날 하락 반전해서 질질 흘러내렸다. 대중들은 여전히 우리 회사 이름을 모르는 듯하다. 하지만 이번 인수건 그 자체로 우리 회사는 유명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카이게임즈의 신작 판타지 워 그라운드는 나 그리고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카이게임즈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좋아 그러면 바로 기세를 이어서 블루E&M까지 접수한다.’
나는 기세만만하게 주먹을 쥐어보였다. 그 사이 서 비서는 차를 끌고 카이게임즈가 있는 빌딩, 지하 주차창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
나는 서 비서와 함께 카이게임즈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한 대표님.”
그 안에는 카이게임즈의 대표, 신동우 CEO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네 반갑습니다. 신 사장님”
그는 꽤 거구였다. 키는 180cm정도로 커보이는데, 살도 많이 쪘다. 100kg가까이 되는 듯하다. 얼굴은 딱 전형적인 공돌이 상. 안경 쓰고 유순해 보이는 모습이다. 장 부사장의 사전레포트에는 ‘게임 개발 능력은 뛰어나지만 경영에는 살짝 부족한 면모를 보이는 CEO’라고 평가하고 있었는데, 조금 그럴 것 같다. 개발은 잘 할지 몰라도 활동성은 조금 낮아 보인다. 그는 손을 펴며 말했다.
“따라오시지요. 이사님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그를 따라 사내 안쪽 회의실로 향했다. 내가 안에 들어서자, 앉아 있던 사람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 또 악수 폭풍이로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안에, 눈에 익은 사람이 한 명. 그 안에 보인다. 다들 나를 보고 일어서는데, 홀로 앉은 채로 거만하게 나를 보고 있는 인물. 그는 다름 아닌 마스터T. 수연그룹의 탁준기 이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