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사장님의 해외 근무
나는 눈을 떴다. 낯선 방이 눈 안에 들어온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실에서 거실을 거쳐 밖으로 나가면 발코니에 정원이 꾸며져 있다. 정원에 서서 밖을 바라보면 홍콩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가 있는 곳은 홍콩. 5성급 호텔 스위트룸. 숙박비는 꽤 비싸지만, 비싼 만큼 그 값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잠시 서서 홍콩 전경을 바라보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7시 5분이다. 평소 8시에 칼같이 일어나는 습관을 생각해보면 딱 맞다. 시차 1시간.
‘그러면 8시 55분은 7시 55분...’
이러나저러나 생체시계에 맞춰서 행동하면 될 것 같다.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갔다 올까.’
나는 대충 샤워를 하고 호텔 식당으로 향했다. 5성급답게 조식도 훌륭하다. 어떤 걸 먹어야할지, 고르기 힘들 정도. 하나하나 다 맛봤다간 아침에 과식을 할 참이다.
나는 볶음밥을 메인 메뉴로 이름 모를 고기반찬과 채소볶음, 피자 한 조각과 샐러드를 담은 다음 모닝커피 한 잔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묘하게 새콤달콤한 볶음밥도, 이름 모를 고기반찬과 채소볶음도 훌륭하다. 한창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오셨습니까? 사장님”
서 비서가 내 앞 자리에 앉았다. 접시가 넘치도록 푸짐하게 음식을 들고 온 채로.
“일찍 일어났구나. 너도.”
“네 아시잖아요. 저 매일 8시 출근인거.”
“아아 그렇지.”
서 비서는 남들보다 1시간 빨리. 매일 아침 8시 출근이다. 내가 오든 말든 그렇게 하도록 지시를 해놓았다. 그래야 8시 55분에 메일을 받는 나와 시간이 맞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출근 하지 않을 때 한정해서, 남들보다 2시간 일찍 퇴근해도 된다는 조항이 삽입되어 있다. OH엔터테인먼트 인수 이후, 요새 주식한답시고 거의 출근을 하지 않아서, 지훈이는 아마 자주 일찍 퇴근했을 것이다.
“너 나 출근 안할 때는 뭐하니? 하루 종일 시간도 남을텐데”
“대게 공부를 합니다. 다시 경제 공부도 하고... 주식 공부도 하고요. 아 코딩 공부 다시 하고 있습니다. 요새”
“코딩?”
“네. 예전에 창업했을 때 시작했던 건데 요새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래? 그 때 스타트업에서는 경영만 하던 게 아니었어?”
“그게 개발자랑 어느 정도 소통이 되려면 저도 코딩을 조금 해야겠더라고요. 그래야 말이 통하니까.”
“그래... 문돌이가 컴퓨터도 만지고 열심히 살았구나 너?”
“그렇다니까요. 끝이... 안 좋아서 그렇지.”
“아아 그래. 그래도 잘 하고 있네. 혹시 소프트웨어 기업 인수하게 되면 너한테도 자문 구하도록 할게.”
“그런데 요새 소프트웨어 쪽은 워낙에 공룡들이 다 잡아먹는 구조라서... 저는 별로 추천 드리고 싶지 않네요.”
“그래?”
“네 워낙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는 게 이거 하는 사람이 저거 하기도 하고... 그래서 왜 있잖아요. 저희 회사 망하게 만든 Mawith랄지... 요새 하여간 IT쪽은 돈 된다 싶으면 대기업들이 다 돈 들고 쫒아 와서 때리고 아이디어만 채 간다니까요.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왜 대박 스타트업이 안 나오냐. 하니 우스운 이야기지요.”
“그나저나 그놈의 Mawith는 대체 어디서 만든 투자회사인데?”
지훈이의 원수라니, 될 수 있으면 갚아주고 싶다. 그런데,
“NK닷컴이요.”
그 원수가 꽤 강적이다.
“NK?”
“네”
NK닷컴은 우리나라에서 90%의 점유율을 가진 포털사이트다. 그야말로 소프트웨어계의 왕.
“아니 그렇게 큰 회사가 그런 양아치 짓을 한단 말이야?”
“그렇더라니까요.”
“참...”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다 그런 짓을 한다. 베이커리가 돈이 되면 베이커리를 하고, 분식집이 돈이 되면 분식집을 하고, 안하는 게 없다. IT소프트웨어 쪽도 그 절차를 따라가는 것뿐이다. 생긴지 20년 밖에 되지 않은 업계다보니 조금 그 과정이 늦었을 뿐.
‘NK닷컴은 시총이 20조? 30조?’
지훈이의 복수는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
“그나저나 사장님 이런 곳은 저를 데리고 오시지 말고 다른 미녀랑 와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거야 나도 그편이 더 좋지.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너무 바빴잖아. 다니던 회사 나오고 새로 회사 차리고 하는 데. 정신이 있어야지. 됐어 일단 밖으로 나오니까 좋다. 야.”
“네 사장님이 좋으시다면야... 그런데 그나저나 그 때 그 여자 친구 분은...”
이 녀석이 아는 내 여자 친구는 딱 한명이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아... 스탑 댓츠 노노”
전 여자 친구 생각은 아예 꺼내고 싶지도 않다. 워낙에 좋지 않게 끝나서. 지훈이는 눈치를 채고 바로 사과를 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사장님”
나는 피자의 끝부분을 씹어 삼키며 말했다.
“너는? 연애는 하고 사니?”
“글쎄요. 저도 이제 조금 여유가 트여서 소개팅이라도 할까 해요.”
“음 소개팅”
“그런데, 저희 회사 이름 대면... 여자 분들이 별로 안 좋아하실 거 같아서 그게 조금 걱정이네요.”
‘왜 우리 회사가 뭐 어때서?’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남들 듣기에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에서 일합니다. 라고 하면 어디 이름 없는 회사에서 다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 회사는 지훈이 스펙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기업이다. 아직은 말이다.
“그래도 돈은 많이 받잖아.”
“연봉 이렇게 받는다고 하면 아마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걸요. 소개팅에 월급명세서를 들고 갈 수도 없고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나는 커피까지 모두 비운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훈이는 가져온 접시의 반정도 비우고 있었지만, 기다려 줄 수는 없었다. 곧 7시 55분이었기 때문이다.
“나 먼저 올라갈게.”
“아. 또 명상하러 가세요?”
“응. 점심에는 뭘 할지나 정해놔”
“네. 홍콩은 아무래도 쇼핑과 식도락이지요. 제가 주변 맛집은 이미 다 정리를 해놓았습니다.”
지훈이는 조식을 먹으면서도 점심 이야기를 했다. 이 녀석 식탐은 인정 해줘야한다. 내방으로 돌아온 나는 탁자에 앉아 내 노트북을 켰다. 7시 55분. 딱 그 시간에 메일 4통이 온다. 나는 그걸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전혀 불편함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HTS를 켰다. 한국 시장은 이제 막 열리려고 하고 있다. 태광방직에 매수 주문을 넣으면서 나는 확신이 들었다.
‘시차 확인만 되고, 와이파이만 있다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다.’
작업환경은 어느 나라 호텔이나 내 오피스텔이나 그리 다르지 않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아니 그전에 미국에 가봐야지 월스트리트도 가보고 말이야.’
*
“하아 배부르다.”
같이 온 사람이 미식가, 대식가여서 그런지 홍콩 여행은 거의 식도락 여행이 되었다. 첫째 날부터 떠나는 날 까지. 딤섬이니 완탕면이니 뽀짜이판이니 그리고 발음이 어려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음식들까지 엄청나게 먹어댔다. 나는 배가 퉁퉁해진 상태로 호텔에 돌아왔다. 내일이면 홍콩 여행도 끝나고 집에 돌아간다.
태광방직은 이미 홍콩을 돌아다니면서 아침 먹고 매수하고, 점심 먹기 전 매수하고, 점심 먹고 나서 매수하고 해서 매집을 끝내놓았다. 이제 한국 가서 호재 뉴스가 뜨면, 팔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 2박 3일 동안 경비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돈을 써댔지만, 한국에 가서 벌 돈을 생각하면 새 발의 피가 될 것이다.
‘봐서 마음에 드는 곳 있으면 한 두 달 살다 와도 괜찮겠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오후 7시 50분. 이제 5분이 지나면 오후 시간 메일이 온다. 나는 소파에 반쯤 누워 메일함에 가보았다. 너무 배가 불러서 집중이 잘 안 될 지경이다. 나는 평소보다 빨리빨리 뉴스를 넘겨보았다.
‘오후부터 장대비, AI의 진보 사람을 위협, 이달의 연극, 백상연예대상 대상에 개그맨 김국주 씨, 스팀 동시접속자수 신기록, 신형 와이패드 리뷰...’
졸린 눈으로 빠르게 빠르게 키워드만 체크하고 넘기던 나는
‘음?’
‘12달 뒤’ 뉴스에서 뭔가 특이한 것을 본 것 같아 위로 시선을 올려보았다.
IT/과학 – 카이게임즈 신작 판타지 워 그라운드 판매 1위. 스팀 동시접속자수 신기록 세워.
신경 쓰이던 키워드는 바로 그것이다.
‘스팀 동시접속자수 신기록’
스팀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 서비스 업체다. 여기서 동시접속자수 신기록을 세웠다는 건 세계에서 가장 핫한 게임이 되었다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 나는 기사를 클릭해보았다.
국내 게임사 카이게임즈가 일을 냈다. 신작 판타지 워 그라운드로 스팀 동시접속자수를 다시 한번 갱신한 것이다. 판타지 워 그라운드, 줄여 FWG로 불리는 이 게임은 최근 유행하는 배틀 로얄 장르에 판타지 색을 덧씌워 만들어진 작품으로, 기존 배틀 로열 장르 팬들과 판타지를 좋아하는 게이머들 양쪽의 호응을 얻어 초대박을 냈다.
‘카이게임즈라고? 들어 본 것 같긴 한데...’
나는 바로 노트북을 켜서 ‘카이게임즈’를 검색해보았다. 카이게임즈는 코스닥에 상장된 작은 회사였다. 시총 1200억. 만들어진지 10년 상장된 지 6년 정도 되었는데, 시대에 맞춰서 그 때 그때 유행하는 장르로, AOS게임도 내고, 스마트폰 퍼즐 게임도 만들고, MMORPG도 만드는 등 대박 못내도 중박을 여러 번 터트린 중견 게임사였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 나온 게임이... 스팀에서 동시접속자수 신기록을 세웠다고?’
이건 엄청난 대 호재다. 회사 가치가 10배 아니 100배 가까이 뛸 수도 있는 대호재 중의 대호재. 뉴스를 보니 그 기사도 떠 있다.
‘카이 게임즈 올 겨울 신작 판타지 워 그라운드로 세계시장 도전’
올 겨울. 그럼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울까지... 그럼 얼마나 매집할 수 있지? 시총이 1200억이면...’
나는 대개 주가를 올리면서 사는 건 꺼려하는 편이다. 그만큼 내 수익이 줄어드니까. 하지만 이건 내 돈 때문에 주가가 오른다고 해도 무조건 사야한다. 매물이 나오는 대로. 이건 1200억짜리 회사가 1조가 될 만한 그런 기회기 때문이다. 나는 HTS를 켜서 당장 ‘카이게임즈’를 관심종목에 올려놓았다.
‘그럼 언제부터 사야할까... 겨울이면... 이번에 구독료 두 번 세 번을 내더라도 천억은 있을 거야 그러면 그 돈을 다?’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건 주식을 사서 단기적으로 이득을 챙길 게 아니야.’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장 부사장에게 문자를 하나 넣었다.
‘부사장님. 다른 일 제쳐두시고 카이게임즈 분석해서 내일까지 보고서 올리세요. 귀국하는 즉시 바로 회사 출근할 테니, 바로 받아 볼 수 있도록.’
홍콩과 서울. 거리는 멀었지만 바로 답장이 왔다.
‘네 사장님. 그런데 어째서 그러시는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다시 답장을 보냈다. 짧고 굵게.
‘내일 가서 말씀 드릴게요. 단순히 말씀드리면, 저 이 회사 사고 싶습니다. 적대적 M&A를 하더라도. 이 회사는 제 걸로 만들어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