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73화 (73/198)
  • # 73

    사장님의 자택 근무(4)

    ‘딸깍 딸깍’

    나는 마우스를 몇 번 클릭했다. 모니터 위에는 다양한 숫자가 떠 있다.

    ‘+15.4%’

    ‘+7.5%’

    ‘-3.2%’

    어제 100억 벌고 남겨놓은 지진테마주들이었다. 어느 녀석은 더 가려고 하고 있고, 어느 녀석은 고점을 찍고 떨어지려고 하고 있다.

    ‘에 그럼 이 정도에서 정리할까. 아니면... 조금 더 홀딩해볼까?’

    이건 솔직히 도박이다. 테마주는 사람 심리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 언제 어떻게 주가가 움직일지 모른다. 나는 슬쩍 주식 게시판에 들어 가보았다.

    지진 한번만 오고 마는 거 없습니다. 여진 옵니다. 벨트 꽉 메세요.

    오늘 6.0한대만 더 때려주면 당장 상한가인데... 지진 한 번 더 안 오나

    와 개새끼 심보보소... 지금 원주에 집 잃은 사람들 많은데...

    나 어차피 제주도 삼 원주에서 지진 나든 말든

    꼭 이럴 땐 이런 사람들이 있다. 남이 집을 잃던 목숨을 잃던 돈 벌겠다는 사람들. 나 역시 지진테마주로 돈을 벌긴 했지만 지진이 더 나라고 빌고 싶지는 않다.

    ‘왠지 나까지 나쁜 사람 된 것 같네...’

    그런 생각이 드니 더 주식을 쥐고 있고 싶지 않다. 나는 천천히 매도버튼을 눌렀다.

    ‘매도, 매도... 그리고 매도.’

    오후 1시가 됐을 무렵 70억 정도 수익이 났다. 총 170억의 수익. 엄청난 수익이지만 나는 가볍게 주먹을 쥐어 보이는 걸로 세레모니를 하고 말았다. 요새 한 달에 두, 세 번꼴로 이렇게 수익이 나다보니 나는 조금 무감각해져가고 있었다.

    ‘천억이 넘으면 조금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건 가봐야 알 것 같다. 매매를 마친 나는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지진 피해’

    를 검색해보았다.

    ‘주택 무너져’

    ‘신축 원룸에 금이 가’

    ‘기숙사 벽 무너져 학생들 대피’

    와 같은 기사들이 있었다. 역시나 12일 뒤가 알려준 대로다.

    ‘그나마 다행이네...’

    나는 별 생각 없이 기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

    ‘원주 지진 피해자들을 위한 성금 모금’

    그게 눈에 띈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같았으면

    ‘죄송합니다. 저 먹기 살기도 벅차요.’

    지나쳤을 텐데, 이번에는 왠지 그게 마음에 걸린다.

    ‘이번에 170억이나 벌었는데... 조금 기부라도 할까. 세상에 내 이름도 알릴 겸 해서 말이야.’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세상에 이름을 슬슬 알리고자 한다면, 이런 방식을 통해서 알리고 싶다. 단지 운 억세게 좋은 졸부보다는 받은 운을 세상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서 비서에게

    “네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어 지훈아. 너는 말이야...”

    “네”

    “뉴스에서 몇 억씩 기부했다는 사람들 나오잖아 왜 뉴스 끝날 즈음에.”

    “네.”

    “그게 몇 억 정도 되면 기억에 남을 것 같냐?”

    “글쎄요. 한 그래도 한 3억 이상?”

    3억은 너무 적다. 어제 오늘 낸 매매수수료만 3억이 넘을 것 같다.

    “그보다 크게 하면.”

    “글쎄요. 많으면 많을수록 기억에 남겠죠. 특히 1등... 하면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금메달만 기억하기 마련이니까.”

    맞는 말이다. 1등. 사람들은 그저 한 눈에 보고 넘기는 목록도 1등만큼은 주목을 한다.

    “음... 그래? 알겠다.”

    “사장님 기부 하시게요?”

    “...내일 9시 BKS뉴스 봐봐”

    *

    나는 소파에 반쯤 누워 뉴스를 보았다.

    “...대통령은 이번 법안은 올해 내로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며, 국회 논의를 촉구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9시 40분정도다.

    ‘이제 뜰 때가 됐는데...’

    하던 때, 기다리던 뉴스가 흘러나왔다.

    “다음은 저희 BKS뉴스에 원주 지진 피해자를 위한 성금 모금에 이웃돕기 성금을 보내주신 분들입니다.”

    왔다. 나는 그걸 지켜보았다. 먼저 화면 위로 성금을 보낸 사람과 금액이 나온다.

    보람아파트 입주민 일동 5천만원.

    기성전자 임직원 일동 3억원.

    김찬용 씨 2000만원.

    지성초등학교 교직원 및 학생 일동 1200만원

    잘 정돈된 단발머리를 한 아나운서는 고운 목소리로 성금을 보낸 사람과 액수를 하나하나 읽어주었다.

    “보람아파트 입주민 일동 5천만원. 기성전자 임직원 일동 3억원...”

    나는 잠시 그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3번째 페이지가 되었을 때, 내 이름도 떴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한상훈 대표 33억원.’

    나는 손을 모은 채로 내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손창욱 씨 3000만원.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한상훈 대표.”

    ‘한상훈’ 내 이름을 듣는데 또 기분이 묘하다. 공영방송 9시 뉴스에 내 이름이 불리다니.

    “33억원.”

    그런데, 내 착각일까.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이름을 불러내려가던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33억원’을 말할 때 살짝 흔들린 것만 같다.

    ‘다른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큰 금액이긴 하니까.’

    이웃돕기 성금을 가지고 경쟁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낸 33억 원이 가장 큰 금액이긴 했다. 이정도면 이 방송을 보는 누군가가 내 이름을 한 번쯤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공영방송에 이름이 한 번 났으면... 다시 조명되는 때가 있겠지. 요새는 다시보기 서비스도 활성화 되어 있고, 유투브에도 영상이 올라가기도 하니까.’

    요즘은 선행이든 악행이든 숨기기 힘든 시대다. 당장은 한 번 뉴스에 나오고 만 수준이지만, 나중에 ‘한상훈’이란 이름이 언론에서 오르내릴 때 다시 한 번 들춰지는 때가 있을 것이다.

    ‘이럼 이번 건은 이렇게 마무리 됐고... 다시 돈을 굴려볼까.’

    매달 구독료 100억을 내고 수익을 남기려면 돈이 쉬게 냅둬선 안 된다. 나는 달력 앱을 켰다. 4일 뒤 일정표에는

    ‘ㅌㄱㅂㅈ ㅂㄷㅅㅁㅁ ㅅ’

    라고 쓰여 있다.

    ‘태광방직 부동산매매 상한가’

    태광방직이 40년 묵은 금싸라기 땅을 파는 건 5일 뒤다. 아쉬운 것은 태광방직은 시총이 1800억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400억으로 170억 벌고, 33억을 기부해서 537억 정도가 남아 있다. 대호재가 있다고 해서 537억을 굴렸다간, 갑자기 적대적 M&A를 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시 마의 구간이로군.’

    지난 번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에 300억을 납입하기 전, 600억 굴릴 때도 느꼈지만, 우리나라 시장은 600억 선에서 딱 보이지 않는 유리천정과 마주치게 된다. 수익이 더 늘지 않는 마의 구간. 코스피 코스닥에서 움직이는 돈 가지고는 더 이상 수익률이 늘어나지 않는 지점.

    물론 12주 뒤, 12달 뒤 뉴스 덕분에 돈을 벌 기회는 늘어났지만 지금 가진 500억 가지고도 뉴스는 100% 활용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내 자산이 1000억이 되도, 1조가 되도 500억만 투자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음... 결국 다른 시장에 진출을 해야 한다는 건데...’

    나는 컴퓨터에 앉았다. 마우스를 움직여서 화면 보호기를 꺼버리고 우상단에 위치한 폴더를 찾았다. 거기에는

    ‘공부’

    라고 단출하게 쓰여 있는 폴더가 있다. 나는 그걸 더블클릭 했다. 안에는 여러 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홍콩 항셍’

    ‘중국 상해’

    ‘일본 닛케이’

    ‘미국 다우’

    ‘미국 나스닥’

    ‘금 선물’

    ‘오일 선물’

    ‘FX거래’

    모두 코스피 코스닥 거래규모를 상회하는 거대 시장들이다. 한국 주식시장은 이제 내 놀이터나 다를 바 없다. 지금 가진 돈을 키우려면 더 큰 시장에서 키우는 수밖에 없다. 이제 슬슬 세계적인 무대에서 나갈 때가 된 것이다.

    여태까지 진출을 꺼리고 있던 것은 첫째로 내가 코스피, 코스닥에 비해 이쪽 시장에 익숙하지 않았고, 둘째로 12시간 뒤, 12일 뒤 ‘세계’뉴스만 가지고 도전하기에는 효율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12주 뒤, 12달 뒤 뉴스도 있으니 세계 시장에 도전을 해볼 법도 하다.

    ‘다만 이게 시간이 좀 애매해서 걱정되네. 잘 되려나...’

    모든 나라는 제각각 주식시장이 열리는 시간이 다 다르다. 대부분 낮 시간에 정해져 있다. 그건 당연하다. 잠 잘 시간에 주가가 요동치면 투자자들이 맘 편히 잠을 자겠는가. 그런데 이 12시간뒤 메일은 딱 한국시간으로 정해진 시간에만 온다. 고객센터에서는

    ‘어디를 가도 한국 시간으로 메일이 보내집니다.’

    라고 못을 박아놔버렸다.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고 하면... 오전 8시 55분에 오는 건 밤 뉴스가 되고 오후 8시 55분에 오는 건 낮 뉴스가 되겠지?’

    그러면 조금 타임 트러블이 생긴다. 나도 잠을 잘 자야하니까.

    ‘이래가지고... 잘 되려나? 매매가?’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시차가 걱정되면... 지금 실험을 해볼 수도 있잖아?’

    그렇다. 해외에 나가면 당장 한국 주식에 시차가 생긴다. 이걸 가지고 실험을 해보면, 해외 주식을 할 때도 적응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 여태 돈만 벌고 해외여행 한 번도 못 가봤는데... 이참에 한번 다녀오자. 아주 먼데는 말고. 가까운 곳으로...’

    내가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띠리리’

    마침 전화가 왔다. 서 비서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사장님 공중파 데뷔 축하드립니다.”

    “아 그래. 고맙다.”

    “크 33억. 압도적이던데요. 아나운서도 조금 놀란 눈치더라고요.”

    착각인줄 알았는데, 진짜인 것 같다.

    “그래? 뭐... 그래. 그나저나 말이야.”

    “네 사장님”

    “나 요 며칠 2박 3일정도로 어디 가까운데 여행이나 갈까 하는데... 너도 같이 갈래?”

    “뭐 저야 데려가주시면 감사하지요.”

    “그럼... 어디로 갈까? 너무 먼 곳은 싫고 가까운 곳으로 말이야.”

    “일본이 무난하니 좋지 않습니까? 가깝고 청결하고 치안도 좋고 음식도 맛있고, 요즘 엔화도 싸서... 아니 그건 사장님이랑 상관없지만. 어쨌든 일본이 좋지요.”

    “일본?”

    좋다. 나는 스시도 좋아하고, 라멘도 좋아하니까.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니. 일본 만큼은 안 된다. 일본은 우리랑 쓰는 시간이 똑같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시차가 아예 없다.

    “아... 일본은 안 돼.”

    “네? 왜요?”

    시차가 없어서. 라고 대답할 수는 없다. 나는 대충 둘러댈 거리를 생각해냈다. 좋은 게 있다.

    “아... 방사능 때문에. 난 방사능이 피폭되는 건 싫다 야.”

    “아 그러세요? 저도 그건 조금 그렇습니다.”

    나는 공부 목록 중에 가장 가깝고, 시차가 생기는 곳을 골랐다.

    “홍콩. 홍콩으로 가자.”

    “홍콩? 좋지요. 언제 가실까요?”

    “내일 당장.”

    “내일 당장이요?”

    “그래. 네가 비행기 편 좀 알아봐봐”

    “그런데 그러면 조금 비쌀...”

    비싸기는.

    “경비는 내가 다 낼게.”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통화를 마친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공부’ 폴더를 보았다. 나는 세계시장에 나아갈 것이다.

    ‘자산이 천억이 넘으면.’

    국내에 천억은 있어야 구독료도 내고,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에 증자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건 곧 이루어질 것이다. 솔직히 이제 코스피나 코스닥은 내 개인 주머니가 되어버렸다. 언제고 200억 300억씩 돈을 빼다가 쓸 수 있는. 나는 태광방직을 관심종목에 올려놓았다. 이건 내일부터, 홍콩에서 살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