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72화 (72/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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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의 자택 근무(3)

    회사 안은 침묵이 감돌았다. 다들 놀라서 몸이 굳어 있는 것 같다. 하긴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지진 진동을 느낀다는 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까. 다들 서서 의자나 책상을 잡은 채로 눈알을 굴리고 있다. 나만이 유일하게, 긴장 없이 휴대폰을 들어서 포털사이트에 들어 가보았다.

    ‘속보 원주에 진도 5.2 지진’

    ‘지진 대피 요령’

    ‘여진 조심’

    포털창은 완전히 지진 판이 되어 있었다. 역시나 그러니까 지진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HTS를 켜지 않아도 붉은 양봉이 눈에 선하다. 지진이 나면 지진관련주부터 찾고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휴대폰을 하는 사이, 직원들은 그제야 제정신을 되찾았다. 내 말대로, 다시 진동이 울리지 않았으니까.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서 비서는 여전히 굳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괜찮을 거라니까.”

    나는 장 부사장의 보고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장 부사장님. 보고서 이야기 좀 듣고 싶군요.”

    장 부사장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사장님”

    나는 장 부사장과 함께 내 사장실로 들어왔다. 장 부사장은 문을 닫으며 말했다.

    “서울에서만 40년 가까이 살았는데... 이 정도로 흔들리는 건 처음 겪는 것 같군요.”

    역시 등짝도 알고 맞는 거랑 모르고 맞는 것의 차이는 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큰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아주 큰일은 없을 것이다. 정정보도 같은 건 오지 않았으니까. 나는 일로 넘어가서 장 부사장의 보고서를 들어보았다. 솔직히 이렇게 빨리 인수 대상을 물어올 줄은 몰랐다. 내가 그에게 주문했던 회사의 적정조건은 두 가지였다.

    첫째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에 남아 있는 자금만 가지고 인수를 할 수 있을 만큼 시총이 작아야할 것. 나는 내가 굴리는 금액이 천 억대까지 커질 때 까지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에 자금을 옮기기 않기로 했다. 그래서 일단 OH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고 남은 돈 가지고만 인수 가능한 작은 회사를 물색하라고 했다.

    둘째 OH엔터테인먼트와 똑같은 연예기획사나 혹은 이쪽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회사여야 할 것. 마스터 등급을 다는 데 필요한 것은 5개의 회사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계열사로 편입했다간 관리가 힘들어 질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회사 하나, 건설 회사 하나, 제약 회사 하나, 그런 식으로 마구잡이로 인수를 하는 것보다는 일단 결이 비슷한 회사를 인수해서 시너지를 내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보고서를 든 채로 장 부사장에게 물었다.

    “그래서 찾아온 건 제가 제시한 조건에 맞는 회사겠지요?”

    장 부사장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사장님”

    나는 보고서를 열어보았다. 맨 위에는

    ‘블루E&M 분석 보고서’

    그렇게 쓰여 있다.

    ‘블루 E&M이라... 처음 들어보는데?’

    뒤에 E&M. 엔터테인먼트 앤 미디어Entertainment and Media가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엔터테인먼트 계열인 것 같다.

    ‘다른 연예기획사?’

    나는 시선을 내려 보았다. 시가총액은 겨우 600억 정도. 대주주 지분율은 25%정도로 150억 정도면 전량 매수를 할 수 있었다. OH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고도,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에는 그 정도 여력은 남아 있었다. 나는 시선을 더 내려 보았다.

    [주요 사업 : 연예기획사, 사파이어TV 운영]

    그제야 알만한 이름이 나온다.

    “여기 사파이어TV운영사로군요?”

    “네 그렇습니다. 사장님”

    사파이어TV는 인터넷개인방송 플랫폼이다. 국내 점유율 1위 방송국인 유러피안TV를 시작으로 개인방송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인터넷방송국도 여러 개 난립했는데, 사파이어TV는 그 후발주자 중 그래도 일정 점유율을 지켜내며 살아남은 소형방송국이었다.

    “사파이어TV가 점유율이 얼마나 되지요? 10%가 되지 않는 것 같았는데...”

    “7%정도입니다. 유러피안TV가 50%, 코코넛TV가 20%, 해외 플랫폼인 포울렛 10%, 유튜브가 10% 정도를 가져가고 있고요. 사파이어 티비는 그 다음입니다.”

    7%. 많이 적은 것 같다. 그러니까 시총이 600억 밖에 하지 않겠지만.

    “음... 5등 기업이라... 그런데 기획사도 겸하고 있고요?”

    “네. 기획사는 이제 갓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단계입니다. 기획사를 운영한 것은 채 1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오 그래요?”

    “네 그것도 조금 스토리가 재밌는데, 개그맨 오성균 씨 아십니까 혹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네 모르실만 합니다. 데뷔한 해에 반짝 빛났다가 사라졌었거든요.”

    나는 포털사이트에 오성균을 쳐보았다. 프로필 하나가 뜬다. 35세. 얼굴을 보니 기억이 나긴 한다. 오랑우탄을 닮은 얼굴로 오랑우탄 흉내를 내던 것이. 하지만 그 때 딱 한 번 뿐인 듯 하다. 다른데서 본 기억은 없다.

    “그런데 이 분이 사파이어TV에서 방송을 시작했는데, 그게 인기가 꽤 있었나봅니다.”

    “음... 아무래도 일반 스트리머보다는 인지도가 있었겠지요.”

    “네 그래서 아예 이분 하고 계약을 맺고 기획사를 차린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른 동료 코미디언도 불러 모으고 해서 기획사 일도 하고, 개인 방송도 직접 관리하고 하더군요.”

    “오호라... 그래서 개인방송하고 기획사도 겸한다?”

    “네.”

    아이디어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요새 가수나 개그맨 중에서는 전업 스트리머, 혹은 유투버로 넘어오는 경우가 꽤 있었다. 수입이 그만큼 되니까.

    “그래서 우리 기획사랑 합쳐서 시너지를 내자?”

    “네 그렇습니다. 나중에 OH엔터테인먼트 소속된 연예인들을 개인방송에 내보낼 수도 있겠지요.”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오현주나, 김준형정도 유명 탤런트는 이런 곳에 내보내는 건 오히려 독이 될 것 같다. 개인방송이라고 하면 조금 격이 떨어지기도 하고 신비감도 줄어 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신인들은 다르다.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떨어지는 아이돌이나 TV출연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코미디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음... 아이디어는 신선하군요.”

    내 말에 장 부사장은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나는 재무제표를 보았다. 재무제표는 사실 형편없었다. 부채는 많고, 자산은 가지고 있는 게 없었다. 매출은 들락날락해서 턱걸이로 적자를 면하는 수준이었다. 이대로 쭈욱 가다간 시총 600억도 버티기 힘든 상태.

    “여기 회사 CEO는 뭐하는 사람입니까?”

    “꽤 젊은 사람입니다. 40세. 안용균 사장. 업계 사람들에 의하면 꽤 특이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근데 회사를 넘기겠답니까?”

    “이분은 도찬기 대표 때와는 조금 케이스가 다릅니다. 자기 주식을 팔고 업계를 떠나고 싶은 게 아니고 투자를 받고 싶어 하는 쪽 같더군요. 저희에게 일정 지분은 넘기는 대신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서 저희에게 투자를 해달라고... 그런 식의 요청을 해왔습니다.”

    “호오 2대주주로 밀려나도 좋으니 경영은 하고 싶으시다?”

    “네 이분은 이력이 재밌는 게 유러피안TV의 초창기 창립멤버였는데 CEO와의 불화 때문에 뛰쳐나왔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쪽 시장에 있던 분입니다. 기획사는 말씀드린 대로 곁가지고 시작하게 된 것이고요.”

    “음 그러면 자기 손으로 복수를 하고 싶겠군요. 자신이 만든 사파이어TV로 유러피안TV를 꺾고 싶어 하는.”

    “네 그래서 이분은 본인 회사가 크지 못한 게 단순 자금력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자금력은 딸리고 회사채나 CB를 내는 것도 여의치 않아서 투자자를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돈은 있지만 자신의 경영에 손을 대지 않는 그런 투자자를요. 그래서 투자를 받아서 유러피안TV를 꺾겠다는 게 자신의 포부랍니다.”

    복수란 어떤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동기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만 들어도 재밌는 사람 같군요. 요새 유러피안TV가 시총이 아마...6천억 정도 하는 걸로 아는데.”

    “네 5800억정도 합니다.”

    “그럼... 이 사람이 복수에 성공하기만 하면 아마 사파이어TV는 지금보다 시총이 10배는 뛰겠네요. 저희는 투자금의 10배를 회수 할 수 있을거고요.”

    “쉽지 않겠지만 말이지요.”

    “네 좋습니다. 그러면 이분하고 미팅도 한번 해보지요. 그리고... OH엔터테인먼트 권 사장한테도 연락해서 어떤지 한번 이야기를 해보라고 해주세요. 엔터 쪽은 그쪽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테니.”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장 부사장은 고개를 숙이고 사장실 밖을 나갔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앱을 켜보았다. 사실 나도 가끔 개인방송을 보는 편이어서 안에는 유러피안TV, 코코넛TV, 포울렛, 유투브가 다 들어 있다. 사파이어TV만 빼고.

    ‘5등이라... 제대로만 키우면 대박작품이 되긴 할 텐데...’

    요새 개인방송은 계속해서 뜨고 있었다. 시작한지 10년 가까이 되었는데, 요새는 개인컨텐츠가 각광을 받으면서 더더욱 뜨는 것 같다. 요새 어린애들 꿈 1순위가 의사, 판사도 아니고 인기 스트리머가 되었다고 하니까. 아무리 후발주자라고 해도, 시장이 커지면 파이를 나눠 먹기 마련이다. 시총도 싸고, 시너지를 낼만한 요소도 있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래 한 번 견적은 내봐야지. 150억이면 싸기도 하고 말이야’

    150억은 오늘 이미 벌었을지도 모른다. 문득 든 생각에 나는 HTS를 켜보았다. 지진관련주는 7개 종목 중에 4개가 상한가에 가 있었다. 특히 지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서 주로 투자했던 ‘세윤지질, 준여테크, 에이스건설’ 3개 종목은 모두 상한가였다. 차트를 보면 참 재밌다. 아침에 +1%, -1%왔다 갔다하던 주식들이 지진과 함께 상한가로 쭉 달려 있는 모습을 보면.

    ‘사실 지진났다고 해서 매출이 느는 것도 아닌데...’

    테마주란 대개 이런 식이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일단 상한가를 찍고 본다. 사람의 상상력과 탐욕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그야말로, 자연이 만들어낸 작전주나 다를 바 없다. 나는 계좌를 일시에 띄워 보았다. 400억에 신용까지 더해 600억 정도가 투자되어 있는 전 계좌는 모두 다 빨간 색으로 점칠 되어 있었다.

    ‘20억, 24억, 18억...’

    모두 더해보니 대략 150억 정도의 수익이 나 있다. 딱 블루E&M을 살만한 가격이다. 자연재해를 예측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 돈 버는 것도 쉬운 일이 된다.

    ‘그럼 수확을 해보실까...’

    나는 상한가에 있는 종목은 반절 팔고, 상한가에 가지 못하고 10% 20%에서 그친 종목들은 바로 정리했다. 왜냐하면 이런 테마주는 대개 대장주 위주, 이기는 놈이 계속 이기고, 가는 놈이 더 잘 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한가에는 잔량이 수 없이 쌓여있다. 그 말인 즉

    ‘지진이 났으니까 이걸로 돈 벌어보려고 합니다.’

    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다. 그걸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그런 셈이니까. 다만 나는 이 게임에서 이기는 쪽일 뿐이다.

    ‘매도.. 매도... 그리고 매도...’

    이기고, 이기고, 그리고 또 이기고. 대략 1시간 정도 시간을 들여서 주식을 정리한 나는

    ‘쉽구나 쉬워~’

    나는 휘파람을 불며 매도를 마쳤다. 상한가에 가 있는 주식은 반절정도 남겨두었다. 혹시나 내일 더 상승할지도 모르니까. 매매를 마친 나는 HTS를 닫았다. 오늘 번 돈만 100억이 넘었다. 예전에는 세상 살기가 늘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요즘은 세상이 점점 더 쉽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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