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71화 (71/198)
  • # 71

    사장님의 자택 근무(2)

    나는 눈을 껌뻑거리며 다시 한 번 메일을 읽어보았다.

    D - 12일 뒤

    정치 – 국회 파행 청와대 탓인가 야당 탓인가

    경제 – 올해 반도체 빼면 실질적 성장 0%

    사회 – 지진 안전 불감증 이제 개선해야 할 때

    생활/문화 – 만화 지진에서 벗어나기 판매량 급증

    세계 – 아프리카 코뿔소 멸종 직전

    IT/과학 – 동물들은 어떻게 지진을 미리 아는 걸까

    연예 – 중국의 무단 표절 이대로 괜찮은가?

    스포츠 – 심권성 정규투어 3차전 우승

    일곱 개 뉴스 중에 세 개나 ‘지진’이란 단어가 들어간다. 사회, 생활문화 그리고 IT과학. 나는 마우스를 빙글빙글 돌렸다.

    ‘...우연? 아니야 그러기에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대개 이렇게 평소 보이지 않던 주제의 기사들이 갑자기 한 번에 뜬다는 것은, 최근에 한 번 이슈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진... 지진이라...’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인류에게 국가에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당사자들에게는 큰 일이지만, 주식시장에서는 기회로 작용한다. 이른 바 지진테마주. 지진이 나서 건물이 무너지면, 재건에 필요한 토목업체나, 내진설계용 구조재를 만드는 회사 등등이 ‘수혜를 본다’고 일단 상한가를 가는 식이다.

    ‘진짜 지진이 있다면 큰일은 큰일인데...’

    나는 일단 지진이 얼마나 어떻게 크게 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생활/문화 – 만화 지진에서 벗어나기 판매량 급증’

    이건 어느 출판사가 떼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을 것 같고

    ‘IT/과학 - 동물들은 어떻게 지진을 미리 아는 걸까’

    는 뉴스는 진짜 흥미로운 과학 뉴스가 나올 것 같다. 나는 사회 쪽 ‘지진 안전 불감증 이제 개선해야할 때’를 클릭해보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속독 능력을 활용해 빠르게 기사를 스캔했다.

    ‘지진의 피해는 심각할 수 있어... 시민의식의 확대... 일본의 경우를 타산지석 삼아 경각심을 가져야...’

    그런데, 핵심적인 요소. 그러니까 언제 어떻게 지진이 있었고, 하는 이야기는 없었다. 기사 처음부터 끝까지 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교훈적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래서는 진짜 지진이 있긴 한 건지, 있다면 언제 있는지 알 수가 없았다.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한 며칠 더 기다려 볼까? 12주 뒤, 12달 뒤 뉴스는 아니더라도, 12시간 뒤나 12일 뒤 뉴스에서는 다시 걸릴 지도...’

    하지만 그건 가능성뿐이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은 ‘12일 뒤’ 뉴스. ‘12시간 뒤’뉴스가 지금부터 12시간 뒤까지의 뉴스를 다루는 것처럼. ‘12일 뒤’뉴스도 오늘부터 12일 뒤 뉴스를 다루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지진은 당장 오늘 뜰 수도 있다.

    ‘어쩌지?’

    내가 잠깐 고민을 하는 데, 문득 아래쪽에 스킬 창이 눈에 띄었다.

    ‘인물 검색’

    그리고

    ‘랭킹 뉴스.’

    ‘음...’

    생각해보니 둘 다 지진 뉴스를 가려낼 방법이 있다. 먼저 랭킹 뉴스는 직관적이다. 만약에 전국을 울릴만한 지진이 있었다면, 단연 12일 내에서 랭킹 1등 뉴스는 지진 뉴스일 것이다. 하지만 랭킹 뉴스는 한 달에 딱 한번만 쓸 수 있다. 이제 ‘12주 뒤’나 ‘12달 뒤’에도 랭킹뉴스를 쓸 수 있게 되었는데, 그쪽을 보는 게 아무래도 효율이 좋을 것 같다.

    ‘그럼 일단 이름 검색을 해볼까.’

    이름 검색은 조금 우회로를 쓰는 방법이다. 지진과 관련된 사람 이름을 검색하는 것. 나는 포털사이트를 켜고 인터넷으로 넘어와 ‘국민안전처’를 검색해보았다. 예전에 세월호 사건 때 신설된 기관. 그런데 그건 2년 6개월 만에 사라지고 없었다.

    ‘...국민안전처는 행정안전부에 흡수되면서 폐지되었다... 에 벌써?’

    나는 행정안전부로 다시 검색을 해보았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황창규 씨다.

    ‘음...’

    꽤 희귀한 이름인 것 같다.

    ‘하긴 장관인데 이정도 이름에서는 탑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로 인물검색에 들어갔다.

    ‘황창규 장관 원주 찾아 지진피해자 직접 위로’

    걸려들었다.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황창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화요일 오전 10시경 원주에 있었던 진도 5.2의 지진... 특별 대책위원회를 설립해 지진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지진피해자들을 지원을 약속할 것을....’

    원주에서 진도 5.2의 지진. 5.2면 대단히 큰 규모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없는 수준의 진도.

    ‘허... 이러니까 뉴스에서 이슈가 되었구나...’

    나는 달력을 보았다. 오늘은 수요일. 12일 뒤는 딱 화요일이다. 그런데,

    ‘지난 화요일’

    이란 표현이 나온 것을 보면, 이건 12일 뒤 화요일이 아니라, 5일 뒤 화요일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다음 주 화요일 오전 10시.’

    시간을 특정 시킨 나는 바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지진테마주.’

    를 검색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전에 드는 생각이 있다.

    ‘잠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지진이 일어날 걸 알면서, 그걸 가지고 돈만 벌어갔다가는 나중에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지진이란 그야말로 자연재해다. 신이 아니고서야 일어날 지진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어디다가 제보를 해서 경고를 해준다던지 해서 피해를 축소시킬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나는 다시 12시간 뒤로 돌아와 기사를 읽어보았다. 어디 구체적인 피해 내용이 있나 해서. 있다.

    ‘오래된 가옥의 벽에 금이 가고, 원룸 기둥이 손상이 가는 등...다행이도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나는 그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이란 부분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럼 다행이네... 그러면... 제보도 생각해 봐야겠는데?’

    인명 피해가 없었다. 그러면 대개 나머지 문제들은 시간이, 돈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된다. 혹시나 내가 제보를 해서, 그것 때문에 혼란을 빚는다면, 오히려 그 나비효과 때문에 누군가 죽을지도 모른다.

    ‘정정보도 - 구독자의 개입에 의하며 사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런 메일을 받고 싶지는 않다.

    ‘그래 그러면 일단. 돈을 벌고 나중에...’

    생각이 든 나는 포털사이트에 ‘지진 테마주’를 검색해보았다. 역시나 테마주들이 줄줄이 뜬다.

    세윤지질 – 지반개량 전문건설업체 지진 대장주

    준영테크 – 교량받침, 강주조재 생산 업체.

    에이스건설 – 토목용 특수자제 건설

    파이브메탈 – 내진 설계 원자력 밸브 제조사

    나인리노 – 공공 무선 통신망 운용 주. 소방, 경찰, 응급의료기관 무선통신망 사업

    장연건설 – 내진설계 특수기술 보유

    대준가스 – 가스소화설비 전국 제조업체 재난안전 관련주

    지진테마주 역시 ‘테마주’답게, 지진 한 번 일어났다고 해서 마구 실적이 개선된다거나 할만 할일은 없다. 단지 지진이 이슈가 되니까. 그에 관련된 주식이 뛰는 것이다. 그나마 관련이 깊은 건 세윤지질과 준영테크, 에이스 건설 정도. 뒤에 갈수록 조금씩 지진이 났다고 해서 급등을 하기에는

    ‘으응? 이게 무슨 상관?’

    싶은 종목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테마주라는 건

    ‘으응?’

    싶은 종목도 보내면 가는 지라. 아주 무시할 수만은 없다. 나는 위의 세 종목은 많이, 나머지 네 종목은 적게 나누어서 사기로 했다. 가지고 있는 돈은 400억. 이걸 몰빵하면 역시나 내 돈 때문에 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

    ‘그럼 내일 월요일까지 천천히 나누어서 사자.’

    요새 아무리 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내일 일어날 지진을 오늘 예측하는 기술은 없다. 주가 오르지 않게 천천히 나눠서 산다고 해도 주가가 미리 올라서 곤란스러운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한 나는 관심종목에 ‘지진테마주’를 새로 파 놓고 조금씩 매수를 하기 시작했다.

    *

    5일 뒤, 운명의 날. 화요일. 나는 평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뉴스를 보았다.

    ‘오케이... 그래...’

    뉴스를 본 나는 커피를 들고 바로 옆자리로, 게임용 컴퓨터가 있는 자리로 옮겨갔다. 주식은 이미 지진 관련주에 몰빵이 되어 있었으므로. HTS를 따로 켤 필요는 없었으니까. 머리에 헤드셋을 끼고 손을 풀고 있는데,

    ‘우우웅~’

    서 비서에게 전화가 왔다.

    “응 와이?”

    “사장님 장 부사장님이 새로 물망에 올라온 회사가 있답니다. 보고서 메일로 보내드릴까요?”

    “오 그래? 음... 메일...”

    내가 잠시 고민을 하자 서 비서가 한 마디를 더 했다.

    “웬만하면 출근 한 번 하시지요.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들 얼굴도 보실 겸 해서.”

    나는 달력을 보았다. 지진관련주 산답시고 한 일주일 출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럴까?”

    “네 신입사원들이 여기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일하면 조금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 알았어. 출근할게. 그럼.”

    “제가 모시러 갈까요?”

    “아니야. 내가 갈게. 괜히 네가 왔다 갔다 할 필요 있겠어.”

    “네 사장님”

    출근하기로 마음을 먹은 나는 드레스룸으로 와서 정장을 챙겨 입고 포르쉐 키를 챙겼다.

    *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김주한입니다.”

    “예 반가워요.”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정주미입니다.”

    “반갑습니다.”

    나는 신입사원들의 인사를 받았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인수를 한 OH엔터테인먼트 관리뿐만 아니라, 주식 투자도 하고, 채권 투자도 하고, 상장이 되지 않은 회사에 직접 투자도 하고 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일단은 내가 손을 대지 않는 하에, 장 부사장이 일임되어 있었다.

    물론 그래봐야 OH엔터테인먼트를 사고 남은 150억 정도 돈을 굴리는 거라 내 개인자금 400억보단 작았지만, 이정도도 굴리려면 사람이 더 필요했다. 다른 사원들 인사를 받고 있는 동안, 장 부사장도 밖에 나와서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나는 장 부사장에게 말했다.

    “그래서 새로 인수할만한 회사를 찾았다고요?”

    내 말에, 장 부사장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네 사장님 한 번 보시지요.”

    장 부사장은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게 건넸다. 나는 그걸 받아들었다.

    ‘대체 뭘 물어온 것일까?’

    사실 내가 그에게 주문했던 회사는 조금 조건이 까다로웠다. 시총도 작아야 되고, 엔터테인먼트와 시너지도 낼 수 있는, 그런 회사를 원했기 때문이다. 나는 보고서를 들고 사장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그르르르르릉’

    소리와 함께, 사옥 전체가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어 뭐야?”

    서 비서는 물론이고 침착한 장 부사장도 꽤나 놀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놀랐다.

    ‘아니 서울도 꽤 흔들리잖아?’

    하는 생각에. 5.2지진이라는 게 생각보다 대단한 것 같다. 사내 직원들은 모두 혼란에 휩싸였다.

    “이게 뭐야?”

    “밖으로 나가야 되나?”

    하는 순간.

    ‘위이이잉~’

    모두의 휴대폰이 일시에 울렸다. 다들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본다.

    ‘기상청 강원도 원주 서쪽 6Km 지역 규모 5.2 지진발생/여진 등 안전에 주의바랍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지진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마 내 주식은 몇 개는 상한가에 걸려 있을 것이다.

    “와 지진이래?”

    “5.2? 큰데?”

    서 비서는 살짝 눈이 커져 내게 말했다.

    “사장님 어쩌지요? 일단 대피해야 할까요?”

    나는 그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기사에서 본 바로 인명피해는 없었다. 재물피해도 원주에서 변두리 부분만 손해를 본 것뿐이다. 나는 사원들이 다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너무 놀라지들 마시고, 천천히 업무복귀하세요.”

    솔직히 평소의 나였다면 그렇게 침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곳은 안전하다는 것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