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70화 (70/198)
  • # 70

    사장님의 자택 근무

    ‘어디보자...’

    나는 내 컴퓨터에 내 계좌들을 일시에 띄워놓았다.

    ‘48억, 55억, 62억, 40억, 70억, 31억, 75억, 10억.’

    총 8개의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은 400억 정도.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에 300억을 출자한 이후 이 정도 돈이 남아 있었다.

    ‘지난 달에는 200억 벌고... 100억 냈던가?’

    나는 매매내역을 살펴보았다. 맞다. 첫 달, 두 번째 달에는 연달아 순익 200억을 내서 자신감이 있었는데, 이번 달은 100억 밖에 내지 못했다. 매매를 못해서 그랬던 게 아니라, 면세점 쟁탈전 같이 큰 건이 걸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그런 빅 이벤트는 일 년에 세 네 개 밖에 없으니까.

    돈이 움직이지 않으면, 돈을 벌 수가 없다. 주식판이란 본래 그런 곳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미래를 낙관하고 있었다. 이제 하루에 받아 보는 뉴스가 8개였으니까. 모든 투자가 다 그렇지만, 수익률만 좋으면 자산은 급격하게 우상향하기 마련이다. 나는

    ‘D 12시간 뒤’

    ‘D 12일 뒤’

    ‘D 12주 뒤’

    ‘D 12월 뒤’

    그걸 하나 씩 클릭해보았다. 그러면서 빠르게 뉴스 제목들을 훑었다.

    ‘가계부채 뇌관이... 스타워즈 시리즈 망조... 스마트폰의 한계가... 정성우 롯데 이적...’

    매일 뉴스 제목만 본지 4개월. 나는 이제 딱 보면 딱 아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빠르게 눈알을 굴리다가,

    ‘청와대 청년실업 대책위원회 소집... 수지전자 2분기 어닝서프라이즈...’

    원석을 하나 캐내고 움직이던 눈을 멈추었다.

    경제 - 수지전자 2분기 어닝 서프라이즈

    ‘걸려들었군.’

    우리나라의 모든 주식회사는 매분기마다 자신의 회사가 어떻게 돈을 썼고, 무슨 사업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얼마를 벌었고, 하는 모든 과정을 보고해야한다. 당연히 주가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여서 주식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들은 매분기 회사들의 분기보고서를 예측하는데, 여기서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실적을 냈을 때 어닝 서프라이즈earning surprise라는 표현을 쓴다. 나는 슬쩍 위를 보았다.

    ‘D – 12주 뒤’

    12주 뒤 뉴스. 지금은 9월. 기업들의 2분기 실적 발표가 10월말에서부터 11월 중순까지 몰려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딱 시간이 맞다.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수지전자가 2분기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11월 15일. 수지전자는 2분기 매출액 6188억 영업이익 201억 당기순이익 210억의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나는 기사를 더 내려 보았다.

    ‘주가 이야기도 쓰여 있을 법 한데...’

    진짜 있다.

    ...애널리스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실적을 냄으로서 수지전자는 이 날 주가도 급등 20%대 상승한 164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나는 HTS로 수지전자를 검색해보았다.

    수지전자 9900

    수지전자는 만원도 채 되지 않는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었다.

    ‘3달 뒤 60% 수익이라...’

    사실 엄청난 수익이다. 일반적인 투자자가 이 기사를 보았다면, 집 팔고 차 팔고 대출 받아서 몰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일반적인 투자자가 아니다. 내가 만약 400억 몰빵을 해서 240억을 번다고 쳐도 그 중 구독료로 300억을 내야한다. 그럼 오히려 손해다. 나는 내 방식대로 머릿속으로 정리를 해놓았다.

    ‘11월 15일. 수지전자 20% 급등. 16400원까지 상승.’

    이렇게 해두면 그 사이 다른 뉴스에서 수익을 내고 이 날도 와서 단기 20%를 챙길 수 있다. 구독료 100억을 넘어서는 수익을 내려면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한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일정표 앱을 켰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십시오.’

    나는 대문자와 소문자, 그리고 숫자와 특수기호까지 섞인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앱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다음 ‘11월 15일’에

    ‘ㅅㅈ 164’

    만 써놓았다. 이건 일종의 암호다. 누군가 이것을 보더라도 이것만 봐도

    ‘수지전자 16400원’

    이걸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도록. 메모를 적고 나서 나는 다른 일정표를 보았다. 10월 28일.

    ‘ㅇㅅ 222’

    라 쓰여 있다. 나는 그것만 보고 바로 암호를 해독해냈다.

    “유성... 식품. 222000원.”

    10월 10일에도 이벤트가 하나 있다.

    ‘ㅇㅅㅇㄹㅁㄴ ㅅㅈ’

    나는 그걸 보고 바로 암호를 해독해냈다.

    “알스알루미늄 수주 공시”

    가격은 쓰여 있지 않지만, 어쨌든 호재가 터진다는 말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호재기사를 정리해두었다. 두 세 글자. 앞머리만 보고도 매매를 할 수 있도록. 이렇게 달력을 채워가다 보면 나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수익이 날게 뻔하다.

    ‘가장 가까운 것은...’

    요번 달 말. 9월 27일에 하나 일정이 잡혀 있다.

    ‘ㅌㄱㅂㅈ ㅂㄷㅅㅁㅁ ㅅ’

    가장 오래된 암호문이다. 나는 3초정도 생각을 하다가, 초성으로 문장을 만들어냈다.

    “태광방직 부동산매매 상한가”

    태광방직은 지방에 있는 오래된 방직회사다. 방직회사답게 70년대에 만들어진 회사인데, 수익은 거의 나지 않지만 지방광역시 금싸라기 땅에 부동산을 쥐고 있었다. 사실 70년대 당시에는 그냥 도시 외곽에 공장을 지은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금싸라기 땅이 된 것이긴 하지만. 그런데 이번에 그 금싸라기 땅을 2천400억 원에 팔고 나오기로 했다.

    시총이 1800억인데. 그러니까 지금 저 주식을 사면, 2400원 이상 가는 현금을 1800원주고 사는 효과가 있는 거나 다를 바 없다. 때때로 오래된 주식 중에는 저렇게 황금이 진흙 속에 묻혀있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이 저런 주식을 사지 않는 것은 대개 저 상태로 10년 20년 횡보를 해서 그렇다. 비싼 땅이 있지만 언제 팔릴지 모르니까. 돈이 언제 될지 모르니까. 사지 않는 것이다. 나는 알지만.

    ‘27일이면... 천천히 사모아야겠군... 다른 뉴스가 뜨지 않는 한...’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정표 앱을 닫았다. 이어서 해야 할 것은 인물검색을 활용하는 것이다. 나는 12시간 뒤 메일함을 켜놓은 채로 메이저 포털사이트로 들어갔다. 여기에는 업무용 메일이 있다. 12시간 뒤 메일이 오는 마이너 메일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쓰는 메이저 메일이.

    ‘OH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명단’

    그걸 클릭해보면

    ‘오현주(25) - 배우

    ‘김준형(24) - 배우’

    ‘성진(22) – 아이돌’

    ‘프란츠(21) - 아이돌’

    ‘마하(22) - 아이돌’

    OH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아티스트들의 프로필이 있다. 나는 제일 먼저 맨 위에 있는 오현주를 클릭해보았다.

    ‘오현주 본명 오현주 나이 25세 학력 지성초, 지성중, 서울예고. 가족관계 부모본인동생...’

    학력이며 가족관계며, 개인적인 정보가 주루루 나왔다.

    ‘사장님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거 유출되면 안 된답니다. 권 사장님이 주의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서 비서가 메일 보내면서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알만 하다. 이건 단순 프로필이라고 하기 에는 너무 자세한 사항까지 쓰여 있었으니까.

    ‘연기력 9, 외모 10, 프로마인드 9 언변 7 예능감 4 패션센스 3 노래 5 춤 0...’

    각종 능력치 평가에서부터

    ‘미모는 매우 출중 연기력도 뛰어나다. 연기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순진하고 순박한 성격. 하지만 그 때문에 색이 강한 배우들 사이에서 빛이 나기는 어렵다. 배역이 잘 맞아야 될 것. 언변은 괜찮은 수준이지만 예능감은 부족하다. 멀티테이너로서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작은 얼굴에 몸매는 좋지만 코디 없이 옷을 입게 해선 안 된다. 노래는 그럭저럭 하지만 춤은 가르쳐도 힘들 듯. 절대 시키지 말라.’

    와 같은 개인적인 평가도 있었다.

    ‘뭐지 이건? 권 사장이 평가를 해놓은 건가? 오디션 때?’

    권 사장은 아마 내가

    ‘OH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아티스트들 프로필 좀 보내주세요. 제가 추천하거나 비추천하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그런 요청을 하니까. 기존 사내에 있던 평가도 곁들여 놓은 듯 했다. 본인 생각과 어떻게 다른지 보라고.

    ‘나는 그러려고 요청한 건 아니었는데...’

    프로필 보는 재미는 꽤 있지만, 이걸 보려고 요청을 한 건 아니었다. 나는 이름만 있으면 된다. 나는 12주 뒤 인물 검색에 ‘오현주’를 써넣었다. 곧 기사하나가 뜬다.

    오현주 – 커피를 든 모습도 여신

    기사를 클릭해보니 외투를 입은 채 커피를 든 오현주의 모습이 보인다. 주변을 보니 촬영장비 같은 게 보인다. 지금 한창 캐스팅 끝내고 크랭크 인 하려는 그 영화를 찍는 모습인 것 같다.

    ‘이건 별게 아니고...’

    나는 12개월 뒤에 가서 뉴스를 보고 거기에도 ‘오현주’를 써넣었다.

    오현주 – 악역 연기도 호평 못하는 게 뭐야.

    이번에는 드라마 뉴스다. 기사를 읽어보니 내년 봄 즈음 기사인 듯하다. 내용은 별 거 없었다. 제목 그대로 악역을 맡았는데, 악역 연기도 잘한다는 것. 역시 좋은 기사다.

    ‘춤을 못 춘답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창을 닫았다. 오현주는 내년 봄까지 별일 없이 잘 나가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OH엔터테인먼트의 아티스트들을 검증할 생각이었다. 좋은 뉴스가 있으면 쭈욱 밀어주고, 나쁜 뉴스가 있으면 싹을 잘라버리게. 나중에 나 스스로가 오현주나 김준형만큼 유명해지면 나 스스로를 써먹을 일도 있을 것이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늘 그렀듯 8시에 일어났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전화기를 들어서 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응 나야. 회사는 별일 없지?”

    “별일은 없습니다만... OH엔터테인먼트 주가가 조금 떨어졌습니다.”

    “그래? 얼마나?”

    “-2%정도...”

    지훈이는 주식은 별로 해보지 못한 모양이다.

    “에이 그 정도는 누가 팔면 내려가는 수준이야.”

    “그래도 찾아보니까... 최근에 저희 회사가 인수했다고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던데요.”

    “그래? 왜?”

    “엔터테인먼트랑 하나도 상관없는 사람이 갑자기 난입했다고...”

    “음...”

    표면만 봤을 때, 아주 틀린 의견은 아니다. 단지 내가 미래뉴스를 틀어쥐고 있다는 점을 몰라서 그렇지.

    “뭐 괜찮아. 실적에서 보여주면 주가는 오르기 마련이거든.”

    “그렇겠지요?”

    “그럼. 그나저나, 나는 오늘은 출근 안할게. 장 부사장님에게는 직원 늘리는 거랑 다른 회사 물색하는 거 잘 해달라고 말해드려.”

    “네 사장님.”

    “그래 부탁한다.”

    통화를 마친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았다. 아직 50분 가량 남아 있다. 나는 업무용 컴퓨터를 켜 두고, 의자를 밀어 게임용 컴퓨터로 왔다. 1080TI가 두 개 달려 있는 최고급 컴퓨터. 나는 그 컴퓨터로 게임 한판을 했다. 그러고 나니 딱 8시 50분이다.

    ‘휘~휘~휘~’

    나는 휘파람을 불며 의자를 옮겨왔다. 업무용 컴퓨터 앞으로. 8시 55분이 되고, 메일이 온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메일을 하나 하나 찾아보았다. 그런데,

    “응?”

    네 통의 메일 중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 잡는다. 미래 뉴스를 받아 보는 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서 조금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는데, 이건 조금 다르다.

    ‘이건... 큰 일...? 아니 어쩌면... 큰 돈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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