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결국 재회
정치 – 재선 후 1년 주성원 시장의 성적표는?
경제 – 빈익빈부익부, 심해지는 수도권과 지방의 괴리
사회 – 격화되는 젠더 간 갈등 해법은?
문화/생활 – 어벤저스4 새 흥행 기록 세워
IT/과학 – 수성전자 네뷸러 10 리뷰.
세계 – 아프리카 기아는 옛 말 요새는 비만이 문제
스포츠 – 2019 가을 야구 진출 팀은?
연예 – 복면댄스왕에 늦바람난 제비청년
나는 별 생각 없이 1년 뒤 뉴스 제목들을 보았다. 돈이 되든 되지 않든, 1년 뒤 뉴스는 흥미롭다.
‘주성원 시장님은 곧잘 하시고 있나보네... 젠더 간 갈등... 요새도 문젠데... 더 커지나보네... 어벤저스4편이 내년 개봉인가? 복면댄스왕은 내년까지도 인기가 꾸준한가보네? 안본지 꽤 됐는데...’
그러던 중
‘위이잉’
전화기가 울렸다.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서 비서가 조심스레 묻는다.
“사장님 그... 집중하시는 일은 다 끝나셨습니까?”
나는 힐끗 시간을 보았다. 9시 20분. 오늘은 10시에 일정이 있었다. 나는 메일함을 닫으며 말했다.
“응 그래. 가자 지금.”
“네 사장님”
나는 재킷을 챙겨 입은 다음 문 밖을 나섰다. 오늘 일정의 공식적인 이름은 합병축하식이었다. CKD엔터테인먼트와 OH엔터테인먼트가 한 가족이 되어 새 출발을 하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고, 실제 이 행사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먼저 이 회사의 진짜 주인인 내 얼굴을 보여주는 것, 둘째 진짜 주인인 내가 권오혁 사장에게 공식적으로 권력을 위임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CKD엔터의 이사들이 불만을 품을지도 모릅니다.’
장 부사장의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나서서 줄 세우기를 한 번 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옛 왕이 귀족들 앞에서 새 영지의 영주를 임명하는 것과 같았다.
‘...영지의 새 영주로 ...를 삼고 통치를 위임하노라.’
물론 현대에 들어서며 왕은 대주주로, 귀족들은 이사로, 영주는 사장으로, 자본주의에 입각한 언어로 탈바꿈되긴 했지만, 기본 구조는 동일하다. 권력에 의한 줄 세우기 말이다.
*
OH엔터테인먼트가 있는 청담동으로 향하는 길. OH엔터테인먼트 다와서 신호대기를 하던 중 내 눈에 고급스러운 차가 하나 눈에 띈다. SUV인데 살짝 고풍스러운 느낌이 드는 전면에서부터 탄탄해 보이는 차체까지, 마음에 든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지훈이에게 물었다.
“서 비서 저 차는 뭐지?”
내 손가락질에, 서 비서는 바로 대답했다.
“벤틀리 벤테이가네요.”
학창 시절 때는 몰랐는데, 서 비서는 고급 차 애호가였다. 보유하지는 못하지만, 상상을 해보는 쪽으로. 그래서 나보다도 더 고급차 모델에 대해 잘 알았다.
“그래? 벤틀리구나. 저거 마음에 드네.”
“벤틀리잖습니까 사장님. SUV쪽에서는 최상급이지요.”
‘저건 얼마나 하니?’
나는 그렇게 물으려다가, 그냥 묻지 않고 말했다.
“그래 그럼 딜러에게 연락해서. 사놔 줘. 똑같은 푸른색으로.”
다이아 등급도 달성했겠다. 저 정도는 스스로에게 주는 상으로 삼아도 될 것 같다. 서 비서는 군말 없이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신호대기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잠시 그 차를 바라보았다.
‘참 예쁘단 말이야...’
그런데 그러던 중이었다.
‘부웅~’
벤틀리가 살짝 앞으로 앞서나가면서 뒤에 있던 차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그 차가 꽤 낯이 익다. 사람 키 높이의 검은색 벤츠 밴.
‘저건 분명...’
그 때, 추 병원에 병문안을 올 때 오현주가 타고 왔던 그 차였다. 설마 싶긴 하지만, 확실하진 않다. 다른 연예인도 충분히 타고 다닐 수 있으니까. 그런데,
“다 왔네요. 사장님”
서 비서가 차를 몰고 OH엔터테인먼트 사옥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차 역시 우리를 따라 주차장 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서 비서는 한 쪽에 차를 댔다. 그 사이 그 밴도 우리에게서 세 자리 정도 떨어진 곳에 차를 댔다.
‘설마?’
나는 자리에서 내려, 그 밴에서 누가 내리는지를 지켜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전에, 운전석에 앉아 있던 서 비서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오와... 오현주다. 사장님!”
진짜 오현주인 모양이다.
‘결국 재회로군.’
궁금하다. 그녀가 나를 알아볼지, 알아본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차 문을 잡은 채 밴 쪽을 보니, 오현주가
‘또각 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가 있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엄청난 미모다. 마치 얼굴에서 빛이 나는 듯하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나는 살짝 몸이 굳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어?”
그녀의 눈이 커진다. 딱 봐도, 나를 알아보는 눈치다. 그녀는 나를 보며 말했다.
“저기...? 맞으시죠?”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씨익 웃었다. 권 사장은 나를 잊었지만, 그녀는 나를 잊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다시 만났네요. 반갑습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을 보고 입을 가리는 소녀 팬들처럼, 본인이 입을 가린 채로 나를 보며 말했다.
“아니 정말. 여긴 왜...? 어떻게 오신 거예요?”
그녀는 내가 이곳 주인이 된지 모르는 듯하다. 그 때,
“뭐야?”
그녀 뒤에서 남자 하나가 나타났다. 얼굴을 보니 딱 기억이 난다. 오현주의 매니저다. 내 명함을 가로채 갔던. 그는 나를 보더니, 오현주보다 더더더욱 눈이 커진다.
“아니... 당신... 진짜?”
나는 그를 잠깐 쳐다보았다. 그는 나를 보더니, 내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 한상훈이... 한상훈?”
오현주는 자신의 매니저를 보며 말했다.
“네 한상훈 씨 제 은인. 그 때 기억나시죠?”
오현주의 말에, 매니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저... 현주 씨”
“네?”
매니저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오현주도 뭔가 이상한 걸 눈치 챘다. 그녀는 나와, 매니저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왜 그래요?”
그녀의 물음에, 매니저는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 저희 회사... 이번에 주인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새 회사로.”
“네.”
“그 새 주인 회사의 주인이... 이 한상훈 씨입니다.”
“네에?”
오현주는 눈이 커져 나를 보았다. 아까 나를 처음 봤을 때보다 더욱 더 커진 것 같다.
*
“그러면, 이어서, 저희 회사의 모회사가 된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사장 한상훈 사장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준비해두었던 원고를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원고는 거의 다 외우고 있었다. 어제부터 달달 외워서 외우고 있는 게 아니었다. 워낙에 짧았으니까. 나는
“...대규모 투자를 비롯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와 같은 상투적인 이야기 몇 개를 늘어놓았다. 그럼에도,
‘짝짝짝짝짝짝~~~’
말이 끝날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이어진다. 멀리 있는 노란색 초록색 형형색색으로 염색을 한 20,30대 가수들, 스탭들보다도, 앞에서 포마드로 잘 발라넘긴 사람들, 머리가 까진 있는 40,50대 이사들이 더 열심히 친다. 재미있는 풍경이다.
나는 계속해서 ‘형식적인’ 이야기를 했다. 괜찮다. 어차피 오늘 이 자리는 왕이 얼굴을 드러내고, 영주에게 영지를 하사를 하는 일종의 예식이었으니까. 예식이란 본디 ‘형식’이 중요한 법이다.
“앞으로 권오혁 사장님과 함께,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나는 말을 하다가, 슬쩍 한쪽에 있는 오현주를 보았다. 이 회랑의 사람들은 모두 다 나를 보고 있다. 오현주와 마찬가지. 내가 그녀를 보면, 당연히 눈이 마주친다. 나는 잠시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이 회사를 더욱 더 성장시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짝짝짝짝짝짝~~~’
오현주는 싱긋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런데, 그의 뒤에 있는 매니저가 조금 수상하다. 박수를 치긴 치는데 고개를 푹 숙인 채다. 예전에 고개를 숙인 채로 손끝을 부딪치던 권 사장 생각이 난다.
‘저 사람은 또 왜 저런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준비해두었던 말을 마쳤다.
“OH엔터테인먼트의 이사님들, 직원분들, 그리고 아티스트 여러분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짝짝짝짝짝짝~~~’
나는 박수소리와 함께 내 자리로 돌아왔다. 내 차례가 끝나고 식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어서 합병된 저희 OH엔터테인먼트를 이끌어 주실, 권오혁 사장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권 사장은 단상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조금 낮춰 들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매우 특별한 날입니다. OH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역시, 별로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다. 나는 권 사장의 연설을 듣는 척 하면서 슬쩍 다시 오현주 쪽을 보았다. 오현주는 나 대신에 단상에 서 있는 권 사장을 보고 있다. 꽤나 기쁜 표정이다.
‘...생각해보면 둘이서 일한지 몇 년 됐겠지? 서로 무명일 때 만나서 권 사장이 이번에 CKD엔터까지 주무르는 거물이 되었으니 기쁠 만도 하겠지.’
그런데 그 때, 매니저가 나를 보더니, 휙 하고 고개를 돌린다. 이번이 두 번째다.
‘이상하네... 나한테 뭐라도 잘 못한 게 있나?’
나는 방금 있었던 주차장에서의 재회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니 정말. 여긴 왜...? 어떻게 오신 거예요?’
‘네 한상훈 씨 제 은인. 그 때 기억나시죠?’
그 대사들을 생각해봤을 때, 오현주는 내가 얼굴과 함께 이름도 기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회사에 새로 오는 주인이 한상훈인 것조차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요새 영화 촬영한다고 바빴나?’
이해할만 하다. 내가 이 회사를 개인 명의로 인수한 것도 아니고,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를 통해서 인수를 한 것이니까. 어제 공시가 뜨고 기사가 나오긴 했지만, 내 이름이 나오는 기사는 대 여섯 개 중 한 두 개 밖에 되질 않았다. 그러니까. 주변에서 알려주지 못했다면 모를 만도 하다. 하지만 매니저의 경우.
‘아니... 당신... 진짜?’
‘그... 한상훈이... 한상훈?’
매니저는 내가 한상훈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 오는 주인 이름이 한상훈이 것도 알고 있었다. 단지, 둘이 동일인인 줄은 몰랐던 것 같다. 권 사장과 비슷한 반응이다.
그 과정에서는 그가 내게 잘 못한 게 있을 수 없다. 애초에 식에 늦을 까봐 서로 간단히 인사만 하고 위로 올라왔으니까. 나는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그 날. 그 사건이 있던 밤으로. 그 때 생각을 해보니, 그 때, 내 명함을 대신 받아가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설마... 인터셉트? 내 명함을 받아다가 중간에서 잘랐어?’
그렇게 생각하니 다 말이 된다. 고맙다고 전화번호를 가져가놓고, 단 한번도 연락이 없었던 것이.
‘그 때 문자라도 올까 기다린답시고 하루를 꼬박 새웠는데!’
나는 다시 한 번 그 매니저가 있던 곳을 쳐다보았다. 그는 아예 자리를 비우고 떠나 있었다. 때 마침
“...저희 OH엔터테인먼트는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발돋움했으면 좋겠습니다.”
권오혁 사장의 연설이 끝나면서, 사람들이
‘짝짝짝짝~’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연설은 1도 듣고 있지 않았지만, 나 역시 기계적으로 박수를 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