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66화 (66/198)
  • # 66

    한상훈 중의 한상훈

    나는 사장실에 놓여 있는 전화기를 들었다.

    “서 비서.”

    “네 사장님”

    “잠깐 방 안으로 들어와 볼래?”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곧 지훈이가 문을 열고 안에 들어온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서 비서 자네... 아니 지훈아 너는 말이야... 네 이름 검색창에 넣어 본 적 있니?”

    “제 이름이요?”

    “그래 검색창에 서지훈을 넣어서 검색해 본 적 있어?”

    “아니요.”

    지훈이는 고개를 흔들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아... 근데 예전에 혹시 그 양궁선수 아세요? 서지훈 선수. 6년 전에 런던올림픽 단체전에 출전했던”

    나는 잠시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몇 명 얼굴이 스쳐가긴 하지만, 이름은 모르겠다.

    “음... 잘 모르겠는데?”

    “모르실만 해요. 그 때 딱 한해 단체전 나오고 말았으니까. 어쨌든 그 때 저랑 이름이 똑같으시기에 응원도 하고 기억도 해뒀었거든요. 그리고 4년 뒤에 리우 올림픽 돌아왔을 때 다시 나오시나 해서 또 서지훈 선수를 검색을 해봤는데 이번엔 국가대표팀에 떨어져서 못 나오셨더라고요.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네요. 제 이름으로 검색을 해본 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그래... 그렇지... 그래 알았어. 나가봐.”

    “...네 사장님”

    서 비서는 요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문 밖으로 나갔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 같다. 정치인,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이 아니고서야 누가 자기 이름으로 뉴스를 찾아볼 생각을 하겠는가. 나는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내 뉴스를 받아 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 뉴스는 다른 뉴스들 보다 훨씬 중요하다.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란 게 다 다른 뉴스를 보고 하는 것이니까.

    ‘한상훈 대표가 성공리에... 했습니다. 투자업계에서는 한상훈 대표의 예견이 다시 한 번 맞아떨어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뉴스가 뜨면 하던 대로 쭈욱 밀어 붙이고,

    ‘한상훈 대표가 ...에서 손실을 보았습니다. 투자업계에서는 한상훈 대표의 지난 결정이 실수였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런 뉴스가 뜬다면 그에 맞춰서 미래를 수정해버리면 된다. 그러니까 다른 뉴스가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습니다.’

    내 판단을 도와주는 보조 지표라면

    ‘...가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내 뉴스는 정확히 결과를 집어 주는 족집게 뉴스가 돼 버린다.

    ‘맞아 그렇게만 되면... 내 뉴스가 메인 디쉬가 되고, 다른 뉴스는 내 뉴스를 좋게 만들어 줄만한 사이드메뉴, 양념으로 바뀌게 된다...’

    문제가 있다면 문제는 내 이름이 조금 흔한 편이란 것이다. 내 성씨인 한 씨는 대한민국에서 11번째로 많은 성씨다. 그리고 상훈이란 이름 역시 꽤 흔한 편이다. 인물검색에서 내 뉴스를 받아보려면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상훈이 되어야 하는데, 나보다 유명한 한상훈이 이미 많았다. 나는 다시 한 번 포털 창에 한상훈을 써넣었다. 역시나 아까 봤던 그 얼굴이 뜬다.

    ‘하아... 하필... 이 사람이...’

    포털 맨 위에 나오는 사람은 바로

    ‘56세 3선 국회의원 한상훈’

    이 사람이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때때로 뉴스에 보기는 봤다. 얼굴도 이름도. 하지만 그 때도, ‘그저 그런가보다’하고 넘기기만 했었다. 나와 이름만 같을 뿐 나랑 상관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사람은 내게 이제 넘어야할 큰 산이 되어버렸다. 지금 한상훈으로 검색해서 뜨는 대부분의 뉴스는, 거의 80%는 이 사람 차지였으니까.

    ‘한상훈 국회의원 청와대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여.’

    ‘한상훈 국회의원 청문회에서 국세청장에게 질의’

    ‘국회의원 후원금 문제없어. 한상훈 의원 반박’

    이 분은 여전히 국회의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특히 뉴스를 보면 조금 ‘싸움닭’기질이 있는 국회의원 같다. 거의 하루나 이틀 꼴로 뉴스가 나오는 판이다.

    ‘왜 그렇게 싸우시나...’

    국회의원 중에 있는 줄 없는 줄 모르는 점잖은 국회의원도 있었는데, 이분은 다른 당 의원이랑 몸싸움도 하고 말싸움도 하는 활동파였다.

    ‘지역구가 어디지?’

    찾아보니 내 고향과 먼 지방 쪽이다. 같은 지역 3선. 3선 치고 나이도 56세로 매우 젊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지역 기반 지지를 받는 국회의원 분들은 어떤 이슈에서도 쉽사리 지지도가 꺾이지 않는다.

    ‘이렇게 4선, 5선 하다보면 더욱 더 거물이 될지도 모르겠는데...? 원내 대표, 당 대표. 대통령 후보. 대통령... 한상훈 대통령...’

    만약 그렇게 되면, 인물 검색으로 내 이름을 받아보려는 내 시도는 끝난다. 12시간 뒤 뉴스는 딱 한국에서 뉴스 나오는 수준만큼 미래 뉴스를 보내주니까. 가끔 내 뉴스가 뜨긴 뜨겠지만, 그건 랭킹 뉴스 없을 때, 로또 번호 뉴스 받아보기랑 비슷한 확률이 될 것이다.

    ‘일단 이 사람이 제일 큰 산이고...’

    나머지는 교수들이 많다. 의과교수 한상훈. 화학과 교수 한상훈. 문학과 교수 한상훈. 이 분들 역시 뉴스에서 한자리씩 꿰차고 있다.

    ‘성한대 의과대학 한상훈 교수가 알츠하이머형 치매 유발물질 발견’

    ‘우진대 화학과 교수 한상훈. 고탄력 나노튜브 제작 연구 성과’

    ‘신춘문예 심사의원에 충원대 한상훈 교수’

    그리고 다음은 운동선수들 테니스 선수 한상훈. 프로골퍼 한상훈. 프로게이머 한상훈. 이분들 역시 간간히 뉴스를 내고 있다.

    ‘한상훈 선수. 세계 테니스 선수권 예선에서 아쉽게 탈락.’

    ‘사진 : 7번 홀에서 이글을 잡아내는 한상훈 선수.’

    ‘역전 한타! 한상훈의 환상적인 이니시!’

    솔직히 한국 사람들이 다 아는 탑클래스 운동선수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분들 역시 나보다 훨씬 유명하다. 그나마, 그나마 다행이라면, 유명한 연예인은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건 연예인들이다. 대개 인터넷 뉴스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연예인 뉴스를 뽑아낸다. 클릭 수가 잘 나오니까.

    ‘배우 한상훈 드라마 신작에 캐스팅’

    ‘한류 아이돌 한상훈 동갑내기 여자 아이돌과 열애설’

    ‘가수 한상훈 9월 새 앨범 발표’

    이런 굵직한 사건은 물론이고

    ‘한상훈 해외여행 중 직찍. 일상이 화보’

    ‘한상훈 자취집에서 치킨 먹방’

    ‘한상훈 세련된 공항 패션’

    이런 단순한 일상까지 보도가 되니까. 유명 연예인이 있었다면, 아마 국회의원 한상훈보다도 더 강적이 됐을 것이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야. 그런데... 기업인이 얼마나 뉴스에 나오지?’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기업인들 중에 연예인이나 정치인만큼 유명한 사람은 몇 명 없다. 애초에 대중들 앞에 나서는 게 그다지 득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처럼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제프 베조스, 워렌 버핏 유명한 기업가가 많지도 않고, 뉴스도 뜨지 않는다. 기업인 혹은 투자자가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경우는 대개 부정적인 경우다.

    ‘...회장이 오늘 검찰에 출두했습니다. 정경유착 혐의를 받고 있는 ...회장은 건강 악화를 들어 휠체어를 탄 채로 검찰 포토라인 앞에 섰습니다.’

    ‘...전무이사가 사내 갑질로 인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전무는 사원에게 손님을 응접하는 기본이 안 돼 있다며 사원을 폭행하고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씨가 사기혐의로 피소되었습니다. 청담동 주식부자로 알려져 있던 ...씨는 최근 투자업계에서 주식 천재로 알려지며 투자자에게서 수백억대의 금액을 끌어 모았습니다.’

    그런 기사들. 생각해보니 왠지 우리나라에서는 자본가, 기업가라는 것 말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안타까운 일이네... 우리나라에서는 진짜 존경받을만한 기업인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걸까...’

    나중에 나 역시 유명해졌을 때 그런 취급을 받는다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아프다. 나는 검색창에 ‘훌륭한 기업인’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그런데 자료가 꽤 나온다.

    ‘...훌륭한 기업인으로 꼽히는 것은 유한양행의 유일한 회장님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였기도 했던 유일한 회장님은 의약품이 부족했던 우리나라의 사정을 생각해 유한양행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그걸 더 읽어보았다.

    ‘유한양행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윤리 경영을 실천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군부시절 때 세무조사를 받고 세무사가 털 게 없는 회사는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두르고 갔다는 전설적인 일화도 있을 정도. 유일한 회장님은 1971년 타계하실 때 손녀의 등록금을 제외한 모든 돈. 407억원을 사회에 환원하셨다. 71년도에 407억원이니. 지금 기준에서는 조 단위가 넘어가는 금액이다. 요즘 정치인들이 자주 하는 ‘말로만 사회 환원’이 아니라 진짜 사회 환원을 하신 분으로...‘

    정말 훌륭하신 분이다. 나는 다른 글도 하나 더 읽어보았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로 유명한 신용호 교보그룹 창업자는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 지하에 교보서적을 낸 장본인이다. 교보생명 사옥은 이순신 동상 바로 옆 금싸라기 중의 금싸라기 땅에 있다. 모든 사람들이 대규모 상가가 들어올 것이라 생각한 이곳에 이 신용호 회장님은

    ‘서울 한복판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점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며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서점을 냈다. 수억대의 임대료를 받는 대신에 거의 이익이 나지 않는 서점을 낸 것이다. 이 분은 독립 명문가답게 대한민국 역대 상속세 납부 1위를 기록하시기도 했다. 다른 재벌들이 어떻게든 상속세를 적게 내려고 별 꼼수를 다 부리는 걸 생각하면, 정말 당당한 기록이다.’

    나 역시 그 교보문고를 자주 이용했던 사람이다.

    ‘그래 생각해보면 훌륭한 기업인이 될 수도 있어. 우리나라에서 이미지가 그런 것은 대부분의 기업인들이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나더러 사원들 갑질 하고, 꼼수 부려서 탈세하고, 정경유착해서 휠체어 타고 나타나는 쪽과, 죽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칭송 받는 쪽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후자 쪽을 택할 것이다. 어차피 유명해진 다면, 선한 방향으로 유명해지고 싶다.

    ‘한 삼천억 원부터 시작하려고 했는데...’

    예전에 고객센터에게

    ‘왜 나한테 이런 행운을 주는 겁니까?’

    묻는 질문에

    ‘스스로 생각해보세요.’

    라고 답변이 돌아온 것이 생각난다. 그에 대한 답을 다 낸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생각해봤을 때, 이 행운은 혼자서만 누리기에는 너무 과하다.

    *

    ‘CKD엔터테인먼트 대주주 변경 주식 양수도 계약 체결’

    오후 5시 경. 장이 끝나고 공시가 떴다.

    ‘CKD엔터테인먼트는 최대 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양도인은 도찬기 대표. 양수인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다. 총 양수도 대금은 170억이다.’

    공시가 끝나고 나니 다른 뉴스회사에서도 후속 기사가 떴다.

    ‘CKD엔터테인먼트 도찬기 대표 물러나’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된 CKD엔터테인먼트’

    ‘CKD엔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다.’

    나는 그걸 하나하나 클릭을 해보았다. 가끔 내 이름이 올라와 있는 뉴스가 있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는 한상훈 대표(29)가 이끄는 신생 투자회사로’

    여섯 개 중 두 개 정도는 내 이름을 써 주었다. 내 이름을 알리는 것은 이제 시작이었다.계약공시가 나고 일주일 후, CKD엔터테인먼트가 내 것이 됨과 동시에.

    ‘다이아 등급 안내문’

    그 메일이 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