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65화 (65/198)

# 65

세상의 엑스트라, 세상의 주인공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와 권 사장은 참치 전문점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문 앞에서 권 사장에게 악수를 건넸다.

“그러면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권 사장님”

권오혁 사장은 고개를 숙이며 내 악수를 받았다.

“아니요 제가 잘 부탁드려야지요.”

내가 그와 인사를 하는데 살짝 떨어진 곳에서

‘삐빅’

소리와 함께, 자동차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 서 비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를 본 나는 권 사장에게 말했다

“아 참. 그 때... 그 날 있었던 일은 앞으로도 우리끼리의 비밀로 하지요. OH엔터테인먼트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저도 밖으로 누설하고 싶지 않군요. 물론 그 때 수표도 받긴 했지만...”

나는 그 때 일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말을 마쳤다.

“OH엔터테인먼트는 이제 제 회사니까요.”

“아 예 알겠습니다.”

나는 이제 진짜 작별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그가 한 마디를 더 했다.

“사장님 그럼... 오현주 씨에게도 그렇게 말해 놓을까요?”

생각해보니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오현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아... 그건... 제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더 좋을 것 같군요.”

“아 그러시겠습니까?”

그 편이 확실히 더 재밌을 것 같다. 그녀 역시 나를 알아볼지 아닐지. 그것도 궁금하다.

“네 그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오현주 씨도 아직 제가 대주주가 될 것이란 건 모르지요?”

“물론입니다. 저도 오늘 방금 전 까지는 몰랐는걸요.”

“네 그러면 일단 그렇게 비밀로 해두세요.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때 제가 직접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 그러면 언제든 저희 회사 오실 때 연락 주십시오. 오현주 씨 스케쥴을 조정해서...”

“아아 아닙니다. 어차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겠지요.”

권 사장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내게 고개를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

장 부사장은 내 앞에 ‘계약 완료’라 쓰인 문서를 내놓으며 말했다.

“모든 세부 절차는 끝났습니다. 계약 공시는 오늘 중으로 뜰 겁니다. 일주일 뒤면 사장님께서 공식적으로 CKD... 아니 사명이 변경된 OH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가 됩니다. ”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머지도 문제없이 장 부사장님이 잘 해주세요.”

“네 걱정마시지요.”

장 부사장이 사장실을 떠나자마자

‘위이잉~’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그걸 들어보았다. 8시 50분. 알람이다. 곧 12시간 뒤와 12일 뒤 뉴스가 나온다. 55분이 딱 되면서 메일 두 통이 온다.

‘P 12시간 뒤’

‘P 12일 뒤

‘이제 앞에 있는 P가 Diamond의 D로 바뀔 날이 머지않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뉴스를 클릭해보았다.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12시간 뒤 별게 없다. 나는 이어서 12일 뒤 뉴스를 보았다.

‘아니고... 음?’

딱 눈에 띄는 뉴스 하나가 있다.

경제 - 마성그룹 왕자의 난

‘마성그룹이라면...’

지난 번 낚시터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전희중 회장의 회사다.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마성 그룹이 왕자의 난에 휩싸였다. 지난 4일 마성그룹 전희중 회장이 낚시터에서 급성심장마비로 사망한 이후, 전희중 회장의 장남인 정우현 씨가 그룹 회장직을 이어받는 듯 했으나, 차남 정우진 씨를 비롯한 몇몇 이사들이 이에 반대함으로서...

‘아아... 회장님께서 급사하니까... 아들들 끼리 싸움이 난 건가.’

옛말에 ‘형제끼리 친한 부잣집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게 다 맞는 말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유산상속을 가지고 형제들끼리 싸움을 벌이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긴 하다. 그게 재벌 그룹이라면 이렇게 회사 단위에서 싸움이 나는 것이고.

‘그래도 최근에는 이런 일 거의 없었는데 말이지...’

왕자들끼리 싸움을 벌이다가 그룹 전체가 쪼개지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새는 대개 회장이 죽기 전에 상속을 정리해놓는 편이다. 첫째는 건설, 둘째는 금융, 셋째는 패션. 이런 식으로. 그런데 마성그룹 전희중 회장은 50대 젊은 나이에, 그것도 심장마비로 급사를 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것 듯하다.

‘그룹 다툼이라면 주식이 등락이 있을 법한데... 마성 그룹은 비상장 그룹이었지.’

마성 그룹은 드물게, 우리나라 50대 기업 치고 코스피, 코스닥에 상장되지 않은 회사였다. 그건 조금 아쉽다. 상장만 되어 있었어도,

‘인물검색 – 정우현’

‘인물검색 – 정우진’

형제 둘 다 인물검색에 넣고 돌릴 수 있었을 텐데, 이번 건 그냥 해프닝으로 넘어가고 말아야 할 것 같다.

‘아쉽네.’

나는 깍지를 껴 정수리 위에 댄 다음 뒤로 물러섰다.

‘더 벌어야 되는데...’

첫째 달 둘째 달은 3배 가까이 꼬박꼬박 벌었는데, 요번 달은 영 신통치 않다. 물론 100억짜리 구독료는 이미 벌어놨지만, 그래도 그 이상 벌어야 내 계좌도 성장하고, 회사를 키울 수도 있다.

‘뭐... 다이아 등급이 되면 훨씬 나아지긴 하겠지. 매번 등급이 오를 때마다 그랬으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별 생각 없이 HTS를 켰다. 혹시나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주식이 있다면, 12일 뒤 인물검색을 쓸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오전 10시가 넘어갈 때 즈음이었다. 관심종목에 있던 CDK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5%. 피슉 솟아오르는 게 아닌가.

‘뭐지?’

이미 계약은 끝났다. 그러니까 주가는 오르면 오를수록 좋다.

‘뭔가 호재가 떴나?’

내가 인터넷을 찾아보려는데,

‘위이잉’

전화가 왔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보았다.

“사장님”

“응?”

“저기 아니 다름이 아니고. 저희 회사. 뉴스가 떠서 그래서 전화 드렸습니다.”

“뉴스?”

“네 인터넷 신문에. 저희 회사 이름이랑... 사장님 이름도 떴던데... 한 번 보시겠어요?‘

생각해보니 카이지. 대원 일보 이원재 이사가 그런 말을 했었다.

‘이번 거래를 축하하는 의미로. 뉴스 한 번 띄우겠습니다.’

어차피 장 끝나고 공시가 뜨는데 그에 앞서 뉴스를 냈나보다.

“아... 아아... 알겠어. 내가 찾아볼게.”

통화를 마친 나는 바로 검색창에 들어가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를 검색해보았다. 방금 전, 뉴스 하나 뜬 게 보인다.

‘인수설에 휩싸인 CKD엔터테인먼트. 새 주인은?’

올린 회사는 ‘라이트경제뉴스’ 보나마나 대원일보 가지에서 나온 언론일 것이다. 나는 바로 그 기사를 클릭해보았다.

연예계에 루머로 떠돌던 CKD엔터테인먼트 매각설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최근 연이은 사업 실패와 루머로 인해 몸살을 앓았던 도찬기 대표는 최근 불거진 인수설에 ‘사실 무근’이라며 선을 그어왔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나는 휘리릭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와중에 내 이름도 나온다.

CKD엔터테인먼트의 새 주인으로 알려진 회사는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 다소 생소한 이름의 이 투자회사는 설립 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신생 회사로 젊은 CEO 한상훈 씨(29)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의 자본금은 300억으로, 도찬기 대표의 보유 지분을 매입하는 데는 무리가 없는 것으로...

나는 그 부분을 반복해서, 집중해서 읽어보았다. 아무래도 우리 회사 이름, 내 이름이 들어간 부분이니까. 잘 나왔는지 못 나왔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는 단지 신생 투자회사가 CKD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다. 고정도. 단순히 사실의 나열만을 써 놓고 있었다.

...이번 빅딜이 성사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좋게 써준다더니... 좋은 이야기는 별로 없네.’

나는 잠시 그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문득 CKD엔터테인먼트 주가 생각이 난다.

‘아 그래서 주가가 오른건가? 우리 회사가 인수를 한다고 해서?’

피인수 루머는 주가가 오르는 좋은 재료긴 하다. 나는 HTS로 돌아와 보았다.

‘CKD엔터테인먼트 +2%’

잠시 +5%달려갔었던 CKD엔터테인먼트 주가는 다시 내려와 있었다. 그도 그럴만하다. 우리 회사는 이름도 없고, 자본금도 적어서 지우엔터테인먼트 때처럼 ‘재벌 집으로 입양된 고아’스토리는 나오기 어렵다. 나는 주식 게시판에 가보았다.

결국 새 주인 나오네요. 다행입니다. 도찬기 대표 중국에서 말아먹은 게 얼마인지.

새로 오는 사람이 한상훈이라고? 어리네요.

인빅투스는 무슨 듣보잡이냐, 한상훈? 더 듣보잡이네.

이거 보나마나 루머로 그치고 말 듯... 지금 사면 호구됩니다. 조심하세요.

벌써 내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나는 문득, 그 때 지우엔터테인먼트에서 회장이 욕을 먹던 것이 생각이 난다.

‘동일이 개새끼!’

‘김동일이 너 때문에 내가 집 날리고 차 날리고...’

앞으로 주가 떨어지지 않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할 거지만.’

나는 HTS에서 눈을 떼고 다시 내 이름이 나온 뉴스로 돌아 가보았다.

‘신생 회사로 젊은 CEO 한상훈 씨(29)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 이름이 12시간 뒤 뉴스가 아니라, 실존하는 뉴스에서 나오는 걸 보니 왠지 감회가 새롭다. 나는 잠시 그 기사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러던 그 때에,

“어... 잠깐만... 이거?”

갑자기 무시무시한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버렸다. 먼저 고객센터가 알려준 룰

‘이 12시간 뒤, 12일 뒤 뉴스는 대한민국 뉴스에서 나오는 규격을 따라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실존하는 뉴스에서 올라온 내 이름. 두 가지가 합쳐지면, 생각 나는 게 있다.

‘만약에 내가 매일 뉴스에 나올 만큼 유명한 사람이 되면...?’

나는 살짝 몸을 떨면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그런 다음 천천히, 한자 한자. 내 이름을 내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보았다.

‘한 상 훈.’

‘한상훈’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 나와 동명이인인 사람들의 뉴스가 수 없이 떠 있었다.

‘...왜 여태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이 세상에서 늘 엑스트라로, 조연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 한번도 세상에서 주인공으로, 주연으로 살아보지 못하고. 그래서 그렇게 내 이름이 뉴스에 뜰지 상상을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상훈이 된다. 그러면 나는 내 앞에 12시간 뒤, 12일 뒤, 12주 뒤, 12달 뒤, 12년 뒤까지. 일어날 일을 다 알아 볼 수도 있다. 인물 검색을 통해서.

‘그러면... 마성 그룹 회장처럼... 심장마비로 죽을 일도 없다.’

내가 미래를 수정을 해버리면 되니까.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진정 12시간 뒤의 활용 법을 알아낸 것만 같다.

‘세상의 주인공이 되면, 나를 중심으로 뉴스가 쓰여진다.’

그리고, 나는 무슨 뉴스가 쓰여 질지 알고 있다. 그 사실에, 나는 살짝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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