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64화 (6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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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혁 사장

    ‘타탁 타닥’

    나는 빠르게 키보드를 놀렸다.

    ‘대원일보 이사 이원재’

    검색을 해보니 포털창에도 나온다. 28세 대원일보 이사. 하지만 짧은 프로필 외에는 다른 뉴스나 그런 건 없다.

    ‘28세에 이사가 됐다면 조금 논란이 됐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분명 그런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나는 검색어를 바꾸어 보았다.

    ‘재벌 2세 이사’

    곧 뉴스 하나가 뜬다.

    ‘화연아시아 강준길 회장 딸 강유미 이사 선임에 논란 커져’

    있다. 반년 전쯤 기사다. 기사를 클릭해보니

    ‘그녀는 만으로 30세. 창업주의 손녀로서’

    ‘유래 없는 청년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이 때’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로 발돋움한 화연아시아의 격에 맞지 않는 인사’

    그런 이야기가 쓰여 있다. 나는 다시 돌아와

    ‘이원재 논란, 이원재 재벌 2세’

    같은 걸 써 보았다. 그런데, 28세 이사 이원재에 관한 기사는 없다. 아무래도 대원일보 차원에서 입단속을 했나보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이에 대해서 기사를 낸 곳은 없다.

    ‘언론사끼리는 서로서로 봐주나보군.’

    나는 조금 더 검색을 해보았다.

    ‘대원일보 사장’

    대원일보의 사장은 이근상. 그의 사진을 보자마자 딱 이원재 이사의 아버지란 생각이 든다. 붉은 얼굴에 째진 눈, 자를 넣은 듯한 커다란 코가 똑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아버지가 많이 늙어 보인다는 점, 이근상 씨는 완전히 백발인데다가, 눈썹도 몇 가닥 희끗희끗했다. 나를 보니 62세.

    ‘음... 이원재의 나이는 28세 이 사람은 62세로군. 나이차가 34세.’

    34살 차이면 첫째라고 하기는 조금 많이 차이가 난다.

    ‘이 친구 둘째나 셋째인가?’

    나는 검색을 더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형이 있다. 그것도 둘이나. 첫째 이원상 36세 데일리스포츠 사장. 둘째 이원준 34세 대원일보 전무.

    ‘36 34 28세... 언론재벌의 막둥이인 모양이로군.’

    가든 엔비 주최자, 마스터T역시 재벌에서 순위가 낮은 사람이었는데, 묘하게 비슷한 점이 있다. 내가 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데,

    ‘띠리리리~’

    내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을 보니, ‘이원재 이사’.

    ‘허 참 양반은 못 되는군.’

    나는 이원재 이사의 얼굴을 모니터에 띄운 채로, 그의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한 사장님. 이야기를 듣자하니, 좋은 가격에 계약하셨더군요. 축하드립니다.”

    이원재 이사는 이미 우리 계약 내용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점은 확실히 기분이 나쁘다.

    “...네”

    “이번에 뉴스 하나 띄워 드릴까요? 계약 건으로?”

    “뉴스요?”

    “이번 거래를 축하하는 의미로. 잘 써서 내 드리겠습니다.”

    “키스톤미디어라면... 저는 거절하고 싶은데요.”

    “하하 그렇게 너무 나쁘게만 보지는 말아주십시오. 저희 회사에는 평범한 인터넷신문도 많습니다. 그쪽으로 잘 써서 내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우리 회사.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를 유명하게 키울 생각이 있었다.

    “뭐 나쁘지 않겠지요.”

    “네 그럼 며칠 내로 내드리겠습니다. 그럼 다시 연락드리지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나는 잠시 그 이름이 떠있는 휴대푠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접근을 하는 것보니 그 역시 나와의 관계가 유용하다 생각하는 것 같다.

    ‘음... 이 녀석...’

    그러던 그 때였다.

    ‘똑 똑’

    두 번 노크소리가 들리고, 이이서 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부사장님입니다.”

    “들어오시라고 그래.”

    곧 문이 열리고 장 부사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장 부사장은 내게 고개를 숙인 뒤, 서류 몇 개를 들고 내 앞에 왔다.

    “사장님 전에 말씀하셨던 CKD 후임 대표 선임 건에 관한 자료들입니다.”

    “네에”

    나는 그가 준 자료를 받아보았다. 거기에는 여러 명의 프로필이 있다. CKD엔터테인먼트의 전무이사, 상무이사, 하는 사람들. 다 지난 번 미팅에서 본 기억이 난다. 나한테 엄청나게 벌벌 기던 것도.

    ‘어서오십시오. 대표님.’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그도 그럴 만하다. 나는 회사 인수전부터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라 공언했다. 그러니 도찬기 대표가 회사를 떠나면 대표 자리는 공석이 된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자신을 앉혀 달라 꼬리를 살랑댔던 것이다.

    “장 부사장님은 추천할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글쎄요. 저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전혀 몰라서... 감히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나는 계속해서 프로필을 넘겨보았다. 그런데 그 중에 OH엔터테인먼트 권오혁 사장의 얼굴도 보인다. 나는 권오혁 사장의 프로필을 들며 말했다.

    “이 사람은 어떻습니까? 자회사 OH엔터테인먼트의 권오혁 사장.”

    내가 예시를 들자, 장 부사장은 그 때야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아. 그 사람 저도 조금 주의 깊게 보았습니다.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OH엔터테인먼트 요새 실적이 워낙 잘나오니까요. 그 대표 연예인 오현주 씨 덕이긴 하지만... 어쨌든 성과를 낸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본래 이런 중소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한두 명만 대박 내도 실적이 나오지요.”

    “음 여기는 어쩌다가 CKD에 인수된 거지요? 이 권오혁 사장이 도찬기 사장의 매니저였던 것 같던데.”

    “두 분이 같이 일하신 건 90년대뿐이고 그 때 갈라져서 2010년도 즈음 서로 각자 매니지먼트를 차린 모양입니다. 그런데 운명이 갈린 게, 도찬기 대표는 본인 돈도 있고, 본인 이름을 팔아서 투자자를 끌어 모아서 자본금을 크게 쥐고 시작한 반면, 권오혁 대표는 있는 게 경력뿐이라 투자자도 몇 명 못 모으고 적은 돈을 가지고 시작을 했나 봅니다.”

    “음 그런데 OH엔터테인먼트는 터진 연예인이 없었다. 최근 오현주가 터지기 전 까지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금사정이 어려워지자 권오혁 사장은 옛 인연이 있던 도찬기 대표한테 SOS를 친 모양입니다.”

    “그래서 피인수 되었군요. 그리고 자회사로 있던 중에 오현주가 터진 것이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조금 경영능력은 부족하다고 봐야 할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업계 사람들 말로는 이 분이 뭐랄까 조금 연예계에 종사하는 분 답지 않게 강직한 면이 있으셨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요?”

    “글쎄, 저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어느 회사든 그렇겠지만 돈이 궁할 땐 뭐든 하기 마련이거든요. 특히 연예기획사라면...”

    장 부사장은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그가 말하는 것을 대충 알아들었다.

    “그런데 이 분은 그런 일을 하는 걸 매우 싫어한답니다. 소속된 연예인들을 매우 아끼고 보살피는 그런 스타일이시라는 것 같아요. 조금 현실감각은 부족해도 길게 보면 좋은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음 그렇다...라’

    나는 잠시 그를 떠올렸다. 고개를 숙이고

    ‘딱딱딱’

    손가락을 부딪치던 그를. 그러고 보면, 오현주는 정말 오랫동안 못 떴다. 나는 그녀가 무명일 때 늘

    ‘왜 저렇게 예쁘고 연기도 잘하는 애가 뜨지 못하고 있을까?’

    생각하곤 했다. 어쩌면 그것은 권 대표가 워낙에 소속사 연예인을 아끼고 깔끔하게 운영을 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음 속으로 낙점을 지었다. CKD의 왕좌에 권 사장을 앉히기로.

    “그러면 CKD 차기 대표로도 이 권 사장이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네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CKD와 OH엔터테인먼트의 지분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100%자회사입니다. CKD가 100%를 가지고 있더군요.”

    “그럼 차라리 이 기회에 합병을 시켜버리는 건 어떨까요. 보니까 빌딩도 같이 쓰던데. 동시에 사명도 OH엔터테인먼트로 바꾸었으면 좋겠네요. CKD자체가 도찬기 대표의 이름을 딴 회사인데. 도찬기 대표가 없는 도찬기 회사도 조금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렇게 해도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요새 원체 OH엔터테인먼트가 잘나가서 그편이 더 좋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될 것 같다. 사실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다른 업계에서도 잘나가는 자회사가 모회사로 둔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면 일단 이분으로 낙점을 해놓지요. 혹시 다른 문제는 없을까요?”

    “조금 잡음은 있을 겁니다. 다른 분들. CKD의 이사분들은 내심 자기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최근에 OH엔터테인먼트가 CKD를 거의 먹여 살리지 않았습니까? 재무 보면 OH엔터에서 벌어서 CKD에 붓는 모양이던데...”

    “맞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를 들면, 아마 이사들도 별 말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면 명분도 충분하니, 이 시나리오대로 진행하는 걸로 하지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장 부사장이 나간 뒤, 나는 바로 전화기를 들어 서 비서를 불렀다.

    “서 비서”

    “네 사장님”

    “그 OH엔터테인먼트에 전화해서, 권오혁 사장더라 만나자고 해.”

    “언제 쯤으로 할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네 사장님”

    통화가 끝나고 1분여.

    ‘뚜르르르’

    내 전화기가 다시 울렸다.

    “응”

    “권 사장님이 바로 오시겠답니다. 시간은 사장님 되시는 시간으로 맞춰서 오시겠다는데요?”

    권 사장도 CKD 차기 사장 자리에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오늘 저녁 먹자고 해. 음... 오늘... 뭐 먹을까...”

    나는 말꼬리를 흐리다가, 당장 머리 위에 떠오르는 것을 말했다.

    “참치?”

    “아 네 알겠습니다.”

    *

    나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에는 권오혁 사장이 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아 네 반갑습니다. 사장님.”

    나는 그에게 손을 건넸다. 그는 머리를 숙인 채로 손을 받아 몇 번 흔들었다. 악수를 나눈 우리는 각자 마주 보고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를 쳐다보고, 그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나를 못 알아보고 있었다.

    ‘뭐야 진짜 못 알아보네...’

    문이 열리고 여주인이 물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에... 이거 랑요. 술은?”

    내가 권 사장을 쳐다보자. 권 사장은 말했다.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나는 인당 15만원 짜리 코스와 술을 시킨 다음 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업계에서 평판이 좋으시더군요. 소속 연예인을 꽤나 아끼신다고?”

    “아 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연예계 내부 사정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뭐 가끔 나오지 않습니까? 뉴스에. 도박이니 스폰이니 마약이니 하는 이런 저런 일들 말입니다. 그런 것 생각하면 연애 기획사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워낙에 색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요.”

    “알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보도되지 않는 일까지 합치면, 더더욱 많은 일들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나는 은근 슬쩍 그 때 이야기를 꺼넀다.

    “살인 미수라든가.”

    내 말에, 권 사장의 눈이 커진다.

    “네?”

    그는 커진 눈으로 나를 보더니

    “아... 아아...”

    말도 못하고 소리를 냈다. 그는 그제야 나를 알아본 눈치다. 나는 먼저 나온 맥주를 그의 잔에 따르며 말했다.

    “아니 어떻게...”

    “참 묘한 인연입니다. 그렇지요? 권 사장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다시 만나서 반갑더군요.”

    “아니... 저는 정말로... 닮은 사람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절대로 같은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내가 그의 잔을 모두 채우자, 그 역시 황급히 내 잔을 채워주었다. 그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 땐... 분명 평범한 회사원이시라고 들었는데...?”

    나는 그와 잔을 마주치며 웃으며 말했다.

    “그게 거짓말은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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