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63화 (63/198)
  • # 63

    거짓의 대가

    우리는 잠시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 사이 뒤에 있던 서 비서가 문을 닫고 나간다. 나는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앉으시지요.”

    그는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그 때,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카이지님”

    그 말에 카이지, 이원재 이사가 씨익 웃는다.

    “투자회사 대표셨군요? 듀로스님. 어쩐지 주식에 일가견이 있으시더라니.”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그 닉네임으로 불리는 건 영 어색하군요. 특히 밖에서는요.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그건 저도 마찬가집니다. 한상훈 대표님”

    “그래요 어쨌든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원재 이사님.”

    “저도 반갑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동시에

    “저희가 아는 건...” “이건 가든 엔비에서는...”

    입을 열었다가, 눈을 마주쳤다. 생각하는 것이 똑같은 모양이다. 내가 그걸 정리해서 말했다.

    “우리가 서로 아는 건 우리끼리의 비밀로 합시다. 현실에서든 그... 가든에서든”

    “네 저도 좋습니다.”

    이제 대충 정리가 되었다. 나는 일 이야기로 넘어가 보았다.

    “대원일보 이사시라면... 키스톤미디어가 대원일보 자회사였나 보군요?”

    “네 본래 스포츠 신문 계열사였는데... 아시다시피 인터넷뉴스가 뜨다보니 사명 변경해서 그쪽 전문 회사로 탈바꿈 시켰습니다.”

    대원일보는 우리나라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대형언론 중 하나다. 그의 나이는 28. 이 나이에 그곳 이사라면 경영자 가족 중 한명이라고 봐야 한다.

    ‘대원일보 회장이 분명... 이씨 였지...’

    나는 일 이야기로 넘어가 보았다.

    “그래서 이야기는 다 들으셨을 테고요. 단도직입으로 묻지요. 진실입니까? 거짓입니까?”

    그는 나를 보더니 씨익 웃고 말았다. 여기 왔다는 것만 해도 심증 99%인데. 1%를 말해주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만하다. 정보를 사고 파는 사람이니까. 답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에둘러 대화를 시작했다.

    “이원재 이사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동성애에 대해 관대한 편입니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편입니다.”

    내 말에 이원재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았다. 마치 나도 동성애자라는 것처럼. 나는 말을 이었다.

    “왜 좋잖아요. 남자끼리 좋아하면 여자가 남으니까. 대신 여자들끼리 동성애를 하면 안 되지요. 전 그건 반대입니다.”

    내 농담에 그가 슬쩍 웃는다. 거기에서 나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하지만 저는 누가 절 속이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없지요. 특히 사업에 있어서 말입니다.”

    이원재 이사는 웃다 말고, 역시 표정을 굳힌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특히 이번 건은 투자회사 설립 이후에, 이루어지는 첫 인수 건입니다. 그런데, 악재가 숨겨진 회사를 제값 주고 샀다가 나중에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저희 회사는 투자업계에서 우스갯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호구처럼 그걸 그 돈 주고 샀다고.”

    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이건 저희 회사 첫 번째 단추입니다. 잘 못 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내가 ‘그 사실’이 뭔지는 말 하지 않았지만, 이원재 이사는 찰떡같이 그걸 받았다.

    “꽤 많이. 특히 연예계 사람들이 꽤 많이 알겠지요.”

    나는 머리를 숙이고 있던 권오혁 사장을 떠올렸다. 나는 질문을 바꿔보았다.

    “그러면 이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언론에 내서, 파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요.”

    “그의 연인들... 남자친구들 정도겠지요. 하지만 언론사는 딱 하나 저희 쪽 뿐입니다. 이건 저희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인 즉, ‘우리만이 그 정보를 풀 수 있으니 우리와 협상을 하라’ 그 말이다.

    “좋습니다. 그럼 가격을 정해보지요. 얼마면 됩니까?”

    “10억 혹은 30억.”

    내가 살짝 고개를 갸우뚱 하자, 그가 말했다.

    “짐작하셨겠지만 저희도 그분과 어느 정도 딜을 해놓은 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계약이... 그분의 수입 대비 얼마를 받는 걸로 되어 있거든요.”

    나는 그걸 듣는 순간 이해했다. 이 사람들은 도찬기가 어디서 콘서트를 하건 밤무대를 뛰건 뭘 하건 그 중 얼마를 받는 계약을 한 모양이다. 그러면 도찬기도 이쪽을 믿을 수 있다. 자기가 파멸하면, 이쪽 역시 타격을 입으니까.

    “그래서 증거를 받으시고 그걸 언론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계약하시면 10억. 증거를 받고 언론에 공개하신다 하면 30억입니다. 언론에 공개하시면 저희도 수입이 줄게 되니까요.”

    ‘절대 손해는 보지 않겠다. 그거군.’

    솔직히 말하자면, 10억이든 30억이든 별 차이는 없다. 그 정돈 내가 금방 버니까. 단지 그의 생사여탈권이 내게 있는 것뿐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잠시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그러시지요.”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도찬기 대표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10억을 내면 생존, 30억을 내면 파멸이로군. 어떻게 해드릴까?’

    ‘허허허 네가 잘하나 보자 허허허’

    나를 비웃었던 것도 떠오르고

    ‘제가... 연예계에 30년이 가까이 있었지만 그토록 충격적인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나를 속이려 연기를 했던 것도 떠오른다. 마음이 살짝 ‘파멸’버튼 쪽으로 기운다. 하지만 그 때

    ‘왜 그렇게 까지 거짓말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가 활동하던 시절은 90년대. 염색을 한 머리도 전파를 탈수 없던 시절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안 좋아서 연예인이 특히 발라드 가수가 커밍아웃을 한다는 건 연예계 은퇴하겠다는 선언과 같았다. 그래서 그는 부득이하게 대중을 속이는 선택을 했어야할지 모른다.

    ‘그래서 그 때 거짓말을 시작했는데... 다시 그걸 덮으려고 거짓말을 하고 와중에 원하지 않는 결혼도 하고. 그렇게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다가 30년이 지나버린 건가... 이제 눈덩이가 너무 커져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말이야...’

    그렇게 생각을 하니 다시 생존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나는 이원재 이사에게 말했다.

    “이거 고민되는군요. 제가 도찬기 대표를 다시 한 번 만나보고 결정하면 안 되겠습니까? 일단 선입금으로 10억을 지불하지요. 만약에 거기서 언론에 공개를 해야겠다 싶으면, 20억을 더 지불하고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이원재 이사는 자신의 두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계약서만 확실히 써주시면 됩니다.”

    “그러지요.”

    *

    나는 커피를 마시며 시계를 보았다. 오후 2시 50분. 약속시간까지 10분 남았다.

    ‘이제 올 때가 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멀리서 도찬기 대표가 손을 흔들며 나타난다. 목소리며, 얼굴은 참 좋다. 인상 좋은 중년 가수의 표본.

    “어쩐 일이십니까? 이런 곳에 그것도 단둘이서 보자고 하시다니.”

    이곳은 강남에 위치한 모 호텔 내 카페다. 방이 나뉘어져 있는 방음이 철저하게 되어 있는 카페. 나는 바로 본심을 드러냈다.

    “아 별건 아니고요. 이번 계약 건에 대해서 재협상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내 말에 도찬기 대표는 화들짝 놀란다.

    “재협상이요? 저희가 여태 해온 게 있는데... 그걸 바꾸시겠단 겁니까?”

    나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네.”

    단호한 내 말에, 도찬기 대표도 얼굴을 굳힌다.

    “그건 안 됩니다. 저희도 많이 양보해드렸는데... 여기서 더 가격을 깎고 싶으시다면 저희는 차라리 다른 회사 찾아보겠습니다.”

    나는 눈을 내려깔고 덤덤히 말했다.

    “그러면 다른 회사 찾아보세요.”

    “아니 그럼... 여태 협상은 왜 한 겁니까? 그러시지요. 그럼!”

    그는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그 때, 나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그런데. 다른 회사 찾으실 때까지 이게 퍼지지 않는 다면 다행이겠군요.”

    그 사진은 ‘결정적 증거’가 되는 사진 중 하나였다. 키스톤 미디어가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사진 중 하나. 그걸 본 도찬기 대표의 눈이 커진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 참. 제 앞에서 연기 정말 잘하시더군요. 목소리 떨리는 것까지 구현하시다니. 기획사 하지 마시고 연기자 하셨으면 그건 그거대로 대박이 났을지도 모르셨을 텐데... 그렇지요?”

    “허... 아니... 이건... 대체...”

    그는 이번에는 진짜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손도 같이 떨리는 게 이건 연기라고 보기 어렵다.

    “왠지 다른 회사에서 끼어들지 않더라니... 특히 다른 기획사 사람들. 말입니다. 이정도 가격에 이정도 매물이면 시너지도 나고 좋을 텐데. 왜 우리 회사만 사려고 했을까요.”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 사진을 들어보더니, 체념한 듯 말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저는 도찬기 씨의 치부를 남에게 드러낼 생각은 없습니다. 동성애가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저는 저희 회사가 늘 좋은 딜을 하는 스마트한 회사로 여겨지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걸 지금, 제 가격에 주고 샀다가 몇 달 뒤라도 도찬기 씨의 이야기가 밝혀지면, 저희 회사가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도찬기 대표도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 역시, 악재를 감추고 주식을 넘기려고 했단 것을 인정하는 모양새다.

    “그러니까. 본래 계약보다 훨씬 싸게 해주세요. 이상할 정도로 싸게 팔았다. 싶은 수준으로. 그래야 우리도 나중에라 할 말이 있지 않겠습니까? 도찬기 대표가 동성애자라는 건 이미 알았다. 그래서 싸게 산거다 라고요.”

    도찬기 대표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얼마... 정도...를 원하시는지.”

    나는 생각해두었던 금액을 말했다.

    “170억. 220억에서 50억 할인한 금액으로 해주세요.”

    “네에?”

    도찬기 대표의 눈이 커진다. 그도 그럴만하다. 이미 합의를 했던 208억에서 38억이 싸진 금액이니까. 하지만 이 정도는 되야, 그의 진심이 담겨있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38억짜리 진심이. 도찬기 대표는 잠시 고민을 했지만, 이내 말하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신 이 사진은... 부디...”

    “물론입니다. 저야 굳이 도찬기 씨를 파멸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 때 저한테도 거짓말을 하시긴 했지만...”

    내 말에, 도찬기 대표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했습니다. 그 때는.”

    다 큰 어른이 이렇게 사과를 하는 걸 보니 안타깝다. 그는 어쩌면 평생 이러고 다녀야 할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적당한 타이밍에 커밍아웃을 했으면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하긴 위장결혼까지 했으니... 이제 뒤로 물리긴 어렵겠지.’

    그건 본인의 선택이다.

    *

    다음 날 아침. 도 대표는 새 계약서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를 배려해 최소한의 인원, 서비서와 장 부사장만 대동한 채로 새 계약서를 썼다. 계약이 끝나고, 도 대표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게 인사를 한 다음 사라졌다. 그가 간 뒤, 새 계약 조건을 본 서 비서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아니 이게 대체... 사장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된 일이긴. 잘 된 일이지.”

    장 부사장도 그걸 보더니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아니 지난 번 말했던 가격도 꽤 싸다고 생각했는데, 38억을 더 싸졌다니... 정말 이건... 역대급 딜이로군요. 다른 투자회사들도 놀랄 겁니다.”

    “그럼 좋군요. 이대로 잔금 납입하고 계약 진행해주세요.”

    장 부사장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단 표정을 지었지만, 내 명령에는 착실히 따랐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장 부사장이 사장실을 떠난 뒤, 서 비서가 내게 물었다.

    “사장님.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신 겁니까? 저한테만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요?”

    나는 딱잘라 말했다.

    “안 돼.”

    도찬기 대표는 거짓말을 한 대가를 충분히 치렀으니까. 그를 위해, 나는 이 이야기를 평생 함구하기로 했다. 서 비서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일 봐라.”

    서 비서도 문 밖을 나가고, 홀로 남은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뭐 그래 잘됐어. 과정이 복잡했지만 결과가 좋으니 다 좋게 되었지. 이제 인수인계만 되면 다이아 등급도 내 것이로군... 이제 새 뉴스가...’

    그런데 뉴스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나는 서랍을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어저께 받은 명함이 있다.

    ‘이원재 대원일보 이사’

    나는 그 명함을 빙글빙글 돌리며 생각했다.

    ‘기성 언론의 유력자라...’

    그 사람은 현재의 뉴스를 지배하는 사람. 그리고 나는 미래의 뉴스를 아는 사람이다. 그 녀석을 내 밑으로 끌어들이면 유용할 것 같다.

    ‘남의 약점을 캐고 다니는 녀석이었지... 그러면 그 녀석 약점은 뭘까? 누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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