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62화 (62/198)

# 62

진실 혹은 거짓의 거짓(2)

“다 왔습니다. 사장님”

지훈이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음?”

밖을 보니 고급 승용차가 일렬로 서 있다. 우리 집 주차장이다. 여태 골똘히 무엇을 생각하느라 집에 오는 줄도 몰랐다.

“아... 벌써 왔구나.”

“애초에 사장님은 다 가까우시잖아요. 회사랑 집이랑”

“그래... 그렇긴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릴 생각 없이,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렇게 십여 초가 지났다. 지훈이가 내게 물었다.

“사장님?”

뒤에 ‘집에 왔는데 안 내리시나요?’하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듯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야 지훈아.”

“네 사장님”

“오늘... 미팅 있잖아.”

“네 사장님”

“조금... 이상하지 않디?”

“어떤 부분 말씀이신가요?”

“그 때 있잖아. 내가 도찬기 대표한테 질문 했을 때 말이야. 왜 이 회사를 팔게 되었냐고.”

“아... 그 때 말씀이십니까? 글쎄. 저는 조금 두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뭔데?”

“첫째로, 200억짜리 물건 사면서 당연히 물어볼 말이긴 하다. 둘째, 그런데 그 이유를 알면서 물어보는 건 조금 너무했다.”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도찬기 대표는 그 루머 사건으로 인해 연예계에 환멸을 느꼈답니다.’

그 말을 내게 전해준 것이 지훈이었으니까. 그래도, 지훈이는 내 감정을 정확하게 읽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선빵 친 건 그쪽이긴 했죠. 허허허. 네가 잘할 수 있나 보자 허허허.”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도 그렇게 들렸니?”

“네 100%. 아마 장 부사장님도 그렇게 들으셨을 걸요. 그 양반 점잖은 척 하더니 그럴 땐 조금 뱀 같더만요.”

역시 내 생각이 맞다. ‘뱀 같다.’ 그렇다면 더욱 더 의문이 든다.

“그럼. 그 때 말이야. 내가 그 질문 하고 답변할 때 목소리 떨리던 거 들었어?”

“아 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말로만 들었을 땐 몰랐는데, 그게 그렇게 충격이었나 싶던데요.”

나는 그에게 핵심적인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 떨리던 게. 진짜였을까?”

“네?”

지훈이는 그게 가짜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아니 나도 들을 땐 조금 불쌍해보였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때 그 상황이 이상했다고 해야 하나? 생각해봐. 그 나이에 남들 앞에서 그것도 부하 직원들 앞에서... 감정을 드러낸다는 게... 내게는 있을 수 없는 일로... 느껴졌거든.”

지훈이는 입술을 모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런 가요?”

지훈이는 내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사장 소리 듣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회사의 사장이라는 게 그렇게 가벼운 자리는 아니었다.

“응. 나는 너랑 단 둘이 있다면 모를까... 다른 직원들 앞에서는 그렇게는 절대 못할 거 같아.”

“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참! 그런데, 그 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사람은 목소리가 떨리는데도 음색이 참 굵고 좋구나.”

그건 나도 그랬다.

“아 맞아. 생각해보니 그 사람 가수잖아. 목소리 조작하는 것 정도는...”

나는 그 말을 하다가 문득 든 생각에 그에게 말했다.

“잠깐만. 도찬기 대표가 연기를 한 적이 있었나?”

“글쎄요? 아마 하셨을 수도?”

우리 둘 다 잘 모른다. 그 사람이 한창 활동 하던 시절 90년 대 때 우리는 중학생이었으니까.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휴대폰을 들어 ‘도찬기’를 검색해보았다. 프로필을 찍어 보니 그가 연기를 한 적이 있긴 있었다. 장편은 아니고, 단편 주역 하나, 그리고 미니시리즈에 두 편 조연 역할을 맡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주역을 맡은 단편의 이름 ‘에덴의 북쪽’을 조합해 검색해보았다.

‘도찬기 에덴의 북쪽’

곧 뉴스가 나온다. 10년도 지난 뉴스들이.

‘도찬기 에덴의 북쪽, 연기에서도 호평’

‘김성균 감독 도찬기 호평. 연기 발성 모두 좋아’

‘도찬기 전업 배우 도전? 훌륭한 실력 검증’

내가 뭐라고 하기 전에, 지훈이가 먼저 말했다.

“오 연기 한적 있으시네요. 게다가 호평까지?”

“그러게. 이 사람 연기 쪽으로도 꽤나 재능이 있었나본데?”

“기사 찾아보니... 연기 하려고도 했는데 그 때 기획사 세운다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그만 둔 모양이네요.”

“음... 연기도 잘한다라... 야 지훈아. 만약에 그 사람이 그 때 했던 말이 거짓말이라면 뭔가 회사 내부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큰 문제다. 다이아 등급을 유지하려면 상장사 한 개를 지배하면서 유지를 해야 한다. 뭔가 내부에 문제가 있다면 강제로 강등을 당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수도... 하지만 회계 상 깔끔하다고 했었잖아요. 너무 급하게 파는 거 같아서 장 부사장님도 몇 번이나 확인하셨다고.”

“음...”

내가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라면... 회계 문제 아니라 사람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애초에 내가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리기로 했던 것도, 다 사람 이야기 때문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사람 문제... 도찬기 그 사람... 동성애자가 맞을 수도?’

*

집에 돌아온 나는 컴퓨터를 켜고 포털 사이트에 ‘도찬기’를 입력했다. 대부분 뜨는 것은 그가 90년대. 전성기 시절 불렀던 노래가사들이다. 나는 뉴스 쪽으로 넘어가보았다. 내가 찾는 기사는 그 때 그 기사였다.

‘CKD엔터테인먼트 도찬기 대표, 그는 동성애자다’

그런데 그 기사는 사라져 있었다.

‘고소한다고 하더니 그래서 내렸나?’

나는 ‘도찬기 고소’로 검색을 해보았다. 하지만 고소를 했다는 내용의 뉴스도 없었다.

‘음...’

뭔가 수상한 것, 투성이다.

‘이 사람이 동성애자가 맞다면?’

나는 그 전제 하에 시나리오를 써보았다.

‘기사가 터지고 기자 입은 겨우 막았는데, 이제 대중에게 퍼지는 건 시간문제. 그럼 자신도 어차피 대표이사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면 그 전에. 팔고 나간다. 엔터테인먼트에 처음 발을 들인 초짜 투자자한테. 연예계가 환멸스럽다는 건 거짓말. 그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연예계에 남아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야.’

눈이 뜨인 나는 조금 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럼 권오혁 사장은 왜 그랬던 거지?’

나는 ‘도찬기 권오혁’을 검색해보았다. 역시 또 뉴스가 뜬다.

‘권오혁 사장 OH엔터테인먼트 차려’

나는 기사를 클릭해보았다. 거기서 나는 둘의 관계를 알 수 있었다.

‘유명 가수 도찬기 씨의 매니저로 활동했던 권오혁 사장은...’

“아아...”

그러면 모두 말이 된다. 권오혁 사장이 도찬기의 매니저였다면, 그가 동성애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오래된 팬들도 제가 돌아서서 저를 욕했지요. 저는 그 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도찬기 사장이 거짓말을 할 때, 양심의 가책을 받아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부딪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모두 말이 된다.

‘도찬기 대표는 동성애자가 맞다. 그 기사는 틀린 게 아니었어.’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도찬기 대표는

‘CKD 도찬기 대표 동성애자 아니다 반박’

대중을 속이고

‘제가... 연예계에 30년이 가까이 있었지만 그토록 충격적인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나 역시 속인 셈이었다.

‘그 사람 진짜?’

가설이 진짜라면, 계약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지도 모른다. CKD는 도찬기 본인의 이름을 딴 회사다. 동성애가 큰 잘못은 아니지만, 위장 결혼에 30년 동안 거짓말을 해온 것은 크다. 회사 전체가 흔들릴 만큼. 하지만 계약을 파기하는 건 나도 싫다.

일단 이 CKD엔터는 지표상으로는 좋은 회사였다. 오현주의 OH엔터테인먼트가 실적을 잘 내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세 달에 걸쳐 작업을 했는데, 지금 와서 포기하면 다이아 승급이 너무 멀어진다. 다른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언제 매물로 나올지는 모를 일이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한다?’

나는 문득, 그 기사를 쓴 뉴스회사를 떠올려보았다. 그곳은 연예인 저격기사로 유명한 키스톤 미디어다.

‘그곳이라면 진실을 알고 있겠지...? 어떻게 키스톤 미디어랑 연락을 해볼 수 없을까.’

생각이든 나는 바로 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사장님”

“지훈아 너 그 키스톤미디어 알지?”

“알지요. 그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 가십 캐는데 도가 튼 회사 아닙니까?”

지훈이는 거기서 맨 처음 도찬기를 저격했다는 것은 모르는 듯 했다. 하긴 그것도 벌써 3개월 전이니까.

“그래. 그 쪽에 연락 좀 해서 우리 회사하고 이야기 좀 하자고 해.”

“네 알겠습니다.”

“아 참. 그냥 말하자고 하면 못 알아 들을 수 있으니까. 거기다가 말해. 우리 회사는 210억원의 규모의 투자를 하려고 하고, 그 대상이 바로 CKD엔터테인먼트라고.”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만약 내 시나리오가 진짜라면, 키스톤미디어에서도 연락을 해올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10분 뒤 바로 서 비서에게 연락이 왔다.

“사장님. 이상하네요. 이 방금 전에 사장님이 말씀하신대로 이야기 했더니... 갑자기 내일 저희 회사 찾아오겠답니다. 아침 10시에요.”

걸렸다.

“그래? 누가 찾아온대 기자가?”

“아니요. 기자는 아니고... 직책은 말해주지 않았는데 무슨... 의사 결정권자가 온다는 데요?”

“아. 그래.”

의사 결정권자라면 무슨 직책이든 높은 사람이 올 것이다.

“그래 그럼 내일 10시에 보자.”

“네 사장님”

*

나는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9시 50분. 오늘 키스톤 미디어 관계자와 만나기 한 시간이 10분 남았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나면, 도찬기가 동성애자라는 확실한 증거를 살 생각이었다. 산 다음, 그걸 가지고 다시 도찬기와 재협상에 나선다. 남을 약점을 쥐고 흔드는 건 다소 비열한 행동이지만, 그 역시 그걸 숨기고 나한테 회사를 넘기려고 했으니까.

‘똑 똑’

밖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약속하셨던 손님입니다.”

“응 들여보내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는데, 나는 한바터면

‘어’

하고 소리를 낼 뻔했다. 들어온 사람은 예리하고 큰 눈 그리고 자를 넣어놓은 듯한 예리한 코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 남자 역시 나를 보고 잠시 굳었다. 그 남자는 ‘가든 엔비’에서 봤던 ‘카이지’였기 때문이다. 우리 둘은 서로를 단숨에 알아보았지만, 뒤에 서 비서가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먼저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엔빅투스 인베스트먼트 사장 한상훈입니다.”

그러자 그도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대원일보 이사 이원재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