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61화 (61/198)

# 61

진실 혹은 거짓의 거짓 <유료화 시작>

나는 문을 열고 회사 안으로 들어섰다. 회사 안은 한산하다. 익숙한 풍경이다. 왜냐하면, 나는 예전에 회사 다닐 때처럼 8시 30분에 출근을 했기 때문이다.

“그 때 고개를 드는 순간 가발이 벗겨지는데 이거 웃겨 죽겠는데 웃을 수는 없고 말이야 진짜”

“와하하! 진짜?”

회사 안쪽에 나처럼 일찍 출근을 한 사원 두 사람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내가 그들 가까이에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낀 두 사람은 나를 보고 황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나는 그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를 받았다.

“네에 안녕하세요.”

그들이 놀란 것은 내가 일찍 출근을 했다는 것보다도, 출근을 했다는 그 사실 자체 때문일 것이다. 회사를 설립한지 이주일 정도 지났지만, 나는 그 중 한 3일 정도만 출근했다. 노느라 그런게 아니었다. 오히려 일을 하기 위해서, 출근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회사를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메일을 받아 우리 회사 자본금이 될 내 계좌를 불리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아무래도 회사보다 내 오피스텔에서 하는 게 익숙하고 편했다. 그래서 나는 진짜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만 이렇게 출근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사장님’ 소리가 들리자,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모여 내게 인사를 한다. 개 중에는 장 부사장도 있었다. 그는 내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나 역시 고개를 숙여 그 인사를 받았다.

“네 부사장님”

내가 출근을 하지 않아도, 회사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은 다 이 장 부사장 덕분이다. 그가 실무를 완벽히 처리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오늘 출근을 한 것은 따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장실 앞, 자리를 지키고 있던 지훈이가 나를 보고 일어섰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응.”

“오늘은 출근 하셨네요?”

“응. 오늘 10시에 미팅 있잖아.”

“집에서 오실 줄 알았는데.”

“에이 그래도 너랑 장 부사장이랑 같이 가야지. 중요한 일인데.”

서 비서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요.”

나는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려다가, 문득 든 생각에 서 비서에게 말을 해두었다.

“아 참. 나 8시 50분부터 9시 10분까지는 절대 방해하지 마. 누가 와도 사장실 문 열어주지 말고, 전화도 연결하지 말고 알았지?”

그 이유는 당연히 메일을 받아보기 위함이다. 그 때 만큼은 전력을 다해 초 집중을 해야 하니까. 지훈이는 군말 없이 내 말을 따랐다.

“네. 알겠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왜 그러시는 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라고 물어봤을 텐데 그는 이제 내 명령에 되묻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대학 동기에서 비서에 점점 가까워 지는 것 같다. 지훈가 나간 뒤, 나는 10분을 더 기다렸다. 오늘도 역시 메일이 온다.

‘P 12시간 뒤’

‘P 12일 뒤’

‘대한신당 내홍 언제까지’

‘가계 대출 터지기 일보 직전?’

‘모두가 낙하산? 은행 채용비리 일파만파’

‘전국 맑고 더워 강한 자외선 주의’

‘우크라이나 반러시아 시위’

‘5G시대 곧 개막’

‘강준호 삼성행?’

‘진격소년단 미국 콘서트’

나는 두 뉴스 모두 빠르게 위아래로 뉴스를 훑었다. 돈이 될 만한 뉴스는 없다. 나는 양손에 깍지를 껴 머리에 대며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허탕이네. 뭐 그래 오늘 중요한 일정도 있으니까. 오늘은 그것에만 집중하자.’

오늘 있는 중요한 일정은 다른 게 아니라 CKD엔터테인먼트와의 미팅이었다. 회사 인수를 위한 첫 단계. 회사 설립 전부터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어 있던 덕분에, 회사를 세운 이후 바로 급물살을 탔다. 그래서 오늘, 우리 회사와 그쪽 회사 임원진들이 직접 만나 구체적으로 협상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갓 오전 9시 1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일정은 10시부터였지...’

시간이 조금 남는다. 나는 별 생각 없이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웹서핑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포털사이트 메인 배너에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다. 정갈한 이목구비에 청순한 얼굴, 미소가 아름다운 미녀. 오현주다. 나는 그 배너를 클릭해보았다. 배너를 클릭하자 바로 화장품 광고 영상 하나가 흘러나온다.

“다이아보다 더 빛나게 진주보다 더 윤기 있게 화이트 클리닝 에센스”

나는 잠시 멈춰서 그 광고를 끝까지 보았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아름답기 그지없다.

‘참... 저 오현주가 내 회사 사람이 된다니...

참 묘한 인연이다.

*

나는 서 비서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먼저 와 있던 장 부사장과 두 명의 직원이 내 곁에 따라붙었다. 이곳은 CKD엔터테인먼트가 있는 청담동 모 빌딩. 지하 주차장 앞에 서자, 서 비서가 ‘상승’버튼을 누른다.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나는 그 안에 들어섰다. 층별 안내를 보니 CKD엔터테인먼트는 이 빌딩 5,6,7층을 쓰고 있었다. 지훈이는 그 중 7층을 눌렀다. 가장 높은 층. 거기 도찬기 대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음...’

나는 거기서 시선을 거두려고 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게 하나 더 있다. 8층 ‘OH엔터테인먼트’.

‘허... 여기 같이 있구나.’

말만 자회사지, 있는 곳도 똑같다.

‘어쩌면... 오늘 아는 얼굴 몇 명 다시 볼지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7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정장을 입은 남자 하나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에서 오신 분들이시지요?”

나대신 서 비서가 대답한다.

“네.”

“이쪽으로 오시지요.”

우리는 안내를 받아 복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쪽에는 커다란 회의실이 있다. 나와 서 비서, 장 부사장 그리고 두 명의 직원은 순서대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실 안에는 사람들이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들을 훑었다. 그런데, 익숙한 형체가 눈에 띄었다. 키가 작고 머리가 까진 남자. 그는 틀림없이 OH엔터테인먼트의 권오혁 사장이었다.

‘허.’

나는 속으로 소리를 냈다. 경찰서 앞에서 만났다가, 이런데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나는 그를 슬쩍슬쩍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는 나를 보고도 바로 알아보지는 못하는 듯 했다. 그도 그럴만 하다. 그가 내 얼굴을 본 것은 어두운 밤 경찰서 앞에서 1~2분 본 게 다였으니까. 그것도 자기 회사 직원이 자기 회사 배우를 찌르려고 했던, 대형 사고가 터지고 난 직후 일이다. 경황이 없었을 테니, 기억을 못 할 만도 하다.

‘하긴 그 때 그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사람이 인수자 대표로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

기억을 했더라도 비슷하게 생긴 사람처럼 착각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 달라져 있었으니까. 내가 그를 훔쳐보고 있는 사이, 키가 큰 사람 하나가 내게 와 손을 건넸다. 다름 아닌 도찬기 대표다.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90년대 발라드 스타.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살짝 놀랄 정도로 음색이 좋다.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답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바로 인수 이야기로 넘어갔다. 사실 핵심적인 사항. 그러니까 얼마에 사고 팔지는 이미 서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현재 지분 가치 220억에서 6%정도 할인한 208억원 선에서 양도 계약을 체결하는 걸로...”

대략적인 사항은 이미 물밑에서 이야기가 되어 있었으므로 우리는 오늘 세부사항만을 정할 뿐이었다.

“계약금은 얼마정도로...”

“인수 날짜는...”

그것도 그나마 우리 쪽에서는 장 부사장이 대부분의 역할을 했다. 그건 당연하다. 그는 이쪽에서 나보다 훨씬 베테랑이니까. 나는 별로 할 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중심에 앉아 있는 도찬기 대표와 사이드에 빠져 있는 권오혁 사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권오혁 사장 역시 나처럼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하긴 OH엔터테인먼트는 CKD엔터테인먼트에 피인수 된지 2년 가까이 된 상태였으니까. 그다지 발언권은 없었을 것이다. 누가 새 주인이 됐는지 보러 온 수준일 것이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미팅은 12시가 될 때 즈음 거의 마무리가 되어갔다. 그런데 그러던 중이었다. 한창 마무리 협상을 하고 있는 데, 도찬기 대표가 내게 질문했다.

“그런데, 제가 한상훈 대표님 제가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갑자기 들어오는 질문이다. 나는 대답했다.

“네 말씀하시지요.”

“한상훈 대표님은 어째서 저희 회사를 인수하시려는 거지요? 연예계 쪽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신 것 같던데.”

충분히 할만한 질문이긴 하다. 누가 봐도, 연예계 1도 관련 없던 사람이 갑자기 인수를 하겠다고 나선 것 같아 보였을 테니까. 나는 잠시 대답을 떠올렸다. 사실 핵심적인 이유는‘다이아 등급으로 승급하려고’였지만, 그걸 말할 순 없다. 나는 단순히 대답했다.

“제가 경영을 잘 할 수 있는 분야 같아서요.”

그건 사실이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그야말로 사람을 가지고 하는 사업이었으니까 12시간 뒤, 12일 뒤, 12주 뒤, 그리고 12달 뒤. 인물검색을 쓰면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쉬워 진다. 그런데 그 말에, 도찬기 대표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더니, 말했다.

“허허... 그러시군요. 허허허”

그 표정과 말투가 꼬옥

‘네가?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연예계 짬밥 30년인 나도 잘 못한 걸?’

그렇게 들린다.

‘음...’

심기가 불편해진 나는 그에게 반문했다.

“저 저도 도찬기 대표님한테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네 뭐 말씀이시지요?”

“도찬기 대표님이 왜 이 회사를 파시려는 겁니까? 자신의 이름을 딴, 자신이 키운 회사인데.”

나는 그 답변을 직접 듣고 싶었다. 아무리 회계상 깔끔하다 해도, 자기가 키운 회사를 너무 급하게 팔려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만약 여기서 이상한 답변이 나오면, 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 질문을 받은 도찬기 대표는 잠시 안경을 고쳐 쓰고 입술을 모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모두가 다 아시는 그 사건 때문입니다.”

나는 그걸 들으면서 생각했다.

‘...역시 그건가’

그가 말하는 그 사건이란, 최근에 있었던 동성연애자 루머다. 그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연예계에 30년이 가까이 있었지만 그토록 충격적인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도 살짝 누그러진다.

‘음... 내가 괜한 질문을 한 걸까...’

사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는데, 굳이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서 남의 상처를 후벼 판 것만 같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러자 내 눈에 권 사장. 사이드에 앉아 있는 권오혁 사장이 보였다. 그런데, 그는 요상하게 시선을 바깥쪽으로 돌린 뒤, 손가락 다섯 개를 서로를 마주치고 있었다.

“오래된 팬들도 제가 돌아서서 저를 욕했지요. 저는 그 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도찬기 대표가 말을 할수록 그는 고개를 숙이고 좀 더 빠르게 손가락을 부딪쳤다. 나는 그걸 보고 생각했다.

‘왜 저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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