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황제의 권좌
나는 재킷을 두르고 넥타이를 맸다. 보관함을 열어 손목에 시계를 두르고 거울을 보았다.
‘음...’
나는 나인데, 예전 회사 다닐 때와 뭔가 다른 것 같다. 물론 표면적으로 몇 가지 달라진 게 있긴 하다. 입고 있는 옷이 이월 상품 세일 정장에서 고가 원단을 쓴 맞춤 정장으로 바뀌었고, 비어있던 흰 손목에 번쩍번쩍 빛나는 롤렉스가 장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가슴도 조금 넓어 진 것 같고 어깨도 커진 것만 같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감.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회사 다닐 때와는 마인드가 다르긴 하지.’
그 때의 나는 돈 몇 푼에 쪼들리고, 상사 눈치에 쪼들리고, 쪼들리고 쪼들려서 뭔가 어깨가 움츠러 들어 있었다. 사회적 위치에, 계좌에 찍힌 숫자 때문에 스스로를 자기 자신 안에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후회가 들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 때의 나는 이제 없고, 새로운 내가 있을 뿐이니까. 나는 내 뺨을 두 번 치며 중얼거렸다.
“그래 좋아 한상훈. 잘하자.”
내가 그러고 있는 사이,
‘띵~동~’
오피스텔의 벨이 울렸다. 딱 맞춰서 왔다. 나는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밖에는 서 비서. 지훈이가 서 있다.
“사장님 준비 다 되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가자.”
오늘은 내가 오랜만에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남의 회사가 아니라 내 회사에, 일개 사원이 아니라, 사장으로서. 나는 서 비서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내 포르쉐가 서 있다. 나는 차키를 눌렀다.
‘삐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내가 운전석 쪽으로 걸어가려는 데, 지훈이가 말했다.
“어 잠깐만요. 사장님.”
“왜?”
“비서인 제가 운전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런 다음 방패 문양이 있는 차키를 흔들며 말했다.
“너 이거, 몰아보고 싶어서 그러지?”
지훈이는 속마음을 들켰는지, 자기도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긴 한데, 비서가 운전을 해야 하는 것도 도의 상 맞지 않겠습니까?”
“음...”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다. 어디로 이동을 할 때, HTS든 MTS든 주식창을 봐야할 때도 있을 것같다.
“생각해보니까 사업하려고 하면 그런 것도 하나 필요할 것 같네. 네가 알아봐라. 국산차 중에 젊은 CEO가 탈만한... 그런 걸로.”
“국산차로요?”
“응 업무용으로는 국산차 타고 다니게. 너무 젊은 사람이 외제차타고 다니면 건방지다고 싫어할 사람들도 있지 않겠어?”
“네... 사장님”
지훈이는 살짝 실망한 듯 말했다. 나는 운전석에 앉으며 말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 임마. 너도 내 곁에서 5년... 아니 3년만 있으면 포르쉐 끌게 될 테니까.”
“그럴까요?”
지훈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래. 내가 언제 돈 가지고 거짓말 하는 거 봤냐?”
그 말을 하던 중, 나는 문득 생각이 났다.
“아 맞아.”
나는 조수석 앞 서랍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열어봐.”
지훈이는 그곳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정육각형 모양의 박스가 있다. 나는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네 거다.”
“이게 뭔데요?”
나는 녀석을 보며 말했다.
“뭐야 까먹었냐?”
지훈이는 박스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반짝반짝 거리는 시계 하나가 있다. 대문자 R이 찍혀있는 시계.
“롤렉스 아냐 롤렉스. 내가 그 때 이번 일 끝나면 사준다고 했잖아. 벌써 잊었어?”
지훈이는 시계와 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니... 사장님 잊어버린 게 아니고... 그 땐 빈말인줄 알았습니다. 정말로요.”
“나는 한 말은 지킨다니까.”
나는 씨익 웃으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부르릉’
오피스텔 주차장 밖으로 나오면서 테헤란로가 펼쳐진다. 나는 테헤란로를 질주하며 한 마디를 더 했다.
“3년 뒤에 포르쉐. 그것도 빈말 아냐.”
*
운전하길 10분 여. 나는 삼성동에 위치한 한 빌딩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내표를 보니, 17층.
‘인빅투스 인베스트먼트Invictus investment’
우리 회사 이름이 걸려 있다. 회사명은 무적, 무패란 뜻의 라틴어를 땄다. 나는 회사 앞에서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런 다음 문을 열고 들어섰다. 회사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직원들이 일제히 기립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고 보니 묘한 데자뷰가 느껴진다. 언제 이런 걸 봤을까, 생각해보니, 분명 꿈에서 봤던 장면이다.
‘사... 사... 사장님!’
잠결에 꾼 꿈이 실제 이루어진 예를 하나 더 추가해야할 것 같다. 나는 사무실을 한 바퀴 돌면서 한 번씩 악수를 했다.
“김준수 씨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사장님.”
“신지윤 씨 반가워요.”
“예 사장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김지수 씨”
“반갑습니다. 대표님”
지금 당장은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눈 사람은 다름 아닌 장 부사장이다. 이 모든 것을 혼자서 꾸린 사람.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장님.”
개인적인 악수가 끝나고, 나는 좌측에 장 부사장, 우측에 서 비서를 세운 채로 직원들에게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 역시 몇 개월 전에는 여러분과 같은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회사를 다니면서 무엇을 바라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잘 압니다.”
내 말에 사원들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대부분
‘진짜인가?’
하는 표정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장 부사장을 보고 따라온 사람들이라 아직 나에 대해서는 잘 몰랐을 것이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회사 다닐 때 생각을 해보면, 저는 정말로 일을 억지로, 억지로 해왔었죠. 참 고된 시간이었습니다. 열심히 일은 하는데, 월급은 쥐꼬리고... 돌아오는 건 제대로 없고... 회사에 있는 시간 전부가 고통스러웠지요. 그래서 저는 회사 세우면서 최소한 우리 회사 사원 분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를 해드려야 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동기부여란 다른 게 아닙니다.”
나는 내 품속에서 포르쉐 키를 꺼냈다. 투자 회사 사람들답게, 다들 알아보는 눈치다.
“이겁니다. 바로. 돈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개인에게 부여한 권리이자, 권력의 수단. 저는 여러분에게 돈으로 동기부여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확실하게요. 저는 입에 발린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회사 다닐 때 그런 이야길 자주 들었거든요. 가족 같은 분위기. 그런데 가족한테 욕하고, 가족한테 야근을 시키고, 가족 끼리 서로 경쟁시켜 탈락시키고. 그게 말이나 됩니까?”
내 말에 몇몇 사원이 조용히 웃는다.
“저는 그래서 그런 말을 매우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말 대신 숫자를 좋아하게 되었죠. 저는 여러분에게 단지 숫자. 숫자로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말은 교묘한 것이고, 듣고 나서 사라지는 것이지만,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분명히 남는 것이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내 질문에 일동 대답한다.
“네”
“누군가가 일을 잘 했을 때, 그를 치하할 때는 늘 말보다는 숫자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다들 좋아하는 단어죠? 저는 여러분 개개인을 제 자회사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잘 내는 자회사가 있다면, 저는 그에 맞춰서 충분한 배당금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겠습니까?”
“네 사장님”
“넵~!”
“네!”
다들 얼굴이 상기되어 크게 대답한다. 좋다. 잘 하는 사람에게 충분한 보상을. 앞으로 주욱 이 것이 내 운영 방식이 될 것이다. 이 사람들이 내 명령만 제대로 수행하면, 이득이 나는 건 분명할 테니까.
“그러면. 앞으로 열심히 해주세요.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사장님”
나는 박수소리를 들으며 내 자리,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서 비서와 장 부사장이 따라 들어온다.
‘쿵’
뒤로 사장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박수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휘우~”
이렇게 일장 연설을 해본 것은 초등학교 반장선거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나는 내 의자 머리에 양 손을 짚은 채로 서 비서에게 물었다.
“나 잘했냐? 지훈아?”
“네 사장님. 멋있었습니다.”
곁에 있던 장 부사장도 한마디 한다.
“좋은 말씀이셨습니다. 역시 투자회사 사람들에게 배당만큼 인기 좋은 단어가 없지요.”
나는 씨익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그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CKD엔터테인먼트 인수는요?”
장 부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순조롭습니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합의가 됐고, 이제 구체적인 이야기만 되면 됩니다. 그것도 저희 쪽이 유리합니다. 도찬기 씨 본인이 빨리 팔고 싶어 해서요. 시간은 저희 편입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탁탁탁 탁자를 쳤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너무 급하게 나오는 매물은 조심 해야한다.
“빨리 팔고 싶어 한다... 혹시 회계 상 문제가 있다거나 그런 건...?”
“저도 그 점이 염려되어 확실히 체크를 해보았습니다. 문제없이 깔끔했습니다.”
“음...”
그렇다면 나쁘지 않다. CKD엔터테인먼트는 중국 사업 때문에 한참 하락을 했지만, 보유 자산이나 업계 PER 등 지표를 따져봤을 때 적당한 가격에 와 있었다.
‘몇 억 비싸게 산다고 해도... 내가 그만큼 더 벌면 되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장 부사장에게 말했다.
“그래요. 그럼 마무리 협상 잘 해주시고. 준비 되는 대로 말씀해주세요.”
“네 사장님.”
장 부사장이 문을 닫고 나간 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돌려보았다. 이곳 뷰 역시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 못지않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상업 빌딩이 많은 강남역 주변에 비해 여기는 완전히 회사들이 모여 있는 비즈니스 라인이라는 점이다. 창밖으로 KL건설이니, 현대은행이니, 우리생명이니, 하는 대기업들의 상표가 찍혀 있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그것들을 보며 말했다.
“야 지훈아”
지훈이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네 사장님”
나는 가장 눈에 띄는 우리생명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얼마나 할까?”
“네?”
나는 씨익 웃었다. 알아들으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냥 단지, 길가에 보이는 회사들이 다 매장 위의 물건 같아서, 그래서 해본 이야기였다. 인빅투스Invictus. 우리 회사의 이름은 로마 황제가 집권 하던 시절 언어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말 그대로 우리 회사는 무패를 자랑하는 황제의 회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는 바로 황제의 권좌가 될 것이고. 나는 그 황제의 권좌에 앉아 한동안 밖을 바라보았다. 곧 내 영토가 될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