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59화 (59/198)
  • # 59

    준비

    나는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바앙~~!’

    새로 산 내 포르쉐는 시원하게 도로를 질주했다. 마치 검은색 갈기를 지닌 준마를 타고 다니는 것 같다. 최고출력 550 마력, 최대토크 78.5 4.0L터보 엔진이 달려 있는 준마.

    ‘BAYYYH! Wah-wa-wa-wah-wa-wa Bang Bang’

    오디오에서는 skrillex의 Bangarang이 흘러나오고, 나는 더욱 더 강하게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차는 시원시원하게 나간다. 지금 내가 운전을 하고 있는 곳은 서울 – 춘천 고속도로. 평일 낮이라서 차가 그리 많지는 않다. 드라이빙을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 최적의 타이밍이다.

    오늘 내가 춘천을 가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단지 새 차를 타고 시원하게 고속도로 한 번 달리려고 온 것이었다. 나는 일부러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휘파람을 불렀다.

    “휘우~”

    시원하기 이를 데가 없다.

    ‘125150, 30%, 0,3% 300억 510억.’

    매일 내 머리 속을 오가던 숫자들이 한 번에 날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신나게 드라이빙을 하던 중,

    “위이이잉”

    “위이이잉”

    “위이이잉”

    휴대폰이 연달아 울렸다.

    ‘아 벌써 그렇게 됐나...’

    아무리 그래도, 이 숫자들은 나를 놔주질 않는다. 나는 힐끗 네비게이션을 보았다. 1km 앞에 휴게소 하나가 있다. 나는 휴게소 안으로 차를 몰았다. 적당한 자리에 차를 댄 다음, 휴대폰을 들고 차 밖으로 걸어 나왔다.

    마침 내 차 옆에 서 있던 남녀 두 사람이 나에게 시선을 돌린다. 남자는 슬쩍 포르쉐를 쳐다보고 여자는 슬쩍 나를 쳐다본다. 요새 중요한 게 승차감보다는 하차감이라더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두 사람을 지나쳐 커피 전문점으로 향했다.

    “화이트 초코 모카 한 잔이요.”

    달달한 커피 한 개 시켜 놓고, 휴대폰을 들어 MT를 켰다. 그런 다음 주식 잔고를 확인해보았다. 주식 잔고 창은 텅 비어 있었다. 단 한주도 빠짐없이.

    ‘그 말인 즉...’

    나는 계좌잔고 쪽으로 넘어가 보았다.

    ‘아침대비손익 +2,639,424,600’

    나는 간단히 주먹을 쥐어보였다.

    ‘좋았어.’

    아침에 매도를 걸어놓고 나온 주식이 모두 팔리고, 돈으로 들어와 있었다. 나는 이제 총 잔고를 계산해보았다. 이제 8개로 쪼개져 있는 내 계좌에는

    ‘63억 81억 98억 42억 100억...’

    무려 580억이 넘는 돈이 들어와 있었다.

    ‘그럼 목표 달성이로군.’

    나는 바로 전화번호를 열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건 대상은

    ‘서 비서’

    정식으로 내 비서가 된 지훈이었다.

    “여! 서 비서.”

    “네 형님.”

    지훈이는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가,

    “아니 사장님. 죄송합니다. 사장님.”

    나는 짐짓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어허 좀 익숙해지래도.”

    “죄송합니다. 사장님. 이거 대학생 때부터 하던 호칭이 붙어버려서 영 적응이 되질 않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사장님’칭호가 익숙하지 않은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괜찮아. 근데 이게 우리 회사 사람들이 이제 한 둘이 아니잖아. 그럴 때만 조심해줘.”

    “아니요. 월급 받는 입장에서 사장님 더러 사장님이라고 불러드려야지요. 그리고 저도 호칭을 통일하는 편이 좋으니까요. 그냥 항상 사장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사장님.”

    “그래 그럼. 그나저나, 장 부사장님한테, 연락해줘. ‘준비’가 다 됐다고.”

    “준비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준비’라는 것은 다름 아닌 입금이었다. 투자회사 설립을 위한 자본금 납입.

    “그래 그럼 바로 다음 단계 진행하고... 그리고 그 CKD엔터테인먼트하고도 슬슬 이야기 시작해달라 그래.”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통화를 마친 후 나는 달력 앱을 켜서 날짜를 보았다. 오늘은 그 날, 장상진 팀장. 지금 장 부사장과 의기투합을 한지 딱 40일이 되는 날이었다.

    ‘휴우 장 부사장이 너무 일을 잘해서... 내가 늦을 뻔했네.’

    내게 확언을 받고 회사를 퇴직한 장 부사장은 지훈이와 함께 바로 회사 설립에 착수했다. 나는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을 그에게 맡겼다.

    ‘장 부사장님이 알아서 잘 해주세요.’

    왜냐하면, 그는 경험에서는 나보다 훨씬 앞선 베테랑 증권맨 이었으니까. 미래를 예측하는 건 내가 잘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장 부사장이 나보다 훨씬 나았다. 그는 인맥을 살려 자신이 아는 몇몇 사람들. 유능하면서도 정직한 사람들을 우리 회사로 끌어 들였다. 때때로 잡음이 있었지만.

    ‘원하는 연봉이 얼마랍니까?’

    내가 끼어들면 대체로 해결 되곤 했다. 나는 회사를 차리면서 사람을 사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나는 미래를 알 수도 있지만, 인간 속은 알 수 없었으니까. 전에 있던 회사에서 계파 싸움이니 뭐니 그런 것에 시달리던 장 부사장은 새로운 직장에 와서 자기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골라 고용하고 배치하는 것이 매우 기쁜 모양이었다.

    ‘훌륭한 사람들로 구성했습니다. 사장님도 만나보시면 흡족 하실 겁니다.’

    물론 그가 그렇게 열심히 일 하는 사이, 나도 논 것만은 아니었다. 당연히, 열심히, 돈을 벌었다. 주식을 통해. 이제 플레티넘 등급으로 넘어 온 지 근 두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성과를 복기해보자면 첫째 달 89억으로 주식을 시작했던 나는 그 달에 310억을 만들었고, 구독료 100억을 낸 다음 두 번째 달 210억을 가지고 방금 전, 오늘 번 20억을 더해 580억을 만들었다. 580억 이면 딱 300억 투자 회사에 주고, 100억 구독료 납입 한 다음 다시 주식을 시작하기 좋은 돈이다.

    주식을 굴릴 자본금이 투자회사로 줄어들긴 했지만,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애초에 300억 이상은 돈이 있어도 굴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300억부터는 진짜 힘들었지. 사고 싶어도 살 매물이 없어서...’

    나름 코스피, 코스닥에서 핫한 뉴스만을 쫒아서 능수능란하게 매매를 했지만 그 정도가 최대였다. 300억 이상의 돈을 움직이면 그 돈 때문에 주가가 올라가고 내려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나는 300억은 투자회사에 납입하고 나머지 돈으로 다시 돈을 불리는 것을 택했다.

    투자회사는 투자회사대로 운영하고 주식은 주식대로 굴리고. 플레티넘 등급을 유지만 하면 아무리 그래도 매달 200억에서 300억 씩은 벌 수 있을 것 같다.

    ‘일년 정도 굴리다가 천억 넘으면 다시 투자회사에 집어넣든가...’

    물론 변수는 있다. 다이아 등급을 달았을 때, 뭔가가 새로운 스킬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 그게 있다면 돈 버는 속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다이아 등급을 찍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

    오후 다섯 시. 나는 당일치기 춘천 여행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강남으로 돌아왔다. 이 때 서울은 차가 많아도 너무 많다. 꽉꽉 막혀있는 찻길에서 포르쉐가 갇혀 있으려니 참 답답하다.

    ‘하아~ 내 애마가 달릴 수가 없네. 달릴 수가 없어.’

    그래도 이 서울에서도 고급 차가 좋은 점은 있었다.

    ‘차선 변경 좀 하겠습니다.’

    깜빡이 켜고 회전을 하려고 하면,

    ‘예 먼저 가시지요.’

    차들이 비켜 서주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아버지 차나, 도장 봉고를 몰 때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아...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 드라이빙도 너무 오래했더니 피곤하네...’

    피곤한데, 도로 위에 서 있기도 심심하다. 나는 라디오를 만지작거려보았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각자 DJ들의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음 들려드릴 곡은 아델의 셋 파이어 투 더 레인”

    “사랑은~ 갈대여라~”

    “그래서 말입니다. 제가 그 친구한테 뭐라고 했냐면. 야 임마!”

    ‘응?’

    그런데 그러던 중 내 귀를 의심케 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마성 그룹 전희중 회장이 사망하였습니다.”

    나는 라디오를 돌리다 말고 거기에 고정시켜보았다.

    ‘어라 마성 그룹 회장이 죽었다고?’

    마성 그룹이라면 재계 서열 50위 안을 들락날락 하는 우리나라 중견 건설회사였다. 재벌의 가지로 나온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1980년대 설립된 이후로 꾸준히 실적을 쌓아오며 성장을 해온 건실한 회사였다.

    ‘아니 전희중 회장님이라면 비교적 젊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지난 번 뉴스인가 신문에서인가 봤을 땐 대충 40대 혹은 50대 정도로 보였는데 정말 일찍 죽었다.

    ‘뭐지? 자살이라도 했나?’

    부자들이 일찍 죽는 경우는 대체로 그런 게 많았다. 사업에 실패했을 때, 혹은 비리가 탄로나서 궁지에 몰렸을 때. 나는 귀 기울여 뉴스를 들어보았다.

    “마성 그룹 전희중 회장이 급성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이날 오전 10시 경 자주 찾는 낚시터를 찾은 전희중 회장은...”

    자살이 아니라 급성심장마비란다. 참 운이 나쁜 것 같다.

    ‘심장마비... 아니 회장님인데 비서나 그런 사람은 없었나?’

    내가 의문을 품는데, 그에 대한 답이 바로 흘러나왔다.

    “당일에는 홀로 낚시터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 회장을 발견 한 것은 역시 똑같이 낚시를 하기 위해 낚시터를 찾은 김 모씨로 그는 전 회장을 발견하자마자 즉시 119를 불렀지만...”

    뉴스를 듣다보니 조금 기분이 묘하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을 땐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심장마비로 죽기에는 너무 젊지만 말이다.

    *

    나는 겨우겨우 차를 몰아 내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전에는 몰랐는데, 요즘 깨달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오피스텔은 고급차 천지라는 것. 내 포르쉐도 좋은 차긴 했지만, 이 안에는 그에 비견하는 람보르기니니 페라리니 하는 것들이 즐비하게 차 있었다. 내가 차를 대는 곳 옆에도 나와 똑같은 차종의 포르쉐가 서 있다. 내건 검정색, 이건 붉은색. 색만 다르다.

    ‘후우... 이건 누구 차지? 하여간 여긴 이웃들이 다 부자라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그 때.

    ‘띠띠’

    내 옆에 붉은 색 포르쉐에도 불이 들어왔다. 내가 고개를 돌려보니 이아영. 집주인이 나를 보며 서 있었다. 그녀는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나는 인사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를 훑었다. 매번 그래서 미안한데, 남자라면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오늘은 검은색 폴라티에 와인색 캐시미어코트를 입고 있었다. 자신의 장점을 많이 숨긴 모양새다. 그녀는 내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차 모시는 건 처음 보는데... 새로 사셨나봐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한 달 정도.”

    그녀는 자신의 차 곁으로 다가와 그걸 어루만지며 말했다.

    “오오 그러시구나. 저도 이 차 산지 얼마 안됐는데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녀 역시 차를 산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하다.

    ‘부자는 부자란 말이야...’

    그녀는 나는 살짝 인사를 한 다음 헤어졌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녀는 만날 때마다 왠지 내 뇌리에 남는다.

    ‘화려한 외모 때문일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잘 설명이 되질 않는다. 그녀에게는 사람을 끄는 본연의 마력 혹은 매력같은 것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