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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 뒤-58화 (58/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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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한 인연(2)

    “오현주 씨 아시죠 형님? 미녀 배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알다 마다, 내가 언주역 사거리에서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 불과 두 달 전이다.

    “이 OH엔터테인먼트도 지난 분기까지는 그저 그랬는데, 이 오현주 씨가 최근에 워낙 떠서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고 하네요. 요새 화장품이다 휴대폰이다 뭐다 해서 안 나오는 CF가 없으니까요. 최근에 충무로에서 배역도 하나 맡았다고 하네요.”

    “음...”

    나는 잠시 그 때, 범인을 붙잡아 업어치기를 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 때는 진짜...’

    내가 잠시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데, 마침 지훈이가 자리를 비웠다.

    “형님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지훈이가 미닫이문을 닫고 나간 뒤, 나는 내 지갑을 뒤져보았다. 큰돈을 번 이후로 지갑을 바꾸긴 했지만, 안의 내용물은 버리지 않았다.

    ‘...있네.’

    나는 지갑 안쪽에서 명함하나를 찾아냈다.

    ‘OH엔터테인먼트 사장 권오혁.’

    그날, 권오혁 사장은 경찰서 앞에서 내게 이걸 건네며 말했었다.

    ‘다름이 아니고... 저희는 이 사건을 좀 조용히, 덮고 싶습니다.’

    사건을 덮어 달라 청탁조로 삼천만원의 수표와 함께.

    ‘...그 OH엔터테인먼트가 CKD엔터테인먼트 자회사였구나... 그럼 내가 CKD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 OH엔터테인먼트도 내 회사... 권 사장도 내 수하가 되는 거네... 그리고 오현주는’

    내 회사 대표 연예인이 된다. 참 웃긴 인연, 묘한 인연이다.

    ‘그나저나 그 때 내 전화번호 가져가놓고 연락 한 번 없었지.’

    번호를 가져갔으면, 아무리 바빠도 따로 고맙다고 문자라도 한번 보내든가 할 줄 알았는데, 그게 끝이었다.

    ‘그건 좀 실망이었는데... 뭐 사정이 있었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 명함을 다시 지갑에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휴대폰으로 CKD엔터테인먼트 주가를 보았다. 예전에 딱 하루만 단타를 치고 나와서 전체적인 그림은 전혀 보지 못했는데, 10년 치 차트를 보니 꽤나 등락이 있었다.

    ‘으음...’

    CKD엔터테인먼트는 2012년도에 처음 상장했다. 그리고 한동안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고 횡보를 하다가 2015년부터 많이 오르기 시작해서 2016년도에 고점을 찍었다. 이 때 당시 시총은 무려 3600억. 그런데, 그 이후로 급격히 하락세를 찍어서 내가 매매를 하던 시점에는 1200억대. 지금은 삼분의 일 토막이 났다. 뭔가 안 되도 한참 안 된 모양이다.

    ‘이걸 보면...단순히 루머 때문에 파는 건 아닌데...?’

    그 때 마침 지훈이가 돌아왔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CKD엔터 요즘에 하는 사업이 잘 안됐다고 했지. 그게 뭐야?”

    “아 그게 중국 드라마 제작 사업인데요...”

    “아아...”

    나는 다 듣지도 않고도, 무슨 이야긴지 알아 차렸다. 중국, 2016년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세 가지 퍼즐이 맞춰지면 나오는 그림이 하나 있다.

    “왜 중국에서 삼사년 전만해도 한류 열풍이 대단했었잖아요. 그래서 도찬기 본인도 그렇고 소속 연예인도 중국 가서 활동도 많이 하고 그 때 순이익이 많이 났었나 봐요. 그런데..”

    나는 지훈이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 때, 한한령이 터졌구나.”

    한한령限韓令이란 문자 그대로 한국의 문화 컨텐츠를 막는 장벽이었다. 한국이 THAAD사드 배치를 결정함에 따라, 중국정부가 이를 보복하려고 세운, 일종의 무형 관세였다. 한 때, TV만 틀면 한국 연예인이 나오던 중국 TV는 이때 한한령이 선포된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중국 정부에서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나 영화, 예능프로그램은 물론, 한국 연예인이 나오는 광고까지 막았기 때문이다.

    “네 그렇습니다. 형님. 그 때만 해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워낙 잘 팔려서 도찬기 씨도 아예 중국 쪽에서 야심차게 사업을 하려고 법인도 세우고 거기 투자를 많이 했는데... 그 때 딱 한한령이 나오면서 그 투자금이 그대로 손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가도 폭락했고요.”

    “음. 기회인줄 알고 덥썩 달려들었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된 케이스군...”

    그러면 주가 차트가 모두 이해가 간다. 2014년에 급상승을 하고 2016부터 급하락. 모두 다 중국 쪽 매출이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진 그림이다.

    “그 중에 가장 큰 건이 상해연인이라고. CKD엔터에서 제작비 대부분을 대서 중국에서 현지 로케이션으로 찍은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주연배우는 CKD엔터 에이스 김준형씨 쓰고, 여배우도... 중국 쪽에서 매우 유명한 여배우였다고 하네요. 어쨌든 그렇게 캐스팅에도 공 들이고 백억 단위 돈을 들여서 드라마를 모두 찍었는데, 3년이 지나도록 여태 방영을 못했답니다.”

    나는 휴대폰으로 상해연인을 검색해보았다. 딱 보니 남자 주인공 얼굴이 익다. 김준형 씨.

    “음 이 남자애는 나도 알겠다. 김준형.”

    “네 이분은 최근 드라마가 다 잘돼서. 중국에서 인지도가 꽤 됐는데... 딱 이 상해연인에서 터치고 중국에서 탑급 연예인으로 발돋움 하려는 찰나에. 발목이 잡혀버렸던 거죠. 저도 잘 이해는 안 가요. 드라마를 만들게 해놓고 방영을 막아버리다니.”

    “뭐 경제는 자본주의 따라한다고 해도, 본질은 공산주의다 이거지.”

    지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요. 저런 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가 그나마 좋은 편이에요. 맨날 정치인들끼리 싸우고 뭐하고 해도 말이죠.”

    “그래 사실 우리나라 정치판이 매일 싸우고 그런 것 같아 보여도... 그게 어쩌면 나을 지도 몰라. 일당 독재로 싸우지도 않고 의사 결정을 한다는 건...”

    나는 더 말을 하려다가, 재미 없는 정치 이야기가 길어질까봐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CKD엔터테인먼트는 내가 더 알아볼게. 너는 그... 장상진? 팀장님이란 분 좀 연락해 줘. 내가 한 번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다고.”

    “네 형님. 제가 장 팀장님한테 먼저 연락 해드리고, 다시 형님한테 연락드리겠습니다.”

    *

    “음~”

    집에 돌아온 나는 내 컴퓨터 앞에 앉아 CKD엔터테인먼트의 재무제표를 보았다. 시총은 1200억. 대주주 지분률은 20% 정도로 조금 낮은 편이었다. 단순 계산하면 240억인데, 본인이 팔고 싶어 하니 조금 싸게 해줄 것 같다.

    ‘요새 사업도 별로고 좋지 않은 루머도 있고 해서 5%~10%? 정도는 싸게 해줄 것 같은데.’

    10%싸게 해주면 지금 당장도 살 수 있다. 이건 헛된 기대가 아니다. 주식시장에서도 대규모 매매가 있는 경우 가격이 조정 되는 게 일반적이다. 보통 사는 사람이 급할 때 경영권을 가지고 사람 지분을 모두 가져갈 때는 프리미엄을 얹어서 사는 게 기본이고, 이렇게 파는 사람이 급할 때는 경영권을 넘기고 현금을 챙겨갈 때는 조금 할인율을 적용해서 주식을 팔았다.

    ‘될 수 있으면 최대한 싸게 사야겠지. 한두 푼도 아니고 억 단위인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훈이에게 전화가 왔다.

    “응 지훈아.”

    “예 형님. 장상진 팀장님 연락 됐습니다. 이번 주 주말에 만나고 싶어 하시는데, 시간되시나요?”

    “응. 돼. 그 때... 아니다 내가 직접 연락드릴게. 전화 번호 좀 알려주련?”

    “네 형님”

    *

    장상진 팀장은 이력이 화려한 엘리트 증권맨이었다. 나이는 42세.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졸업 후 키워증권에 입사,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대형 IT회사에 스카웃 투자자문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최근 IT 계열에서 스타트업 붐이 일면서 그 쪽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지훈이와 만나게 된 모양이었다. 학벌로 보나 커리어로 보나, 능력이 검증된 베테랑이었다.

    일요일 밤. 나는 강남에 위치한 모 고급한정식 집에서 그와 만났다. 장상진 팀장은 지훈이가 추천을 해준 것처럼 점잖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한상훈 씨로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키가 꽤 크다. 185cm정도. 얼굴은 살짝 말랐는데, 그래도 몸이 꼿꼿한 게 힘이 있어 보인다. 평소에는 유순하게 말하다가도, 질문을 할 때나 질문을 받을 땐 그 동란 눈에서, 안광이 빛났다. 그는 식사를 하면서 내 회사 다닐 적 이야기를 물었다.

    “그러면 한상훈 씨는 그 쪽 업계에서 1년 정도 일하셨군요? 어떻든가요? 요새 그쪽은?”

    “처음 입사했을 땐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경쟁사들이 휴대폰 쪽으로 결합상품 개발해서 치고 들어오면서 저희 회사가 점점 설자리를 잃었었죠. 그래서 최근에는 대단히, 분위기가 안 좋았습니다.”

    “오호 그러셨군요.”

    아마도 그는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사기꾼인지 아닌지 그런 걸 파악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내게 물었다.

    “그래서 투자회사 규모는 얼마정도로 생각하고 계신지?”

    “일단 300억입니다.”

    “일단... 300억이요?”

    “네. 일단 300억.”

    구체적인 액수가 나오자, 사람의 눈빛이 변한다. 놀라서가 아니다.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의 눈빛이다. 괜찮다. 여기서 이렇게 의심을 안 하면 오히려 호구 같은 사람이라고 봐야한다. 그는 의심을 하는 게 맞고, 나는 그 의심을 풀어주는 것이 맞다.

    나는 준비된 자료를 꺼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 자료는 김혜숙 과장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문서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내 재력을 확인시켜줄 그런 문서.

    ‘이거 보시면 바로 알아보실 겁니다.’

    그녀 말대로, 장 팀장은 그는 서류 몇 페이지를 넘겨보더니 또 눈빛이 바뀌었다.

    “오... 대단하시군요. 젊으신 분이.”

    불신에서 부러움으로. 이 점잖은 사람조차, 나를 부러워하는 기색은 숨기지 못했다. 그도 그럴 만하다. 투자 업계에서 10년 넘게 굴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박 한 번, 인생을 바꿔 줄 대박 한 번은 한번 즈음 상상해봤을 것이다. 그 자료 하나로 전세는 바뀌었다. 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나저나 지금 소속된 투자회사를 그만 두시려는 이유가 뭡니까?”

    지금 딱 하나 궁금한 게 그거다. 내가 면접관이라면 던지고 싶은 그 질문. 그런데 매사 시원시원하게 답하던 그는 여기서 말꼬리를 잠시 흐렸다.

    “에...”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여기서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으면 나도 같이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내, 그는 결국 속에 있던 말을 내놓았다.

    “줄을 잘 못 탔습니다.”

    “줄이요?”

    “네. 저희 회사 사정이라 길게 말씀드리긴 뭐하지만...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했던 업적은 남의 업적이 되어있고, 남이 했던 실수는 제 실수가 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좋은 기회가 있다면 이직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극도로 조심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만약 지금 소속된 회사가 이렇다 저렇다 흉을 봤다면 나는 오히려 싫어했을 것이다. 왜냐, 우리 회사에 와서도 똑같이 할지도 모르니까.

    ‘음... 오히려 이런 신중한 성격이 내게 도움이 될 지도.’

    그는 내 눈을 보며 말했다.

    “저는 순수하게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내고 그에 대한 정당히 보상을 받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정치술수나 암투 그런 것 때문에 좌지우지 되는 회사가 아니고요.”

    그 말을 듣다가 나는 씨익 웃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같이 일 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그에게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그러면 장 팀장님. 저를 믿고 우리 회사 창업에 참여해주세요. 직책은 부사장. 경험을 살려서, 제 손과 발이 되어 실무를 맡아주세요. 그러면 원하시는 대로 제가 정당한 보상을 지불해 드리도록 하지요. ”

    “정당한 보상이라면 어느 정도...”

    역시, 프로답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말보단 역시 숫자다. 나는 펜을 꺼내 테이블 위에 있는 티슈에 숫자를 적어 그에게 건넸다. 그걸 본 그의 눈빛이 한 번 더 변한다. 이번에는 분명 기쁨의 눈빛이다. 그는 일어서서 나에게 악수를 건넸다.

    “그러면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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