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묘한 인연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목을 좌우 꺾었다. 8시 55분. 메일이 두 개 온다.
‘P 12시간 뒤’
‘P 12일 뒤’
나는 12시간 뒤부터 클릭했다. 당연하다. 12일 뒤는 그만큼 시간이 남으니까. 사실 12일 뒤 뉴스는 점심 먹고 천천히 봐도 전혀 무리가 없다. 메일을 받아 든 내게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상한가.’
경제 - 주식회사 KG F&S 상장 당일 상한가
‘좋아 좋아. 아주 떠먹여 주는 구나.’
구독 4개월 차 이렇게 대놓고 상한가가 뜬 건 처음인 것 같다.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KG F&S가 상장 당일 상한가를 기록했다. 국내 종합 식품업체 KG푸드의 자회사인 KG F&S는 상장 당일부터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몰려 오후 1시경 상한가에 도달...
기사는 길게 볼게 없다. 상한가라는데 따로 볼 게 있겠는가. 나는 먼저 HTS에 KG F&S를 띄워놓았다. 그런 다음 다시 12시간 뒤 기사를 읽어보았다.
...학교, 병원 및 공공기관 급식에 납품하는 품목이 확대됨에 따라 지난 분기 어닝서프라이즈를 냈다. IPO당시 개인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KG F&S는 오늘 상한가를 기록함으로서 반전 스토리를 썼다.
‘아아 그렇게 된 것이었군.’
KG F&S는 미운오리새끼가 백조가 된 케이스였다. 때때로 그런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는 코스피는 물론 코스닥도 상장하는 게 쉽지 않다. 까다로운 상장 조건도 맞춰줘야 하고, 심사도 거쳐야 되며, 상장주관사를 선정해서 투자자도 모집해야 한다. 그 과정은 최소 반년에서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투자자를 모집하고 공모가를 정할 때 실적이 별로였는데, 그 사이에 실적이 개선되었다거나, 호재가 생겼다거나 해서 상장하자마자 상한가를 가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상장하고 급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번 KG F&S는 전자 케이스다. 상장 준비하는 사이 실적이 많이 늘었나 보다.
나는 시가총액을 확인해보았다. 오늘 상장되는 KG F&S는 공모가가 12000원 시가총액은 4300억원 정도로 책정되어 있었다.
‘좀 작은데...’
4300억이라면 내가 가진 돈 200억을 모두 활용하기는 조금 부담스럽다.
‘봐서 매물 나오는 것만 사자. 자칫 잘못하면 너무 많이 사버릴 수 있으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장에 임했다. 시초가는 이미 5%대에서 시작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12시간 뒤 뉴스에 의하면 오후 1시에 상한가에 간다고 했다. 그럼 그 전에 매수를 마쳐야 한다.
*
정정보도
‘주식회사 KG F&S 상장 당일 상한가’는 독자분의 개입으로 인해, 내용이 수정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수정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달라진 내용은 별 게 없었다. 상한가에 도달한 시간이 ‘오후 1시’에서 ‘오전 10시’로 변경되었다는 것 정도. 시간이 바뀐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한 시간 동안 90억원 치 주식을 사서 상한가를 말아 올렸으니까. 돈이 많아지니, 어떤 주식이든 상한가 보내는 건 쉽다. 나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나는 오늘 번 돈을 계산해보았다. 오늘 번 돈은 20억 정도. 나는 하루 더 지켜보기로 했다.
‘내가 사지 않아도 상한가 갈 종목이었으니... 내일 당장 폭락하진 않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일이 너무 일찍 끝났다.
‘12일 뒤 뉴스도 별게 없고... 그럼 시계나 사러 갈까?’
나는 적당히 차려 입고 집 밖으로 나섰다. 계약한 포르쉐는 수입되어 나한테까지 배달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한다. 조금 더 택시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다. 나는 집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서지훈’.
“형님”
“어어 지훈아.”
“경과보고 하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그래. 어떻데? 알아보니?”
“에 일단 투자회사 설립 건인데요...”
그러던 중에, 내 앞에 택시 하나가 섰다. 나는 그 안에 타며 기사님에게 말했다.
“삼성동 미래백화점이요.”
“네이~”
지훈이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제가 스타트업시절에...”
나는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야 너 오늘 약속 있니? 그냥 만나서 이야기하자. 어차피 긴 이야기잖아.”
“그럴까요? 형님?”
“그래. 삼성동 미래백화점으로 와. 만나서 이야기 하자. 점심도 같이 먹고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형님”
*
내 앞으로 형형색색 빛나는 시계들이 있다. 나는 시계를 보기 위해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보았다. 옆으로 직원 하나가 따라붙는다.
“이쪽은 데이저스트, 이쪽은 서브마리너 제품인데요. 고객님처럼 젊으신 분들은 보통 서브마리너 제품을 많이 찾으세요.”
‘서브마리너면 잠수부들? 위한 시계?’
말이 조금 웃기다. 이 고가의 시계를 차고 잠수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물만 쏟아도 닦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하지만 그러나 저러나, 꽤 예쁘다. 특히 푸른색 바탕에 금색 도금이 된 제품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건 얼마죠?”
“1660만원입니다. 고객님”
큰 돈인데, 오늘 20억을 벌어서 별 감흥이 없다.
“살게요.”
너무 쿨하게 대답을 해버려서 그런지, 직원이 살짝 당황해 하며 말한다.
“네 고객님 지금 포장해드리겠습니다.”
직원이 시계를 담는 동안
‘띠리리리~’
전화벨이 울렸다. 지훈이 전화다.
“응.”
“형님 명품관이시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 명품관 롤렉스 매장.”
“아 있네요.”
곧 지훈이가 매장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형님. 시계 사셨어요?”
나는 직원 손 위에 있는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응. 저 건데 예쁘지?”
“와 예쁘네요! 저런 건 얼마나 하죠?”
‘얼마더라?’
가격을 대충 들어서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1500이던가? 그 정도.”
“와. 형님 진짜...”
지훈이는 꽤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본다. 아직도 내가 부자가 된 걸 잘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녀석도 하나 사줄까? 지금?’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1500만원 짜린데, 내킨다고 아무렇게나 사줄 수는 없다. 돈은 사람을 부릴 때, 적절한 보상으로 제시해야한다. 나는 지훈이의 가슴을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투자회사 설립되고 첫 인수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그 때 하나 사줄게. 기념으로.”
“정말요?”
“그래. 대신 내가 만족할 정도로 잘 되면 말이야. 그러니까 열심히 해. 너도 나랑 일하게 되면 알겠지만... 네가 일만 잘 해주면 저런 건 아무것도 아냐.”
내가 말하는 건 내가 오늘 번 20억 말이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나는 이제 왜 부자들이 고가의 제품을 아무렇지 않게 사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지훈이가 이 일만 잘 해주면, 1500만원 짜리 시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지훈이는 다시 한 번 고개 숙이며 말했다.
“저만 믿으세요 형님.”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그래. 밥이나 먹으러 가자.”
*
미닫이문이 열리고, 단정하게 머리를 넘긴 여종업원이 묻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네 오마카세로 2인. 술은... 일단 아사히 한 병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여종업원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간다. 이곳은 삼성동에 위치한 모 일식집. 일식집은 이렇게 방이 나뉘어 있어서 은밀한 이야기, 사업 이야기하기 좋다. 나는 지훈이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땠어? 알아보니.”
“일단 제가 스타트업 시작 할 때 만나봤던 투자업계 분들 몇몇 분 다시 만나서 자문 구했습니다. 근데 일단 조금 못 미더워 하시더라고요. 이제 스물아홉 살인 형님이 비트코인으로 번 돈으로 투자회사를 세운다고 하는 게.”
“음... 그거야 그럴 만도 하지. 너도 못 믿었었잖아.”
“그러게요.”
솔직하게 말했다면 더 못 믿었을 것이다. 평범했던 회사원이 로또 다섯 번 중복 당첨이 되서 30억 벌고 주식으로 몇 배를 더 불렸다고 하면 아마 사기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어쨌든 알아보니 투자 회사 설립하는 건 사람만 준비되면 바로 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새로 사람을 모집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근데 자문 구하던 분들 중에 한 분이 회사 그만두시고 이쪽으로 합류하고 싶어 하는 의사를 내비치셨어요.”
“그래? 누구?”
“장상진 팀장님이라고 40대 중반이신데, 스타트업 투자 쪽에서는 꽤나 알아주시는 분이에요. 학벌도 좋으시고. 경험도 많으시고. 제가 겪어본 바로는 인성도 대단히 좋으신 분이셨어요. 투자 하면서도 멘토역할도 같이 해주시던 분이데... 회사 내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이직을 하고 싶어하시더라고요.”
“음... 그래?”
좋다. 아무리 그래도 나와 지훈이가 아무리 날고 긴다해도 둘 다 29, 28이다.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사람의 조언이 필요할 것이다.
“네. 근데 저희 쪽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못 미더워서. 제대로 이야기를 못 하시던데.”
“그럼 나랑 한번 보자고 해.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도 나를 믿게 되겠지.”
“그럴까요?”
“그래. 네가 미팅 주선해봐. 진짜 괜찮은 사람이면 내가 채용할게.”
“네 형님.”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사이,
“실례하겠습니다.”
미닫이문이 열리고, 차례로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형형색색, 인당 12만원짜리 오마카세답게, 화려하다. 우리는 이것 저것 하나씩 음식을 골라 먹었다. 하나 같이 다 맛있다.
“크. 역시 비싼 값 하네요.”
“그치?”
메인디쉬인 모듬회가 나오고 지훈이와 내가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중이었다. 한참 음식을 먹던 지훈이가 입을 열었다.
“아 맞아 형님. 투자업계 분들이랑 이야기를 해보니까. 엔터 쪽에 이미 매물로 나오려는 물건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무슨 회사?”
“CKD엔터테인먼트라고 왜 그 발라드 가수 있죠. 도찬기 씨가 운영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인데...”
“아... 알지 CKD엔터.”
알다 마다, 최근에 동성애자 루머 때문에 20%대 폭락했을 때 잘 벌어먹고 나온 주식이다.
“그 분 동성애자 루머 있었잖아. 최근에. 그래서 최근에 주식도 조금 떨어졌던 걸로 아는데.”
“네 그런데 최근에 벌인 사업도 영 안 풀리는데 와중에 동성애자 설이 터지고 그래서, 이 엔터쪽 사업에 환멸을 느끼셨대요. 기사 터지고, 믿었던 팬들한테도 악플 많이 받고 그래서 그런가. 어쨌든 회사 팔고 싶어하고, 구매자를 물색하고 있다네요.”
스토리야 어쨌든, 나야 가격만 제대로 맞으면 된다.
“음... 회사 사정은 어떤데?”
“회사 사정은... 뭐 그럭저럭?”
“그럭저럭?”
“네 회사 자체 수입은 별로에요. 만성 적자. 근데 자회사. 알짜 자회사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수입이 많이 나서 상쇄를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자회사? 어디?”
나는 별 생각 없이, 참치 대뱃살을 하나 집어 간장에 찍으며 말했다. 그런데,
“네 OH엔터테인먼트라고, 상장 이후에 인수한 작은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가 요새 잘 나가나보더라고요.”
‘OH엔터테인먼트?’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아주 최근에. 그 때, 지훈이가 말했다.
“여기 대표 연예인이 오현주 씨입니다. 아시죠 형? 최근에 드라마 나와 너의 아저씨로 대박이 터져서 계속해서 광고가 나오고 있는데...”
나는 들고 있던 참치를 놓칠 뻔했다.
“아아...”
OH엔터테인먼트는, 내가 목숨을 구해줬던, 오현주가 소속된 바로 그 회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