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56화 (56/198)

# 56

더 울프 오브 강남스트리트(2)

나는 모니터 위에 내 계좌를 일시에 띄워보았다. 내가 요새 굴리는 계좌는 총 4개였다. 두리금융, 한신증권, 키워증권, 메이트증권. 각각 에센바이오 주식을 70억씩 들고 있다. 도합 280억. 나는 이번엔 상한가 잔량을 확인해보았다.

‘어디보자... 지금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나...’

이틀 연속 상한가임에도, 아직도 주식을 사고 싶은 사람들의 돈 50억이 대기를 타고 있었다. 많은 양은 많은 양이다. 다만 내가 너무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그럼 오늘도 여기서부터 정리를 할까.’

나는 슬슬 발을 빼기로 했다. 상한가 잔량을 봤을 때 이 주식은 당장은 더 갈 주식이긴 해보인다. 하지만 그거까지 보기에는 내 덩치가 너무 크다. 내가 아무리 사자라고 해도 사냥한 물소를 혼자서 다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맛있게 식사는 하되, 하이에나 무리에게도 남은 뼈다귀를 남겨줘야 할 것이다. 너무 늦게 온 하이에나 몇몇은 뭐 먹지 못하고 빈속으로 돌아가겠지만 말이다.

나는 다시 길 잃은 헨젤과 그레털처럼, 빵에서 조각을 떼서 길에 내놓듯 가지고 있는 주식을 아주 조금씩 조금씩 매도를 했다.

“매도... 그리고 매도...”

몇 천만원도 아니고, 몇 백만 원씩. 계좌 4개를 개틀링 건처럼 투다다. 돌려가며 팔았다. 어느 큰손이 대량 매도에 나섰다는 사실을 알면, 개미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그럼 안 돼지. 내건 다 받아주고, 그 다음 돈 벌던가 말던가 해라.’

나는 찔금찔끔 먹고 난 뼈다귀를 계속해서 넘겨주었다. 물론 거기 남아 있는 살이 있을지 없을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나는 여기까지만 먹고 나간다. 그렇게 오후 1시 즈음 됐을 때, 나는 몰래 40억원 정도의 주식을 매도했다. 남은 주식은 240억. 40억을 팔아치웠지만 놀랍게도 상한가 잔량은 그대로였다. 상한가에 주식이 팔려나가도 그만큼 똑같은 돈이 더 달라붙었기 때문이었다.

‘더 가긴 갈 것 같은데 말이지...’

생각한 나는 내 휴대폰과 지갑, 그리고 가든 엔비의 휴대폰까지 챙겨 집 밖을 나왔다. 5분 정도 걸어가면 분식집이 있다. 나는 거기서 김밥에 라면을 먹으면서 계속해서 주식을 팔았다. 오늘 200억 넘는 부자가 됐는데, 먹는 건 라면이다. 어쩔 수 없다. 이 일을 끝마치기 전까지는 최대한 긴장을 유지해야한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가든 엔비의 반응도 지켜보았다.

불라셀

-에센바이오 오늘 시초가에 가까스로 탔는데 더 가겠죠? 얼마나 더 갈까요?

닥터J

-요즘 바이오주 뭐 하나 떴다 하면 무더기로 오르는 데, 그거에 비하면 에센바이오는 진짜배기긴 합니다. 작년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초대형 계약 두 번이나 따냈으니.

주식전문의

-마일스톤이라는 게 기술 수출료을 나눠서 받는 건데 몇 년 동안 나눠서 받는 구조라서 고정 매출이 생겨나는 거나 다를 바 없어요. 오르긴 더 올라도 내리긴 힘들 겁니다.

두억시니

-그래도 조심하세요. 1조 짜리가 2연상... 시총 7천억이 불었습니다...

스팅어

-1조 단위에서 8500억 매출. 제약주 특성상 영업이익률도 높으니까... 2연상가도 말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간 연구원들 갈아 넣은 게 지금 성과가 나온 건데요. 게다가 이정도면 개발 능력을 인정 해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하고 만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매번 안타를 치면 프리미엄 얹어 줘야죠.

이 쪽 반응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었다. 아무래도 급하게 팔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다소 마음을 여유롭게 먹기로 했다.

*

이어진 주말에도, 에센바이오는 내내 핫했다. 장이 열리지 않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종목게시판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거 어디까지 갈까요? 3연상? 4연상?

-덩치가 있어서 연상 더는 못갈 듯. 내일 파세요.

-왜 못가요. 8600억 기술 수출 아무나 하는 줄 아나.

-깐깐하기로 소문난 독일 제약사가 괜히 계약했겠습니까?

-하한가 하한가 신나는 노래

여기서 사람 고르는 건 쉽다. 대개 오른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미 주식을 산 사람들. 오르길 바라는 사람들이고, 내린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려고 대기를 타는 사람들이다. 내리는 거 받아서 사려고. 나는 엔비 가든 쪽도 보았다.

가라치코

-에센바이오 월요일이라도 들어갈까요? 너무 늦었나?

김검모

-상한가 두 번을 바로 말아버리는 거 보니까 더 갈 기센데 확실히 호재가 크긴 컸나봄

신원장

-어제 시초가에 살짝 기회 줬을 때 탈 걸 그랬네요. 상한가 두 번에 쫄려서 안 들어갔는데

계속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와중에

닥터J

-듀로스님은 익절하셨나요?

나를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적당히 둘러댔다.

듀로스

-네 두 번째 상한가에 적당히 먹고 나왔습니다.

굳이 이목을 끌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여기는 봐서 내게 득이 되는 정도로만 써먹으면 될 것이다.

주식전문의

-분위기 보아하니 조금 더 가져가셨어도 괜찮았을텐데... 잘하셨네요 어쨌든.

카이지

-그래도 상한가 두 번이니 70%정도 드셨겠네요. 듀로스님 나이스 샷!

이제 ‘그 모임’에 가서 ‘제가 듀로스입니다.’라고 하면 반겨줄 사람 한둘은 있을 것 같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화요일을 거치면서 에센바이오 주식은 거칠게 요동쳤다. +10%를 갔다가, -2%를 갔다가, +5%로 끝났다가, 다시 +3%로 시초가가 잡히고, +8%까지 상승했다가, +10%로 장을 마쳤다. 와중에 거래량도 폭발했다.

요새 바이오주가 시장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런 대형 호재를 가진 주식이 나타났으니 돈이 몰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까지... 매도’

나는 이틀에 걸쳐 가지고 있는 주식을 모두 팔았다. 이정도면 12일 뒤 뉴스를 보고 들어온 값은 다 했다. 앞으로 사람들의 탐욕에 의해 오를 수도, 공포에 의해 내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주식에는 70%만 먹고 나와라’

라는 말이 있고,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고 나와라’

라는 말도 있다. 둘 다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말이다. 주식이란 본래 파는 사람이 있어야 살 수도 있고 사는 사람이 있어야 팔수도 있는 것이다. 내 주식을 사는 사람들 역시, 자기 자신이 지금 산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팔 자신이 있어서 사는 거지 나 돈 벌게 해주려고 사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정도면 됐다.

‘그럼 다들 돈 많이 버세요들.’

나는 진심으로 내 주식 280억원어치를 산 기관과 외국인 개인투자자들에게 안녕을 빌어주며 매도를 마쳤다. 모든 매매가 끝나고 내가 이익을 본 금액은 대략 130억 가량. 나는 순식간에 220억의 자산을 쥐게 되었다.

“휘우~”

나는 휘파람을 부르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130억 이익. 그것도 단 한 번의 매매에 130억. 워렌 버핏도, 짐 로저스도, 지금 나만큼 수익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기적같은 수익률. 진짜 주식의 신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

나는 잠시 거울을 보았다.

‘좋아 면도도 깔끔하고, 정장도 잘 맞고.’

나는 오랜만에 정장을 입었다. 물론 회사 다닐 때 입던 정장이 아니라, 그보다 열배 가까이 비싼 고가의 맞춤정장이다. 맞출 때 딱 한 번 입어보고 다시는 입지 않았는데, 이번에 입었다. 왜냐하면, 정장도 입지 않으면 지금 가려는 곳에 잘 맞지 않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음... 이렇게 정장만 입으니까 조금 밋밋하네... 봐서 손목시계도 하나 사놓아야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현시대에 손목시계의 본래 효용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시간이 잘 나오는데 왜 굳이, 무거운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겠는가. 손목시계는 용도는 사실상 99% 과시욕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려고 사는 게 아니고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속물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속물들에게는 실제 그게 먹히니까. 의미가 있긴 하다.

‘음 봐서 하나 사놔야겠다. 롤렉스? 그건 하나에 얼마나하지?’

나는 내 쇼핑목록에 ‘고가의 시계’를 추가해놓았다. 그런 다음 집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탔다.

“어디로 뫼실까요.”

“대치동. NU빌딩이요.”

“네이”

택시를 탈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가는 곳은 바로 자동차 매장이었으니까.

*

나는 광택이 번쩍이는 백미러를 만져보며 말했다.

“이 모델은 이름이 뭔가요?”

“파나메라입니다. 포르쉐 파나메라.”

“얼마 정도 하지요?”

“아 이 모델은 옵션 따라서 1억4천에서 2억5천정도.”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생각보다 별로 안 비싸네?’

1억4천에 2억5천이라면 200억 원치 주식을 샀을 때 세,네틱 차이다. 나는 차체를 보았다. 거기에는 포르쉐 마크. 검은 말이 그려진 방패 문양의 마크가 달려 있었다. 멋있다. 확실히.

‘역시 포르쉐가 멋있긴 하네. 이쪽으로 오길 잘했어.’

벤츠, BMW, 아우디 이쪽은 너무 싸서 걸렀다. 요새 할인이다 뭐다 해서, 웬만큼 사는 전문직이나 고연봉인 사람들도 타고 다녀서 너무 흔했다. 특히 강남에서는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 강남에서 1년 정도 살아본 경험으로는 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 그리고 벤틀리 정도는 되야 눈이 돌아갔다. 그래서 나는 내 경험을 살려 눈이 돌아가는 쪽 브랜드를 사기로 했던 것이다.

‘음 그럼... 여기 보고... 벤틀리 매장만 더 가보면 되겠지?’

그중에서도 나는 람보르기니와 페라리도 일단 제외했다. 나는 여태 낡은 연식의 아버지 차와, 애들을 집에서 도장으로, 도장에서 집으로 옮겨주는 봉고차 밖에 몰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운전도 오랜만에 하는데 스포츠카는 살짝 꺼려진다. 운전을 해봐야 알겠지만, 그렇게 낮은 차체로 어떻게 운전을 해야 할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건 나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피해야만 했다. 혹시나 내가 서툴게 운전을 하다가 누구랑 부딪히기라도 하면. 문제가 커진다. 몸도 몸이지만, 돈도 돈이니까. 요새는 하여간 무조건 쌍방과실이다. 10대 0의 비율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나랑 박은 사람이 서민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중대사건이 된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한 번 타 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나는 차안에 들어 가보았다. 고급스러운 시트에 완벽한 그립감의 핸들, 그리고 무엇보다 시야도 좋다. 나는 그 핸들을 쥐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말하고 말았다.

“와 좋긴 좋다... 사야겠다 이거.”

사실 그건 감탄사와 비슷한 말이었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딜러가 치고 들어왔다.

“그럼 계약 하시겠습니까?”

나는 핸들을 붙잡고 있다가, 그 핸들에 그려진 말에 홀렸는지.

“네”

바로 대답을 해버렸다. 딜러는 밝은 미소로 내게 말했다.

“아 네!”

벤틀리 매장도 가보려고 했는데. 그 전에 계약을 하고 말았다.

“그럼 계약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하지만 이미 딜러는 계약서를 작성하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내 이름을 말해주었다.

“한상훈이요.”

딜러는 활짝 웃으며 내 이름을 적어내려갔다.

“네에. 한상훈 고객님.”

됐다. 이 차도 마음에 드니까. 이 차부터 사기로 하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쩔 수 없지 뭐. 벤틀리는 다음 달에 사든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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