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53화 (53/198)

# 53

절대 지지 않는 투자회사(2)

“이 기만자!”

지훈이는 씩씩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양손을 들며 지훈이에게 말했다.

“자자 지훈아 내 이야기를 들어봐.”

하지만 지훈이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형 그 때 우리 얼마가 없어서 창업 포기했는지 기억 안나요?”

그걸 왜 못 잊겠는가.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오천만원.”

“그래 오천만원. 그 때 아이디어는 다 짜놓고 오천만원 없어서 포기했잖아요!”

“그래그래...”

지훈이는 내 방 안에 있는 고가의 물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뭐야. 저 의자는? 저 컴퓨터는? 저 책상에 있는 것들만 해도 천만 원은 되겠네.”

이 녀석이 화를 내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 때 돈 때문에 꿈을 포기했던 우리니까.

“아니 일단 지훈아. 천천히 생각해봐. 너 우리 부모님이 뭘 하시는지도 알잖아. 그리고 너 우리 고향 집도 왔었잖아. 기억 안나? 나는 순혈 흙수저라고.”

내가 옛 이야기를 꺼내자, 지훈이의 흥분은 그제야 가라않는다.

“아... 그건... 그랬죠... 맞아...”

지훈이는 방학 때 우리 집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30평이 조금 넘는 우리 집에서 밥도 먹고 연식 오래된 국산차, 우리 아버지 차도 타 봤다.

“그럼 여긴... 뭐에요? 대체?”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뭐라고 해야할까.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까?’

그런데 그 때 지훈이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형... 설마...?”

‘설마 뭐?’

“코인 했어요?”

생각지 못한 질문이다. 그런데, 이쪽 스토리로 가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로또 다섯 번에, 주식으로 돈을 불렸다고 하면 조금 믿기 힘들지 모르니까.

“아... 그렇지... 맞아. 나 코인 샀었어. 그것도 초창기에.”

나는 인터넷 어디선가 본 스토리 하나를 기억나는 대로 꾸며 말했다.

“내 고등학교 동창 중에 컴퓨터전공인 애가 있는데... 걔가 나 군대 가기 전에 비트코인이라는 게 있다고 나중에 대박 날지 모르니까 사보라고 하더라고. 그 때가 딱 나 군대 가기 직전이었거든. 알바비 번거 술 먹는데 다 쓰고 입대하려고 했는데, 계좌에 딱 삼만 원이 남아 있어서... 그래서 그거 샀지.”

“그래서요?”

“그리고 까먹었어. 군대 있을 땐 당연히 기억도 못했고, 전역하고 복학해서 사느라 바빴니까.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뉴스에서 하도 비트코인비트코인 해서 알았어. 그래서 옛날 컴퓨터를 뒤져보니까 있더라고 그 비트코인들이...”

“허...”

지훈이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나는 양 손을 들어 내 오피스텔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얼마 전에 팔고 나왔어. 그 결과물이 이 오피스텔이고 말이야.”

지훈이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형...”

“으응?”

소리쳤다.

“잘 됐네요! 정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이 녀석을 부르길 잘했어.’

지훈이는 예나 지금이나 정말 순수하고 착한 녀석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의 맨 얼굴을 보려면 술에 취한 모습을 봐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녀석은 대학시절 한때 나와 매일 꼴아 떨어질 때까지 술을 마셨는데, 그 때마다.

‘형 저희 진짜 인생을 걸고 열심히 해봐요. 우린 할 수 있어요.’

‘형 저희 부모님은 대학교 이상은 못 도와주시겠대요. 죄송해요.’

‘형 지난번에 형네 집에 놀러갔을 때... 동생 분 예쁘시던데 남자친구 있나요?’

그렇게 있는 진심을 까놓고 말하는 편이었다. 교묘함이나 세련됨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지만, 본래 능력도 훌륭한 녀석이었다. 우리학교는 전통적으로 이과보다 문과가 강세였는데 지훈이는 그 문과 중의 탑 경영학과에서 과탑을 늘 수성하던 녀석이었다. 우리가 만난 창업동아리에서도 놀라운 아이디어와 지식으로 늘 두각을 드러냈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돈이 없어서 그렇지.

“그래서 너는 어떻게 지냈어? 지난번에 어디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저... 결국 창업 했었어요.”

“그래?”

“네 스타트업으로 주변 사람들 투자 받아서.”

“하지만 그 때 그 아이디어는 남에게 밝힐 수 없는 거였잖아.”

우리가 창업하려고 했던 아이템은 누군가에게 말하는 순간 의미가 없어지는 아이템이었다. 그래서 투자를 받을 수도 없었다. 이쪽 업계에서는 투자자가 아이디어만 빼먹고 버리는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냥 제 학력하고 창업 동아리 활동만 가지고 투자를 받았어요. 소액이긴 했지만.”

“그래서.”

“근데... 형 혹시 mawith사 아세요?”

“아... 들어본 것 같아.”

Mawith는 대기업에서 만든 스타트업 전문 투자업체였다.

“어디서 정보가 새어나간 건지... 그쪽에서 저희 사업과 완벽히 똑같은 걸 시작했더라고요. 더 큰 자본으로. 당연히 저희가 밀렸죠. 저희는... 돈도 없었으니까요.”

“음...”

지훈이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그래서. 한 마디로 저는 망했어요. 사실 오늘도 출근하긴 했는데... 마지막 남아 있던 개발자 분이 한 달 월급 밀렸다고 나가신다고 하셔서... 그나마 제 계좌에서 남은 돈 긁어다 드리고 보내드렸어요.”

나는 녀석이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괜찮아. 이번에 실패했어도 다시 도전하면...”

“근데, 그게 쉽지 않아요. 특히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다른 나라는 한 번 실패하면 저 사람은 실패했으니까 다음 번엔 잘할 거야. 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는 한 번 실패하면 저 녀석은 또 실패할거야. 라고 한다니까요. 그래서 저도 사실 형한테 연락하려고 했어요. 오늘은 아니고 내일이나 모레 즘?”

“왜?”

“왜긴 왜에요. 취직하려고, 형이 먼저 면접도 봐보고 취직도 했으니까. 그거 물어보려고 했었죠. 그런데... 형이 강남역에 쓰레빠 질질 끌고 나올 줄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구나...”

내가 회사에서 털리는 동안, 이 녀석도 열심히 살고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그동안 엄청나게 운이 좋았다는 것 정도다. 나는 지훈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너무 우울해 하지는 마. 내가 새로운 투자자가 되어줄 테니까.”

“네?”

“말 그대로야. 나는 널 잘 알잖아 너는 원래도 성공을 할 재목이었어. 게다가 이제 더 잘할 거야 한 번 실패해봤으니까.”

지훈이는 눈이 커져 나를 쳐다보았다.

“형! 말만으로도 고마워요! 형!”

지훈이는 나한테 앵겨 울 것처럼 굴었다. 나는 그의 등을 토탁이며 말했다.

“그래 그래. 대신에, 나도 너한테 좀 부탁할 게 있는데.”

“그게 뭔데요. 말씀만 하세요. 제가 다 도와드릴게요.”

“그래 좋아. 그건 나가서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네!”

결국 우리는 다시 뭉치기로 했다. 나는 적당히 차려 입고 지훈이와 함께 문밖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하강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렸다.

“형 여기는 어쩌다가 들어오시게 된 거에요?”

“뭐 자리가 제일 좋아서 고른거지 뭐. 내 취향이야 여기가”

“그렇구나...”

그런데 그 때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미녀가 나타났다. 다른 아닌 옆집 사람. 집주인 이아영이다. 나는 먼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녀 역시 나와 지훈이를 보더니

“오 안녕하세요오.”

살짝 늘어지는 말투로 인사를 하고는 우리를 지나쳐 갔다. 우리를 스쳐 지나갈 때 향수 냄새와 함께 엷은 술 냄새가 난다.

‘어디서 와인이라도 한잔 하셨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 안에 탔다. 1층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닫히길 기다렸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지훈이가 다시 양 주먹을 흔들며 말했다.

“와 형 저사람 누구에요? 알아요?”

“어 왜?”

“엄청 예쁘네...”

“아... 그렇지. 나도 처음 봤을 땐 엄청 놀랐어. 예쁘고. 뭐... 도도해서.”

“이런 곳에는 저런 미녀도 사나보네요. 형 이제 완전... 부자가 된 거 같아요. 진짜로. 연예인이랑 이웃사촌이라니”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사람 연예인 아냐.”

“음... 연예인 해도 될 거 같은데?”

“나도 검색해봤는데 연예인은 아니더라고. 그냥 건물주야 저사람. 나도 저 사람한테서 월세 내고 살고 있어.”

“월세에?”

지훈이는 살짝 실망한 듯 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 월세는 월센데... 가서 말하자.”

*

지훈이는 불판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고기를 뒤집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투자회사를 세우고 싶으시다고요.”

“그래. 다른 기업 인수 합병을 목표로 하는 그런 회사.”

“그런 거라면 스팩주식이나 그런 것도 있는데.”

“알아. 하지만 나는 그런 거 말고 지속적으로 증자도 하고 투자도 해서 장기적으로 다른 회사 여럿도 거느릴 수 있는... 그런 모母회사를 차리고 싶은 거야 알겠니? 그걸 네가 대신해줬으면 좋겠어.”

“그거야 뭐 제가 해드릴 수 있죠. 저는 이미 회사도 한 번 세워봤으니까요. 근데... 형 대체 얼마나 부자가 되신 거예요?”

내 자산은 사실 딱 얼마라고 하기 뭐하다. 지금 계좌에 있는 돈은 89억 정도인데, 어차피 이건 일이주일이면 100억도 넘을 돈이었다. 사실 내 가장 큰 자산은 돈보다도 ‘12시간 뒤 플레티넘 등급 구독자’라는 일종의 직위였으니까. 내가 답을 하지 않자, 지훈이는 혼자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잠깐 형이 복학하고 나서 날 만났으니까 입대를 한 게... 그 때 비트코인 삼만 원어치면...”

“아니 그냥 대충 부자라고만 알아둬.”

나는 녀석이 계산을 못하게 소주잔을 들었다.

‘짠’

우리는 학창시절 때처럼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원샷을 했다. 우리 창업동아리는 우리 때까지 선배들의 올드한 동아리 스타일을 계승해서, 잔을 부딪히면 무조건 원샷이었다.

“크으...”

우리는 서로 빈 잔을 채워주었다. 이렇게 술을 마시니 옛날 생각이 난다. 그 때,

‘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빌게이츠가 될 거야’

돈은 없고 꿈만 가득했던 시절이. 그 이후 우리는 모두 현실에서 쓴맛을 봤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에게는 이제 꿈을 실현시킬 힘이 생겼으니까. 그런데 그러던 중이었다. 지훈이가 좋아하는 고기에도 손을 대지 않은 채, 내게 조심스레 말했다.

“형 근데 제가 이걸 하는 건 좋은데...”

“좋은데?”

“부모님도 이제 저한테 취직을 하라고 하셔서... 조금 걱정되긴 하네요. 저도 수입 없이 지낸지가 꽤 돼서.”

‘아아 그 이야기였구나.’

나는 한 마디 듣고 지훈이 사정을 단박에 이해했다. 하지만 동시에, 지훈이 이 녀석이 반대로 내 사정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잔을 들며 말했다.

“야. 됐어. 내 앞에서 무슨 돈 걱정을 하고 있어. 내가 줄게. 니 월급.”

“정말요?”

“그래 넌 따로 취직 걱정 할 필요도 없어. 나한테 월급 받고 일해라. 음... 한... 오백이면 되겠니?”

내 말에 지훈이의 눈이 커진다.

“오백이요?”

소주잔을 들고 있는 지훈이의 손이 살짝 떨린다. 나는 그 떨리는 잔에, 내 잔을 살짝 ‘짠’ 갖다 대며 말했다.

“그래. 그 정도 줄게. 열심히 해봐.”

지훈이는 살짝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아니 형님. 앞으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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