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52화 (52/198)
  • # 52

    절대 지지 않는 투자회사

    ‘P 12시간 뒤’

    ‘P 12일 뒤’

    나는 내 메일함을 빤히 쳐다보았다. 메일이 두 개가 와 있다. 12시간 뒤, 12일 뒤. 앞에 있는 P는 플레티넘의 P일 것이다.

    ‘영 어색하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처음으로 ‘12일 뒤’ 뉴스를 클릭해보았다.

    정치 – 2연임 성공한 주성원 시장 앞으로의 로드맵은?

    경제 – 최저임금 상승효과. 일자리 증가? 감소?

    사회 – 여성차별을 철폐하라 들고 일어난 페미니즘

    생활/문화 – 웹소설 ‘세이브, 로드, 라이프’ 리뷰

    세계 – 미국 중국 기업에 다시 고관세 부여 G2갈등 심화돼

    IT/과학 – 전기차 vs 수소차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연예 – 한류가수 총 출동 오사카 한류페스티벌 성황리 개최

    스포츠 – DTD는 과학? 실제 그런지 알아보자

    구성은 본래 12시간 뒤 뉴스와 똑같다. 메일 제목만 봐서는 전혀 차이점을 알 수가 없다. 나는 위에서부터 메일을 쑥 훑었다.

    ‘주성원 시장님 다시 된 건 이미 알고... 최저임금은 올라서 얼마지? 페미니즘 요새 핫하고 웹소설은 읽은 지 오래됐는데 세이브... 이거 재밌나? 미국 중국은 여전히 싸우고 있고, 전기차 수소차... 수소차 요새 슬슬 나오는 거 같던데. 그리고 오사카에서 한류페스티벌...’

    나는

    ‘오사카 한류페스티벌’

    을 찾아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보았다.

    ‘오사카 한류 페스티벌 앞으로 이주 남아’

    그런 뉴스 같은 게 뜬다. 확실히 이건 12일 뒤 뉴스다. 나는 스크롤을 조금 더 내려 보았다.

    인물검색 – 이름을 입력해주십시오. – 이름을 입력해주십시오.

    랭킹뉴스 – 지금 사용(1회 가능)

    이 메일에도 역시나 액티브 스킬들이 달려있다.

    ‘다른 패시브 스킬이 적용된 상태로 사용 가능합니다.’

    라고 쓰여 있던 설명은 바로 이걸 뜻하는 듯하다. 인물검색은 레벨 업을 해서인지 이름을 넣어달란 창이 두 개다.

    ‘음... 12일 뒤에도 인물검색이 가능하다...’

    무협지에서 주인공이 무공구결을 얻고도 그걸 무공에 활용하려면 시간이 걸리듯이, 이 이메일 역시 새로 얻은 스킬로 돈을 벌려면 조금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결국 뉴스를 어떻게 조리하냐 문제지만. 나는 오늘 12시간 뒤 뉴스도 찾아보았다. 오늘은 별게 없다.

    ‘오케이. 에 그럼 일단 오늘 주식은 쉬고.’

    나는 메일을 접어 두고 주변을 살폈다.

    ‘와이패드가... 어디 있지?’

    지금 보니 와이패드는 내 침대 위에 있다. 어제 늦게까지 영화를 보다가 잠든 탓이다. 나는 침대에 벌렁 누워 그 와이패드를 들었다. 메모로 돌아 가보니

    ‘어떻게 코스피/코스닥 대주주가 될 것인가.’

    라는 메모가 있다.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안에는 내가 어제 이래저래 고민을 하면서 써놓은 흔적들, 메모들이 있다.

    ‘창업 후 상장은 – 그건 말도 안 된다. 창업도 어렵고 상장은 더더욱 어렵다.’

    맨 처음 메모는 이것이다. 사실 나는 늘 창업을 하고 싶었는데, 그건 돈이 없던 대학생 시절 이야기다. 지금은 돈이 있다. 그것도 많이. 그렇다면 굳이 그런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사실 1초면 나오는 답인데, 내가 이런 메모를 휘갈긴 것은 아마도, 예전에 창업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반추하고자 했던 것 같다.

    ‘답은 인수다.’

    당연히 인수가 답이다. 이건 돈 몇 백억만 쏟아 부으면 즉시 실현 가능하다. 다이아 등급 업그레이드도 순식간에 될 것이다. 코스닥에 시총이 300억 이하인 종목도 많다. 그 중에는 대주주 지분이 100억이 채 안 되는 종목도 있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플레티넘 등급보다도 더 싸게 다이아 등급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럼 무엇을 인수할 것인가.’

    일단 먼저 매물로 나오는 회사를 알아보는 게 좋다. 그래야 싸니까. 상식적으로, 팔고 싶지 않은 물건은 비싸지기 마련이다. 회사도 마찬가지여서 잘 돌아가는 회사에 가서 대뜸

    ‘그거 파슈’

    라고 해봐야,

    ‘싫은데?’

    혹은

    ‘얼마 까지 알아보고 오셨는데요?’

    같은 답변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물론 대주주 지분이 낮을 경우 적대적M&A를 할 수도 있지만, 그 과정도 순탄치는 않다. 대주주는 자신의 지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서로 지분을 놓고 쟁탈을 벌이는 와중에서 주식 값이 비싸져버린다. 쥐고 있는 개미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구매자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 되 버리는 것이다.

    ‘매물로 나오는 회사를 인수하자.’

    다만 여기서도 주의를 해야 할 것이, 대체로 매물로 나오는 회사는 상태가 영 좋지 않다는 점이다. 이건 일반 개미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이 회사가 수익을 못 낼 것 같을 때, 앞으로 이 회사의 가치가 낮아질 것 같을 때 팔고 나오듯, 대주주도 마찬가지다. 적자가 예상되는데, 돈이 나올 구석이 없고, 자신은 타개책이 없을 때나 파는 것이다.

    ‘그럼 매물로 나오는 회사 중에 그나마 건실한 걸 인수한다.’

    이게 최종 답안으로 나는 거기에다가 한 줄을 더 써넣었다.

    ‘12시간 뒤와 시너지가 날만한 곳으로.’

    기업 인수는 사실 내가 상상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왕 하는 김에 내가 도움이 될 만한 회사를 인수하는 게 답일 것 같다. 기업 인수하는데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닌데 사서 이익을 낼 수 있게 경영을 잘 해야지 그냥 사서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게다가 혹시 위 등급에서는 더 많은 회사 지배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5개의 회사를 지배하시오. 10개 15개 50개를 더 지배하시오.’

    그걸 해내기 위해서는 첫 단주를 잘 끼워야 한다. 첫 번째 기업만 일단 ‘12시간 뒤’, ‘12일 뒤’뉴스를 활용해 성공적으로 이윤을 내게 안착시키면 나중에는 자신감도 붙을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결론을 내놓았다.

    ‘이름 검색과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를 최우선으로.’

    여기까지가 이 메모장의 끝이다. 나는 그 아래에다가 새 메모를 쓰기 시작했다.

    ‘그럼 내 재산이 얼마가 되었을 때 인수를 할까?’

    물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한 3천억 벌어서 시총 1천억짜리 회사를 인수하면 깔끔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오래 걸린다. 이제 천만 원 굴릴 때나 일억 원 굴리던 때처럼 일주일에 세배 네배. 그런 기적 같은 수익을 올릴 수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번 면세점 사업 건에서도 그랬다. 코스피든 코스닥이든 내 돈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거래량에 영향을 많이 끼치기 때문에 수익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건 내 능력 밖 문제야. 짐 로저스도 한국은 시장이 너무 작아서 투자하기 꺼려진다했지.’

    뭐 지금은 내가 짐 로저스보다도 잘하고 워렌 버핏보다도 잘 하겠지만. 12시간 뒤, 12일 뒤 뉴스가 있어도 내가 코스피, 코스닥 시장을 키워줄 수는 없는 것이다. 3천억을 벌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거진 반년은 걸릴 가능성이 있다. 면세점 인수전 같은 이벤트가 매일 있는 다면 모를까. 천억 이상부터는 급격히 버는 속도가 느려질 것이다. 그러면 다이아 등급 확보가 너무 늦어진다.

    ‘그래 다이아 등급 달면 더 빨리 돈을 벌지도 모르는데 너무 많이 모을 필요는 없지. 그러면 적당히 작은데 알찬 기업을 인수하자 시총 1천억원 내외에 대주주 지분이 300억 내외인... 물론 그러려면 내가 300억이상 벌어야 겠지?’

    나는 내 자산 ‘300억이상’에다가 동그라미를 쳤다. 이건 자신 있다. 면세점 인수전 같은 빅 이벤트가 있든 없든 지금 89억 있는 내 자산을 300억까지 불리는 건 한두 달 정도면 될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메모를 한 줄 더 썼다.

    ‘그나저나... 이제 실전인데... 내 명의로 인수를 해? 아니면 투자회사를 세울까?’

    아무래도 후자쪽으로 가야할 것 같다. 사실 투자금액이 100억이 넘어가면서부터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았다. 계좌 문제도 있고 세금 문제도 있고.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투자회사라는 것의 핵심은 돈과 투자방법인데, 그 핵심 두 가지는 내가 모두 해결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몇 명 조력자가 필요하긴 할 테지만.

    ‘조력자라...’

    나는 메모장에 조력자란 단어를 써놓고 뱅글뱅글 동그라미를 그렸다.

    ‘조력자......’

    조력자란 단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동그라미를 쳤을 때 나는 한 이름을 떠올렸다.

    ‘서지훈’

    서지훈은 대학 동기다. 동시에, 내가 창업을 하려고 했을 때 같이 시작을 하려고 했었던 창업 동지기도 했다. 그는 경영학과였고, 창업실무에도 밝았다.

    ‘이 녀석에게 물어보면 뭐라도 나오겠는데?’

    나는 휴대폰에서 ‘ㅅㅈㅎ’초성으로 그의 이름을 찾았다. 문득 그와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우리는 전설적인 창업 듀오가 되는 거야.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처럼.’

    ‘누가 잡스고 누가 워즈니악이죠? 형?’

    나는 재수를 했고, 그 녀석은 현역이었다. 그래서 내가 한살 더 많았다.

    ‘미안하지만 네가 워즈니악이지 넌 지금 몸무게 얼마냐? 80kg? 90kg? 당연히 내가 잡스가 되야지.’

    지훈이는 어렸을 적부터 고도비만이어서 대학 졸업할 때까지 그 몸매를 유지했다. 나는 그 둥글둥글한 얼굴과 체형을 꽤 귀여워했지만 말이다.

    ‘아니 외모로 정하면 어떻게 해요? 형은 이과고 저는 문과. 게다가 경영학도인데, 잡스는 제가 되어야죠. 잡스가 경영자인 건 아시죠? 워즈니악이 순혈 공돌이고.’

    ‘왜 잡스를 하려고 해. 잡스라고 해서 다 좋게 생각하는 건 아냐 실리콘밸리에서는 그 사람 악마라고 욕하는 사람도 되게 많다고.’

    ‘원래 부자는 욕도 많이 먹게 되어 있어요. 난 그게 싫지 않고요. 돈도 많이 벌고 욕도 많이 먹을래요 그냥.’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돈도 많이 벌고 욕도 많이 먹을래요.’그건 내 생각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워즈니악도 꽤 부자야. 아니 우리 기준에서는 엄청 부자일걸. 엄연히 애플 창립자중 하나니까.’

    ‘그래도 잡스보단 덜 부자잖아요?’

    ‘그건 그 사람이 젊은 시절에 애플 주식을 딴 사원들에게 나눠줘서 그런 거야. 80년대에... 애플 주식 몇 달러 안 할 때... 그거 안 나눠줬으면 잡스랑 비슷하게 부자였을 걸. 잡스는 애플에서 막 짤리기도 하고 그랬으니까.’

    ‘흐음... 그래도 나는 워즈 할배는 좀...’

    ‘그럼 빌게이츠와 폴 앨런으로 하자.’

    ‘제가 빌 게이츠인거죠?’

    나는 그와의 대화를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지훈이... 요즘 뭐하지... 거의 반년 간 연락을 통 못했네...’

    그 때, 창업을 준비하던 우리는 창업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고심하다가 포기를 했다.

    ‘형 혹시 집에서... 도와줄 수 없대요?’

    ‘응. 너는?’

    ‘저도...’

    둘 다 흙수저인지라 어디서 돈 나올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내가 먼저 취직을 하고 회사에서 바쁘다보니 자주 연락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에 한번 연락했을 때는 어디서 일하고 있다는 것만 들었을 뿐이다.

    ‘음...’

    나는 지훈이에게 문자를 보내보았다.

    ‘지훈아 잘 지내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언제 시간 될까?’

    나는 그렇게 문자를 보내놓고 휴대폰을 살짝 던져놓았다. 어디선가 일을 하고 있다고 했으니, 그도 바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이잉’

    바로 답장이 왔다.

    ‘뭐야...?’

    나는 그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형 잘 지내시죠? 저 언제고 되요. 시간.’

    ‘너 일 안하니?’

    ‘일은 하고는 있는데... 어쨌든 되요 시간.’

    뭔가 뉘앙스가 이상하다.

    ‘그럼 오늘 볼래? 당장?’

    ‘네 그러죠. 어디서 뵐까요?’

    ‘강남역. 9번 출구.’

    ‘네 갈게요 형. 시간은요?’

    *

    “여 서지훈이.”

    “형!”

    나는 오랜만에 지훈이와 포옹을 했다. 지훈이는 안을 때 푹신푹신하다.전 보다 더 살이 찐 것 같다.

    “잘 지냈냐?”

    “네 형. 형은요?”

    그런데 내가 뭐라고 답하려는 순간, 그가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응? 근데 형 오늘 회사 안 갔어요?”

    나는 츄리닝에 쓰레빠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강남역은 맘먹고 외출하는 곳이지만 내게는 우리 동네일 뿐이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 그게... 사실 할 이야기가 많아. 너한테.”

    “저도 할 이야기 많은데.”

    “그래. 그럼... 일단 저녁은 먹었니?”

    “아니죠. 형이 사줄 줄 알고 안 먹었죠.”

    “그래 그래. 근데 일단... 밥 먹으러 가기 전에... 같이 좀 가자.”

    “어디를요?”

    나는 지훈이를 데리고 1분가량 걸었다. 아니 30초 정도. 거기에는 내 오피스텔이 있다.

    “형 여기... 밥 먹기도 전에 커피?”

    지훈이는 오피스텔 1층에 있는 커피숍을 보고 그런 말을 했지만 나는 조용히 그 녀석을 엘리베이터로 끌고 가 12층을 눌렀다.

    “뭐 여긴...”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백문이불여일견이기 때문. 나는 우리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저 지훈아... 일단 들어와 봐.”

    지훈이는 내 눈치를 보면서 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뭐라고 말을 꺼내야할지 고민이되었다.

    ‘지훈아 형이 로또가 되었어. 그것도 다섯 번. 근데 그 걸 가지고 주식을 했는데...’

    그런데 그전에, 지훈이는 우리 가족사진이 걸린 액자를 보더니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형 혹시 한 대만 때려도 돼요?”

    “왜?”

    내가 묻자, 그 녀석은 울 듯이 소리쳤다.

    “흙수저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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