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51화 (51/198)
  • # 51

    새로운 꿈

    나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창밖으로 강남대로가 보인다. 수많은 차들이 오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나는 이 풍경을 좋아한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쁘게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을.

    ‘그러니까 이 오피스텔로 이사 온 것이지만.’

    창 밖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다.

    ‘정장?’

    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회사를 그만 둔 이래로 여태 정장을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데, 내가 정장을 입고 있다.

    ‘이상한데?’

    하는 생각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내 뒤로 내 오피스텔이 아닌 사무실이, 내가 다니던 회사 사무실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뭐야?’

    나는 머리를 잡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저 멀리, 문서 뭉치를 들고 이리저리 바삐 돌아다니고 있는 최 사원이 보인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이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런데, 그는 나를 보더니, 입을 크게 벌리고

    “어어어...”

    소리를 내다가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허리를 반 접어 내게 폴더 인사를 했다.

    ‘사장니임?’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이래 갑자기?”

    내가 그에게 묻는데, 그 뒤로 원수 허 과장이 나타났다. 그는 평소처럼 얼굴에 잔뜩 심술을 채우고 여기저기 살피다가, 이윽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 이런...’

    언제 봐도 기분 나쁜 얼굴이다. 그런데, 나를 본 허 과장의 표정이 이상하다.

    “사... 사장님?”

    사장님. 이제는 허 과장도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여... 여긴 어쩐 일로...?”

    그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여기... 여기 앉으시지요. 사장님.”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두 손을 건넨다.

    “이게 뭐하는 겁니까?”

    내가 묻는데, 갑자기 뒤에서 뭔가가 내 무릎을 뒤쪽을 친다.

    ‘어어...’

    나는 뒤로 넘어졌다. 그런데, 거기에는 나는 푹신한 의자가 있다. 검은색 가죽으로 되어 있는 일명 사장님 의자가. 내가 의자에 앉자 곁에서 두 명의 여자가 나타났다. 두 여자는 마치 중동의 여자들처럼 얇은 검은 색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파초선같은 커다란 부채를 들고 나타났다. 그녀들은 의자에 앉은 내게 부채를 부치며 말했다.

    “시원하신가요? 사장님.”

    나는 그 두 여자의 얼굴이 궁금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녀들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천을 들어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 사이, 내 앞에 허 과장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보고서를 올리며 말했다.

    “사장님. 보고서입니다. 결재 부탁드립니다.”

    ‘결재?’

    지금 보니 내 옆에 도장과 인주가 있다. 하지만 쉽게 찍어주고 싶지는 않다.

    ‘쉽게 찍어줄순 없지. 너도 그랬잖아.’

    나는 보고서를 보지도 않고, 그걸 들어 허 과장의 머리 위에다가 던지며 말했다.

    “다시 해와!”

    “네... 네에? 어째서?”

    “글씨가 너무 크잖아.”

    “네에?”

    허 과장 머리 위로 서류가 흩날리는데, 그 뒤로 회사의 임원들이 나타난다. 회사에서 자주 보지도 못하던 전무이사니 상무이사니 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갑자기 내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입 모아 말했다.

    “사장님 12일 뒤에 저희 거래건 있는데 어떻게 될까요? 계약할까요? 말까요?”

    “사장님 12주 뒤에 인수합병 건 준비되어 있습니다. 명령만 해주십시오.”

    ‘명령? 무슨 명령?’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결정을 해주십시오.”

    “명령을 해주십시오.”

    그 사람들은 내게 결정을, 명령을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이게 뭐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곁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곁에 있던 여자들이 너무 강하게 부채를 부치고 있다. 나는 그녀들을 말렸다.

    “잠깐, 너무 추워. 천천히...”

    하지만 그녀들은 부채질을 쉬지 않았다.

    “천천히 하라니까?”

    내 말에도 그녀들은

    “호호호~ 사장님도 참.”

    간드러진 웃음을 지으며 부채질을 더욱 거세게 해댔다. 춥다. 너무 춥다. 추워서, 나는 눈을 뜨고야 말았다.

    “추... 추워.”

    나는 중얼거리며, 잠에서 깼다.

    ‘위이잉~’

    머리 위로 찬바람이 분다. 나는 눈을 껌뻑거리며 고개를 내려 보았다. 천장형 에어컨에서 계속해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눈을 비비고 리모콘을 찾아서 에어컨을 껐다. 잠에 들 때만 해도 더웠는데 아침이 되니 춥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에어컨은 꺼놓고 자야겠다... 어우 여름에 감기 걸릴 뻔 했네.’

    나는 살짝 몸을 떨며 일어났다. 휴대폰을 보니 아침 7시다.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버렸다.

    ‘다시 잘까...’

    하지만 요상한 꿈을 꿔서 그런가, 왠지 다시 자고 싶지 않다. 나는 휴대폰을 든 채로 창밖에 나가보았다. 블라인더를 열고 창밖을 보니, 이번에는 창에 잠옷을 입은 내 모습이 보인다. 아까 꿈에서 본, 정장을 입은 내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나는 방금 꿨던 꿈이 되새겨보았다.

    ‘...왜 그런 꿈을... 설마... 어제 본 그거 때문인가?’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내 개인 메모장을 불렀다. 거기에는 내가 적어 놓은 다이아 등급의 승급조건이 쓰여 있다.

    ‘다이아 승급에 필요한 것은 월 정액료 백억 원. 그리고 자격조건으로 자신이 속한 국가의 상장사 한 개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처음 봤을 때도

    ‘뭐라고???’

    놀랐지만, 다시 봐도 영 놀라움이 가시지 않는다.

    ‘갑자기 자격조건이라니... 대체...’

    나는 잠시 물끄러미 그 문장을 지켜보다가, 고객센터를 떠올렸다.

    ‘오랜만에 그 녀석이나 불러볼까...’

    별로 정이 가지는 않지만, 물어보는 것에 대답을 해주기는 하는 녀석이다. 나는 휴대폰으로 그 번호

    ‘919-31413-11721’

    로 문자를 보냈다.

    ‘상담이 하고 싶습니다. 고객센터 메일 보내주세요.’

    답장은 즉시 왔다.

    ‘메일 보내드렸습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전원을 켜고 메일을 받았다.

    ‘12시간 뒤 고객센터’

    그걸 클릭하니, 예의 그 채팅창이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한상훈 고객님. 고객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생각나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자격조건이라고 하면, 내가 상장사를 지배하게 되면 그걸로 오케이란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백억의 구독료를 납부하는 과정에서 조건만 충족되면 바로 다이아 등급으로 업그레이드 해드립니다.

    역시나 0.1초만에 답장이 온다.

    자신이 속한 국가에 한정되어있다는 말은 그럼 코스피, 코스닥 한정이란 말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대충 예상했던 것들은 맞다.

    상장사를 그쪽에 넘길 필요는 없는 거죠? 쭈욱 소유만 하면 됩니까?

    네 그렇습니다. 단, 경영권을 빼앗기거나, 코스닥 코스피, 퇴출심사에 걸려 퇴출되거나, 할 경우 자격조건이 취소되고 등급 역시 유지 하지 못하니 이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한 마디로 상장사를 사서 잘 꾸려라 이 말이다. 시장에서 퇴출되지 말고.

    그럼 정확히 지배란 뜻은 뭡니까? 주식을 몇 퍼센트 가져야 한단 말인가요? 아니면 직접 경영을 해야 한단 말인가요?

    자신 혹은 자신의 회사가 소유한 지분이 가장 많으면 됩니다. 지분이 가장 많은 대주주 요건만 성립하면 직접 경영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음... 자신 혹은 자신의 회사라...’

    그 말인즉, 내가 소유한 회사 A로 B의 지분을 사서 보유하고 있어도 내 지분으로 인정이 된다는 말이다. 하긴 ‘지배’라는 단어에는 그 편이 어울린다. 우리나라 재벌들도 순환출자 같은 꼼수로 다른 회사를 ‘지배’하고 있으니까.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수성전자 역시 지창우가 가진 지분은 채 5%가 안 된다. 대신 자기가 수성생명 70% 지분을 가지고 있고, 수성생명이 수성전자 지분 12%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간접적으로 수성전자를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재벌 방식으로 지배를 해도 된다는 말이로군... 그런데 그러면... 이 녀석 내게 원하는 게...’

    나는 문득 드는 생각에 고객센터에 물어보았다.

    혹시 다이아 등급보다 더 위로 가려면 더 많은 회사를 지배해야 합니까?

    그건 비밀입니다.

    나왔다. 전가의 보도. 그건 비밀입니다.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전처럼 화를 내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 채팅을 하는 고가의 컴퓨터조차도, 이 12시간 뒤 덕분에 산 것이니까. 나는 짜증대신 감사함을 전했다.

    오케이 고맙수다.

    별 말씀을요. 앞으로도 구독 부탁드리겠습니다.

    ‘네이네이 저도 앞으로도 발행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주방에 가서 커피를 내린 다음 그걸 들고 창밖으로 다가왔다. 한창 해가 뜰 시간이다. 창밖은 아까보다 꽤나 밝아져 있었다. 수성전자 사옥 몇몇 사무실에는 불도 켜져 있다. 나는 그 사무실 불빛을 보며 생각했다.

    ‘다시 돌아가야 하나? 저 곳으로?’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사장으로 돌아간다면, 그것 역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회사에서 받는 게 명령과 멸시가 아니라, 보고와 존경이라면. 다닐 만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구독료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회사 가져가는데 업그레이드를 해준다면, 그건 사실상 거저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거나 다를 바 없어.’

    그렇다. 사실 백억이 넘는 돈은 가져봐야 딱히 쓸데도 없다. 부동산 같은 걸 잔뜩 쥘 수도 있지만, 그래봐야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차라리 주식으로 단타를 치는 게 수익도 더 나을 것이다.

    ‘그래... 그러면 나도 사장놀이나 해볼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장놀이’가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12시간 뒤, 12일 뒤, 12주 뒤 뉴스도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장님 12일 뒤에 저희 거래건 있는데 어떻게 될까요? 계약할까요? 말까요?’

    ‘사장님 12주 뒤에 인수합병 건 준비되어 있습니다. 명령만 해주십시오.’

    나는 꿈에서 봤던 그 광경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나는 꽤... 유능한 사장이 될 수도...?’

    나는 경영 따윈 해본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애초에 회사 경영이란 것은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 12시간 뒤 뉴스와 함께라면, 나는 엄청나게 유능한 CEO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 맞아... 그러면... 천억 원 이상... 아니 조 단위 돈을 버는 것도 쉽다. 주식을 굳이 하지 않아도... 회사를 굴려 벌면 되잖아?’

    번쩍 생각이 든다. 나는 두 손을 입에 대고 무슨 회사를 인수하면 좋을지, 이 12시간 뒤와 시너지가 날지를 생각해보았다.

    ‘건축회사? 제약회사? 게임회사? 그런건 그냥 뉴스만 받아서는... 뭔가 호재가 뜨려면 운이 있어야 되잖아. 그건 어려워. 그럼 랭킹 뉴스나 인물 검색과 연계를 시켜야 되는데... 랭킹 뉴스는 그냥 핫한 것만 나와서 뭐가 나올지 모르겠고... 인물 검색... 인물 검색을 살릴 만한 곳이 있나?’

    나는 머리를 굴려보았다. 곧 답은 나왔다.

    ‘인물 검색... 사람 가지고 사업하는 회사...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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