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49화 (49/198)
  • # 49

    면세점 쟁탈전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대낮에도 한강변에 수많은 사람들 돌아다닌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 나는 딸기스무디를 입에 문채로 잠시 그걸 지켜보았다.

    ‘백수 인생 좋~구나.’

    최근에 강남에서 한 전시행사가 열린 적이 있었다. 제목은‘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 매우 노골적인 제목의 전시였는데, 꽤나 인기를 끌었다. 다들 그런 욕구가 있으니까. 그렇게 흥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욕구를 직접 실현하고 있었다. 돈 많은 백수가 돼서 대낮에 한강변 카페에서 노닥거리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주 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어디보자.’

    나는 가방에서 두 번째 휴대폰을 꺼냈다. 그런 다음 전원을 켰다. 위치추적이나 음성녹음 같은 뭔가 이상한 장치가 되어 있을 까봐 집 안에서는 전원을 꺼뒀다. 카메라는 아예 내가 검은색 테이프로 봉인시켜버렸다. 통신도 일부러 이렇게 공공장소에서만 공용 와이파이만을 쓴다. 조금 과하게 예민한가 싶기도 하지만, 수십억의 돈이 오가는 상황에서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

    윈드밀러

    -그나저나 진영제약 신약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닥터J

    -샌프란시스코 로저 윌리엄스 박사가 주 발표자인데, 수소문해도 잘 안 나오네요.

    나는 잠시 인물 검색을 생각했지만, 여기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인물 검색에선 한국어로 된 이름만 검색할 수 있다. 둘째 샌프란시스코는 지구 정반대에 있었다. 12시간 뒤 뉴스가 거기 맞춰서 나올지 의문이다. 스킬 포인트를 오후에도 한 통 받는 것으로 찍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외국 신문은 알 수가 없다.

    진선생영어

    -닥터J님 그럼 이번 건 스킵하실 거예요? 주가는 점점 오르긴 하던데

    닥터J

    -기대감에 오르는 건 그렇다 쳐도, 나중에 그대로 토할 수 있으니까 그렇죠. 사실 이거 긍정적으로 나와도 실적까지 가려면... 아시죠? 몇 년 걸리는 거.

    신원장

    -요새 바이오주 거품 위험한 듯, 조심하세요.

    두 번째 주제, 진영제약은 말이 많았다. 모임에 의사들도 많았지만 서로 말이 엇갈리고, 평가도 제각각 달랐다.

    ‘이번 건 스킵 해야겠다.’

    나는 진영제약에선 손을 떼기로 했다. 시대의 간웅이었던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진 이유가 있다. 연환계를 쓴 상태에서, 갑자기 남동풍이 불고, 화공에 당해서. 구구절절히 쓰자면 그렇지만, 단순히 말하자면 애초에 익숙하지 않게 배 위에서 전투를 했기 때문이다.

    ‘여긴 의사들이 많다. 영화야 나도 보고 재밌는지 재미없는지 알지만 제약은 내가 손대기 어려운 부분... 그럼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지.’

    조조는 천하를 일통하기 위해 손오를 쳐야만 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불리한 곳에 전장이 열리면 안 싸우면 그만이다. 주식시장은 매일 열리고, 나는 다른 주식을 사면된다.

    ‘그럼 면세점 입찰은 어떨까?’

    카이지

    -아무래도 면세점이 큰 건이죠. 정보 나도는 거 없나요?

    리즈시절

    -관세청 면세점 특허심사위원회 컨택 해보신 분?

    역시나 이 단톡방에서도 면세점 입찰 건을 더 큰 건으로 보고 있었다.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하는 말이 있다.

    ‘장사는 자리가 90%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장사할 때 자리가 중요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 면세점은 그 점에서 어마어마한 이권이 걸려 있었다. 면세점이 들어오는 인천공항은 매년 이용객이 늘고 있었으니까. 면세점 확정만 되면 몇 년 치 매출을 보장받게 된다. 꿀이 멈추지 않는 꿀단지에 빨대를 꼽게 되는 것이다.

    토비아스

    -한국대 교수 선주기 교수가 여기 대표인데, 엄청 강직하신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진짜 학자. 이분한테서 뭔가 정보가 나오기는 어려울 거 같고 곁가지를 노려봐야 할 듯요.

    음퓨

    -곁가지는 별 거 없을 가능성 높습니다. 이런 거 심사위원들은 자기가 받은 자료만 평가하고 결정은 핵심층이 하는 거거든요. 선주기 교수 어떻게든 파보지 않으면.

    ‘오호라 선주기교수라...’

    사냥개들이 알아서 사냥감을 물어다 준다. 나는 바로 포탈사이트에 검색어를 써넣어보았다.

    ‘선주기.’

    바로 나온다 한국대 경영학과 교수. 한국소비자학회 회장, 한국마켓팅학회 회장. 별별 이력이 화려하다. 이름도 꽤 특이해서 다른 사람이랑 겹치지도 않는다. 잘 됐다. 아무리 강직하다고 한들 12시간 뒤에는 뉴스에 나올 수밖에 없다. 나는 주식 분석으로 넘어갔다. 이번 면세점에 신청을 한 업체는 총 여섯 개. 백제호텔, T랜드, 신영백화점, 시안관광, 이디면세점, 엘더디에프.

    백제호텔, T랜드, 신영백화점 등등은 모두 재벌의 가족회사라 오래됐고, 시가총액이 컸다. 아무래도 선정이 될 확률이 높다. 오랜 시간동안 업력을 쌓아온 것도 있고, 정, 재계와의 연줄도 있을 테니까. 다만 그만큼 주가가 크게 오를 가능성은 낮았다.

    뒤의 시안관광, 이디면세점, 엘더디에프 등등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들이었다. 우리나라 특성상 이쪽도 재벌 쪽 자본에서 가지가 나온 녀석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 거리가 멀다. 선정될 확률이 낮지만 시총이 작아서 튀면 이쪽이 많이 튈 것이다.

    ‘여섯 개 중에서 선정되는 업체는 두 개... 하나만 찍어서 맞출 확률은 3분의 1 두 개를 찍어서 모두 맞출 확률은 15분의 1이로군.’

    주가를 찾아보면 여섯 종목 다 엄청 흔들리고 있었다. +15%도 갔다가 –8%도 까이다가, 어느날은 갑자기 상한가를 갔다가, 그 다음날은 귀신같이 상승분을 고대로 반납하고 있었다.

    ‘핫하긴 핫한 주제로구만’

    이러나저러나 여섯 종목 모두 평소보다 올라와 있다. 10%에서 20%정도 가량. 여기서 선정이 되면 바로 상한가 직행. 못가면 상승분을 바로 반납해야한다. 나는 작전을 짜놓았다.

    ‘발표 당일 8시 55분에. 이름 검색을 해보고 결과가 나오면 바로 풀베팅. 아니면 손대지 않는다.’

    나는 일단 이렇게 정리를 해두었다.

    *

    나는 며칠 가벼운 마음으로 장을 지켜보았다. 여섯 개의 면세점 대상자들은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등락을 거듭했다. 조금 놀라운 것은 내가 걸렀던 진영약품이었다. 하루 전날

    하트비트

    -내일 진영약품 뉴스 좋게 나올 겁니다. 사실 분 사세요.

    그런 이야기가 오가긴 했는데, 진짜 아침부터 +3%, 6%, 9%슬금슬금 오르더니, 결국

    ‘전미 천식학회 – 진영약품 천식 치료제 안정성 높이 평가’

    그런 뉴스가 뜨고, 주가는 급등해서 18%로 마감했다.

    ‘확실히 정보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있긴 있나본데...’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자기가 잘 모르는 건 걸러야한다. 어차피 기회는 많다. 투자의 귀재이자 세계적인 대부호로 꼽히는 워렌 버핏은 자신의 투자 원칙을 두 가지로 압축했다. 첫째, 돈을 잃지 말 것. 둘째, 첫째 규칙을 지킬 것. 듣기에 너무 단순해보이기도 하지만, 본래 진리는 단순한 법이다. 잃지 않고 돈을 불리면 복리는 무섭게 불어난다. 나는 백화점 선정이 있는 날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

    “후후후~”

    나는 링 위에 선 복서처럼 숨을 골랐다.

    ‘8시 54분.’

    뉴스 나오기 1분 전, 장 열리기 6분 전이다. 가든 엔비의 휴대폰은 아예 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혹시나 현혹될까봐. 믿을 건 12시간 뒤 뉴스뿐이다. 그것 만이 내가 믿을 정보다. 55분 땡 되자마자. 나는 바로 메일을 받아서 인물 검색으로 넘어갔다. 그런 다음 침착하게

    ‘선주기’

    를 검색했다.

    ‘면세점 특허심사위원회 선주기 대표심사위원. 면세점 입점 업체 발표 및 선정 이유’

    눈이 팍 하고 떠지는 느낌이다. 나는 그걸 클릭했다.

    최근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두고 각 면세점 간의 경쟁이 치열했지요. 심사위원회 뇌물 공여 논란까지 나온 상황에서...

    ‘이런 거 말고.’

    나는 빠르게 스크롤을 내렸다.

    선주기 대표심사위원은 이번 선정에서 특허보세구역 관리역량, 운영인의 경영 능력, 중소기업 제품 판매실적 등 경제사회 발전 공헌도 등을 고려했다면서...

    너무 내렸다. 나는 다시 올려보았다.

    오후 두시 경 발표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선정된 사업자는 백제호텔과, 이디면세점. 이 두 업체는 심사위원의 심사과정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며...

    이름 두 개가 나왔다. 나는 바로 HTS로 넘어가보았다. 백제호텔은 시총 3조원대의 호텔 재벌. 이디면세점은 시총 4천억 원대의 작은 기업. 마음 같아서는 이디면세점을 풀매수 하고 싶은데, 지금 내 계좌에 있는 돈에 신용까지 써서 이디면세점을 사버리면 4천억대 기업은 내 돈만 가지고 상한가를 가게 된다.

    ‘그건 너무 위험해. 아무리 호재라고 해도 백제호텔과 이디면세점 반반 나눠서 매수한다.’

    나는 두 개의 HTS를 켰다. 원래 쓰던 HTS. 그리고 새로 만든 HTS. 장이 열리기 전 여섯 종목은 저마다 보합권에서 시초가가 잡혀 있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엄청 흔들더니, 오늘은 조용하다. 오늘은 누군가 지옥에 가고 누군가 천국에 가는 심판의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매수를 하기 전,

    ‘아까 몇 시 발표라고 했지?’

    다시 기사로 돌아와 뉴스를 체크했다. 2시. 장이 열리고, 나는 한 계좌로는 백제호텔을 나머지 한 계좌로는 이디면세점 주식을 매집하기 시작했다.

    *

    닥터J

    -아직도 정보 없나요? 주가가 움직이는 건 백제호텔, T랜드, 이디면세점 정도인데...

    도준맘

    -백제호텔은 원래 1순위잖아. 그래서 그러나봐.

    올라프

    -T랜드랑 이디면세점은 아무래도 가능성 없어 보이던데 왜 오르지? 특히 이디면세점 이상해요 어떤 사람이 혼자서 50억 넘게 매수하더군요. 잡주 중에 혼자 +6%야.

    닥터J

    -이디면세점 소문이 돌았나? 매수해볼까요?

    도준맘

    -이디면세점은 너무 위험한 거 아냐? 지금 들어갔다간 –40% 반토막 가까이 날수도 있다구.

    다들 혼란에 빠져 있다.

    카이지

    -에 저는 베팅 안하렵니다. 너무 어렵네요 이건. 너무 리스크가 커요.

    나보다 한 살 어린 귀여운 카이지 군도 너무 리스크가 크단다. 그건 맞다. 리스크가 크다. 지금 기대감으로 오른 주식들이 많으니까. 만약 이게 안 되면 –30%. 그대로 하한가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상황.

    ‘하지만 난 다르지.’

    나는 이미 정보를 쥐고 있었으니까. 노 리스크 하이리턴이다. 눈앞으로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오간다. 강남역 한 카페에서 나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1시 58분.’

    이제 뜰 때가 됐다. 뉴스에서는 오후 두 시경 발표되었다고 하니까. 천천히 잡아도 20분 내로는 뜰 것이다. 나는 내 휴대폰에는 MTS를 와이패드에는 뉴스 사이트를 켜놓았다. 그리고 그러던 중. 2시 2분경.

    백제호텔 +6%

    T랜드 –6%

    신영백화점 –5%

    시안관광 –12%

    이디면세점 +12%

    엘더디에프 –10%

    희비가 갈리기 시작했다.

    ‘떴나보군.’

    나는 와이패드로 ‘면세점’을 검색해보았다. 아직 아무 뉴스도 없다. 그 사이

    백제호텔 +30%

    T랜드 –23%

    신영백화점 –22%

    시안관광 –26%

    이디면세점 +30%

    엘더디에프 –28%

    주식은 결판이 났다. 나는 여섯 개의 객관식 문제에서 정답 두 개를 정확하게 골랐다. 나는 와이패드 쪽에 새로 고침을 해보았다.

    ‘인천면세점 신규 사업자 백제호텔, 이디면세점 제1보’

    뉴스는 그제야 떠 있었다. 역시, 주식은 뉴스보다 더 빠르다. 이말은 누군가 언론사 올라가기 전에 캐치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 있는 투자자나, 혹은 기자들.

    ‘역시 빠른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이 시차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뉴스보다 주식이 더 빠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도, 주식보다 더 뉴스가 빠른 사람이 있다는 건 알지 못할 것이다. 우주에 단 한 사람. ‘12시간 뒤’의 구독자. 바로 나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