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48화 (48/198)
  • # 48

    서울행

    나는 잠에서 깼다. 창 쪽을 보니 블라인더 사이사이로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블라인더를 열고 잠시 아침햇살을 맞이했다.

    ‘휴우...’

    따뜻한 햇살이 피부를 달구었음에도,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다.

    ‘뭐였을까? 어제 그 모임은?’

    이래저래 요상한 모임이었다. 휴대폰을 거저 주지 않나, 다 큰 어른들이 닉네임을 쓰지 않나.

    ‘...그건 과장된 연출이 아니었을까? 신비로움을 주기 위한?’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그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어제 쌓인 대화들을 보았다.

    ‘오늘 재밌었습니다.’

    ‘즐거웠어요. 다들’

    거기에는 주식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별로 쓸데없는 인사치례들만 쓰여 있다. 이래저래 이해할 수 없는 모임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나는 내 휴대폰을 들어, 포탈사이트에 들어간 다음 ‘탁준기’를 검색해보았다. 안경을 쓴 40대 남자가 하나 나온다. 프로필에는 수연여행 이사라고 쓰여 있다.

    ‘이 사람이 왜 이런 걸 하는 거지?’

    모임을 주최한 마스터T는 바로 이 사람이었다. 탁준기 이사.

    ‘마스터T는 저 사람입니다. 탁준기 이사님.’

    어제 카이지에게서 그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의심을 했었다.

    ‘탁 씨라면... 수연그룹 사람 아냐?’

    수연그룹은 국내 10대 그룹 안에 드는 재벌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회사를 세운 창업자 탁진운 회장에서부터 3대째 내려오는 재벌 그룹. 탁진운 회장은 일생동안 세 명의 처를 두었는데, 탁준기 이사는 두 번째 처의 네 번째 아들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러니까 창업주의 손자는 손자인데 그룹 중심부에서는 많이 멀어져 있는 그런 사람. 그래서 그런지, 화학, 전자와 같은 핵심 사업부가 아닌 그룹 내 여행회사의 이사를 맡고 있었다.

    ‘재벌 3세가 왜 이런 짓을 왜 하는 거지? 돈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그나저나... 만화책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돈이 너무 많아서 이런 이상한 괴짜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알려준 정보는... 어떨지...’

    모로 가든 나는 돈만 벌면 된다. 그 집회에서 알려준 종목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퓨쳐미디어. 좀비블록버스터 ‘서울행’개봉을 앞두고 있다.

    ‘9월 5일이라면... 바로 오늘인데’

    이건 확실한 재료긴 하다. 영화 배급사에서 배급한 영화가 흥행하면 돈이 벌리는 거니까. 이건 굳이 어닝서프라이즈니 뭐니 찾아볼 필요도 없다. 영화 관객 수만큼 매출이 올라가는 거니까. 첫날 평가가 좋다면 주식이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종목을 찾아보니 이미 주가가 기대감으로 꽤 올라있다. 들어가기 조금 무서운 주식이다. 영화가 망할 수도 있으니까.

    ‘음...’

    나는 잠시 그걸 지켜보다가, 조조영화를 찾아보았다. 8시 20분에. 오늘 첫 조조영화가 있다. 지금은 8시 5분. 다행이라면 영화관 하나가 우리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다는 점이다. 나는 바로 샤워를 시작했다.

    *

    “아들. 쉬 다 했어? 왜 안 나와? 괜찮아?”

    남자는 조심스레 화장실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좀비로 변한 사내아이가 있다. 남자는 깜짝 놀란다. 하지만 그 사이 좀비로 변한 아들이 아빠의 목을 물어뜯는다.

    “끄아아아악!”

    동시에 앞에 있던 여자관객이

    “어마!”

    비명을 지른다. 나 역시 두 손을 맞잡았다. 근데 손이 살짝 미끌 하다. 문자 그대로 손에 땀이 쥐어진 것이다.

    ‘재밌는데? 잘 만들었는데?’

    작위적인 스토리가 가끔 눈에 띄기는 한데, 연출이 매우 뛰어나다. 나도 모르게 몰입해서 보게 된다.

    ‘흥행할 거 같은데 이거?’

    나는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8시 52분이다.

    ‘아차 영화보다 늦을 뻔했네’

    나는 앱을 켜 메일함을 열었다. 이러려고 일부러 맨 뒤에 자리를 얻었다. 내 휴대폰 불빛이 남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영화 시작한지 30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감이 온다. 이 영화는 흥행할만하다. 55분. 메일이 오자마자 나는 바로 이름검색에다가 ‘강준익’을 써넣었다.

    ‘강준익 감독 성원에 감사하다.’

    떴다. 나는 그 기사를 클릭해보았다.

    ‘좀비영화 서울행 강준익 감독이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오늘 개봉한...’

    ‘이런 거 말고’

    나는 빠르게 기사를 훑었다. 내가 원하는 건 구체적인 숫자다. 기사 중반 부분 내가 원하는 숫자가 있다.

    ‘오늘 개봉한 ‘서울행’은 오늘 하루만 전국에서 64만명의 관객을 끌어 모으며 대박을 쳤다. 저녁 미리 예약을 한 관객을 합치면 이는 80만명도 넘을 것으로 추산되며...‘

    첫날 80만명. 대박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대박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았다. 아쉽게도 퓨쳐미디어 주가가 몇 퍼센트 올랐다 그런 이야기는 없다.

    ‘주식을 사야 되나? 말아야 되나?’

    본래대로라면 사고 싶은데, 오히려 그 수상한 모임 때문에 사기가 꺼려진다.

    ‘이게 덫이라고? 아냐 아무리 정보가 뛰어나도 관객 수를 예측할 순 없어. 영화고 소설이고 뭐가 대박이 날지 예측하는 건... 그건 신의 영역이다.’

    나는 MTS를 켰다. 퓨쳐미디어는 시초가 42000원. +0% 보합에서 매매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영화가 흥행할지 말지 다들 확신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시간에 오늘 몇 만 명이 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 추천이 이미 걸렸다는 건. 다른 부자들도 이 주식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 이미 매수를 해서 쥐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들어가면 누군가가 돈을 벌게 된다는 건데... 어쩔 수 없지... 남들보다 정보가 느렸는데 조금의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사자. 너무 싸게 사겠다고 기회를 놓치는 것도 바보니까. 70억을 모두 투입하는 건 너무 위험하고... 20억이나 30억 정도만 사볼까.’

    나는 9시 땡 하는 동시에, 주식을 매수했다.

    ‘위이잉’

    매수 체결되는 소리와 동시에

    “그워어어어어~”

    좀비의 비명소리가 교차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계속해서 매수를 했다.

    ‘위이잉 위이잉 위이잉’

    주가는 장 시작부터 점차 올랐다. 지금 시간에 영화를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나를 비롯한 누군가 계속해서 사고 있다.

    ‘가든 엔비 사람들인가?’

    확실치 않지만, 그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나는 오늘 0%에서 5%오를 때까지 20억 원 가량의 주식을 매수했다. 평단가는 +3%정도. 그런 다음 영화를 계속해서 보았다.

    ‘중반까진 재밌는데 후반부에 망하거나 그럴 수도...’

    하지만 끝까지 재밌었다. 간간히 들어있는 개그와 휴머니즘 또한 마음에 들었다. 영화를 나오면서 다른 사람들도

    “와 재밌다.”

    “그치? 나도 재밌었어. 엄마더러 보라고 해야겠다.”

    호평이 이어진다. 개개인의 평가를 듣고 매수를 결정하는 건 이성적이진 않지만, 아무래도 나 역시 영화를 재밌게 봐서인지, 더 사고 싶다. 나는 MTS를 열어 10억 원 어치를 더 매수했다. 평단가는 +4% 수준으로 올랐다. 이제 나는 조금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러던 중에, 문득 생각이 났다.

    ‘맞아 그 커뮤니티에선 뭐라고 하고 있지?’

    나는 그 생각에 두 번째 휴대폰을 들었다. 일부러 챙겨왔다.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나는 영화관에서 돌아다니는 와이파이를 하나 잡아 ‘가든 엔비’ 앱에 들어갔다. 장 초반에 몇 가지 채팅이 오가고 있었다. 이 영화에 관한 주제로.

    클라우디아

    - 관객들 호평. 제가 아는 평론가도 이정도면 상업적으로 성공할거라고 하네요.

    노브랜드

    - 저도 보고 왔는데 천만관객은 쉽게 넘을 것 같네요. 저도 매수 들어갑니다.

    아미보

    - 저는 별로던데...

    이렇게 보니 평범한 주식 채팅방 같다.

    ‘뭐 폼은 있는 대로 다 잡아놓고... 이건 또 평범하네...’

    나는 MTS를 켜서 주가를 보았다. 43400원. +3%대 상승. 평범하다. 나는 돈을 벌지도 잃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잠시 더 주가를 지켜보았다. ‘12시간 뒤’에서는 첫날 관객. 80만명 대박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때였다.

    트리플K

    - 메가시네마 발 정보. 첫날 성적은 60~70만정도로 추정됨. 이정도면 대박 맞음 무조건 매수

    가든 엔비에서도 숫자가 나왔다. 60만 명에서 70만 명. 80만명을 보단 적은 숫자긴 한데, 그래도 근접하긴 하다.

    ‘흐음... 영화관 정보다... 하지만 내가 가진 정보가 더 정확하단 말이지.’

    나는 콧웃음을 치며 MTS로 주가로 넘어가 보았다 그런데, 그 때 주가가

    46200 (+8%)

    급등해 있었다.

    ‘뭐지?’

    이 채팅이 올라오자마자 팍 하고 주가가 올라버렸다. 누군가 신빙성 있는 정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그걸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음...’

    *

    시간이 지나 점심 즈음. 나는 샌드위치를 먹어가며 두 개의 휴대폰을 보았다. 먼저 가든 엔비에는

    닥터J

    -매수 후 의사들 커뮤니티에 올렸습니다. 정보 감사드립니다.

    김검모

    -저도 매수 한 다음 법조계 동창 사이트에도 올렸습니다. 탄력 붙기를 기원합니다.

    류피디

    -오늘 투데이머니 방송 잡혔다고 하네요.

    그러한 글들이 올라왔다. 보니까 이런 식으로 정보에 정보를 태우는 식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짓을 하고 있었다. 일종의 세력질인 셈이다. MTS를 보니 8%에 정체되어 있던 주가는 시간이 지나며 10% 12% 천천히 올라갔다.

    ‘...자기들도 분명 서로 팔려고 눈치를 볼 텐데...’

    하지만 주가는 계속해서 올랐다. 14%. 16%. 18% 나는 그걸 지켜보다가 딱 3억원 수익이 됐을 때 팔아버렸다. 확실한 정보가 없으니까. 내가 먹고 싶은 만큼만 먹고 나온 것이다. 내가 대량으로 주식을 팔고 나니 주가는 살짝 조정에 들어간다. 나는 다시 가든 엔비 쪽을 보았다.

    엔비마스크

    -방금 누가 털었네요. 30억정돈가.

    도준맘

    -방금 10억 정도 담았습니다. 더 가보죠? 이거?

    진선생영어

    -상한가까지 무조건 홀딩 아닌가요?

    ‘더 가긴 어려울 거 같은데... 하긴 모를 일이지.’

    사실 주식이라는 건, 사는 돈이 파는 돈보다 많으면 더 가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일단 더 사지 않고 추이를 지켜보았다. 주식은 내가 팔고도 더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상한가를 갈 것처럼. 그런데 그러던 중이었다. 갑자기 엄청난 물량의 매도가 터져 나왔다. +22%까지 갔던 주가는 주저 앉았다. +12%.

    도준맘

    -어머 이게 뭐래?

    진선생영어

    -아 너무 욕심냈네요. 손절합니다.

    블랑키

    -저는 –5%인데... 홀딩해봅니다.

    보니 손절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장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퓨처미디어는 +8%에서 그대로 끝이 났다. 결국 손해 본 사람은 손해를 봤단 이야기다.

    ‘음... 잘한다 잘한다 해도 결국 돈 많은 개미다 그건가... 그나저나 떡밥 무는 것도 나쁘지 않고 정보도 빠른 편이군. 이런 곳이라면 있을 만 하겠는데?’

    이정도면 그냥 정보 빠른 리딩 클럽 같다. 조금 컨셉이 이상한 게 신경 쓰이지만. 내가 유용한 만큼만 써먹으면 나쁠 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주가 탄력 받는 걸 보니, 이 사람들 자기들이 쓰는 돈도 있고, 남의 돈을 끌어올 수 있는 능력도 된다. 먼저 산 다음 정보를 서서히 퍼트려 이득을 보고 나오는 것이다.

    부자들 답게 서로 깔끔하게 대화를 주고 받고, 늦게 들어와서 손해를 본 사람도 별 불만이 없다. 자존심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12시간 뒤를 참조하면 여기서 나는 더더욱 빛이 날 수 있을 것 같다. 간접적으로나마 돈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돈 많은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들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이니까.

    ‘다음은 신약이야기랑... 면세점 이야기였지...’

    확실히 여긴 돈냄새 맡은 건 잘 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사람들을 내 사냥개로 쓰기로 마음 먹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