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47화 (47/198)
  • # 47

    G. E.(2)

    “초대장은 저에게 주시겠습니까?”

    나는 그에게 명함을 건넸다. 그는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학원 강사들이 주로 쓰는 레이저빔처럼 생겼다. 그는 명함을 한 번 쓰윽 비춰보더니, 아까 그 신원장이란 사람이 들어간 복도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입니다. 들어가시지요.”

    명함은 돌려주지 않는 듯하다. 나는 그를 스쳐 지나갔다. 멀리서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각진 근육에 의해 양복에 각이 잡힌다. 목 뒤에는 악마 형상의 문신도 있다.

    ‘지옥문을 지키는 문지기 악마 같은 느낌이로군.’

    나는 그 사내를 지나쳐 안쪽 복도로 들어갔다. 꺾어진 복도 앞, 이번에는 천사처럼 아름다운 미녀가 있다.

    “어서 오십시오. 회원님”

    나이는 나보다 살짝 어릴 것 같다. 20대 중반에서 후반, 머리는 깔끔하게 스튜어디스처럼 올림머리를 했다. 작은 얼굴이 더욱 작아 보인다. 이목구비는 눈코입이 분명해서 똘망똘망하게 생겼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아 처음 오신 분이시군요?”

    한눈에 내가 처음이란 걸 알아보았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말투도 스튜어디스처럼 사근사근하다. 어쩌면 진짜 스튜어디스를 잠시 고용할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뒤에 있던 검은색 박스를 하나 주워들더니 말했다.

    “가든 엔비 회원분들은 전부 닉네임을 쓰세요. 서로 친해지시면 사적인 자리에서는 본명을 쓰셔도 무방한데. 모임 내에서는 모두 닉네임을 쓰셔야 되거든요. 그래서 닉네임을 정하셔야 되는데 무얼로 하시겠어요?”

    ‘닉네임?’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녀가 검은색 상자에서 휴대폰 하나를 꺼내 손에 쥐었다. 그리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닉네임을 정해달란 것 같다.

    ‘뭘로 할까.’

    고민할 시간이 별로 없다. 나는 평소에 쓰던 닉네임을 그대로 불렀다.

    “듀로스요.”

    듀로스는 게임에 나오는 용 이름이다. 듀로스 디 이터널.

    “네 듀로스님”

    그녀는 휴대폰을 빠르게 클릭한다. ‘듀로스’라고 적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터치를 마치더니, 그 휴대폰을 내게 건넸다.

    “이거 받으세요.”

    나는 그 휴대폰을 받았다. 네뷸러S9기종. 내가 쓰는 것과 동일한 기종이다. 나온 지 세 달밖에 되지 않은 신품이다.

    “이제부터 이 핸드폰은 듀로스님 소유입니다. 유심은 삽입할 수 없게 개조되어 평범한 휴대폰으로 작동은 하지 않고요 단지 와이파이로만 데이터를 받을 수 있어요. 안에 보시면 일반 마켓에서는 설치할 수 없는 앱이 하나 있거든요. 여기서 회원들 끼리 정보를 공유하시면 되요.”

    ‘준다고 이걸?’

    기기 값만 백만 원이 살짝 넘는데, 거저 준다니 살짝 놀랍다.

    ‘역시 평범한 리딩 방은 아니로군. 보통은 돈을 받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돈을 준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백만 원짜리 휴대폰을 거저 준다는 것은, 이 채팅창에서 백만 원 이상의 가치를 뜯어낼 자신이 있다는 소리다. 나는 일단 그 휴대폰을 받았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문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들어가시지요.”

    나는 그 휴대폰을 든 채 문을 열었다. 그러자,

    ‘샤라란~ 샨샨 샤라라라라란~’

    익숙한 클래식 음악이 들려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방음이 잘 돼있지?’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안에서 노래가 나오는지 전혀 몰랐다. 안에 더 들어가자, 안에는 커다란 연회장이 있다. 결혼식에서나 볼 법한 연회장이. 밖에는 분명 ‘임대’가 붙어있었는데 조명도 꽤 밝다. 안에서는 웨이터들이 돌아다니면서 테이블에 술과 각종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한쪽에는 술을 취급하는 것 같은 바도 있다. 이렇게 보니 단순 사교클럽 같기도 하다. 나는 참여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열 명 가량. 그들은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도 있고.

    “어이쿠 신 원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네 강 원장님. 요샌 어떻게 지내세요?”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도 있다. 신 원장은 내가 유일하게 배경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살짝 뒤에 다가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 요새 중국에서 하도 오라고 해서... 중국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요?”

    “네. 웬만하면 안 가려고 하는데 자꾸 페이를 높게 불러서 오라고 해요. 확실히 요새 중국에 돈이 많이 도나 봅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비행기 탑니다. 병원은 부원장들에게 맡기고요.”

    “한번 오가시는데 얼마나 버시는 거예요 대체?”

    “요새는 삼천정도 주더군요.”

    “오 그러시구나. 중국어 꽤 늘으셨겠어요?”

    “아니 아니에요. 저는 중국어 거의 안합니다. 걔네는 한국 의사를 찾는 거라 제가 한국말 하는 걸 더 좋아하거든요... 어차피 드라마 보고 와서 한국연예인이랑 똑같이 해달라고 하는 애들이라... 피차 못 알아듣는 거 알아도 저도 일부러 한국말 합니다. 브로커도 그걸 더 좋아해요. 의사소통은 옆에 통역이 알아서 하는 거죠.”

    “하하 그렇군요.”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성형외과의사인 것 같다. 비밀 클럽이라고 해도, 서로 직업도 알고 성도 알고, 평범한 구석도 있다.

    ‘그나저나 닉네임은 왜 준거지?’

    나는 홀로 회랑 사이드 쪽에 앉아서 아까 그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휴대폰 안에는 필수적인 앱 외에 딱 하나만이 있다.

    ‘가든 엔비’

    거기 접속하자 익숙한 모습이 뜬다. 전형적인 채팅 앱. 다른 점이 있다면 채팅방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다. 최신 메시지는.

    ‘듀로스님이 채팅방에 참여하셨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가장 최신 회원인 듯하다. 나는 들어와 있는 인원을 보았다. 82명. 많은 건지 적은 건지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왜 휴대폰을 준 거지? 그냥 내 휴대폰에 앱을 깔아주면... 아아...’

    생각해보니 그러면 해킹의 위험이 있다. 특히 이런 정체를 알 수 없는 앱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휴대폰으로 움직이는 자금은 100억이 넘는데, 이런 앱을 깔 수는 없다.

    ‘...그러니까 아예 휴대폰을 새로 주는 것이로군... 그러면 개인정보를 입력할 필요도 없고... 서로 피차 못 믿으니까. 이런 장치를 마련한 건가. 나름 합리적인 발상이로군. 이걸 기획한 사람은 대체 누굴까?’

    약속시간인 오후 7시가 되어가자, 사람들이 하나 둘 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대충 눈대중으로 보건대 5~60명 정도 되어 보인다. 살짝 지각하는 사람도 있고, 별로 의무감은 없는 듯하다. 나는 살짝 뒤에서 떨어져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대체로 그들은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으로 보인다. 나와 비슷한 나이 대는 없다.

    ‘30~40대가 주축이라더니... 사실상 40대가 주축이잖아?’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나는 그들에게서 살짝 떨어져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하기도 하고, 바에서 칵테일을 받아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개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보인다.

    ‘어라 저 아저씨는...?’

    분명 사극에서 본 아저씨다. 왕이 뭐라고 하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라고 외치는 중견 탤런트. 조연 중의 조연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도 얼굴을 아는 사람이다.

    ‘이렇게만 봤을 땐 정말 평범한 사교 클럽같은데...’

    그런데 그러던 중이었다.

    “저... 안녕하세요?”

    누군가 한 명이 나에게 접근했다. 남자. 그런데 놀랍게도 나와 비슷한 20대 후반이다. 얼굴이 살짝 붉다. 눈이 크고 눈매가 예리하다. 코도 크다. 큰 매부리코, 마치 커다란 자를 넣어놓은 것 같다.

    “반갑습니다. 저는 카이지라고 합니다. 닉네임이?”

    ‘카이지라고? 무슨 일본만화에서 따온 건가?’

    지금 보니 카이지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저는 듀로스입니다. 반갑습니다.”

    닉네임을 입으로 말하려니 살짝 부끄럽다.

    “처음 오신 것 같던데...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29입니다.”

    “오 그러시군요. 저는 28입니다. 초대 받아서 왔는데 나이 비슷한 사람이 없어서... 모임에 나오지 말아야겠다 했거든요. 근데 오늘 나이가 비슷한 분이 오셨네요.”

    나보다 한 살 어리다. 혼자 뻘줌하게 있기 뭐했는데 그나마 동료가 생겼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저도 여기 처음 와서 누구와 대화를 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여기 얼마나 계셨죠?”

    “저는 3주차입니다. 저도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아요.”

    이 사람도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보단 2주 더 있었으니.

    “여긴 대체... 무슨 의도로 모인 것이죠? 정보 공유를 한다고 하면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아 그게...”

    카이지가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안녕하십니까? 가든 엔비. 회원님들”

    누군가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저씨다.

    “반갑습니다. 오늘 새로 오신 분들도 환영합니다. 이곳은 가든 엔비. 투자자들끼리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교류를 나누는 곳입니다.”

    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이 이 모임의 주최자인가?’

    하는데, 그가 말했다.

    “그럼 오늘 오신 분들에 한해서 주제 바로 넣어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이이잉’

    회장 안에서 소리가 울린다. 저마다 다들 휴대폰을 든다. 나 역시 새로 받은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앱에는

    ‘이번 주의 주제’

    ‘9월 5일 - 좀비영화 서울행 천만 넘을 수 있을까? – 퓨처미디어’

    ‘9월 8일 - 천식치료제 효과 샌프란시스코 학회 발표예정 - 진영제약’

    ‘9월 9일 - 인천공항 면세점 누구한테 갈 것인가 – 백제호텔, 시안관광, 엘더디에프, 신영백화점 등등’

    이라고 세 줄 띄어져 있었다. 단상에 선 남자는

    “그럼 오늘 파티도 즐겨주시길.”

    그 말을 남긴 채 바로 자리에서 내려왔다. 카이지는 휴대폰을 보더니 중얼거렸다.

    “음 오늘은 질문이 세 개네.”

    질문이 세 개. 이곳은 다른 주식리딩방처럼 오를 종목을 골라서 답을 알려주고 꼬시는 곳은 아닌 것 같다. 부자들은 의심이 많다.

    ‘A주식 사세요. 오릅니다. B주식 사세요. 급등합니다.’

    라는 식의 리딩을 하면

    ‘이거 자기 주식을 비싸게 넘기려는 것 아닐까?’

    하고 의심을 품기 마련이다. 반면 이렇게 화두를 던져놓고 이야기를 나누게 하면, 본인이 생각을 해보고 매수를 결정하게 되니까. 훨씬 낫다. 카이지에게 물었다.

    “여기 보통 이렇게 주제를 툭하고 던져줍니까?”

    “네 뭔가 오를지 내릴지 예상하는 게 아니고요 정보를 수집해보자 이런 식이에요.”

    나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대화하는지를 지켜보았다. 대화의 주제는 순식간에 주식이야기로 옮겨가 있었다.

    “닥터 장. 진영제약 이 신약에 대해서 잘 몰라요?”

    “네 폐 쪽은 제 전공이 아니라... 후배 중에 진영제약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소문 해보지요.”

    나는 아예 대놓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혹시나 이 대화에 끼지 못하면 이득을 얻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진영제약보다는 아무래도 인천공항 이게 큰 건인데... 이것만 통과되면 매출 수천억 씩 느는 건 일도 아니거든요. 아마 기관투자자들도 집중하고 있을 겁니다.”

    “이거 사실상 빨대 꽂고 몇 년간 꿀 빠는 건데... 이건 어디다 접근을 해야 하나?”

    “공무원들에게 해야죠.”

    “이건 관세청 면세점 특허심사위원회라는 게 있어서, 거기서 결정할 겁니다. 근데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요새 공무원들이 쉽게 입을 안 열어서.”

    ‘관세청 면세점 특허심사위원회’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하지만 이 이상 정확한 정보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나보다 몸무게가 더 나갈 것 같은 아줌마 하나가 몸을 떨면서 말한다.

    “그러니까. 이번 정권 들어서 공무원들이 너무 깐깐해졌어. 엄청 몸 사린다니까. 엔지님. 정보 없어요? 여자 친구가 사무관이라면서?”

    엔지라 불린 키 큰 남성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글쎄... 한번 물어보죠.”

    “정보 나오면 나한테 먼저 연락 줘. 내가 정보료는 제대로 쳐줄 테니까.”

    “네 도준맘님”

    나는 깨달았다. 개중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자기가 사고 나서 하겠지.’

    확실한 정보가 있다면 자기가 먼저 주식부터 살 것이다. 그런 다음 정보를 풀어야 수익이 극대화될 테니까. 그럼 정보가 풀리는 곳은.

    ‘아까 그 앱...’

    나는 새로 받은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앱에는 아직 아무런 대화도 떠 있지 않다.

    ‘이 모임은... 그냥... 허상?’

    그 때였다. 순간, 옆에 있던 카이지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어때요? 그래도 여기서 주는 떡밥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에요. 실제 매출이랑 연결되는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그 때,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한 마디를 더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정보 공유는 이뤄지지는 않죠. 얼굴 보고 서로 돈이나 견줘보고 맘에 없는 소리나 하는 곳이에요. 가끔 실제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그건 정말 가끔 있는 일이고. 실제적인 정보교류는 나중에 앱에서 떠들어요. 장 열려 있을 때 말이죠.”

    내 생각이 맞다. 나는 그에게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그나저나 이 모임 만든 사람은 누굽니까?”

    “오 아직 못 만나보셨군요?”

    “네.

    그 때, 카이지가 모임 한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 마스터T”

    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