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45화 (45/198)

# 45

큰 손

나는 뛰고 또 뛰었다. 눈앞에 작은 집이 하나 보인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것만가지고는 안심할 수가 없다. 나는 화장실로 보이는 작은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화장실 타일을 등 진 채로 문 쪽에 총구를 겨누고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이 화장실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쏴서 죽여버리리라. 나는 곁눈질로 남아 있는 인원을 확인했다.

‘남은 생존자수 : 13명’

12명만 제치면 내가 1등이다. 그런데 그 때,

‘다닥다닥다닥’

누군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당장이라도 총을 발사할 것처럼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금방이라도 내 방안으로 달려올 것 같던 발소리가 멈추더니 잠시 후,

‘딸깍’

요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딸깍?’

무슨 소리일까. 하는 순간 내가 있던 화장실 안으로

‘툭투둑’

감자처럼 생긴 동그란 물건이 하나 떨어진다.

‘이게 뭐?’

하는 순간

‘콰앙!’

폭음과 함께 내 캐릭터는 쓰러지고 눈앞에 메시지가 하나 뜬다.

[괜찮아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 12등]

나는 의자에 뒤로 누워버렸다.

“아아 그게 수류탄이었구나...”

10등 안에 들 수 있었는데, 허무하게 죽었다.

‘아... 아쉽다... 어렵긴 한데... 재밌네 이거... 한 게임 더 할까?’

그전에 나는 휴대폰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오전 8시 45분. 일할 시간이다. 나는 미련 없이 헤드셋을 벗었다. 그런 다음 발을 이용해서 의자를 옆으로 밀었다. 게임용 컴퓨터 옆에는, 업무용 컴퓨터가 있다. 이 자리가 내 새 직장이다. 출근하는데는 3초면 충분한 내 새 직장. 나는 새 직장에서 메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 55분이 되고 메일이 온다.

‘남은 구독기간 18일’

남은 날짜가 살짝 신경 쓰인다. 골드 등급을 유지하는데 나가는 돈은 매달 10억. 자산이 100억이 넘어가면 그것도 그리 많은 금액은 아니겠지만 그전까지는 확실히 땡겨 놔야한다. 나는 손을 비비며 메일을 확인했다.

‘아 이제 뜰 때가 됐는데...’

그런데, 진짜로 떴다. ‘경제 면’에

‘자운중공업 아랍에미리트에 7조원대 원전 수주’

자운중공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공업체다. 나는 빠르게 그걸 클릭해보았다.

자운중공업이 아랍에미리트 정부로부터 7조원대 원전을 수주했다. 이날 오후 2시 경. 아랍에미리트 이븐 할리드 유스프 왕세자는...

호재다. 나는 기사를 더 아래로 내려 보았다. 지난 번 CKD엔터테인먼트 건에서처럼, 혹시나 주식 가격의 변동 폭이 쓰여 있을지 모르니까. 그것만 있다면 주식은 쉬워도 너무 쉽다. 정답을 보고 문제를 푸는 거나 다를 바 없으니까. 하지만

자운중공업은 이번 입찰 과정에서 일본, 프랑스 업체를 경쟁에서 누르고 낙찰 받음으로서 한국 원전사업의 경쟁력을 증명했다.

그런 건 쓰여 있지 않았다. 오르긴 오르는데 얼마나 어떻게 오르는지는 모른단 소리다.

‘음...’

나는 먼저 최근 차트를 보았다. 자운중공업은 +4%, -3%, +7%, -5%. 갈지자로 등락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주식게시판을 가보았다.

오늘 패 까보는 날이네요. 똥패냐? 메이드냐 곧 있으면 발표됩니다. 쫄리면 죽으세요.

저는 자운중공업 믿습니다. 7조 원전수주 가즈아아!

바보들 이게 될 거 같냐. 오늘 한강 가는 개미들 많겠구나.

일반 개미들도 오늘 입찰결과가 어떻게 될지 주목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 이미 이 건 때문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다.

‘이미 알려진 정보... 올라가는 폭은 높지 않다...’

일찍 들어 와있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살짝 아쉽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12시간 뒤는, 12시간 뒤만 보여주니까.

‘그럼 초반에 풀로 베팅한 다음, 조금만 먹고 나오자.’

생각을 한 나는 자운중공업 시가총액을 보았다. 자운중공업의 시가총액은 13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답게 시총이 매우 높다. 게다가 그 높은 신용도 때문에 33%의 증거금만 있으면 신용거래를 할 수가 있었다. 한 마디로 가지고 있는 돈의 3.333...배만큼 주식을 매수 할 수 있다는 소리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은 49억 정도. 신용을 쓰면 150억 이상도 땡길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조심하자. 아무리 시총이 커도 너무 많은 금액을 들고 가면 위험할 수도 있어.’

확실하지 않은 승부에 모든 걸 걸 수는 없다. 나는 자운중공업을 메인화면에 올려놓고, 장이 열리길 기다렸다. 장 시작과 동시에, 자운중공업은 크게 흔들렸다, +3%를 갔다가 –2%를 갔다가 +1%를 갔다가 –3%를 갔다. 오늘 자운중공업이 수주를 할지 말지 모른단 소리다. 지금 이 결과를 알고 있는 것은 나와 아랍에 있는 왕족들 뿐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아랍 왕자들은 자기들이 발표하기 전에 이 주식 사면 누워서 돈 벌겠네? 뭐 지금도 누워서 돈 벌기는 하지만.’

역시 정보가 곧 돈이다. 그 분들은 이런 세세한 매매는 하지 않으시는 것 같지만.

‘돈은 제가 챙겨가겠습니다. 왕세자님들.’

나는 주식이 마이너스권에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주식을 담았다. 5억, 3억, 7억. 뭉텅이로 담아도 워낙에 시총이 커서 그다지 티가 나지 않는다. 여기는 그야말로 기관들 그러니까 투자신탁회사, 보험회사, 은행, 연기금, 사모펀드와 세계 각기의 외국인들(검은 머리 외국인을 포함한)이 각축장을 벌이는 커다란 놀이터였다.

지난번에 산 CKD엔터테인먼트가 천원짜리 슬롯머신이라면 이 자운중공업은 VIP테이블이나 다를 바 없다. 그만큼 판돈 차이가 크다. 나는 금새 50억이 넘는 금액을 매수했다.

‘매수한 다음, 뉴스가 뜨고 급등할 때 다 팔아버리자.’

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하면 그다지 리스크가 없을 것이다. 오전 10시가 넘으면서 내 매수금액은 100억이 되었다.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어도 살짝 쫄린다. -1%. 주가가 밀리면 실시간으로 1억원이 날아간다. 요새 아무리 담이 커졌다지만,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그래도 나는 냉정을 유지한 채로 매수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120억 즈음 모았을 때였다. 왔다 갔다 하던 주가가 갑자기 팍 +4%. 오르기 시작했다. 확정 정보가 퍼지지는 않았어도, 유력하다 수준의 정보가 퍼졌을 수는 있다. 연기금이나 사모펀드와 같은 기관투자자들은 분명 아랍에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람과 연줄이 닿아 있을 것이다.

‘그럼 풀 베팅이다.’

생각한 나는 나머지 금액을 모두 사버렸다. 내가 산 금액은 무려 163억. 여기서 조금 뭔가 잘못 된다면 나라도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나는 살짝 긴장을 한 채로 계속해서 장을 지켜보았다. 주가는 +6%에서 왔다리갔다리 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2시다. 아침도 점심도 먹지 않았는데, 나는 배고픔도 잊어버린 채 그걸 지켜보았던 것이다. 주식투자란 이렇게 피가 말리는 작업이다.

‘미래를 아는 나도 이렇게 떨리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어떨까. 그러니까 싸게 팔고 도망가는 거겠지만.’

그러던 도중 2시가 넘어 3시가 됐을 때 즈음 주가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나는 보조 모니터에

‘자운중공업’을 쳐보았다.

‘1보 자운중공업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

떴다. 주가는 마구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한 틱이라도 일찍 사는 게 돈 버는 사람들이 마구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어디서 팔아야할까?’

그걸 고민했다. 하지만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게 얼마나 큰 건인지, 얼마나 주식가치가 올라야하는지는 신밖에 모른다. 이럴 땐 내 배포만큼만 먹고나오는 게 답이다.

‘평단 +10%부터 팔자.’

생각을 한 나는 주가가 +12%를 넘어갈 때. 그러니까 내가 10%이상 벌어들이기 시작할 때부터 주식을 팔아제꼈다. 5억, 3억, 8억. 주식을 뭉텅이로 던졌지만, 누군가가 그걸 다 사면서 주가가 올라갔다.

‘이거 상한가 가는 거 아냐?’

그런 생각도 들지만, 13조짜리 거대한 주식이 상한가를 간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는 크게 욕심을 내지 않고, 스스로에게 약속한대로 천천히 주식을 나눠서 팔았다. 내 매도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12%를 넘어 +18%까지 향하던 주가는 다시 낮춰져서 +15%까지 내려왔다.

나는 나머지 주식을 일거에 팔아버렸다. 팍. 하고 +12%까지 내려갔다. 매도를 완료하고 나는 눈을 껌뻑거렸다. 오늘 사고팔고 한 금액을 합치면 무려 326억이다. 손이 덜덜 떨린다. 서로를 맞잡아 봐도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어후 완전 큰손 놀이 했네...’

이정도면 확실히 큰손이다. 특히 이렇게 하루만에 163억을 올인 해서 단타를 치는 미친놈은 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몇 십억이 날아가니까. 미래를 알지 못하면 이렇게 베팅하기는 어렵다. 어디 재벌 총수급이 아니라면 말이다.

‘오늘 전리품을 확인해볼까’

나는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계좌를 찾아보았다. 오늘 수입은 21억1900만원가량. 내 계좌에는 70억이란 돈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눈을 껌뻑이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긴장이 탁 풀린다. 동시에 배에서

‘꼬르르’

소리가 들린다. 아침, 점심도 거르고 집중을 한 탓이다.

‘뭘 먹을까? 아 치킨. 그래 치킨이 좋겠어. 승리했을 땐 치킨이지.’

나는 내 휴대폰을 찾았다.

*

“끄응~”

나는 살짝 신음을 내질렀다.

“아프세요?”

내 위에 있는 마사지사가 조심스레 묻는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계속 그 세기로 해주세요.”

“네에~”

강남에 위치한 모 럭셔리 호텔의 스파. 나는 치킨을 시켜 한 마리를 혼자서 거의 다 먹어버리고, 소화가 될 때 즈음 이곳을 찾았다. 하루에 21억을 번 내 자신에게 포상을 주기 위해서다.

“혹시 주로 케어 받고 싶은 곳 있으신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몸이 피곤하진 않다. 회사 다닐 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요새는 매일 백수처럼 침대와 책상만을 오가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몸은 아픈 곳이 없고... 살짝 두통이 있네요. 오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아 네. 그러면 손님에게 맞춰서 스트레스 감소와 진정효과가 있는 향을 써서...”

마사지사는 프로답게, 나한테 적합한 향을 골라서 매우 부드럽게 나를 마사지 해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마사지를 받으면서 생각했다.

‘오늘만 21억... 자산이 이제 70억. 이제 곧 있으면 한 달 100억 플레티넘 등급도 달겠군... 그 다음은 다이아... 근데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매달 1000억 이상 벌기는 어려운데...’

플레티넘까지는 달만 하다. 하지만 그 이상. 다이아 등급부터 월 1000억을 요구한다면, 그거는 조금 고개가 갸웃하다.

‘다음번에 스킬 포인트를 5개 준다고 했지...’

스킬이 어떻게 강해진다 해도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나는 막연한 기대감은 있었다.

‘여태 등급이 올라서 구독료 감당이 안 된 적은 없었잖아?’

그건 그랬다. 등급이 오를 때마다 모두 하나씩 내 자산도 업그레이드 될 만한 구석이 있었다. 돈이 된다면 무조건 업그레이드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마사지사가 내 옆머리를 강하게 지압했다.

“끄으.”

나는 짧게 신음을 했다. 마사지사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지압을 하며 말했다.

“확실히 생각이 많으신 타입 같으세요.”

릴렉스 하자고 마사지를 받으면서까지 생각을 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다. 이 마사지는 1회 30만원 짜리다. 나는 생각을 지워버리고, 정신 줄 놓은 채로 마사지사에게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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