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41화 (41/198)

# 41

끝과 시작

“자 받아라.”

아버지는 소주가 담긴 병을 들어 올리셨다. 나는 잔을 내밀어 술을 받았다. 잔이 모두 차고 부자는 짧게 잔을 부딪친 다음, 동시에 소주를 들이켰다. 알싸한 소주의 향이 코끝을 찌른다.

“크...”

오늘 밤, 나는 거실에서 아버지와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아버지는 노가리에 고추장을 찍어 질겅질겅 씹으며 말씀하셨다.

“일이 그렇게 힘드냐?”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할까. 나는 잠시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겨우 열었다.

“힘들죠. 근데 힘든 건 참을 수 있는데... 무의미한 게 못 참겠어요. 맨날 똑같은 일만 반복하는데 배우는 건 상사 비위맞추기 밖에 없고... 한 번 태어나 사는 인생인데 월급의 노예가 돼서 사는 게 너무 괴로웠...”

나는 무의식중에

‘괴로웠어요.’

라고 말하려다가, 급하게 정정했다.

“괴로워요.”

“음...”

아버지는 별 말 없이 빈 잔을 내려다보셨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너무 징징거리기만 한 것 같아 죄송하다. 게다가 아버지는 똑같은 일을 몇 십년 하셨는데 나는 겨우 일 년 하고서 이렇다. 나는 다시 한 번 술을 그 잔에 채워드리며 말했다.

“아버지.”

“왜 그러냐?”

“아버지 도장 일 하신지 몇 년째이시지요?”

“글쎄... 네 엄마가 너 밴 해에 시작했으니... 올해 딱 30년이로구나.”

“사범으로 일한 때를 합치면요?”

“사범으로 일한 기간까지 생각해보면 35년?”

35년이라니 긴 세월이다. 내가 살아온 것보다도 더 긴 세월. 아버지는 그 긴 시간동안 도장에서 땀을 흘리며 남을 가르치신 것이다. 나는 순수한 궁금증으로,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길게 똑같은 일을 하신 거예요? 지겹지는 않으셨어요?”

아버지는 그득하게 채워진 소주 잔을 보며 말하셨다.

“지겹다... 라고 생각하면 일 못하지. 그냥 이게 이번 생에 내 업이로구나 하고 하니까. 하는 거지.”

이번 생. 내 업. 나는 잠시 회사 일을 떠올렸다. 그게 이번 생. 내 업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답은 금방 나온다. 아니오. 회사는 때려치는 게 맞다. 내가 12시간 뒤 기연을 얻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아마 회사를 나왔을 것이다. 물론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몇 년 더 다니긴 했겠지만 말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일...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으셨어요?”

내 질문에 아버지는 가득 차 있는 잔을 한번에 입에 털어 넣으신다. 어쩌면 그 행위가, 말로 하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왜 없었겠니. 수십, 수백 번 그만두고 싶었지. 초등학생이 대련하다 코피 터졌다고 부모가 와서 멱살을 잡을 때나, 건달 같은 녀석들이 와서 깽판을 놓을 때나... 왜 니들도 기억나지? 어렸을 적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옛날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 도장에 다녔기 때문에 나도 몇몇 굵직한 이벤트들은 기억이 난다. 부모들이 와서 고성을 지르던 장면, 문신을 한 건달들이 와서 아버지에게 시비를 걸던 장면 등등. 내가 본 것만 그 정도인데, 다른 일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말씀을 이어가셨다.

“아니 건달 놈들은 차라리 귀엽지. 경찰에 전화 한 통화 하면 물러가니까. 건달들보다 무서운 게 건물주야. 조금 원생들 늘어난다 싶으면 월세 올려달라고 하니까... 하여간 그럴 땐 그 건물주 놈을 엎어치기 한 다음 그대로 삼각조르기를 그냥... 그래버리고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지. 하하”

나는 잠시 아버지와 함께 소리 내 웃었다. 그 때, 아버지는 이어서 한 마디를 더 하셨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시원하게 때려 치고 싶을 때마다, 너와 수정이 얼굴이 떠오르더라. 그러면 뭐... 때려 치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 있더라고.”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찡 하다. 나는 말없이 아버지 잔을 채워드리고 내 잔을 받아 다시 원샷을 했다. 떠오르는 취기 속에 문득 고객센터와 했던 문답이 떠오른다.

‘왜 나에게만 이런 걸 보내주는 거지?’

‘스스로 생각해보세요.’

내가 큰 죄를 짓고 산적은 없지만, 크게 선행을 하며 살아온 것도 아니었다. 내가 기연을 얻은 이유가 있다면, 부모님의 정직함과 성실함 덕분일 것이다. 응당 두 분이 받으셨어야 할 기연인데, 아들이 대신 받은 것만 같다. 내가 돈을 벌게 되면 더더욱 효도를 하리라. 나는 다시 한 번 아버지에게 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간 수고 많으셨어요. 아버지. 이제 저랑 수정이가...”

그런데 그 때였다.

“오빠!”

갑자기 수정이가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말씀에 한창 감동 받아 취기가 돋는데, 왜 난리일까.

“왜에?”

그런데, 수정이는 뭐라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내 앞에서

“오빠오빠!”

나를 반복해서 부를 뿐이었다. 술을 드시던 아버지도, 주방에서 마늘을 까시던 어머니도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라는 눈초리로 수정이를 쳐다보았다. 나 역시 그렇게 수정이를 쳐다보다. 문득 든 생각에 거실 한 구석에 걸려 있는 벽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막 저녁 9시를 넘기고 있었다.

“오빠오빠오빠아!”

얘가 뭘 말하고 싶은 지는 알 것 같다.

‘이 녀석 아까 번호를 대충 외웠나?’

하지만 나는 으레 모르는 척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그래 갑자기. 미친년처럼.”

수정이는 그제야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 로또오!”

“뭐 로또가 뭐?”

나는 지갑에서 로또를 꺼내 여보란 듯 술상 위에 올려놓았다. 수정이는 그걸 보더니 살짝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2 6 15 22 36 41... 세상에... 진짜... 맞아...”

나는 술김에 어설픈 연기를 했다.

“진짜 맞는 다고?”

여태 근엄하게 옛 이야기를 하시던 아버지도 눈이 동그라져 말했다.

“진짜?”

*

이틀 뒤, 월요일. 나는 은행 문을 열어 나섰다. 그리고 나서자마자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띠리리~ 띠리리~ 띠리”

통화연결음이 사라지자마자, 아버지가 묻는다.

“잘 받았니?”

“네 은행에서 친절하게 잘 해주네요. 이거 저거 캐묻지도 않고요.”

“그래 다행이다. 그래도 일단 어디다가 말하고 다니지 말아라. 큰 돈 생겼다고 하면 어디서 이상한 사람들 꼬이기 마련이니까. 나랑 네 엄마는 입단속 잘 하고 있으마. 수정이도 우리가 잘 챙기고.”

“네. 걱정마세요.”

“그래 그럼 회사 일도 잘 마무리하길 바란다.”

“네.”

“그래 그럼 끊는다.”

나는 막 통화를 끊으려는 아버지를 멈췄다.

“아 아버지.”

“응 왜?”

“혹시 건물주가 또 월세 올리려고 하면 말씀하세요. 그 건물, 제가 확 사 버릴 테니까.”

“하하 그래 알았다.”

통화를 마친 뒤, 나는 휴대폰 앱을 통해 당첨금을 받은 내 계좌를 열어보았다. 이번 로또 1등 5번 당첨금의 총액은 대략 47억 3275만원. 거기서 33%의 세금을 뗀 31억5516만원이 내 계좌에 들어와 있었다.

‘31억...’

요새 억 단위 돈을 자주 만져보긴 했지만 이렇게 큰돈을 일시에 지급받은 것은 처음이다. 나는 길을 가다 주먹을 쥐고 골을 넣은 축구 선수가 세레모니를 하듯 크게 어퍼컷을 했다.

“크으!”

득점 또 득점이다. 주식계좌에 들어 있는 돈은 10억5673만원. 두 개를 합치면 대략 42억. 42억이 내 순자산이 된다. 42억이 있다고 하니 왠지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것만 같다.

“휘우...”

나는 휘파람을 불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이 당장 손에 잡힐 것만 같다. 나는 정말로 큰 부자가 된 것이다. 나는 길을 가다가 눈에 보이는 택시에 손짓을 했다.

“택시!”

택시는 곧 내 옆에 선다. 나는 뒷좌석에 타고 목적지를 말했다.

“역삼역으로 가주세요.”

*

나는 회사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청바지에 컬러가 있는 폴로티셔츠 차림으로. 나를 보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놀란다. 다들 놀라서 얼어 있는데 그나마 친한 최 사원이 다가와 물었다.

“뭐야 한상훈 오늘 연차라매? 뭐 놓고 갔어?”

묘하게도, 그 말이 맞긴 맞다. 나는 회사에 놓고 간게 있었다.

“아... 놓고 간 게 있긴 하지.”

나는 그런 그를 지나쳐 내 자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던 사표를 꺼냈다. 서랍에서 하얀 봉투가 나오니 최 사원이 깜짝 놀란다.

“어... 너... 그거... 설마?”

나는 얼어 있는 최사원을 지나쳐, 허 과장이 있는 자리에 까지 갔다.

“너 뭐야? 왜 왔어? 갑자기 뜬금없이 연차 써놓고 양심에 찔리기라도 했어? 그런데, 그 차림은 뭐야? 대체?”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말?”

나는 들고 있던 사표를 그의 앞에다가 놓으며 말했다.

“저 오늘 부로 이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뭐어?”

사무실 안 시선이 내게 쏠리는 게 느껴진다. 허 과장도 살짝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본다.

“너... 진심이야? 갑자기 화장실 벽을 치지 않나 응? 요새 정신 나가 있는 거 같더니... 이렇게 갑자기 그만둔다고? 회사가 장난이야? 너 그런 마인드로는 사회생활 오래 못 해. 응?”

끔찍하다. 나간다고 하는 사람한테까지 꼰대질이라니

“내가 봤을 때 여기 그만두면 넌 이제 끝이야 응? 여기도 못 견뎌서 앞으로 어디서 일을 하겠다고...”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허영식 씨!”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말 똑바로 하시죠, 저는 이제 이 회사 사람 아닙니다. 당신 부하도 아니고요. 이제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어디다 대고 반말이세요?”

허 과장은 놀라서 뭐라고 더 하지도 못하고 있다.

“두고 보시죠. 아마... 다음번에 만날 땐 저에게 존댓말을 쓰게 될 겁니다. 사표 수리나 잘 해주세요.”

나는 그 말을 남긴 뒤, 뒤로 돌아섰다. 사무실 안 사람들은 살짝 벙 쪄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 말고도 허과장한테 당한 사람이 많아서 속이 시원하기도 할 텐데, 여전히 그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하다. 단지 장난기 많은 최 사원이 살짝 엄지를 펴서 나에게 보여주었을 뿐이다.

‘웃긴 녀석...’

나는 피식 웃고 내 자리로 와 개인적인 물건만 챙겨 회사 문을 박차고 나왔다. 다시 걸어나오고 보니, 역시나, 모든 일이 시작되었던 횡단보도가 보인다. 지각을 해, 한숨을 내쉬느라 땅을 쳐다보던 그 때와 달리, 나는 이번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강남의 하늘 아래에는 수 없이 많은 빌딩들이 늘어서 있다. 나는 그 빌딩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건 얼마나 할까?’

수백에서 수천억을 호가할 것이다. 하지만 왠지, 그 빌딩들 조차 곧 내 손아귀에 들어올 것만 같다. 방금 전 허과장. 허영식 씨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너는 이제 끝이야’

하지만 그는 틀렸다. 여태 그렇게 틀려왔으니까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거겠지. 나는 마치 그가 내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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