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중복당첨
나는 새로 받은 골드 등급 메일을 앞에 두고 잠시 마우스를 빙글빙글 돌렸다.
‘이름검색 - 이름을 입력해주십시오.’
커서가 반짝이고 있다.
‘누굴 써볼까?’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서 돈을 벌려면, 접점이 될 만한 사건이 있어야 한다. 지난 번 지방선거 때처럼. 주성원 이희철과, 동보건설과 엔도바이로닉스처럼. 하지만 지금 당장은 누굴 써야 될지 잘 모르겠다.
‘서울 시장 후보들이나 다시 한 번 검색해볼까?’
하지만 그 쪽은 이미 주가가 오를 대로 올라서 이제 곧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뉴스가 어떻게 뜨던 곧 파국이 멀지 않다. 호재가 떠도 당장 그날 -20%, -30%를 가도 이상하지 않다. 그쪽은 건들지 않는 게 아무래도 좋다. 나는 다른 활용 방법을 떠올렸다.
‘평소에 여기에 누굴 써넣어야 돈이 될지 검색도 해보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일단 오늘은 시범삼아... 높으신 분들 중 하날 해볼까?’
정, 재계 유력자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현직 대통령 안성근. 국무총리 박재길. 경제부총리 김선중. 수성그룹 회장 지창우, LD 회장 이재박. Kokoa CEO 박지수 등등.
‘음... 누굴 고를까...’
생각하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지창우’를 써넣었다. 국내 최대 재벌 수성그룹의 회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람. 이름을 써넣고 엔터를 누르자, 동시에 뉴스 하나가 뜬다.
‘지창우 회장 반도체 산업 직접 진두지휘한다.’
‘아아... 이런 식이로군...’
대충 감이 잡힌다. 앞으로 여기에 누굴 써넣어야 돈이 될지 지속적으로 검색도 해보고 생각도 해봐야할 것 같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란 말이 있을 정도니까. 인물 이름을 추적하다보면 돈이 될 일도 꽤 나올 것이다.
나는 이어서 랭킹 뉴스 항목으로 넘어가보았다. 이름 검색과 다르게 한 달에 딱 한번만 쓸 수 있다. 이것 역시 어떻게 돈과 연관이 될지 평소 정보도 모으고 연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은 로또만한 게 없을 것 같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은 대략 10억 정도. 5억을 제하고 많이 줄었다. 때문에 곱셈이 아니라 덧셈으로 자산을 증식시킬 수 있는 로또는 매우 유용할 것이다.
‘로또 1등 당첨금 요새는 얼마나 하지?’
로또는 5년 전 6년 전, 학생 때나 재미 삼아 한두 번 사봤을 뿐이다. 매주 주말마다 로또기사가 뜨길 기대했지만 막연히 ‘로또가 되면 좋겠지’라고 생각 했을 뿐, 구체적으로 당첨금이 얼마나 하는지 잘 몰랐다. 나는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다. 당첨금액은 로또 공식사이트에 잘 나와 있었다.
1등당첨금 - 당첨자수
11억6천만 - 16명
12억5천만 - 14명
26억5천만 - 7명
17억1천만 - 11명
23억9천만 – 8명
42억2천만 - 4명
로또는 그 회 차에 당첨된 사람들 끼리 나눠먹는 구조여서 그 때 그 때 당첨금이 달랐다. 1등이 걸린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많은 금액이 돌아가고, 많으면 많을수록 적은 금액이 돌아가는데, 총액은 대략 160억에서 200억 사이였다. 그래서 대략 당첨자가 10명 가까이 나면 20억대, 20명 가까이 나오면 10억대를 가져가는 것 같다. 4명만 당첨된 회 차에는 무려 42억이었다.
‘4명만 걸렸을 때 1등한 사람들은 로또 당첨된 사람들 중에서도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들이네... 피뢰침에 벼락이 치듯 그야말로 운 쫒아와 꽂힌 사람들... 그나저나 세금은 얼마나 하지?’
로또 1등의 세금은 33%. 세금을 제해도 최소 7억 이상은 받는 단 소리다. 랭킹뉴스에서 딱 한 번만 로또 번호가 나와 주면, 이번 구독료는 내고도 남는다.
‘음 그렇군... 세금 제하고 실수령으로 따지면 최소 7억에서 많으면 30억정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있다.
‘벼락을 연속으로 맞은 사람들. 로또 1등에 중복 당첨된 사람들.’
이게 뭘까. 하는 생각에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기사를 통해 ‘중복 당첨’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중복 당첨이란, 같은 번호를 여러 번 써냈는데 그 번호가 1등에 당첨된 사람들을 뜻했다.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수동으로 똑같은 번호를 똑같이 두 번 이상 써내서 그게 걸려야 되니까. 스스로 당첨될 확률을 낮춰가면서 까지 일정한 번호를 써내고, 그게 다시 당첨이 되어야한다.
그러니까, 중복당첨이란 상식적으로는 하기 힘든 행동을 하고 거기에 운도 어마어마하게 좋아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미리 당첨번호를 알지 않는 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알 수도 있다. 이번 주 로또번호를. 12시간 뒤에서, 뉴스에서 나오기만 한다면, 1등 여러 번 써내는 건 일도 아니다. 다른 사람 보기에 조금 바보 같을지 모르지만, 그런 건 그냥
‘꿈에서 할아버지가 찍어 준 번호에요. 그래서 한 번호로 여러 장 샀어요.’
라고 해버리면 된다. 어차피 로또는 1000원 어치 사면 기댓값이 500원정도 하는 게임이다. 비이성으로 접근한다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애초에 기대값이 낮은 게임이니까. 나는 중복 당첨이 가능하단 전제 하에 다시 계산을 해보았다.
‘1등 당첨금 총액은 대략 160억에서 200억 사이. 이건 내가 어떻게 손을 댈 수 있는 게 아니다. 전국에서 로또를 사는 사람들의 총액에서 일정부분 적립을 한 금액이니까. 하지만 1등 번호를 안다면, 여기서 내가 몇 번을 1등 할지를 정할 수 있다.’
총액에서 내가 몇 %의 지분을 가져갈 수 있을지 선택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순수하게 1등이 걸린, 엄청나게 운 좋은 사람들 지분을 뺏어서, 물론 내가 써낸 수만큼 당첨자 수가 많아져서 1등 당첨금은 조금 줄어들겠지만, 그 수만큼 내가 가져가므로 절대값은 많아질 것이다. 나는 가상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1등 당첨금을 160억으로 잡고... 15명이 당첨됐는데 내가 거기 껴들어 5번 1등을 한다고 하면’
160억을 20명에서 먹으니 8억. 나는 그 와중에 다섯 번 당첨되므로 40억이 당첨금이다. 간단히 하면 그런 계산이 나온다.
‘그렇게만 되면 이번 달 구독료는 물론이고 수십 억대를 일시불로 당길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점점 기대감이 차오른다. 마치 골인 지점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발견할 것만 같다. 당장 내일 로또 추첨이 있는 토요일이다. 마침 집에 가기로 한 날과 일치한다.
‘그래 그럼... 내일 집에 가기 전에 바로 랭킹뉴스를 써버리자. 로또 기사가 나와 버리면... 집에 가는 길에 로또를 사서 가는 거야.’
나는 그런 결론을 내린 다음 메일을 닫았다. 어차피 오늘은 돈이 될 만한 뉴스가 없었으니까. 메일을 닫은 나는 열심히 업무에 집중했다. 이제 다녀봐야 하루 이틀 남았다. 어차피 떠날 사람 뒷모습을 아름답게 하고 가는 게 옮지 않겠는가. 그리고, 밤에는 소개팅도 있었다. 나는 일단 오늘은 돈 버는 일 외의 잡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사냥에 나서는 것은 이 직장과 가족. 두 화두가 정리가된 다음 주부터다.
*
“이번 역은 고속버스터미널, 고속버스터미널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나는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그곳을 나섰다. 지금 시각은 토요일 오전 8시 40분. 메일이 오기 전가지 15분 남았다. 토요일에는 주식시장이 열리지도 않고 로또는 거는 족족 빗나가서 요새는 조금 긴장감이 떨어져 있었는데, 오늘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긴장이 된다.
‘혹시라도 이상한 기사가 떠버리면 안 되는데...’
안내문에서 본 바로는 랭킹 뉴스는 12시간 뒤 1시간 누적으로 가장 조회 수가 많은 뉴스를 보여준다고 했다. 그러니까, 12시간 뒤에 문화, 생활 면에서 아주 충격적인 일만 없다면 말이다. 애초에 문화 생활 면은 그다지 충격적인 일이 보도되지도 않는 평화로운 카테고리긴 했다.
그러니까 어떤 대문호가 후배를 성추행 했다든지, 아니면 국제적 피아니스트가 스스로 자살 했다든지 그런 일만 없다면. 로또 번호 기사가 뜰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나는 발을 달달 떨며 55분이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러던 중이었다.
‘띠리리~’
전화가 왔다. 엄마에게서.
“네 엄마”
“오는 중이니?”
“네 지금 버스 기다리고 있어요. 9시 20분 차.”
“응 그래 조심해서 오렴. 그리고... 어제 소개팅은 어땠어?”
“뭐 그럭저럭”
“그럭저럭? 좀 더 자세히 말해봐.”
“착한 거 같긴 하던데... 한 번만 만나선 잘 모르겠던데요?”
“그럼 한 번 더 만나보지. 연락은 해봤어?”
어머니는 아무래도 내가 다시 다른 여자와 만나기를 원하시는 것 같았다.
“...집에 가서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그래 그럼.”
어머니와는 그렇게 짧은 통화를 마쳤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여자 쪽도 적극적이어서 다음 주에 개봉하는 영화 ‘여섯 보물과 건틀릿의 주인’를 보러 가자고도 먼저 제안했다. 하지만 왠지 요상하게 당기질 않는다. 옛날 같았으면 두세 번 더 만나봤을 것 같은데, 당장 돈이 되는 일이 눈앞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하루에 30억 40억이 오가는데... 나는 이제는 평범하게는 못 살 거 같아...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확실히 말해두어야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55분이되었다. 나는 새 메일을 받아보았다. 뉴스는 별 볼일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어차피 장이 열리질 않아서 의미도 별로 없다.
‘좋아 액땜한셈 치고...’
나는 이어서 이름 검색에다가 박지수를 써넣어보았다. 우리나라 대표 IT기업 중 하나인 Kokoa의 대표. 당장 돈 되는 일이 없어 역시 실험을 해본 것이다. 그런데
‘레이싱 걸 박지수 벤츠 앞에서 여신 미모 뽐내’
뜬금없이 레이싱 걸 뉴스가 떴다.
‘아예 성별이 다른 사람이 나와 버렸잖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군... ’
이름 검색에서는 내가 원하는 사람 뉴스가 정확하게 뜨지는 않는 듯하다. 특히나 이렇게 이름이 흔할 경우에는 말이다.
‘좋아 좋은 예가 되었어.’
나는 일단 이 케이스를 기억해놓은 다음 바로 스크롤을 내렸다. 어차피 오늘 중요한 것은 여기다. 랭킹 뉴스. 나는 먼저 ‘사용’을 눌렀다. 코앞에 메시지 하나가 뜬다.
‘랭킹뉴스 스킬을 사용할 카테고리를 선택해주십시오.’
나는 침을 한 번 삼킨 다음 ‘문화/생활’을 선택했다. 그런 다음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살며시 눈을 떴다. 내 눈 앞에 떠 있는 뉴스의 제목은
‘로또 921회차 당첨 번호는?’
“크...”
예상이 적중했다. 나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말의 고속버스터미널은 사람이 많다. 나는 조용히, 주먹만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런 다음 속으로 외쳤다.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