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38화 (38/198)

# 38

고객센터

‘그래 맞아. 토요일 날 문화, 생활 카테고리에서 랭킹뉴스를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로또 번호 밖에 뜰 게 없다. 토요일 저녁 8시 부근만 되면, 실시간 검색어에 늘 오르내리는 게 로또 번호다. 찾아보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기사화 되지 않을리가 없다. 그 시간대 문화 생활 카테고리에서 가장 많이 볼 뉴스는 그 뉴스 밖에 없다.

‘로또가 되기만 하면, 정액비 5억은 물론이고 10억도 아깝지 않다... 그래. 그런 방식으로 로또를 노릴 수 있다면...’

나는 이번에는 랭킹뉴스를 선택하기로 했다. 추가 뉴스는 나중에, 이 이름 검색과 랭킹 뉴스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 다음 받아보는 게 더 시너지가 날 것 같다.

‘그럼 일단 특성은 이렇게 찍자.’

나는 ‘이름 검색’과 ‘랭킹 뉴스’를 한 번씩 클릭한 다음. ‘신청’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경고 창하나가 뜬다.

[사용한 스킬 포인트는 다시 돌려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선택하시겠습니까? Y/N]

나는 잠시 머뭇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이것보다 나은 선택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Y를 선택했다. 알림창이 위에 뜬다.

[이름검색 Lv1, 랭킹뉴스 Lv1 선택되었습니다.]

[선택된 스킬은 다음 뉴스에서부터 즉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좋아...’

이름검색은 오늘부터 당장 써보고, 랭킹뉴스는 내일, 로또 추첨이 되는 토요일에 써보면 될 것 같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스크롤을 내려 보았다. 스킬 설명 아래로 ‘플레티넘 등급 서비스 안내’가 있다.

월정액료 금 10,000,000,000원으로, 플레티넘 등급으로 귀하의 뉴스를 업그레이드를 해보세요!

플레티넘 회원에게는 5점의 스킬 포인트를 지급하고, 다이아 등급 회원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고객센터를 통해 업그레이드를 신청하시면 지정하신 계좌에서 요금이 자동인출이 되며 그 즉시 월정액 서비스가 갱신되고 플레티넘 등급 회원 서비스를 업그레이드 받게 됩니다.

신청해주시면 후회하지 않을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

골드 다음 등급은 플레티넘, 그 다음은 다이아인 모양이다.

‘브론즈, 실버, 골드... 그다음 플레티넘 다이아...’

어디서 자주 본 등급들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위에도 뭔가가 있을 듯하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요금이다. 플레티넘의 요금은 무려 월 100억. 최소 200억 이상은 가지고 있어야 결제를 할까 말까 고려를 해볼만한 수준이다.

‘뭐 업그레이드를 하면 좋긴 좋겠지만...’

100억은 지금 당장으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금액이다. 스킬 포인트 5점을 준다고 하니 지금 가지고 있는 스킬을 업그레이드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 때 가서 이야기다. 지금 당장 100억은 너무 부담스럽다. 조금 더 스크롤을 내려 보았다. 곧 메일의 끝이 보인다. 안내문 마지막에는 이렇게 한 줄 쓰여 있었다.

[고객센터 오픈되었습니다. 고객센터는 24시간 운영되며, 신청하는 즉시 상담 가능합니다. 상담 신청]

‘24시간 운영에 즉시 가능하다고?’

역시나, 상담 신청이라고 쓰인 곳이 반짝반짝 거린다. 고객센터란 곳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몰라도, 한번 신청을 해야 할 것 같다. ‘12시간 뒤’ 뉴스를 받아 보면서 궁금한 게 많았으니까. 그리고 최근 들어서 안내서든 어디에서든

‘앞으로 고객센터를 이용해주십시오.’

라는 말을 자주 보기도 했다. 나는 마우스 커서를 들어 그 ‘상담신청’이라 쓰인 곳 주변을 두 세 바퀴 빙글빙글 돌렸다.

‘아니 어떻게... 상담이 된다는 거지...’

나는 뺨을 살짝 긁으며 내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12시간 뒤를 보내주는 쪽에서는 내 핸드폰 번호를 알고 있었다. 상담 신청을 하면, 바로 휴대폰이 울릴 것만 같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회사 안에는 아무도 없다. 나는 휴대폰을 쥔 채로

“큼 흠...”

한 번 목을 가다듬은 다음, 그 ‘상담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휴대폰이 울리는 대신 눈앞에 창이 하나 떴다. 직사각형 창, 하얀 바탕에 빛나는 커서 하나. 그리고 보이는 두 개의 아이디. 00년대 초반에서나 볼 수 있는 고전적인 메신저 앱 화면이다. 내가 뭐든 써 보려는데, 거기에 한줄 먼저 대화가 뜬다.

고객센터 - 안녕하십니까? 한상훈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뭐야 이런 식이었나? 채팅으로?’

나는 그 커서에다 대고 채팅을 써보았다. 제대로 되는 지 확인해보려고.

한상훈 - 여기가 12시간 뒤 뉴스를 보내주는 고객센터 맞습니까?

그런데, 내가 채팅을 올리기가 무섭게, 0.1초도 걸리지 않고 답장이 왔다.

고객센터 - 네 맞습니다. 고객님.

나는 확신이 들었다.

‘이건... 사람이 치는 게 아냐...’

사람의 손으로 이렇게 빠르게 타자를 치는 건 불가능하다. 내 머릿속으로 머신러닝이니 딥러닝, 알파고니 알렉사니 하는 단어들이 오갔다. 한마디로 인공지능. 나는 상담사에게 그걸 물어보았다.

-이거 답변해주시는 상담사 분은 사람이 아닙니까?

-사람이기도 하고 사람이 아니기도 합니다. 고객님.

괴상한 답변이 돌아온다.

‘뭔 헛소리야...’

나는 한 번 더 채팅을 쳐보았다.

-그럼 거기는 뭐하는 회사입니까? 회사는 맞나요?

-회사기도 하고 회사가 아니기도 합니다. 고객님. 저희는 뉴스를 발행합니다.

이 녀석들은 말장난을 하려고 고객센터를 차린 듯하다. 나는 보다 빠르게 타자를 두드려 보았다.

-그럼... 뉴스를 보내주는 곳이 한국에 있는 겁니까?

-뉴스를 발행하는 곳은 우주에 있습니다.

나는 손으로 탁. 이마를 짚었다. 우주에 있다니, 그야말로 안드로메다로 가는 답변이다.

-그럼 당신네들은 외계인인 겁니까?

-외계라는 것은 구분 개념일 뿐입니다. 우주는 하나입니다.

‘어이쿠 그러세요... 우주는 하나다.’

정상적인 고객센터를 기대하기는 이미 그른 것 같다. 나는 다른 질문을 던져보았다.

-우주에서 보내주는 것이라면... 저 말고도 다른 독자가 있다는 말인가요?

-없습니다. 이 뉴스서비스는 우주에서 한상훈 구독자님 단 한사람에게만 제공됩니다.

의외로 이번엔 정상인 답변이 돌아온다. 나는 살짝 화가 누그러져 다른 걸 물어보았다.

-그럼 뭡니까 대체 우주에 있는데 왜 저한테만 보내주는 거죠?

-스스로 생각해보세요.

이번엔 또 내 기대를 박살낸다.

‘스스로 생각해 봐라. 아주 좋은 선생님이시네. 굿 티쳐 납셨네 그려... 그럼... 그런 건 됐고...’

나는 12시간 뒤 뉴스에 관해 물어보기로 했다.

-앞으로 등급이 더 있나요? 몇 개나 더 있습니까?

-회원의 등급은 브론즈, 실버, 골드, 플레티넘, 다이아, 마스터, 그랜드마스터, xxxxxx, xxxxxxxxx등급이 있습니다. 고객님.

이번엔 조금 나은, 정상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뒤에 있는 xxx같은 것만 빼면.

-뒤의 xxxxx등급은 뭡니까?

-그건 비밀입니다.

나는 살짝 어이가 없어 잠시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비밀이라고? 그럼 고객센터는 뭐하려 만들어 놓은 거야?’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다시 키보드에 손을 가져갔다.

‘정상적인 답변은 포기하자. 대신 최대한 실리만 챙겨 가는 거야’

-쓸 수 있는 스킬은 어떻게 더 늘어납니까?

-스킬은 등급이 올라가며 자연스럽게 개방됩니다. 등급 업그레이드 신청을 해주세요. 등급이 올라갈수록 스킬은 강력해집니다. 특히 xxxxxx 등급부터 얻을 수 있는 스킬은 매우 강력하니 꼭 업그레이드를 해보시길 권유합니다.

-무슨 스킬인데요? 구체적으로 좀 알려주세요.

-그건 비밀입니다.

‘그건 비밀입니다... 어디 제로스신가...’

뭔지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해보란다. xxxxxx 등급이면 지금 골드보다 다섯 등급이 더 높다. 요구하는 금액도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이다. 나는 뒤이어 생각나는 질문을 몇 개 더 던져보았다.

-평소에 고객센터를 부를 수 있는 방법이 뭡니까.

-전화번호 919-31413-11721에 문자를 보내주시면 상담 채팅을 위한 메일이 보내집니다. 메일을 통해 이렇게 24시간 상담가능하십니다.

전화번호가 익숙하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예전에, 처음으로 구독 신청을 할 때 보냈던 번호다. 그 찌라시에 있던 바보 같던 그 번호. 나는 일단 그 번호를 저장해두었다.

-뉴스는 한국어로만 보내줍니까? 해외에 나가면 그 쪽 뉴스 알려줍니까?

-뉴스는 구독자의 모국어로만 보내드립니다. 한상훈 구독자님의 모국은 한국, 모국어는 한국어입니다. 뉴스 선정 역시 한국의 언론 형태에 맞춰서 보내드립니다.

-뉴스 받는 메일 주소는 변경할 수 있습니까?

-언제든 변경 가능하십니다. 고객센터를 이용해주세요.

-등급 하향이나 잠시 구독 중지 같은 거 가능합니까? 혹시나 돈이 없을 때를 대비해서요.

-가능합니다. 역시 고객센터에 문의해주십시오.

이런 건 정상적으로 답변이 온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그 채팅창을 잠시 지켜보았다. 일단 생각나는 건 대충 다 물어본 거 같다. 24시간 부를 수 있다니,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다시 부르면 될 것이다.

‘그럼 이만 채팅창을 닫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우상단 x버튼에 마우스 커서를 가져갔다. 그런데, 문득 차오르는 의문에 채팅을 한 줄 더 써보았다.

-넌 대체 뭐냐? 신이냐? 악마냐?

역시나 0.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답장이 온다.

-신이기도 하고 악마기도 합니다.

이런 쪽 질문은 제대로 된 답변을 기대하면 안 되는 것 같다. 나는 고객센터 채팅창을 닫아버렸다.

*

8시 55분. 새 메일이 왔다. ‘G 12시간 뒤’. Silver의 S가 G로 변해있다. 나는 그걸 클릭했다.

Gold 등급 회원 메일 구독기간 30일 남음

정치 – 주성원 서울시장. 우세 점쳐져

경제 – DSR 본격 적용 부동산 한파 찾아오나

사회 – 4대강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생활/문화 – 남부지방 돌풍과 천둥

세계 – 중국 총리 일본 방문

IT/과학 – 서바이벌 게임 왜 인기인가?

연예 – 더블 업 걸즈 주희 여신 화보

스포츠 – 첼시? 맨유? 특급 유망주의 고민

확실히 실버등급 때와는 다른 모양새다. 따로 카테고리 세 개를 고를 필요 없이 모두 뉴스 하나씩을 보여준다.

‘음... 이러면... 의도 하지 않더라도 호재가 걸릴 확률이 대폭 늘어나겠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스크롤을 더 내려보았다. 밑 부분은 더욱 더 변경점이 많았다.

인물검색 – 이름을 입력해주십시오.

랭킹뉴스 – 지금 사용(1회 가능)

아무 것도 없던 곳에,인물검색과 랭킹뉴스에 클릭을 할 만한 곳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게 액티브 스킬...’

불친절을 넘어 괴랄했던 고객센터가 조금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 메일이 나에게 큰 돈을 가져다 줄 거란 것은 분명해보인다. 나는 주먹을 쥐며 속으로 생각했다.

‘좋아 한 번 제대로 벌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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