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황금을 빚는 연금술사
이어진 수요일. 각각 9억1천씩 하던 동보건설과 유림산업은 오늘도 각각 28%, 22%의 상승을 보여줬다. 나는 더 욕심을 내지 않고 여기서 익절을 했다.
‘매도 매도... 그리고 매도.’
물론 여기서 더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정치테마주는 웃기게도 선거가 끝나면 모두 다 같이 하락한다. ‘마왕이 죽었으니 집에 돌아가라’라는 느낌으로. 마법이 판치던 판타지 세계의 설정은 깨지고 다 같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 때가 되면 관련정치인이 당선이 된 주식을 포함해 모든 정치테마주가 폭락한다. 그것은 역대 대통령 관련주를 보면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상승을 할 때만 해도 대통령만 되면 더 폭등할 거 같지만, 실제로는 폭락으로 끝이 난다. 당연하다. 애초에 선거 때 말로 만든 주가니까. 선거가 끝나면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이제 투표까지 3주 정도 남았다.
선거 전후로 한 번 더 흔들리긴 하겠지만, 그 땐 진짜로 잘 터지지 않는 슬롯머신이 된다. 기댓값이 낮은 도박은 하지 않는 게 답이다. 이쯤에서 빠지는 것이 현명하다.
‘매도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체결되었습니다.’
연달아 메시지가 떴다. 모든 주식을 팔고 난 뒤, 나는 방관자 입장에서 잠시 주가를 살펴보았다. 동보건설과 유림산업은 상한가를 찍을 것처럼 계속해서 들썩거렸고, 엔도바이로닉스는 점하한가에 가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광기에 눈이 벌개 져 있고 누군가는 슬픔에 가득 차 있겠구나.’
방금 전까지도 그 사기판에 몸담고 있던 나조차, 살짝 몸이 떨린다. 누가 이기건 간에 선거가 끝나면 저 주식들은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다시 마법이 걸리는 것은 4년 뒤다. 바보 같지만 그 때도 분명 누가 누구랑 친하다는 이유 하나로 대상승과 대하락을 반복할 것이다.
‘그럼 4년 뒤에나 다시 봅시다. 친구들.’
나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 다음 정치테마주 섹터를 아예 삭제해버렸다. 더 이상 내 눈에 띄지 않게. 견물생심이니까. 나는 대신 내 계좌잔고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방금 전까지 현금 신용 합해 22억에 달했던 평가금액은 신용으로 쓴 금액 7억을 빼고 나니 15억이 남았다. 정확하게는 1,556,832,164.
나는 사무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자기 일에 바쁘다. 나를 보는 사람은 없다. 나는 마치 홈런을 친 타자마냥, 양 손을 들어올린 다음 주먹을 쥐고 잠시 조용하게, 하지만 격렬하게 두 번 흔들었다.
‘좋아! 15억! 15억이이라니!’
평생 15억. 아니 5억이라도 현금으로 쥐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 자산 3억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자산 5억이 넘는 중산층은 꽤 있지만 그 사람들은 대부분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는 게 다다. 지금 나처럼 현금이 많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평생 흙수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게 지금 현실인가 꿈인가...’
살짝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 같다. 황금을 빚는 연금술사가 된 것만 같다.
‘나는 이제 진짜로 부자가 된...’
“한상훈 씨.”
그 때, 정 대리가 나를 확 현실로 불러들였다. 내가 그를 쳐다보자
“업무메신저에 파일 보냈어. 오늘도 좀 부탁해.”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돌아와 모니터를 보았다. 나는 정대리가 보낸 파일을 받아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내 비어있는 모니터에 15억이 아른거렸다. 타자가 잘 나가지질 않는다.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잠시 회사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제 업무를 볼 의욕이 아예 사라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월급 들어온 걸 확인도 하지 않았네. 전엔 월급날만 되면 뻔질나게 계좌 확인하고 그랬는데...’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며 회사를 다닐 때, 유일한 희망이었던 월급조차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린 듯하다. 나는 서랍을 열어 사직서를 꺼냈다.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사표 내는 걸 주저주저했지만 계좌에 15억이 들어와 있는 이상 더 이상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여기 다니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정보 수집을 하고 ‘12시간 뒤’뉴스를 어떻게 더 활용할지 생각하는 게 백배, 천배 나을 것이다. 어차피 의욕도 없으니 회사 입장에서도 그게 좋다. 이제 진짜로 퇴사를 할 때가 된 것이다. 나는 사직서를 들고 허 과장이 있는 곳으로 갈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러려고 하니 두 사람 얼굴이 떠오른다.
‘아 부모님...’
부모님 생각을 하니 오늘 당장 퇴사하는 건 무리일 것 같다. 나는 일단 다시 그 사직서를 서랍 안에 집어넣었다.
*
오늘은 야근이 없었다. 오후 5시 땡 하자마자 나는 바로 회사 밖으로 빠져나왔다. 최 사원이 나에게 손을 흔든다.
“여 그럼 내일 보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횡단보도를 건너 지하철역으로 왔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한정거장 앞, 강남역까지 걷기로 했다. 부모님에게 뭐라고 해야 할 지 잠시 생각을 하고 싶어서, 나는 뭔가를 생각할 때 이렇게 조금 걷는 것이 습관이었다. 나는 천천히 강남역을 향해 걸어갔다. 내 옆으로 번쩍이는 로또 광고가 보인다.
‘그래 저걸 보고... 프로토를 하려고 했었지... 로또까지 됐다면 더 좋았을 텐데...’
웬만하면 부모님 놀라시지 않도록, ‘생활/문화’를 통해 로또에 당첨된 이후 그 빌미로 퇴사를 하려고 했는데, 그래서
‘로또가 되면 그만두고 싶어요. 창업을 하려고요.’
일부러 운도 띄워놓았는데. 영 걸리질 않으니 어쩔 수 없다. 그냥 퇴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돈은 15억 있으니까. 나는 잠시 퇴사를 선언 했을 때 부모님 반응을 상상해보았다. 아버지는 내가 뭘 하든 내 편을 들어주시는 편이라서 그럭저럭 넘어갈 거 같다.
‘네가 정 그걸 원한다면 그렇게 해라.’
문제는 어머니 쪽이다. 늘 걱정, 걱정, 자식걱정이 많으신 어머니는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깜짝 놀라실 게 뻔했다. 뭐 아주 이해하지 못할 거 아니었다. 어머니 주변 친구들. 아주머니들에게서 매번
‘우리 아들은 몇 년째 취직을 못하고 있어요.’
‘우리 딸은 공무원 공부만 10년째에요.’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해서, 내가 취직을 한 사실만으로도 기뻐하고 만족하셨다. 어머니도 내 의지를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제 앞가림을 하지 못할까 걱정을 하실 게 뻔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회사 그만 둬서 어쩌려고 그러니’
15억을 보여드린다면 어떨까. 속칭 계좌인증을 해버리면. 그 땐 일단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긴 할 것이다. 15억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니까. 하지만
‘아무리 큰돈이라고 해도 이건 요행으로 번 돈 아니냐? 그래도 회사는 다니는 게 맞지 않느냐?’
하실 지도 모르겠다. 뭐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나도 주식이나 비트코인으로 큰돈 쉽게 번사람 이야기를 듣곤 했지만 그런 사람들은 몇 년 후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패가망신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 도박으로 쉽게 돈을 번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똑같이 도박을 하다가 결국 잃기 때문이다.
‘Easy come, easy go’. 쉽게 번 돈은 쉽게 날아가기 마련이다. 부모님처럼 평생 건실하게만 살아오신 분들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나보다 훨씬 오래 사셨으니, 그런 경우도 수 없이 많이 보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시적인 요행은 아닌데...’
확실히 나는 그런 일시적 요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15억을 번 경위를 생각하면, 모두 12시간 뒤에서 나온 정보를 통해서, 합리적 추론으로 번 것들뿐이었다. 첫 번째는 유훈 증권 사태를 통해, 두 번째는 지우엔터테인먼트 인수 건으로, 세 번째는 이번 정치테마주에서.
내 돈은 점점 불어날 것이다. 아주 논리적인 방식으로. 부모님은 이 15억조차 내일이면 거품처럼 사라질 돈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건 절대 아니었다. 15억은 150억이 되고 1500억이 될 것이다. 몇 달 혹은 몇 년 내로 말이다. 하지만 그걸 설득하려면, 12시간 뒤의 존재를 알려야만 한다.
‘그러면 12시간 뒤를 잠깐 보여드릴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12시간 뒤’는 마치 벽장 너머에 존재하는 나니아 세계와 같아서 부모님에게 알리는 것은 왠지 좋지 않을 것 같다. 설령 부모님이라고 할지라도 ‘12시간 뒤’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어쩐지 위험할 것 같다. 그것은 비밀로 하여만 한다. 나 혼자만의 비밀로. 머릿속으로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걍 주말에 집에 가서 직접 얼굴 보며 말씀드리고 창업을 하겠다고 해보자. 그리고 그 때 상황 봐서 대응하는 거야. 15억이 있는데 뭐 엄청 문제 삼진 않으시겠지.’
나는 대충 그렇게 뭉뚱그려 결론을 내버렸다. 결론을 내리고 나니, 어느 새 나는 강남역 사거리까지 와 있었다. 강남역 사거리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예전에 누구에게 듣기로, 돈이 10억이 넘으면 세상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100억이 넘으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던데. 아직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하긴 15억 있어도 단 한 푼도 쓰질 않았으니...’
나는 잠시 도로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도로에는 다양한 마크의 외제차도 보인다. 고등학생 시절 지방 살 때만 해도 소위 독일 3사. 벤츠, BMW, 아우디 같은 차들이 참 희귀했는데, 이 강남에서는 저런 차들은 봐도 눈길조차 가지 않는다. 너무 흔해서. 대신
‘부릉~’
차체가 낮은 차들. 람보르기니나 포르쉐 정도는 확실히 눈에 띈다. 지금 도로에서도 몇 개가 보인다. 노란색 람보르기니, 검정색 포르쉐. 나는 그걸 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했다.
‘저런 건 얼마나 하지...?’
그러던 중, 나는 문득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에 스스로 놀랐다.
‘뭐야 한상훈 너 정말 부자가 된 거 맞구나.’
예전 같았으면, 저런 차들을 보고
‘저런 차모는 애들은 대체 뉘 집 자식일까.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도 되나...’
하고 부러워 하고 말았는데. 지금은 저게 얼마일지 가격을 생각하다니. 이게 계좌에 들어있는 15억의 위력인 듯하다. 조금 있으면 세상이 나에게 관심을 기울일 것이고. 조금 더 있으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만 같다.
‘좋아 그럼 그 때까지 더 열심히 벌자구.’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휴대폰을 들었다. 주말에 집에 가겠노라고 말하기 위해. 그런데 그 때,
‘위잉~’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살짝 놀라며 통화를 눌렀다.
“아 엄마 안 그래도 전화 하려고 했는데”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별 건 아니고... 주말에 집에 간다고요.”
“그래? 그러렴.”
“엄마는 무슨 일로 전화하신 거예요? 집에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집에는 별일 없지. 그게 아니고... 좋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는데...”
좋은 이야기라니. 아무래도 관심이 간다. 나는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