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34화 (34/198)

# 34

승자독식

돌아온 월요일. 아침 8시 50분. 나는 살짝 긴장한 상태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나는 이미 6억원이 넘는 금액의 돈을 동보건설에 넣은 상태였다. 오늘부터는 정말 기민하게 대응을 해야 한다. 나는 목을 좌우로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하고, 손가락을 교차시켜 깍지를 꼈다 풀었다 하며 손을 풀었다. 메일함을 열어 놓고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55분이 되는 순간. 나는 빠르게 새로고침을 했다.

‘S 12시간 뒤’

왔다. 나는 빠르게 마우스를 놀려 ‘정치’를 클릭했다.

‘경찰 주성원 시장 성추행 혐의 수사 시작.’

나는 머리를 짚었다.

‘왜 이쪽이 뜨는 거야.’

수사는 주성원 시장과 김수향 모두 양쪽에 진행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주성원 시장 쪽이 떴다. 내가 바라는 뉴스는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봐야지. 주성원 시장이 자백했다고 한다면... 동보건설은 오늘 당장 팔아야한다.’

나는 기사를 읽어보았다. 하지만 딱히 특이할만한 것은 없었다. 간략히 내용을 정리하자면 경찰이 주성원 시장을 조사했고, 주성원 시장은 조사에 성실히 임하면서 혐의를 부인했다는 것 정도. 이미 공식성명으로 부인 했었는데, 그걸 반복해서 보도한 셈이다. 오늘은 허탕이다. 나는 이제 MTS를 켜서 주가를 확인했다.

동보건설 +5%

동보건설의 시초가는 지난번보다 100원 오른 +5% 정도에 가격에 잡혀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김수향과 이희철 선거캠프 커넥션 의혹이 반영이 된 듯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나쁘진 않은 타이밍이었어.’

어제까지만 해도 주당 40원 손실을 보고 있었지만 이제 오늘은 주당 60원 이득이다.

‘오늘 그래도 +10% 정도는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싶긴 했지만, 그래도 주가는 모를 일이다. 아직 나온 것은 달랑 사진 한 장. 그것은 주성원 시장에게 반격의 빌미가 되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전세를 바꿀 정도의 파급력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맞아 아직 아냐... 오늘 주식이 떨어지기는 조금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급등을 바라는 것도 무리다.’

주식을 샀을 때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대개 주식을 산 사람은 그 주식에 대해 긍정적인 환상을 갖기 마련이다. 누구도 자기 돈을 잃는 건 싫고, 돈을 벌고 싶으니까. 그래서 작은 호재에도

‘와 이건 상한가 감이다.’

엄청나게 좋게 생각하고, 큰 악재가 터져도

‘이건 존버하다보면 다시 오를 거야’

하고 자신을 속이곤 한다. 하지만 그런 자기기만의 끝에는 파멸만이 남게 된다. 냉정해야만 한다. 주식시장에서 냉정을 잃는 다는 것은, 바로 돈을 잃는 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혹시라도 -10%가 되면... 칼같이 손절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호가창을 바라보았다. 동보건설은 핫한 정치테마주 답게 일 초마다 몇 호가씩 엄청나게 흔들어댔다. 일이초에 몇 백 만원이 늘었다가 줄었다가 한다. 나는 MTS를 끄고 차라리 회사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

12시간 뒤. 그러니까 저녁 9시가 되었을 무렵. 나는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팬티만 걸친 상태로 냉장실 문을 열고 캔맥주를 하나 꺼냈다.

‘딱!’

손가락으로 마개를 열고 맥주를 입에 가져간 다음, 높은 각도로 들어올렸다.

‘꿀럭꿀럭꿀럭~’

톡 쏘는 탄산이 목젖을 간지럽히며 시원한 맥주가 입 안으로 들어온다.

“크~”

입가에 흘러내리는 맥주를 손등으로 닦으며 소파에 앉았다. 맥주가 평소보다 맛있다. 오늘 늦게까지 일해서 피곤이 쌓여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오늘 1억원 가까이 수익이 나서 그럴 수도 있다.

오늘 동보건설 주가는 2510에서 15%가량 올라 2890원에서 마감되었다. 주당 380원 상승 241,694주를 가진 나는 91,843,720원의 수익을 올렸다. 화장실 벽을 칠 때처럼 파괴력이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엄청난 금액이긴 하다. 계좌 잔고 총액도 처음으로 7억을 넘겼다.

‘7억이라... 이번 매매만 끝나면 좀 집부터 옮기자. 아니 차부터 살까? 아니 컴퓨터부터? 아니 그건 집 옮길 때 같이 바꿔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TV를 켰다. TV에서는 9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아마 어제 밤 늦게까지 뉴스를 보다가 잤기 때문일 것이리라.

“오늘 청와대에서는...”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뉴스를 보았다. 그런데, 그러던 중이었다.

“뉴스 특종 시간입니다. 얼마 전 주성원 현 서울시장의 전직 비서 김수향 씨가 미투를 선언해 정치계에 큰 폭풍을 일으켰었지요. 그런데 이번엔 그 미투의 주인공 김수향 씨가 이희철 후보 캠프와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폭로가 나와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강진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나는 눈을 껌뻑거리며 그 뉴스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전직 비서 김수향 씨가 미투를 선언한지 5일이 지난 오늘. 스스로를 그녀의 전 내연남이라고 밝힌 H씨가 직접 저희 방송국에 제보를 해왔습니다.”

화면은 바뀌어 얼굴이 모자이크가 된 남자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작년 여름 때부터... 올해 초 까지 만났었던 것 같아요. 2월... 아니 3월까지는 확실히 만났었고. 그러다가 돈이랑 성격 문제로 다투고... 헤어졌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김수향 씨는 7년 전, 성추행이 아니라 자신이 해고를 당한 것 때문에 주성원 시장을 미워했다고 합니다.

뉴스의 방식대로, 남자의 목소리와 기자의 목소리가 번갈아가며 나온다. 전형적인 TV뉴스의 스타일이다.

“자기가 정치계에서 성공을 하지 못한 것은 모두 주성원 전 시장이 자신을 해고해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혹시라도 TV에 주성원 시장 얼굴이 나오면 쌍욕을 하고...”

“성추행을 당했다거나 그런 증언은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안했고. 오히려 자신을 이유 없이 멀리했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잘해주려고 했는데. 그럴수록 자신을 멀리했고 그러다가 잘랐다... 이유 없이 잘랐다... 그래서 밉다...”

“그는 그녀가 이희철 선거캠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말과 함께 증거도 덧붙였습니다.”

“이게... 1월 10일 경에 나눈 문자메세지입니다.”

카메라는 그가 보여주는 스마트폰을 주시한다. 거기 안에는 연인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 쓰여 있다.

‘드디어 복수를 할 기회가 생겼어.’

‘무슨 복수.’

‘주성원 시장 말이야. 자기 이희철 알아?’

‘알지.’

‘그 사람 이번에 서울시장 선거 나오는데... 그쪽에서 좋은 제안을 받은 게 있어.’

‘무슨 제안?’

‘그건 알거 없고... 어쨌든 이번에 제대로 엿 먹이려고 7년 전 나 짜른 거 후회하게.’

문자 내용을 읽던 나는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그 벌어진 입은 그 뉴스가 끝날 때까지 한동안 닫혀 지질 않았다.

“이번 미투는 서울시장 선거라는 민감한 시기에 나와 사회적인 파장이 컸는데요. 만약 이 증언이 사실이고 이번 미투가 계획된 선거용 계략으로 밝혀질 경우 앞으로 더 큰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KVS 강진영입니다.”

*

화요일 아침. 나는 777이 이어진 계좌로 천만 원을 입금했다. 입금 하자마자 곧 휴대폰으로 답장이 왔다.

‘12시간 뒤 실버 등급 월정액 연장되었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휴대폰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와... 이게 이렇게 되네... 이틀간 하락할 때 존버 하신 분들 승리!

이희철 개새끼 그 새끼 때문에 하한가 두 번 맞은 거 생각하면...

윗분 너무 걱정마세요 어차피 오늘 내일 상한가 두 번은 기본일 테니까

두 번만 가나? 이희철 끝장인데 주성원 독주지. 5연상 아니 10연상 간다 이제부터.

동보건설 주식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아직 김수향이나 이희철 선거캠프에서는 공식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었지만, 공영방송 9시 뉴스에서 특종이 터진 이상 게임은 끝난 거나 다를 바 없었다. 8시 55분. 나는 구독기간 30일이 남은 ‘12시간 뒤’를 받았다. 정치를 클릭해보니 결국 이희철 후보의 사퇴 뉴스가 떴다.

‘이희철 시장후보 ‘주변인 관리 제대로 못 한 제 잘못’ 자진 사퇴키로. ’

나는 그 뉴스를 읽어보았다. 의혹은 진실로 드러났다. 캠프 사람인지, 김수향인지 둘 중 하나가 자백을 한 모양이다. 이희철은 동시에 자진 사퇴. 대신 이번 모략은 선거캠프의 사람이 ‘자기 혼자 알아서’한 것으로 도마뱀꼬리 자르기를 시전 했다. 정치 수업을 받으러 잠시 미국을 다녀오겠단다. 나는 오늘 비극이 일어날 엔도바이로닉스 게시판에 가보았다.

헐 시발... 이틀 전에 먹은 거 다 토해야겠네... 이희철 이거 미친 새끼 아냐

아니 시발 무슨 선거캠프 참모란 새끼가 일을 이따위로 해 할 거면 걸리지 않게 하던가.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지 스스로 내연남이란 놈을 어떻게 믿어요!

맞아요. 아직 확정된 거 아닙니다. 존버 하세요. 곧 빛 볼 겁니다.

사정은 완벽하게 변해 있었다. 이제 동보건설이 상한가에 가고, 엔도바이로닉스가 하한가에 갈 차례다. 다소 비정하지만. 정치란 게 그렇고. 정치테마주란 그런 것이다. Winner takes all. 승자독식. 진 쪽은 모두 잃고, 얻는 사람은 모든 것을 얻는다. 나는 MTS를 보았다. 지금 시간은 8시 57분. 장 열리기 3분 정도 남아있었지만 동보건설은 이미 시초가에 상한가에 가 있었다. 기분이 묘하다.

‘상한가구나 나이스!’

하는 감정과.

‘신용 되는 대로 더 살 걸.’

하는 후회가 교차한다. 하지만 동보건설은 더 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오늘은 파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테니까. 그게 바로 점상이다. 나는 MTS를 끄려고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한가가 풀리는 일이 없으리라. 그런데 그러는 중에, 내 눈에 뭔가 하나가 뜬다. 바로 정관수 시장후보의 유림건설. 그걸 보니 뭔가가 머리에 스친다.

‘...어?’

사실 이희철이나 정관수의 지지자들은 ‘주성원이 싫은 사람들’의 모임이 반으로 갈라져 있는 거나 다를 바 없었다. 이희철이 사퇴를 해버리면 나머지 표는 당연히 정관수로 갈 수 밖에 없다. 나는 맨 처음, 보았던 여론조사를 생각했다. 주성원50%. 이희철35%. 정관수15%. 이희철이 사퇴하고 그 표를 정관수가 받는다면. 주성원대 정관수 5:5의 싸움이 된다.

‘그렇다면...’

시장이 열리고, 동보건설은 상한가에 직행. 엔도바이로닉스는 하한가에 직행했다. 그리고 유림산업은 오도 가도 못하고 어정쩡한 보합권 근처에서 놀고 있었다.

‘주성원 시장 사퇴하면 우리도 가능성 있었는데... 그가 부활했으니 이제 우린 끝이야’

하는 생각과

‘이희철 사퇴하면 이제 그 표 우리 거 아닌가? 아 참 아직 사퇴는 안했지.’

하는 생각이 교차하나보다. 나는 머리를 굴렸다.

‘이 사람들 아직 이희철 사퇴가 확정되었다는 건 모른다. 그건 오직 나만 알고 있다.’

나는 깨달았다. 내 손안에 에이스가 한 장 쥐어져 있다는 사실을. 나는 고민하다가, 누군가 먼저 사기 전에. 돌아온 증거금으로 신용 7억을 써서 유림산업을 사버렸다. 물론 이 역시 베팅이었다. 주식시장에는 100% 실현되는 시나리오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상상한대로, 내가 쓴 대로 그대로 이루어졌다.

정관수 후보의 유림산업은 이희철 후보의 사퇴 기자회견이 나온 오후 2시 경. 아침 9시에 일찌감치 상한가를 간 동보건설을 따라 상한가를 찍었다. 결과적으로 내 계좌에는 각각 7억에서 30% 늘어나 9억1천만원이 된 주식이 두 개가 남게 되었다. 오늘 하루만 4억 2천 수익.

이제 서울 시장 선거는 새 국면을 맞이했다. 세 명이서 치는 고스톱. 이희철이 장난질 치다 손목이 잘려 사라지고. 주성원과 정관수 각 양단을 대표하는 후보들이 진검승부를 가리는 그림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번 역은 강남. 강남 역입니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뉴스 하나를 보았다.

‘이희철 사퇴. 주성원 대 정관수 양자대결 실현’

나는 그 제목을 보다가, 싱긋 웃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뭐 누가 이기건... 이제 관심 없어. 나는 이미 이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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