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33화 (33/198)
  • # 33

    바람이 분다

    ‘타닥 타닥 타닥’

    나는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고 빠르게 타자를 쳐 냈다. 빠르고 정확하게. 그런 다음 써낸 문서를 정 대리에게 갖다 주었다.

    “오 한상훈 씨 오늘은 진짜 빠르네? 웬일로 그렇게 기합이 들어갔어?”

    나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글쎄요. 오늘 일이 잘 되네요.”

    물론 진심이 아니었다. 입 밖으로는 그렇게 말을 내뱉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알았으니까 일 좀 그만 시켜보세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 대리는 내가 가져다 준 문서를 잠시 살펴보더니, 방긋 웃으며 말했다.

    “잘했네. 고마워.”

    됐다. 이걸로 한동안 누가 나를 부르진 않을 것이다. 시간이 빈다. 나는 잽싸게 내 자리에 돌아와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런 다음 검색창에 키워드를 적어넣었다.

    ‘이희철 광화문 방문’

    유명 정치인 답게 사진이 주루룩 나온다. 이희철 시장후보가 예전에 광화문을 찾았을 때 찍힌 사진들이다. 개 중에는 12시간 뒤에 나왔던 그 사진도 있다. 네티즌 ‘연우아빠’도 이걸 보고 저 커넥션을 찾아낸 듯 하다. 나는 이희철 시장후보의 측근과 같이 서 있는 김수향의 모습을 마우스 커서로 동그랗게 그리며 생각했다.

    ‘이 여자가 진짜... 이희철 후보와 거래를 한 걸까?’

    애초에 거짓말과 배신이 일상화된 곳이 정치권이다. 김수향은 주성원 시장의 비서로 일했던 경력을 무기로 삼아 이희철 후보 캠프에 딜을 걸었을 수도 있다.

    ‘주성원 시장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지? 고소하나?’

    나는 이어서 ‘주성원, 고소’를 검색해보았다. 곧 뉴스 하나가 뜬다.

    ‘주성원 시장 선거캠프에서는 명예훼손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김수향 씨를 고소할 예정이어서 곧 있을 검찰조사를 통해 진실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나는 머리 속으로 시나리오를 하나 짜보았다. 만약 이게 잘 만들어진 계략이라면, 김수향도 고소를 받고 검찰조사를 당할 것 정도는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김수향이 다칠 위험은 적다... 왜냐하면... 7년 전 일이니까.’

    일본 영화 중에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린 주인공이 무죄를 증명하는 내용인데, 그 과정이 매우매우 어렵다. 이번 케이스 역시 비슷하다. 본인 스스로가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보통 사람에게 일주일 전 점심에 뭘 먹었는지 기억하라고 해도 기억하기 어려운 법인데, 하물며 7년 전이라니. 주성원 시장 입장에서는 결백을 주장하려고 해도 사실상 검증이 불가능하다. 그러면서 한 달만 버틴다면, 주성원 시장의 지지율은 폭락할 것이다.

    김수향과 이희철 캠프 입장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완벽한 시나리오다. 김수향 역시 ‘7년 전 일이라 구체적인 사항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조금 잡아떼기만 하면 능구렁이처럼 수사를 벗어날 수도 있다. 오늘 기사가 뜨기 전 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이 기사가 올라온 다면... 상황이 반전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성추행 이전에 김수향과 이희철 사이 커넥션이 새롭게 조명된다면,

    ‘사건이 진짜냐? 가짜냐?’

    에서

    ‘김수향과 이희철 캠프는 무슨 관계냐?’

    쪽으로 게임의 룰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전자에 비해 후자는 조사를 할만하다. 2년 전 일이니 증인도 있을 것이다. 요즘에는 네티즌들도 무시할 수 없다. 애초에 주성원 시장의 지지층이 꽤 되었으니까. ‘연우아빠’란 사람도 그런, 주성원 시장의 지지자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이 이런 의혹을 받으니,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다. 그러니까 그 과정에서 기자든, 네티즌이든, 경찰이든, 검찰이든 이 커넥션 쪽을 파고 들다 뭐라도 걸린다면, 상황은 급변할 것이다.

    ‘이 커넥션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일단 주성원 시장 쪽에서 반격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게 크다... 이 커넥션을 발견 했다는 것만으로 주가는 더 하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내 마음은 동보건설을 사는 쪽으로 기울었다. 어차피 주식판에 100%라는 건 없다. 주식이라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신이 아니고서야 100%수익을 낼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12시간 뒤를 통해 먼저 얻은 정보가 있다. 남들보다 에이스 카드를 한 장을 더 받고 포커를 치는 거나 다를 바 없다.

    ‘그래 이 뉴스는 에이스 하나... 아니 두 장을 먼저 받은 거나 다를 바 없어 에이스 원페어를 쥐고 베팅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바보야.’

    나는 동보건설 주가를 보았다.

    동보건설 2570원 –21.1%

    동보건설은 여전히 폭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20%이상 떨어져 2570원. 나는 이번엔 동보건설 차트를 보았다. 동보건설은 반년 전 즈음. 2200~2400원 언저리에서 횡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치테마주로 휘말리기 전에 그 정도 했다는 것이다.

    ‘그럼 손절선을 –10%정도로 잡고 들어가자.’

    애초에 테마주로 엮이지 않았더라도 2400원 가치는 했을 만한 주식이다. 그러니까 주성원 시장이 선거에서 탈락한다 해도, 지금보다 10% 싼 가격은 유지되어야만 했다. 2400원보다 더 싸진 다는 것은 뭔가 주식 자체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거기서부터는 정보 하나 없는 깜깜이 베팅이 된다. 그 전에 나와야한다.

    그리고, 일단 신용은 쓰지 않기로 했다. 에이스 원 페어를 가지고 있어도 하한가 가는 주식에 신용을 쓰는 건 너무 위험했다. 신용매매한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증거금이 100%가 되질 않은 상태기도 했다. 마나를 다 쓴 마법사가, 다시 마법을 쓰려면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처럼. 다시 신용 풀스윙을 하려면 D+2인 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일단 가지고 있는 현금만 동보 건설을 사고. 화요일 날까지 뉴스를 보다가 뭔가 더 확실한 게 걸리면... 그 때 풀스윙을 하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동보건설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주말동안 검찰 조사 중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나와 버리거나, 김수향이 자백이라도 한다면, 이 주식은 떨어진 만큼 다시 날아오를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떨어져 버린다면. -10%가 되면 주저 없이 팔고 나온다.

    6천만 원은 큰돈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없어도 12시간 뒤를 지속적으로 보면 금방 복구 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현금은 626,320,505원. 나는 여기서 월정액 갱신을 위해 천만 원을 뺀 6억1천6백만원어치만 나눠서 주문을 넣었다. 워낙에 팔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매수는 금방 금방 체결되었다.

    ‘매수 체결 체결 체결’

    동보건설 241,694주

    매수가 2550 매입금액 616,319,700

    사자마자 주가는 2530원에 갔다가 2570원에 갔다가 매우 극심하게 출렁거렸다. 다시 순식간에 5백만원이 오간다. 나는 MTS를 껐다. 그걸 보고 있어봐야 마음만 심란하다. 베팅은 끝났고 이제 남은 건 나 스스로를 믿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나는 대신 동보건설 주식게시판에 가보았다.

    주성원 시장은 끝났어. 지금 이거 사는 새끼들은 뇌가 우동사리냐. 자선 사업하냐.

    오래된 주식 격언. 떨어지는 칼날 받는 거 아니다. 얘드라 형이 걱정 돼서 말하는 거다.

    이거 지금 사는 혹우 없제? 2000원 오면 사라.

    동보 건설 특급 정보 떴습니다. 10분 뒤에 지웁니다. 빨리 클릭하세요.

    네 이노옴! 초상집 찾아온 손님을 앉혀놓고 육개장은 아직 멀었느냐?

    여전히 엉망진창이다. 제대로 된 분석이나 그런 건 없다. 욕이나, 광고나, 조롱뿐이다. 잠시 후에, 나를 것으로 보이는 글도 보인다.

    와 방금 24만주 쓸어 간 거 누구냐? 어떤 병신새끼가 이걸 6억 원치나 사네... 뷰웅신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병신은 네가 병신이지... 한치 앞도 못 보는 녀석이...’

    여기서 더 얻을 건 없어 보인다. 나는 관련 창을 모두 끄고, 업무에 돌아왔다. MTS도 보지 않으려고 한다. 베팅을 마쳤으니 차분히 결과를 기다리면 될 것이다.

    *

    이 날 동보건설은 종가 2510원으로. 내 평단에서 40원 더 까인 금액에서 끝났다. 주당 40원 계산하면 금방 손실금액이 나오지만, 나는 일부러 그 쉬운 계산을 하지 않았다. 해봐야 속만 쓰리니까. 나는 대신 ‘연우아빠’가 활동한다는 정치 커뮤니티 ‘주시자들’에 들어가 그 글이 올라오길 기다렸다. 주식시장이 끝난 오후 5시경. 결국 그 글이 올라왔다.

    ‘김수향 이희철 선거캠프와 친하다는 정황증거 포착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금방 커뮤니티 화제의 글이 되었다. 댓글도 수 십여개가 달렸다.

    와 이거 김수향 맞네요. 점 위치까지 똑같고.

    옆에 있는 키는 남자는 정형수네요. 이희철 캠프 핵심 중 한 명.

    이거 냄새 나는 데요? 더 파보죠 우리가.

    이미 언론사 제보 마쳤습니다. 곧 뉴스 뜰 겁니다.

    요새 이런 핫한 글은 기자들이 먼저 찾아 본다. 왜냐, 좋은 기사감이 되니까. 잠시 후 ‘12시간 뒤’뉴스에서 알려준 것처럼. 기성 언론들도 일제히 뉴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김수향 이희철 캠프와 모종의 거래?’

    ‘계획된 미투에 걸려든 주성원 시장?’

    이 한 장의 사진은 다시 정국을 폭풍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제만 해도 이곳저곳에서 정치공세를 당하던 주성원 시장은,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에 나섰다.

    “서울시장 선거를 노리고 날아든 이 악랄한 계략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 모략을 획책한 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기 마땅합니다. 곧 진실은 밝혀지고, 정의는 승리할 것입니다.”

    돌아온 주말. 나는 살짝 긴장이 풀린 상태로 12시간 뒤를 받아보았다. 주식시장이 열리질 않으니 12시간 뒤를 봐도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 긁어본 ‘문화/생활’로또는

    ‘뮤지컬 캣츠 오리지널 팀 내한 공연 일정’

    역시나 꽝이었다.

    ‘로또는 웬만하면 기대하지 말아야 겠다...’

    나는 대신 주말에 어디 가지도 않고 지속적으로 검찰조사에 대한 뉴스를 보고, 주시자들을 비롯한 정치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했다. 딱히 뭔가 새로운 정보가 될 만한 것은 없었지만.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의 댓글 반응이었다. 며칠 전만해도 주성원 시장을 파렴치한으로 몰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

    주성원 시장 결백하면... 진짜 불쌍한 거 아니냐. 전국적으로 변태로 낙인 찍혀서 커리어 다 날려먹고...

    한 정치인의 인생이 걸려 있는데... 미투는 그냥 자기가 당했다고 하면 그만이라...

    자기가 자기 결백 증명해야되는데 어렵죠 아무래도 이게

    주성원 시장님 시청에서 만났을 때 정말 친절하고 좋은 분이셨습니다. 절대 그럴 분 아닙니다. 검찰 조사에서 밝혀질 겁니다. 기다려 보시죠.

    그 댓글을 읽다보니 바람이 부는 게 느껴졌다. 여태 불어왔던 방향과 반대로 부는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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