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31화 (31/198)
  • # 31

    4년 마다 개장하는 카지노(5)

    나는 원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대로 안쪽, 낡은 원룸이 모여 있는 원룸 촌. 조잡한 광고물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전신주 아래로 쓰레기봉투가 쌓여 있고, 포장한지 오래되어 울퉁불퉁한 시멘트 길 위에 토사물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불쾌감을 일으킬만한 풍경이지만,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기를 걸어 나갔다.

    “흠~ 흠흠~ 흠흠 흠흠~”

    그러다가, 나는 내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잠깐 멈추어 섰다.

    ‘어라 왜 콧노래가 나오지?’

    왜 나오기는. 빠방한 계좌 때문이지. 맞다. 빠방한 계좌.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나는 더 이상 빚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더 이상 직장에 메여 있을 필요가 없다. 나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 나는 머슴에서 주인이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출근길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다.

    한참 신나게 길을 걷던 나는 문득 든 생각에, 내 가슴 쪽을 툭툭 만져보았다. 양복 안쪽 주머니에 얇은 봉투 하나가 만져진다.

    ‘제대로 챙겨왔군.’

    이건 내 사직서였다. 오늘 당장 낼 건 아니지만, 일단 준비는 해두었다. 일단 내 업무용 책상서랍에 잠깐 넣어두었다가 때가 되면

    ‘빵!’

    하고 쏠 수 있도록 장전을 해놓은 것이다. 이렇게 해놓고 보니 사직서가 마치 부적처럼 느껴진다. 출근을 신나게 만들어주는 부적. 생각해보면 다닐 땐 그렇게 가기 싫었던 고등학교도. 막상 졸업식 할 때 즈음에는 가는 게 즐거웠던 것 같다. 매일 보던 친구들도 괜히 짠하고 평소 싫어하던 선생님에게도 고개 숙여 인사하고.

    뭐 대학 진학이 결정되고 수업이 느슨해져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고된 일도 끝이 날 때는 아쉬운 법이다.

    ‘다 추억이란 말이지.’

    지금 가는 이 출근길도, 곧 있으면 추억이 될 것이다. 나는 지하철을 향해 걸었다. 어제 터졌던 미투 사건 때문인지 오늘은 지하철에 율동을 추는 아줌마들이 없다. 그걸 그렇게 싫어했던 나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좋아해요~ 사랑해요~’

    그 노래를 속으로 흥얼거릴 정도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다 그것 덕분에 돈을 번 셈이니까. 지하철에 안에 들어온 나는 긴 출근길 줄에 섰다. 내 앞에 나이를 지긋이 드신 노신사분이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고 계신다. 화면 안에서는 정갈한 단발머리를 한 아나운서가 뉴스를 보도 하고 있다.

    “주성원 현 서울시장의 성추문이 서울시장 선거, 더 나아가 지방선거의 폭풍으로 등장했습니다.”

    노신사분은 뉴스를 듣다가 팔짱을 끼고,

    “쯧쯔...”

    혀를 찬다. 주성원 시장의 성추문은 그야말로 전국을 뒤집어 놓았다. 서울시장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상황에서 터진 이 핵폭탄은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 눈이 돌아가게 만들었다. 내 뒤편으로 20대 청년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야 어제 뉴스 봤냐?”

    “그거? 서울시장?”

    “어. 어이없더라.”

    “그니까. 인생 한방이야 하여간.”

    “그래도 주성원 그 아저씨 4년 전에 서울시장 경선에서 돌풍 일으킬 땐 멋있었는데. 이렇게 훅 가네...”

    “그 양반 갈 때도 예술로 가는 거지.”

    이런 상황이라면, 확신이 든다. 나는 어제보다도 오늘 더 부자가 될 것이다.

    *

    회사에 도착한 나는 오늘도 ‘12시간 뒤’메일이 오길 기다리며 주식 게시판에 들어가 보았다. 가장 먼저 내가 산 엔도바이로닉스. 어제 상한가에 가 다들 신이 나서 이희철 후보를 칭찬하고 있다.

    아무래도 차기 시작감은 이희철 후보죠. 암 그렇고말고요.

    주성원 사퇴 언제하죠? 빨리 빨리 쳐 나가야 엔바도 연상 갈 텐데

    그냥도 연상이죠. 주성원 사퇴 안하고 버텨도 답 없어요 이제. 정관수는 끽해봐야 20%되려나.

    이희철 독주체제입니다. 기보유자 분들 빡홀딩 하시고, 신규 매수자분들은 오늘이라도 사세요.

    애초에 정치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주식 사고 나서 이희철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는 꼴을 보면 조금 어이가 없다.

    ‘내일 당장 주가가 떨어지면 욕 할 거면서... 어차피 돈 벌려고 하는 거면서... 깔끔하게 돈이나 벌고 나갈 것이지...’

    나는 이어서 동보건설 게시판에 들어가 보았다. 주성원 시장의 대장주인 동보건설은 4600원이었다가 바로 하한가를 맞아 3220원이 되었다. 동보건설 게시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격정을 토해내고 있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도 보이고.

    중형차 한대 값 날아갔네요... 아 술 땡긴다...

    차면 다행이요. 저는 아파트 날아갔습니다... 술 마실 기운도 없네요.

    저 어쩌죠? 전세자금 빼서 몰빵했는데... 아내한테 뭐라고 해야 하죠? 이혼 각인가요?

    분노에 찬 사람들도 보인다.

    주성원 이 개새끼 요즘 세상이 어디라고 남의 엉덩이를 만져 내가 손모가지 자르러 간다.

    손을 왜 자르나요? 고추를 잘라야지. 아니다. 부랄을 잘라야 되나?

    같이 갑시다. 이 새끼 서울시청으로 찾아가면 되나요?

    그리고 그 두 종류의 사람들을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다.

    초상집이 여기 있다기에 찾아와 봤소. 상주 누구요. 어서 육개장 내어오시오.

    애초에 테마 쫒아서 주식 산 니들이 호구인거지. 누구 탓하지 마라.

    님들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지금이라도 엔도바이로닉스 타세요! 차기는 이희철!

    때때로 주성원 시장을 옹호하려는 글도 보였지만

    주성원 시장 그럴 분 아닙니다. 믿고 홀딩해보시죠.

    아직 의혹입니다. 팩트로 밝혀진 거 아닙니다. 주주분들 냉정을 되찾으세요.

    그들에게는 금세 반박글이 달렸다.

    뭔 냉정은 시발 콩국수 말아먹을 때나 찾어. 지금 오늘도 하한가 가게 생겼는데 시팔!

    두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아수라장이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주식시장에서는 별에 별일이 다 일어난다. 그게 감당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주식을 하면 안 된다. 여기는 그야말로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정관수 후보의 유림산업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유림산업은 상한가와 하한가로 극명하게 갈린 앞의 두 주식과 다르게 조금 달랐다. 64800 +18%. 유림산업도 어제 루머가 퍼진 순간 30% 상한가를 찍었었지만, 장 후반부에 매도 물량이 쏟아져 나오면서 18%수준으로 조금 애매하게 끝이 난 것이었다.

    ‘왜 그렇지...?’

    조금 생각해보니 답이 나왔다. 그것은 주성원 시장의 지지층과, 정관수 후보의 지지층이 정치적으로 상극이었기 때문이었다. 주성원 시장이 사퇴를 한다면 그 남은 표가 이희철에게 갔으면 갔지 정관수에게는 절대 표가 가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정관수 후보에게는 호재이자 악재인 셈이다. 이 애매하게 오른 주가는 그 정치적 계산이 반영된 주가였다. 주가는 이처럼 때때로 모호한 사회적 상황을 가격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음... 역시 그렇구만... 역시 최고 수혜자는 이희철... 엔도바이로닉스를 사길 잘했어.’

    이제 내게 남은 고민은 단 하나였다. 엔도바이로닉스를 언제 팔 것이냐 라는 것. 아직 여론조사 발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 추문으로 인해 주성원 시장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칠게 뻔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이희철 후보에게 역전을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소 한 번 더 상한가를 갈만은 하다. 동보건설에 비하면 엔도바이로닉스는 아직 덜 올랐으니까.’

    나는 오늘은 일단 한 번 더 상한가를 노려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가, 오늘 장이 열린 상태에서 이 추문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럼 완벽하다. 주성원 시장은 그 즉시 사퇴를 할 것이고, 그 표를 물려받은 이희철 후보는 쉽게 당선된다. 그럼 엔도바이로닉스는 오늘 상한가를 가더라도 팔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사이, 어느새 8시 55분이 되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메일을 받았다.

    ‘남은 구독기간 4일’

    이제 4일 남았다. 연장을 하려면 주식에서 천만 원은 따로 빼놔야 될 것 같다. 메일을 열어본 나는 다른 고민 없이 바로 ‘정치’를 클릭했다.

    ‘혹시나... 주성원 시장 혐의 시인. 시장후보 사퇴 같은 게 나온다면...’

    그런 기대를 품고서.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의외의 제목이 튀어 나왔다.

    ‘주성원 시장 미투 저격했던 전직 비서 김수향 씨. 이희철 선거캠프 인사와 비밀리에 접선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 가중.’

    나는 잠시 얼어붙었다.

    ‘이게 뭐...?’

    잠시 시간이 지나고, 굳었던 얼음이 풀리고 나자, 나는 정신이 확 든다.

    ‘맞아. 아직 성추행을 했다는 게 사실인건 아니잖아?’

    나는 아까 게시판 글에서 봤던 글들을 떠올렸다.

    ‘주성원 시장 그럴 분 아닙니다. 아직 의혹입니다. 팩트로 밝혀진 거 아닙니다. 냉정을 되찾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걸 무시해버렸다. 다들 무시하니까. 나도 모르게 군중 심리에 휘말렸던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군중 심리에 휘말린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무리를 쫒아가다 다 같이 낭떠러지에 차례로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나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만약에 이 미투 운동이 정말로 계획된 거라면... 그게 밝혀진다면... 어떻게 해야하지?’

    어차피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개미들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그거에 맞춰서 어떻게 나는 매매를 해야하는가 그것만이 내게 중요하다. 나는 급히 그 기사를 클릭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