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30화 (30/198)
  • # 30

    4년 마다 개장하는 카지노(4)

    “잘 먹었어.”

    나는 국밥집 문을 나서며 최 사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 매매는 아침에 모두 마쳤으므로 점심에 따로 혼밥을 할 이유가 없었다.

    “뭘. 지난번에 네가 산거에 비하면 훨씬 싼 국밥인데 뭐.”

    “아냐 그래도 맛있던데? 회사 근처에 저런 맛집이 있는 줄 몰랐네.”

    최 사원은 결국 다음 월급날 점심을 사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조금 가볍긴 하지만, 그래도 의리도 있고 좋은 녀석이다. 식사를 마치고 회사에 돌아와 보니 시간이 좀 남는다. 나는 인터넷을 켜서 ‘주성원 시장’을 검색했다.

    ‘주성원 서울시장. 남대문시장 들러 민생 탐방.’

    ‘주성원 대표 공약인 새 도시 사업 설명’

    ‘주성원 시장 오후 연세대학교에서 강연 일정’

    미투에 관한 내용은 아직 나와 있지 않았다.

    ‘아직 아니다... 이거로군.’

    나는 창을 닫으려고 했다. 그런데, 닫기 전 오늘 아침에 산 엔도바이로닉스 주가가 너무 궁금했다. 오늘은 보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MTS는 켜지 말고. 검색이나 해보자.’

    결국 나는 나와 타협했다. 나는 검색창에 ‘엔도바이로닉스’를 검색했다. 맨 위에 현재 주가가 나와 있다.

    [엔도바이로닉스 63100 –1.1%]

    엔도바이로닉스는 –1%대의 약세를 보이고 있었다.

    ‘-1%면 얼마가 날아간 거지? 5억 4천만원치 샀으니까... 540만원’

    540만원이면 거의 내 세달 월급이다. 아무리 미래를 알고 샀다하더라도, 조금 조바심이 난다.

    ‘에이 됐다. 이건 어차피 갈 주식이야. 괜히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하자. 일.’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는 평소와 같이 업무에 집중했다. MTS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일, 이초에 내 월급이 왔다 갔다 하는 꼴을 보노라면 제 정신이 아닐 것 같다. 어차피 내일이면 상한가에 가 있을 주식이다. 그걸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업무에 집중하는 게 낫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즈음이었다.

    ‘위이이잉’

    낡은 프린터 앞에서 문서들이 뽑아져 나오길 기다리던 내 곁으로 지나가던 최 사원이 내게 한마디를 했다.

    “야 재밌는 이야기가 있더라?”

    나는 별 생각 없이 그에게 답했다.

    “무슨 이야기?”

    왜냐하면 그는 늘 진짜 별 내용 아닌 거 가지고,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떠벌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성원 시장이 있잖아. 미투 나왔단다.”

    이번엔 그가 ‘진짜’를 물어왔다.

    “뭐어?”

    나는 깜짝 놀랐다. 물론 그 내용이 놀라워서가 아니었다. 그건 아침에 봐서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놀란 것은 시간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건 어디서 들었어?”

    “대학 동창 카톡 방에 찌라시처럼 돌던데? 주성원 시장이 비서 엉덩이 만졌다고.”

    나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지금 시간은 오후3시를 막 지나가고 있었다. 찌라시가 돈다. 나는 그에게 재차 물었다.

    “뉴스가 뜬 게 아니고?”

    “뉴스는 아직 안 떴는데, 곧 있으면 뜰 거래. 한두시간 뒤? 이거 알려준 동기가 언론사에서 일하는 현직 기자거든.”

    “...그래?”

    내가 입술을 모으고 살짝 굳어 있자, 그걸 본 최 사원이 한 마디를 했다.

    “왜 너 주성원 시장 좋아했냐? 평소에?”

    “아니 뭐... 충격적이어서 그렇지.”

    “그치? 나도 그렇긴 하더라. 그렇게 젠틀해 보이던 사람이... 하여간 사람 속이라는 게... 까보면 다 똑같아요.”

    기자가 알고 있다. 그 말인 즉, 정치테마주 주가조작에 참여하는 거물들은 모두 알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들고 있던 프린터물을 최 사원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어... 야 이거 나 대신 박 대리님한테 좀 갔다 줘.”

    “야 왜 일을 남에게 시켜... 내가 무슨 NPC야? 퀘스트 맡기게.”

    “화장실이 급해서.”

    “뭐?”

    “부탁한다.

    나는 그에게 대충 그렇게 일을 맡겨놓은 다음, 진짜 급한 사람처럼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 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 하다.

    ‘후우...’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MTS를 켰다.

    [엔도바이로닉스 83,200 +30%]

    상한가. 제대로 터졌다. 나는 주식계좌에 들어 가보았다.

    엔도바이로닉스 8840주

    매수가 64,300(+0.5%) 매입금액 542,692,000

    현재가 83,200(+30%) 평가금액 735,488,000

    아침대비손익 192,796,000

    오늘 하루 수익만 2억에 가까운 수치. 나는 주먹을 쥐고 두어 번 흔들었다.

    ‘됐어! 됐어!’

    그러다가 흥을 주체할 수 없어서 한 대

    ‘쾅!’

    하고 화장실 타일을 때렸다.

    “크으~”

    주먹이 아팠지만, 좋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 나는 약간 더 약하게 두어 번 더

    ‘쿵 쿵’

    하고 벽을 때렸다.

    ‘하루만에 1억 9천이라니! 월급으로 따지면 대충 90달? 100달? 100달이면 몇 년이지? 8년? 9년?’

    나는 암산을 하다가 때려 치웠다. 월급가지고 계산하는 건 이제 의미가 없다. 그깟 푼돈이 이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화장실 세면대에 가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한상훈 너는 이제 부자가 된 거야!’

    그런데 그 때였다. 갑자기 화장실 칸 하나에서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원수인 허 과장이 걸어 나왔다.

    “너, 뭐해?”

    나는 잠시, 쥐고 있는 주먹 그대로 허 과장의 턱주가리를 때린 다음,

    ‘위자료 청구하세요.’

    라고 하려는 상상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러진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라도 용서해줄 정도로 관대한 상태였으니까. 그는 내게 재차 물었다.

    “왜 애꿎은 화장실 벽을 치고 있어?”

    그 말에,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내가 그런 반응을 보이자, 허 과장의 표정이 싸악 굳는다. 그도 그럴 것이다. 그의 눈에는 내가 화장실 벽을 때리다가 왜 때리냐 물었더니 웃으면서 ‘그러게요.’하고 말하는 꼴이었을 테니.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살짝 미친놈처럼 쳐다보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수고 하십쇼 과장님.”

    *

    ‘409,952,665’

    나는 내 계좌에 들어있는 금액을 바라보았다. 4억.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월급 쪼개서 월세내고 통신비 내고 식비 자르고 학자금대출 갚던 신세였는데 4억이 들어있다니.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엔도바이로닉스는 내일도 상한가를 갈 기세였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 5시경 각 언론사에서 미투 보도가 나온 뒤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와 주성원 말은 뻔지르르 존나게 잘하더니 어이없는 새끼네 이거...

    원래 정치인들이 다 그렇죠 뭐. 앞에선 청렴한 척 하고 뒤에서 딸 뻘 여자애 성희롱하고.

    그나저나 이게 진짜면 웃기지 않냐? 주성원 시장. 재선 성공하면 다음 대선 때 바로 대통령 각이었는데... 비서 엉덩이 한 번 쥐고 대통령 날린 거잖아?

    그러니까 차라리 룸빵을 가든가. 왜 싫다는 애를 만지는 거야 대체 이해가 안가네.

    룸빵 갔다가 걸리면 정치질 못하니까 그렇지. 하여간 정치인도 할 게 못돼요 하여간.

    와중에 조금 냉정한 댓글도 간간히 보이긴 했다.

    아직 확정된 사실도 아닌데, 왜 벌써 난리죠?

    주성원 시장님 그럴 분 아닙니다. 그 비서 분이 조금 이상한 듯 하네요.

    이거 이희철 캠프에서 만든 정치공작입니다. 서울시장 선거 해먹으려는 더러운 계략이에요.

    언제나 진실은 밝혀지는 법입니다. 두고 보죠.

    정치판도 난리가 되었다. 아직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단계였기에, 경쟁자인 이희철이나, 정관수 시장후보는 표정관리를 하며 가만히 있었지만, 그들이 속한 당의 대변인들은 그렇지 않고 공식 성명을 내며 주성원 시장을 때렸다.

    “주성원 시장은 천만 유권자 앞에서 자신의 성추문에 대해 솔직하게 그리고 명백하게 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지저분한 추문에 연루된 사람이 글로벌 시대 국제적인 도시로 발돋움 하려는 서울의 장에 과연 어울리는지. 현명한 유권자들이...”

    주성원 시장은 12시간 뒤에서 미리 알려준 대로 급하게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하지 않았다.’고 성명을 내놓았지만, 이슈를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람들은 잘나가는 사람이 엎어진 스토리에 열광을 하기 마련이니까.

    서울 시장 선거를 한 달 앞둔 상황. 제일 유력한 후보였던 주성원 시장의 성추문 스캔들은 인터넷을 달구기 충분했다. ‘정치’뉴스란은 물론 주성원 시장 이야기로 도배가 되었고, ‘사회’에서조차

    ‘미투 운동에 관한 소고.’

    와 같은 기사가 뜨고 ‘생활/문화’에서도

    ‘일상생활에서 성추행 당하는 여성. 사회적 약자 그 이야기를 소설화한 신작’

    그런 기사들이 뜨고 있었다. 이정도면 나라 전체가 미투 운동에 휩쓸린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주가는 대체 이런 성향도 반영하기 마련이다. 특히 상한가를 칠때는, 불이 붙었을 때는 말이다.

    ‘이 정도라면... 최소 상한가 한번은 더 가야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 종일 내내, 정치뉴스와 인터넷커뮤니티를 둘러보았다. 남들은 취미 생활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다 자료 수집이었다. 최적의 매도 타이밍을 재는, 자료 수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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