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27화 (27/198)

# 27

4년 마다 개장하는 카지노

나는 미간을 짚었다. 아침 8시. 이른 아침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출근길에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내 신경을 긁는다.

“기호 1번 주성원 좋아해요~ 사랑해요~ 기호 1번 주성원 뽑아줘요~ 밀어줘요~”

월요일 아침.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괴로운 시간이지만, 나는 오늘따라 평소보다 더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휴대폰을 하다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문자하나 안 보낼 거면서 전화번호는 왜 물어본 거야?’

잠 부족으로 인한 짜증에, 그 신경을 긁는 고음이 합쳐지니 더더욱 짜증이 난다. 소리의 근원지, 지하철역 앞에는 원색 옷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가사를 개사한 트로트노래에 맞춰서 반복해 율동을 추고 있다. ‘기호 1번 주성원’이란 쓰여 있는 옷을 입고 흰 장갑을 쓴 채로 양 손을,

“뽑아줘요~”

왼쪽으로 돌리고.

“밀어줘요~”

오른쪽으로 돌리고. 나는 그를 보며 이를 살짝 갈았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아르바이트 비 받아다 자식 학비 보태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테니까. 내가 이를 가는 대상은 그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쓰인 이름이었다.

‘주성원... 지금 서울시장... 재선하려고 나왔구만... 지난번에 이희철 하고... 내가 두 사람은 확실히 거른다...’

그런데 지금 보니, 지하철역 입구 하나하나 마다, 기호 1번, 2번, 3번, 4번 차량이 전부 한 자리씩 차지를 하고 있다. 이것 가지고 거른다면, 나는 아예 투표를 하지 말아야한다.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니 대체 요즘 세상에 저런 게 먹히나?’

저 옛날 정치인이 누가 누군지,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어두운 시대에는 저런 유치뽕짝 선거활동으로 표를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요새는 검색 한 번이면 그 사람의 이력은 물론이고 평소 발언, 사건 사고, 정치 활동 모두를 찾아 볼 수 있는 시대다. 무릇 선거에서 표를 받고 싶은 정치인이라면 평소에 정책 연구를 열심히 하고 공약을 지키고 평소의 행실을 단정하게 하면 될 것이다.

‘저런 광대짓 말고 말이지...’

저 소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른 아침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은 저 시끄러운 난장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거나, 귀에다가 이어폰을 집어넣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차라리 저거 안하는 사람이 많이 뽑히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갔다.

*

회사에 도착한 나는 시계를 보았다. 8시 30분. 여느 때와 비슷하다. 메일이 오기까진 25분 남았다. 나는 그나마 부족한 잠을 채우려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런데,

‘기호 1번 주성원 뽑아줘요~ 밀어줘요~

아까 들었던 그 멜로디가 귀에서 자동 재생이 되었다.

‘으...’

나는 다시 한 번 살짝 이를 갈았다.

‘저딴 게 무슨 소용 있나?’

했던 나인데, 아주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제는 그 노래와 함께 아줌마들의 율동까지 자동재생이 되버린다. 왠지 그 유치한 가사에, 반복되는 멜로디에 진 것 같아 분하다.

‘그래 어떤 새끼들 나왔나 한 번 면상이나 보자.’

나는 쪽잠 자길 포기하고 눈을 떴다. 그런 다음 컴퓨터를 켜서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

‘서울시장 후보.’

이라고 쳐 보았다. 우수수. 수 없이 많은 사이트와 뉴스, 그리고 블로그가 뜬다. 뭐 당연한 일이긴 하다. 서울시장 선거는 수많은 지방선거 중의 꽃이었고, 가장 큰 판이었으니까. 지방선거가 4년 마다 한번씩 개장하는 카지노라면 서울 시장 선거는 판돈이 가장 큰 VIP룸이다. 그리고 당연히 판돈이 큰 만큼, 이기면 보상도 크다.

일단 서울시의 인구수는 전체 국민의 1/5에 달한다. 서울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기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 된다. 게다가 서울에는 수도의 특성상 국민여론 전체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므로 서울 시장이 된다는 것은 정, 재계에 엄청난 인맥을 얻게 된다는 의미했다.

그러니 전, 현직 서울 시장이 늘 차기 대통령 후보로 오르내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서울 시장을 하고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고. 나는 검색을 통해 ‘12시간 뒤’뉴스가 아닌 과거의 뉴스들을 몇 개 골라 읽어보았다.

‘어디보자...’

현재 서울시장에 나온 사람은 모두 5명. 각 정당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 그나마 가능성 있는 지지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셋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기호 1번 주성원이다. 재선을 노리는 현직 서울시장. 지난 번 뽑혔을 때 무난하게 시정을 운영한 덕분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역시 구관이 명관인가? 이변 없으면 이 아저씨가 되겠네...’

나는 천천히 스크롤을 내려 보았다. 그 다음 보이는 것은 기호 2번 이희철. 약사에 제약기업CEO까지 지낸 특이한 이력의 정치인. 정당 대표도 오래 했던 사람으로 지지율 2위를 달리고 있다. 사실상 주성원의 가장 큰 대항마.

‘음... 이 아저씨는 어쩌면 가능성 있을지도...?’

나는 마지막으로 기호 3번 정관수까지 살펴보았다. 국회의원 4선의 관록의 정치인. 셋 중 정치경력은 가장 오래되었지만, 지지율은 가장 낮았다.

‘음 이 아저씨는 예전부터 본 거 같은데...’

나는 세 사람 위주로 조금 더 검색을 해보았다. 딱히 마음에 드는 후보도, 마음에 드는 공약도 없다.

‘에이 이번에는 진짜 투표 걸러야 되나?’

내가 저질 선거운동은 싫어하긴 해도, 투표는 꼬박꼬박 하는 편이다. 막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 같은 건 없었지만, 민주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뽑고 싶은 사람이 없다. 나는 검색창을 내려버렸다.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더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런데 검색창을 내리고 보니 어느새 8시 55분이다. 주변에는 직장동료들도 자리를 잡고 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 돈이나 벌자 돈돈 돈이 최고지.’

나는 메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맨 먼저, 클릭한 것은 경제.

‘유통공룡 대기업. 골목상권 침투 이대로 괜찮나.’

패스. 다음은 연예다. 돈도 벌어 봤고, 특이한 경험도 해봤고. 왠지, 나도 모르게 끌린다.

‘장우빈 신들과 함께 캐스팅. 기대했던 작품.’

패에스. 오늘도 왠지 돈을 벌긴 그른듯하다. 나는 마우스를 한 바퀴 크게 돌렸다. 뭐 괜찮다. 언젠가 돈이 될 뉴스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이미 나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나는 뒤이어 습관처럼 ‘IT/과학’을 클릭하려고 했다. 그런데, 거기 위에 커서를 올렸다가도 나는 클릭까지 하지는 않았다. 본래 내가 이 ‘IT/과학’을 클릭하며 보고 싶었던 것은

‘XX제약 폐암 완치율 99%의 신약 개발 성공!’

이랄지

‘XX화학 압도적 효율의 차세대 배터리 개발!’

이라든지

‘XX게임즈 신작 대박 터져!’

와 같은 것이었는데, 여태

‘숨겼다가, 꺼냈다가. 고양이 발톱의 원리’

‘양자역학 천재들의 세계’

‘외계인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커’

와 같은 돈이 하나도 되지 않는 기사들만 주구장창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IT, 과학’에서 커서를 뗐다. 그런 다음 뱅뱅 갈 곳 없이 모니터 위를 두어번 돌리다가, ‘스포츠’에 그걸 옮겼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한방. 100만원이라도 챙길 건 챙겨야지 하는 마음.

그런데 왠지, 왠지 오늘은 맨 앞에 있는 ‘정치’가 눈에 띈다. 이름 아침부터 계속해서 그 쪽 이야기만 들어서 일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정치에 커서를 옮기고, 바로 클릭을 해버렸다. 그런데,

‘얼레?’

나온 뉴스의 제목이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유력 차기 서울 시장 후보 3명으로 압축.’

나는 그 기사 위에 커서를 내버려 둔 채 잠시 손을 입술 위에 가져갔다. 당장 돈 되는 뉴스라서가 아니었다. 그보다 어째서,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서울 시장 뉴스가 떴을까.

‘잠깐... 이거... 설마...?’

나는 메일을 내려놓고 다시 포탈사이트의 뉴스 창에 ‘정치’란에 가보았다. 현재 지방선거까지 앞으로 D-30. 정치 뉴스는 완전히 지방선거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민주주의 정치체계에서 선거란 과정이자 결과이며, 알파이자 오메가니까.

나는 이곳에서 다른 뉴스를 찾아보았다. 남북대화는 이야기가 잘 성사되어 이슈가 지나갔고, 최근까지 논의 되었던 개헌은 물 건너갔다. 남아 있는 건 오직 지방선거 뉴스뿐이었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아무래도 가장 큰 판인 서울 시장 경선에 관한 뉴스였다. 나는 곧 깨달았다.

‘이제 한달 간 정치를 선택하면... 딱히 뜰만한 게 서울시장 선거 밖에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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