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24화 (2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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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꺾여버린 꽃(4)

    나는 잠시 몸을 숨긴 채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지켜보았다. 경찰 한 사람이 거한을 지하철 아래로 쫓아 간 이후로 남아 있는 경찰은 지하철 입구 위를 지키고 서 있었다. 나는 멀리서 그들을 응원했다.

    ‘힘내라. 대한민국 경찰’

    이대로 그 거한이 도망가거나, 붙잡힌다면, 오현주가 칼에 찔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12시간 뒤’에서 나온 기사가 처음으로 무효가 된다. 나는 살짝 긴장을 한 채로 숨죽여 그곳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10분 정도 지났을 때 일이다. 지하철역에서 그 거한이 경찰의 손에 얌전히 끌려오는 게 아닌가. 나는 주먹을 쥐었다.

    ‘잡혔구나.’

    나는 여전히 그들과 거리를 둔 채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괜히 가까이 갔다가 안 좋게 휘말릴 수 있으니까. 두 경찰은 그 거한을 가운데 둔 채로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눈에 힘을 준 채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내 시력은 0.7정도. 안경을 쓸까 말까 한 수준에서 쓰지 않은 것을 택한 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멀리 있는 광경이 그나마 잘 보였다.

    거한은 두 경찰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컸지만, 두 사람 앞에 쩔쩔 맸다. 역시 아무리 무도한 녀석이라고 해도 공권력 앞에서는 무력한 듯하다. 나는 그 녀석을 보며 생각했다.

    ‘잘 됐다. 범죄자 녀석. 법의 심판을 받아라.’

    그런데 그러던 중이었다. 두 경찰과 거한이 실랑이를 벌이던 중, 경찰 중 하나가 휴대폰을 들었다.

    ‘뭐지 본부에 연락 하는 건가?’

    그런데,

    ‘위이이잉’

    내 핸드폰이 울리는 게 아닌가. 나는 조금 더 몸을 숨긴 채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예 선생님 112 경찰입니다. 선생님께서 신고하신 사람 신병 확보했습니다.”

    “아 네 다행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 뭐하는 사람이던가요?”

    “스토커의 일종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신원 조회를 해보니 전에도 모 연예인을 따라다니다가... 체포된 전과가 있네요.”

    역시, 저 거한은 오현주의 스토커였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였나 일본에서였나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 본 것 같다. 스토커가 같이 손 한 번 잡아 보지 못한 연예인을 가지고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해놓고 무시를 한다든지, 사귀는 도중 다른 사람과 바람을 폈다든지 하는 괴상한 망상을 하다가, 칼로 무참히 살해해버린 사건 말이다.

    ‘으... 무서운 녀석.’

    나는 살짝 몸을 떨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경찰이 약간 이상한 소리를 했다.

    “뭐 근데... 다행이도 생각하신 만큼 아주 위험한 사람은 아니었네요.”

    “네? 위험한 사람이 아니었다고요?”

    저렇게 기다란 흉기를 가지고 있는데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니. 나는 휴대폰을 든 채로 고개를 빼꼼 내놓고 나와 통화하고 있는 경찰을 쳐다보았다. 그는 내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네 그렇게까지 누굴 찌르고 할 만한 흉악범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흉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그런 말을 하자, 그 경찰은 한손에는 나와 통화하는 휴대폰을 든 채로 나머지 한 손으로 거한의 품에서 기다란 뭔가를 꺼냈다.

    “아... 네 그 흉기 말인데요...”

    그런데 그 광경이 매우 이상하다. 경찰은 은빛으로 빛나는 그 물건의 중간 부분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보는 내 눈에는 순전히 칼날을 손에 쥐고 있는 것으로만 보였다.

    ‘아니 저럼 손에서 피 안나나?’

    나는 경찰의 손을 더 잘 보기 위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그 때, 휴대폰 너머로 경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이 보신 건 흉기가 아니라. 삼각대였던 것 같습니다.”

    “삼각대요?”

    그 때, 내가 놀라서 묻는 순간, 경찰의 손에 있던 그 기다란 흉기가 세 갈래로 쪼개졌다. 나는 순간 벙 쪘다.

    “네. 이 사람은 흉기를 가지고 다닌 게 아니고... 그냥 컴팩트 카메라와 삼각대를 가지고 다니면서...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저게 흉기가 아니었다니. 내가 멍 하니 서 있는 동안, 경찰은 마지막으로 감사인사를 했다.

    “어찌되었든 신고 감사드립니다. 생각하신대로 흉악범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범죄자긴 범죄자였으니까요.”

    “아... 네”

    거기까지 말한 순경은 나와의 통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내 휴대폰은 주머니에 집어넣고, 그 사람들 가까이에 다가가 보았다. 그 거한은 여전히 경찰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 사진 찍는 게 뭐가 문제에요!”

    “그 사람은 널 안 좋아하니까 그렇지.”

    나는 주변의 여러 행인처럼 잠시, 그 광경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듯 구경을 했다. 방금 전까지 나와 통화를 했던 경찰의 손에 덜렁덜렁 흔들거리는 삼각대가 보인다. 그를 쫒아가 잡아온 경찰 손에는 핑크색의 컴팩트 카메라도 쥐여져 있다.

    “카메라 안에 보니까. 오현주 씨 몰래 촬영한 사진이 여러 장이네. 서에 가셔서 말씀하시죠.”

    정황을 보아하니, 이 사람은 오현주의 스토커는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럼 기사에 나온 흉기에 찔린 오현주는... 어떻게 된 거지?‘

    내가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 때였다. 갑자기, 그 거한과 경찰 두 명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응?’

    나는 속으로 뜨끔 했다. 여태 이번 사건과 상관없는 방관자처럼 서 있었는데, 내가 신고한 사람이라는 걸 들켰단 말인가. 그런데 그 때, 경찰 한명이 입을 벌리고 신음과 같은 소리를 내었다.

    “우와...”

    지금 보니 나머지 한 명도 마찬가지다.

    “와...”

    나는 마지막으로 거한의 표정을 보았다. 마스크를 벗은 거한은

    “헤헤...”

    아주 순진한 표정으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사람들처럼. 나는 강렬한 데자뷰를 느꼈다.

    ‘이거 방금 전에도 한 번 느껴 봤는데?’

    나는 곧 깨달았다. 이 사람들은 나를 보고 그런 표정을 지은 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내 바로 뒤에 병원을 나온 오현주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나는 무의식적으로 거기 동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해맑게 웃고 있는 거한 뒤로, 그와 똑같은 키에 장발을 한 빼빼 마른 남자가 달려오고 것이. 그를 본 나는 살짝 고개를 내려 보았다. 그 장발의 손에는 분명히, 흉흉하게 빛나는 흉기가 들려 있었다. 나는 크게 소리쳤다.

    “저 사람!”

    하지만 경찰 두 명은 오현주의 마법에 걸려서인지 반응이 늦었다. 둘은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 사이 장발은 두 경찰을 넘어서서 나에게, 내 뒤에 있는 오현주에게 달려왔다. 순간이지만, 머릿속이 폭발할 듯이 돌아갔다.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하는 생각과

    ‘흉기를 지닌 사람과는 절대 맞붙지 마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교차되었다.

    ‘어쩌지?’

    나는 그 자리에 굳어 옴짝달짝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때, 나보다도, 경찰들보다도, 먼저 반응을 한 사람이 있었으니.

    “안 돼에!!!”

    바로 그 첫 번째로 잡힌 그 거한 스토커였다. 그는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장발을 보고, 초인적인 움직임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와이셔츠를 붙잡고 늘어졌다. 오현주를 향해 달려오다 방해를 받은 장발은

    “이 돼지새끼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내지르며 그대로 흉기를 휘둘렀다.

    ‘푸욱!’

    흉기는 거한의 옆구리를 그대로 찔렀다. 어찌나 깊게 찔렸는지, 빛나던 은빛 섬광이 보이지 않을 지경. 순간.

    “까아아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고,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그 때, 빛나던 칼날이 거한의 몸 속으로 사라진 순간, 내 머릿속에는 방금까지 울리던

    ‘흉기를 지닌 사람과는 절대 맞붙지 마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사라지면서, 굳었던 몸이 풀려버렸다. 제어 장치가 사라진 나는 귀신처럼 장발에게 달려들었다. 장발이 거한의 허리에서 흉기를 꺼내려 낑낑대는 사이, 나는 장발의 와이셔츠를 붙잡고, 한쪽 다리를 들며, 그 반동으로 그대로 그를 대로 바닥 위에 내려꽃았다.

    ‘콰앙!’

    커다란 굉음이 땅을 타고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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