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23화 (23/198)

# 23

꺾여버린 꽃(3)

거구의 남성은 잠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멈추어 섰다. 나는 샌드위치 가게 안에서 그 남자를 지켜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수상한 점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지금은 8월 중순. 아직 그래도 말복 더위가 남아 있는 시기인데, 어두컴컴한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수상하다.’

싶었던 나는 그 바람막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바람막이 안에는 뭔가가 막대 같은 것이 음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언가, 각을 잡히게 만드는 기다란 물건. 평소 나라면 분명, 작은 책자라던가 커다란 크기의 스마트 폰이라든가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

‘범인은 180cm 크기의 남성으로 마스크를 쓴 채 오현주 씨에게 접근하여 날카로운 흉기로 그녀의 상복부를 두세 번 찌른 후 그대로 달아났습니다.’

그 기사를 본 나에게는, 그 윤곽이 100% 흉기로만 보였다. 나는 문득, 내가 중학생 시절. 유도 사범이신 아버지가 나와 동생을 앉혀 놓고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

“상훈아 수정아”

“네 아버지.”

“네 아빠”

“너희가 우리 도장에서 수련한지... 지금... 몇 년째지?”

우리 남매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 도장에 다녔다. 우리가 살던 곳은 지방이었지만, 다들 피아노니 태권도니 하나 즈음은 다니던 시절이었다. 형편이 넉넉지 않던 부모님에게는 다른 사교육장을 보내는 것보다 자신들이 운영하는 도장을 보내는 게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7년이요.”

“5년.”

아버지는 그 말을 듣더니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아버지는 세월이 벌써 그렇게 됐나 하는 표정을 짓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그... 내가 늘 말하지만, 유도는 자기 자신의 심신을 수련하기 위한 것이지. 남을 때리기 위해서 배우는 게 아니다.”

그 말에, 나는 힐끔 수정이를 보았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인 수정이는 여자애치고 큰 키에 도장에서 배운 기술로 자기를 놀리는 남자애들까지 업어 치고 다녔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그걸 돌려서 말하기 위해 우리 남매를 부른 듯싶었다.

‘수정이 얘 때문에 나까지 휘말렸네...’

나는 속으로 투덜댔다. 7년을 유도를 배우면서도 나는 대련 시간 외에는 단 한 번도 누굴 메치거나 한 적이 없었으니까.

“유도 기술은 정말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 써야지. 자기를 놀린... 아니 자기를 기분 상하게 했다고 써서는 안 돼. 알겠니?”

“네.”

“네에.”

“너희들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기도 해. 너희도 배워서 알겠지만, 유도 기술이 통하는 건 체급이 맞는 상대에게 통하는 말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나중에는 20kg 30kg 더 나가는 상대를 메치기는 어렵단 말이야.”

나는 살짝 수정이를 째려보았다.

‘너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너가 지금 때린 남자애들 조금 있으면 너보다 10cm, 20cm는 더 클 거거든.’

수정이는 자기가 타겟이라는 걸 알고 조금 풀이 죽어 말했다.

“네에...”

“그럼 알았으니 됐다.”

훈계를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셨는지 한 마디를 더 하셨다.

“아. 그리고 흉기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가라. 체급이 어쩌고 하건 간에 말이야. 어떤 격투기의 유단자도 흉기를 든 강도를 만나면 도망가는 게 상책이야. 아무리 어설프게 휘두르는 흉기라고 할지라도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까. 알겠지?”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듣다가, 문득 떠오른 의문에 아버지께 물었다.

“흉기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강도를 만났을 때는요?”

“그 때는...”

그 때, 뒤편에서 그 광경을 보고 어머니가 끼어 드셨다.

“그 때도 도망가야지 괜히 이상한 일 휘말리잖니.”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무도가 정신이 아니...”

그런데 그 때 어머니는 아버지의 등짝을 크게 한 번 때렸다.

“무도가 정신은 개뿔. 가계에 하나도 도움 안 되는 거 가지고...”

등짝을 맞은 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두고 내게 말했다.

“됐고. 상훈이 너는 이제 도장은 그만 다녀. 이제 고등학생인데 공부해야지.”

*

그 남자는 초조하다는 듯 연달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가 살짝살짝 움직일 때마다 바람막이 안의 물건의 은영이 확실히 보였다. 그 기다란 물건은 위로 갈수록 끝이 오목해져 갔다.

‘저건 100% 흉기다.’

흉기를 가진 상대에게 맨몸으로 상대를 하는 건 매우 무모하다.

‘아무래도 경찰에 신고를 해야...’

나는 시계를 보았다. 8시 20분. 이제 범행까지 30분 남았다.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한다. 그런데 그 때였다. 갑자기 그 남자가 후다닥, 어디로인가를 향해 달려갔다.

‘뭐야?’

아직 30분 남았는데, 나는 그를 눈으로 쫒았다. 남자가 갑자기 향한 곳은 지하철 역 안이었다.

‘뭐지? 왜 저러지?’

나는 먹고 있던 샌드위치를 대충 치워버리고, 샌드위치 집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그 때였다.

‘부릉~’

내 코앞에, 커다란 밴 하나가 섰다. 높이가 웬만한 사람보다 큰, 삼각별이 달려 있는 밴. 잠시 후 밴의 문이 열리더니,

“그럼 갔다 올게. 30분 정도 걸릴 거야.”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높고 청아한 여자 목소리. 낯이 익다. 나는 잠시 이 목소리를 어디서 들었을까 잠깐 생각해보았다.

‘TV.’

내가 답을 내리는 순간, 시간이 멈추었다. 아니, 시간이 멈추었다고 느껴졌다. 그 밴에서 엄청난 미모를 가진 여자가 내리면서부터 말이다. 키는 큰데, 얼굴은 작다. 목에서부터 이마까지 피부가 백옥 같아 빛이 나고, 이목구비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그 미모에 압도당해 잠시 그 자리에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그녀는 연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내 곁을 스쳐지나갔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뜨거운 냄비를 잡고 손을 떼는 것처럼, 뾰족한 물건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눈을 감는 것처럼. 그보다 원초적인 움직임은 없었을 것이다. 그 후로 나는 한 3초정도. 그녀가 추병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재미있는 점은, 그런 것이 나 뿐만이 아니었단 점이다. 나를 비롯한 내 주변에 있던 행인들은 남자고 여자고 성별 상관없이, 그녀의 모습을 보느라 얼이 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병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야, 나머지 사람들은 그제야 얼음이 땡. 한 것처럼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봤어? 오현주다 오현주. 완전 여신이다...”

“봤어. 나 정말 정신 놓고 봤어. 침 흘릴 뻔했다니까.”

“나도 나도 진짜 시간 멈춘 줄 알았어.”

“나도. 사람이 아니다 진짜...”

그렇게, 그녀의 미모는 마치 주변 사람에게 타임스탑을 걸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뽐낸 던 것이다. 잠깐 정신을 놨던 나도 고개를 두어 번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그 사이,

‘부웅~’

그녀를 태우고 왔던 밴은 바로 낮은 배기음을 내며 어디로인가가 달려갔다. 나는 그 밴을 쳐다보고서야 조금 정신을 차렸다.

‘매니저 차량이 논현로 길가에 도착한 것을 보고 범행에 나선 점 등을 들어 주변 지인의 계획적인 범죄로 보고 수사에 나섰습니다.’

그 밴 역시, 기사에 나온 적이 있었다.

‘저게 그 매니저의 차량이로군... 30분 뒤에 돌아올... 그럼 범인은...?’

나는 지하철 쪽을 바라보았다. 범인은 분명 매니저 차량을 보고 지하철역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 말인 즉, 매니저의 차량도 알고 있단 소리가 된다.

‘뭐지? 어떻게 매니저 차량을 아는 거지... 스토커인가?’

그 때, 지하철역에서 그 녀석이 나타났다. 나는 힐끔 그 녀석을 보았다. 그 녀석은 나는 안중에도 없이, 오현주가 들어간 추병원 정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품 안의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저 녀석 100% 범인 이다...’

이제 완벽히 확신이 든다. 녀석이 있는 지하철역에서 살짝 떨어져 휴대폰을 들었다. 아무래도 신고를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냥 칼 든 남자가 병원 앞에 서 있다고 하자. 칼은 직접 보진 못했지만... 기사에서 봤으니까. 그 정도면 신원을 밝히고 신고를 해도 별 문제없을 거야.’

생각한 나는 다시 휴대폰에 112를 찍었다.

‘이것 때문에 귀찮은 일에 휘말릴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지금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그게 문제냐.’

하는 생각에 그대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112 경찰입니다.”

“추 병원 앞에 어떤 남자가 흉기를 들고 서 있습니다. 오셔서 조사 좀 해주시겠어요?”

“흉기요? 어떤...?”

“잘은 모르겠는데, 번쩍번쩍 빛나는 게 무슨 칼 같아 보였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번쩍번쩍’하는 걸 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전적으로 ‘12시간 뒤’에 나온 기사에 의지해 말을 꾸며냈다.

“네 모자도 눌러 쓰고, 검은 색 마스크에 지금 바람막이 까지 입었더라고요. 누굴 찌를 까봐 걱정되니까 빨리 좀 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신고 전화를 마친 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8시 30분. 범죄가 일어나기 20분 전이다. 나는 지하철에서 살짝 떨어진 쪽에서 그 녀석을 지켜보았다. 그 녀석은 지하철 역 근처에서 서성이면서 힐끔힐끔 병원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던 중이었다. 경찰차 한 대가 이쪽을 향해 접근했다.

내가 112에 통화를 한지 채 5분이 안 돼서다. 병원 앞을 서성이던 거한은 그 경찰차를 보더니, 그가 있는 쪽으로 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지하철 안쪽으로 들어갔다. 경찰차에서 내린 두 순경은 자신들의 차를 보고 도망간 그 거한을 본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뭐라 이야길 하더니, 둘 중 한 명이 그 거한을 따라 지하철 안으로 쫓아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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