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20화 (20/198)

# 20

거품이 살짝 올려진 맥주

돌아온 주말. 나는

“끄으~”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나 메일을 받아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주식시장이 열려 있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전에, 내가 가진 돈은 모두 지우엔터테인먼트에 몰빵이 되어 있었기 때문.

재테크의 제 1법칙이 있다면, 돈을 버는 것은 돈이란 점이다. 현금은 없고 주식만 잔뜩 들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기껏 해야 ‘생활/문화’에서 로또 기사를 찾는 것 정도. 로또는 천원만 있어도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기대했던 로또 기사는 나오질 않았다.

‘오늘의 리빙 포인트 – 비듬이 많아질 때는 식초로 머리를 감아보세요.’

천분의 일이나 만분의 일정도 확률 정도 되는 것 같다.

“아... 오케이... 알았습니다... 혹시 비듬 많아지면 써먹어 볼게요.”

나는 대충 메일을 확인한 다음 그걸 내려버렸다. 어차피 지금 중요한 것은 지우엔터테인먼트가 몇 번이나 더 상한가를 가느냐다. 나는 검색창을 켜 ‘지우엔터테인먼트’를 검색해보았다.

‘지우엔터테인먼트 중국 BEU그룹에 피인수’

‘이제 중국 걸그룹? 나인테일 소속사 지우엔터 중국 기업에 피인수’

하루가 지난 지금, 각 언론사에서는 엄청나게 이번 인수합병에 관한 기사를 내쏟고 있었다. 워낙에 비밀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서 그런지 충격은 더 큰 듯 했다. 기사 댓글을 보면

와 BEU... 이거 실화냐?

소녀가장 나인테일 이제 꽃길만 걷자.

하연서 이제 짱깨 머니 엄청 긁겠네... 부럽다...

그런 글들 일색이었다. 댓글 분위기만 봐도 분명 이건 상한가 한 번에 끝날 일은 아니었다.

‘땡길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땡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인터넷 창을 닫았다.

*

다시 날들이 지나갔다. 일요일 지나 월요일. 오늘도 일찍 출근을 한 나는 아침에만 살짝 매수 호가를 확인했다. 지우엔터테인먼트는 장 시작하기도 전에 주식을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장 시작 9시가 됨과 동시에 +30%. 소위 차트 상에 점으로 상한가에 가 있다 해서 말하는 점상을 찍어버렸다.

현재가 5070(+30%) 평가금액 97,044,870

나는 잠깐 주식잔고만 확인한 다음 바로 업무에 복귀했다. 첫날에는 워낙 긴장이 돼서 손에 일이 잡히질 않았는데, 오늘은 오히려 하는 일마다 잘되고 신이 났다. 이어진 화요일.

현재가 6590(+29.9%) 평가금액 126,139,190

마찬가지로 점상이었다. 3연상. 조금 흔들리기라도 하면 나도 팔까 하는 생각이 들 텐데. 워낙에 완고하게, 단 한주도 상한가 아래서 거래가 되질 않았다. 소위 ‘팔면 호구’상태. 나는 1억이 넘은 계좌잔고를 보면서도 하루 더 참기로 했다. 이어진 수요일 아침.

현재가 8565(+29.9%) 평가금액 163,942,665

오늘도 지우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점상으로 시작되었다. 무려 4연상. 5700만원치 주식을 산 내 계좌 잔고는 그 세배에 가까운 1억6천에 육박했다. 주식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와 4연상 끝내준다. 역시 왕사장 돈이 좋다니까.

이거 얼마나 더 갈까요? 5연상? 6연상?

최소 10연상 가야죠!

하지만 오히려 그런 글을 보니 불안한 마음이 든다. 주식판에는 ‘가장 장이 좋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다.’라는 격언이 있다. 이번처럼 ‘중국의 거부가 돈을 쓰기로 했다’호재에 일시적으로 돈이 몰릴 때, 거품은 순식간에 불어나지만 빠질 때 거품은 역시 순식간에 가라앉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근래 생겨났던 비트코인 거품도 얼마나 대단했던가. 하지만 대다수는 그 거품에서 빠져 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들 폭등에 취해 있을 때,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할 때, 냉정하게 수익을 챙겨 빠질 생각을 하는 것이 고수다. 보통 이렇게 연상을 찍은 주식의 그 다음 행보는 비슷한 기울기를 가진 폭락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

나는 고민에 빠졌다. 월요일, 화요일은 거의 고민을 하지 않았지만, 오늘 만큼은 하루 종일 고민을 하느라 업무에 집중을 하질 못했다. 입사동료 최 사원이

“어이 이봐 한상훈 오늘 왜 그래. 여자 친구한테 한소리 들었어?”

라고 할 만큼.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여기에 몰려 있는 내 자금은 1억 6천. 언제 어떻게 파느냐에 따라 수천만 원이 오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오후 1시경. 잠깐이긴 하지만, 누군가의 대량 매도에 순간 상한가가 풀렸다. 이내 다른 개미들이 달려들어 상한가를 메우긴 했지만, 잠시라도 상한가가 풀렸다는 것은 언제고 폭락이 올 수 있다는 예고와도 같았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가격은 거품이다... 아무리 중국 회사에서 인수를 해주긴 했어도, 갑자기 주식 가치가 3배 이상 갈 이유는 없어. 잘 쳐줘 봐야 2배 수준... 그러면... 팔까?’

하지만 여전히 상한가에는 잔량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다. 뒤늦게 달려든 개미들이 눈먼 돈으로 가격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민하다가, 내일 팔기로 결정했다.

‘그래. 어차피 맥주도 살짝 거품이 올라간 맥주가 제일 맛있지. 오늘 까진 별 일 없을 것 같으니... 내일 팔자. 상한가 가도 팔고, 상한가에 준하는 가격이라도 팔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장이 끝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우엔터테인먼트는 4연상을 기어이 수성해냈다. 결국 운명의 목요일이 되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장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오늘은 점상이 아니었다.

현재가 9765(+14.1%)

주식은 상한가의 절반 수준인 14%대에서 거래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개미들도 부담을 느끼는 가격에 올라왔단 소리다.

‘좋아 그럼 여기서 팔자.’

나는 호가를 셋 정도로 나누어 매도주문을 넣었다. 내가 가진 주식은 몰리는 돈에 비하면 그다지 많은 양은 아니었기 때문에, 주식은 금방 매도가 되었다.

‘위이~ 위이~ 위이~’

매도체결을 알리는 울림이 세 번 울리고, 나는 내 잔고를 확인해보았다.

계좌잔고 187,156,665

일억 팔천. 지난 주 금요일에 5800만원 밖에 없었던 내 계좌는 순식간에 3배 이상 불어나 있었다.

‘됐어.’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이렇게 주식을 팔고 난 다음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왜냐하면 내가 팔고 더 오르면 속상하니까. 나는 하루 종일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평소처럼 야근을 하다가 회사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그제야 오늘 지우엔터테인먼트의 종가를 보았다. 그런데 지우엔터테인먼트의 종가는

7700(-10.1%)

내가 팔았던 가격보다 훨씬 빠져 있었다.

‘뭐야?’

나는 오늘 주가 차트를 보았다. 내가 팔았던 +14%에서 시작된 주가는 오전에 +30%. 5연상을 찍어버렸다. 아마 이때 MTS를 켜봤다면 나는 땅을 치고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14%에서 팔았는데 주가가 30%에 가버렸으니까. 아마 상한가에서 팔았다면 2천만원 이상 수익이 더 났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것만 해도 잘한 것이었으니까.

오전 11시 즈음. 상한가에 가 있던 지우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갑자기 상한가가 풀리더니 그대로 주가가 수직 낙하하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개미들이 달려들어 주가가 반등하는 모습도 보이긴 했지만, 결국 대세 하락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오전만 해도 타오르던 주가는 –10%에서 차갑게 식어 끝이 나버렸다.

‘오전에 상한가에 산 사람은... 오늘 하루만 –30%넘게 났네...’

오늘은 주식게시판에 들어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마 푸른 지옥탕에서 끓고 있는 개미들의 아우성이 가득 차 있을 테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나도 운이 좋았다. 아무리 실력 좋은 주식 트레이더라고 할지라도 이런 것까지 모두 다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러나 저러나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좋아 욕심 부리지 않고, 적당히 빠져 나왔군. 이정도면 따악 맥주에 거품 살짝 얹어서 시원하게 들이 마신 격이 되었어.’

나는 웃으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 맥주 생각하니 갑자기 시원한 맥주가 땡긴다.

[이번 역은 교대. 교대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마침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교대역이라면 딱 지금 전화하면 집에 갈 때 즈음 치킨이 도착한다. 나는 지하철 안에서 미리 전화를 해두었다.

“아 여기 순살반반 한 마리랑요. 생맥 1000cc짜리 있죠? 네 그거 하나 갖다 주세요.”

*

우리 집 원룸 앞.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서 치킨이 오길 기다렸다.

‘부웅~’

아니나 다를까 빨간 헬멧을 남자 하나가 오토바이를 타고 온다. 나는

“반반에 생맥 여기요.”

배달원은 내게 돈을 받고, 치킨을 건네준 다음

“맛있게 드십쇼오”

부르릉 하고 다시 떠났다. 나는 양 손에 치킨과 맥주를 든 채로 원룸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집에서 치킨 뜯을 생각을 하며 기쁨에 찼다. 1억 8천. 빵빵한 계좌를 안주 삼아 치킨을 뜯는다면 야근의 피곤 따위는 한방에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원룸 안, 우편함에 뭔가가 꽂혀 있다. 301호 내 것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모두.

‘뭐야 이거?’

나는 그걸 주워 들었다. 보낸 사람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그리고 그 안에는 커다랗게 웃는 남자의 얼굴이 있다.

‘아... 이제 곧 지방 선거지?’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나는 일단 그걸 들고 집에 왔다.

“서울 시장 누가 하든...”

나는 그 우편물은 대충 어디다가 던져버린 다음 TV 앞에 치킨과 맥주를 셋팅하기 시작했다. 방금 던진 그 우편물이 어마어마한 돈을 가져다 줄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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