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7화 (17/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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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 집으로 입양된 고아

    내게 절호의 기회를 준 카테고리는 ‘연예’였다. ‘경제’에서 쓸데없는 부동산 뉴스를 받아본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연예’와 ‘IT/과학’을 연달아 클릭했는데, ‘연예’에 뜬 기사 제목을 보고 눈이 확 뜨였다.

    ‘지우엔터테인먼트. 중국 BEU그룹에 피인수’

    피인수. 주식업계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이벤트이다. 어떤 기업이 다른 기업한테 피인수가 되면 새로운 모母회사에 의해 엄청난 자금이 들어오게 된다. 게다가 보통 모회사는 자子회사를 인수할 때 자신의 본래 사업의 규모를 키우거나 연계를 시키기 위해 자회사에게 새로운 수익창출 모델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피인수가 되면 보통 모회사의 자금으로 자회사의 자금사정이 급격히 나아짐은 물론, 매출도 상승하면서 재무제표가 급격히 좋아지게 된다. 그야말로 모母회사 교체는 흙수저 주식이 금수저 주식으로 탈바꿈하는 이벤트인 것이다. 나는 주저 없이 그 기사를 클릭했다.

    *

    국내 종합 엔터테인먼트사 지우엔터테인먼트가 중국 BEU그룹에 피인수 되었다. 오늘 지우엔터테인먼트 최대주주인 김동일 지우엔터 창립자는 보유지분 32.67%를 중국 BEU그룹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지우엔터테인먼트의 최대주주는 BEU그룹으로 변경되었으며, 지우엔터테인먼트는 BEU그룹의 다양한 중국내 자회사(BPU, 신화영화사)등과 협업, 국내 아티스트들을 중국 내 연예사업의 진출로를 확보하게 되었다.

    *

    ‘지우엔터테인먼트’확실히 들어본 적이 있다. 나는 MTS를 켜서 지우엔터테인먼트를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주식의 가격보다도 종목 상단에 문구 하나가 눈에 띈다. 붉은색으로 쓰여 있는 ‘관리종목’이란 단어.

    ‘관리종목이라고?’

    관리종목이란 회사가 몇 년 연이어 적자를 내거나, 아니면 존립의 위기에 섰을 때 붙는 딱지다. 1년 이상 적자를 더 내거나, 재무제표가 좋아지지 않았을 때, 그대로 상장폐지 절차를 밟는 주식에 붙이는 일종의 낙인. 문자 그대로 특별 관리를 받는 주식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관리종목이 붙어 있는 주식은 매매하지 않는 편이 낫다. 언제 어떻게 상장폐지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장폐지가 되면 주권은 바로 휴지조각이 되거나, 장외로 넘어가 소수끼리만 거래가 가능하게 된다. 이럴 때도 보통 휴지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에 거래 될 뿐.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거 약간 위험한 주식인데?’

    나는 지우엔터테인먼트 주가 차트를 찾아보았다.

    ‘헐...’

    주가 차트는 분명한 우하향 곡선을 띠고 있었다. 때때로 급등이나 급락이 있긴 했지만 결국 주봉이나 월봉으로 보면 손으로 그린 듯한, 마이너스 기울기를 가진 일차함수의 그래프를 가졌다.

    ‘3년 전만 해도 18000원이었는데... 지금 3000원 밖에 안하네... 6분의 1토막. 이러면 한강 간사람 이미 많겠구만...’

    보통 어떤 주식이든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는 법인데, 이 주식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꾸준히 마이너스가 났다. 나는 재무제표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재무제표 역시 요상하다.

    ‘응? 근데 매출은 괜찮네?’

    매출은 꾸준히 나오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소폭 성장을 하고 있었다.

    ‘여기 소속된 가수나 탤런트가 누구지...’

    나는 검색 창을 열어 지우엔터테인먼트르 검색했다. ‘소속아티스트’명단 제일 위에, ‘걸 그룹 나인테일’이 보인다.

    ‘아... 나인테일이 여기 회사구나.’

    걸그룹 나인테일은 우리나라에서 세, 네 번째로 큰 팬덤을 가진 걸그룹이었다. 특히 리더인 하연서는 국내 걸그룹 비주얼 원탑을 꼽을 때 거의 빠지지 않는 빼어난 미모를 가져 한국 20~30대 남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나인테일이면 꽤 인기가 있는데... 특히 하연서를 가진 회사가 왜 이렇게 됐지.’

    나는 종합포털의 주주게시판을 찾았다. 회사의 정황을 판단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

    *

    아오 오늘도 하락이네... 저 오늘 한강 갑니다. 가서 소주라도 빨고 와야겠어요.

    바보냐 이 주식 들고 있게? 빨리 팔아라. 100원이라도 먼저 파는 사람이 승자.

    이 주식은 끝난 주식입니다. 회장 하는 거 보세요. 회사 돈으로 노름이나 하고 있고.

    나인테일은 대체 뭔 죄냐... 동일이 때문에 앨범도 못 내고 아우 동일이 개새끼!

    나인테일 정소연 팬입니다. 제가 칼 들고 지우엔터테인먼트 찾아가겠습니다. 동일이 이새끼 기다려라...

    *

    게시판을 보다보니 드는 의문이 있다.

    ‘동일이가 누구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사를 다시 보니 지우엔터에인먼트 설립자이자 대주주인 사람이었다. 지우 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이자 대주주 김동일 씨. 회사를 잘 못 운영한 탓에 일면식 없는 이름 모를 주주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었다.

    뭐 주식시장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긴 하다. 누구라도 자기 재산이 육분의 일이 되면 회장을 붙잡고라도 욕을 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 전에 주식을 산 자기 손가락을 탓해야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탓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여기서 단초를 발견하긴 했다.

    ‘김동일 회장이 회사 돈으로 노름을 했다고?’

    CEO리스크. 자주 있는 일이긴 하다. 최근에 피넛항공 이사가 스튜어디스가 잘못했다고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한국으로 돌려버린 일이 있었다. 당시에 피넛항공은 일주일간 –10%가 하락하며 무려 1조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이 증발해 버린 적이 있었다.

    ‘무슨 짓을 한거야 대체?’

    나는 스토리를 더 알아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지금 시간은 8시 58분. 장 시작까지 단 2분 밖에 남지 않았다. 나인테일과 하연서를 가진 지우 엔터테인먼트가 왜 이렇게 됐는지 더 분석을 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라다. 어차피 내게 중요한 것은 이 주식이 오르냐 내리냐니까.

    시장에 피인수 루머가 퍼졌다면 장이 시작하자마자 주가가 급등할 수도 있으니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나는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 제쳐두고 당장 주가에 영향을 미칠 핵심적인 요소 딱 하나만 더 검색을 했다.

    ‘BEU 시가총액’

    보통 이렇게 인수, 피인수 뉴스가 나왔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모회사가 얼마나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지다. 피인수란 고아원의 고아가 어느 집으로 입양 절차를 밟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정집에 입양이 되는 경우도 있고, 어느 재벌집 자식으로 입양되는 경우도 있다.

    전자도 나쁘진 않지만, 후자라면 급격하게 회사가 좋아진다. 나는 검색결과를 지켜보았다. BEU는 한국기업이 아니라서 그런지 기업정보가 나오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뉴스에서 그 것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이번 한류 콘서트를 주관한 BEU는 베이징에 기반을 둔 중국 내 종합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시가총액만 1200억 위안(20조 4372억원)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다...’

    20조. 엄청나다. 우리나라 대표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ZM, YC, PJY을 다 합쳐도 2조가 될까말까인데, 그보다 규모가 10배나 크다.

    ‘사자. 이건... 무조건 사야 된다.’

    물론 관리종목이란 점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지금은 8월. 다수의 상장폐지가 나오는 기간인 3월은 넘겼으니, 위험한 시기는 아니다. 회사에 무슨 문제가 있긴 하지만, 오늘 저녁 모회사가 바뀌면 그 문제도 사라질 것이다.

    인생에서 돈 문제가 80%정도라고 한다면 회사에서는 돈 문제가 99.9%니까. 결심을 한 나는 MTS를 켰다. 시간은 8시 59분. 이제 장 열리기 1분 전이다. 나는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매수버튼에 손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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