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6화 (16/198)
  • # 16

    의외의 기회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발가락으로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익스플로러를 띄운 다음,

    ‘타다다닥’

    12시간 뒤 메일이 오는 메일주소를 써넣었다. 순식간이었다. 회사 생활 하면서 조금만 늦다 싶어도 대차게 까이다보니 나는 어느새 프로게이머에 필적하는 현란한 손놀림을 가지게 되었다.

    ‘거지같은 회사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얻어가는 것 하난 있군.’

    곧 내 눈 앞에 다시 한 번 그 메일이 떴다. 나는 먼저 힐끗

    ‘24일 남음’

    남아 있는 구독기간을 확인했다. 그런 다음 이어서, 다시 그 카테고리와 마주했다.

    ‘정치’ ‘경제’ ‘사회’ ‘생활/문화’ ‘세계’ ‘IT/과학’ ‘연예’ ‘스포츠’.

    오늘은 로또 당첨 번호가 나오는 생활/문화를 제외하면 딱히 볼만한 게 없다. 경제 뉴스를 12시간 미리 알아도 주식을 매매할 수도 없으니까. IT/과학이나 연예도 마찬가지. 나는 일단 생활, 문화에서 패를 까보기로 했다. 제목만 확인해도, 이게 로또기사인지 아닌지 알 수 있으니까.

    ‘자 그럼 패 확인 들어갑니다. 짠 짜라란 짜라란 짜라란 짠짠’

    나는 리듬을 타다가, 생활문화를 클릭했다. 나온 기사는.

    ‘당신도 할 수 있다. 고양이 털 갈이 시기 관리법.’

    꽝이었다.

    ‘크... 제길...’

    어쩔 수 없긴 하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의 기사가 올라오는데, 카테고리 하나를 골라서 로또 당첨 기사를 낚을 확률은 그 기사 수분의 1만큼 낮다. 로또를 사서 당첨을 바라는 것보단 훨씬 확률이 높겠지만, 그것도 매우 낮은 확률이다. 나는 나를 달랬다.

    ‘로또는 그냥 주말마다 무료로 복권 하나 긁는다 생각하자. 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고.’

    이제 두 번의 기회가 남았다. 하지만 딱히 고를 만한 게 없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스포츠로 커서를 옮겨갔다. 최근 복권 사이트를 오가며 안 사실인데 프로토 중에서 ‘승부식’이 아닌 최종 점수를 맞추는 ‘기록식’도 있어서, 최종 결과만 알면 당첨이 되는 베팅을 할 수도 있었다.

    축구를 예를 들면 1-0. 혹은 3-2와 같은 최종 스코어를 맞추는 게임. 가끔 5-3이나 6-2같이 해괴한 스코어가 나오면 500배나 900배 같은 대박이 터지기도 했다. 10만원을 사도 5천만 원 9천만 원을 버는 수준. 자금 규모가 크지 않은 지금 나쁘지 않은 금액이다.

    ‘흐으음~’

    나는 잠시 기를 모았다가, 좌클릭을 했다. 하지만

    ‘홍두 스타즈. 배틀서바이벌 프로게이머 팀 창단.’

    허무하게도 이것 역시 꽝이었다. 기사는 프로게이머 팀 창단 내용.

    ‘요새는 e스포츠도 스포츠 뉴스에 합류를 시켜 주나보네... 그나저나 e스포츠는 프로토 같은 게 있던가 없던가? 예전에 승부조작 기사를 본 거 같은데...’

    나는 가볍게 다른 창을 열어 뉴스를 찾아보았다. e스포츠는 프로토 같은 건 없었다.

    ‘프로게이머 마성승 선수 승부조작 혐의 시인. e스포츠 업계 발칵’

    승부조작이 있긴 있었지만 사설 프로토에서 있었던 일인 듯하다. 됐다. 주식 거래세금을 내면 됐지, 불법을 저질러서 감빵에 갈 생각은 없다.

    ‘에휴 됐다.’

    나는 마지막으로 ‘경제’쪽에 커서를 옮겨 갔다. 역시 아무래도 진짜는 여기다.

    ‘이제 내 주 종목은 주식이니까... 오늘 당장 돈 되는 정보가 없다 하더라도 정보를 보고 어떻게 활용을 해서 돈 벌어들일지 그걸 위주로 생각을 해보자. 앞으로 이 기사는 매일 매일 받아 보게 될 테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경제’를 클릭했다. 오늘 ‘경제’ 기사 제목은

    ‘비트코인 또 급락. 10000달러 깨져.’

    비트코인 기사였다.

    ‘아 비트코인!’

    생각해보니, 비트코인은 24시간 매매가 가능했다. 주중은 물론, 주말에도 말이다. 나는 비트코인이 오를 때나 떨어질 때나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이번 기회에 조금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살 수 있지? 요새는 제제가 너무 심해서 새로 사기는 어렵다고 하던데.’

    나는 검색을 더 해보았다.

    ‘가상통화 거래에 대한 실명제, 신규계좌 생성 막히나’

    ‘법무부 측은 여전히 거래소 폐쇄도 고려대상에서 제외하지 않겠다는 반응’

    ‘해외 거래도 막혀. 연간 송금액이 10,000달러를 초과하게 되면 국세청에 송금내역이 통보’

    한창 활황이던 비트코인은 정부의 규제 철퇴를 여러 방으로 맞아 거의 많이 죽어있긴 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 시세를 봐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일 뿐. 반등이 나오질 않고 있었다.

    ‘일단 알아는 놔야겠지만...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 겠네... 이렇게 규제가 많아서야...’

    메일을 받아보는 시기가 조금 만 더 빨랐다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트코인에 관해서도 공부를 더 해놓기로 했다. 어쩌면 후에 좋은 기회가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니 생각해보면 비단 비트코인 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 ‘12시간 뒤’란 메일은 고맙기는 하지만, 확실히 불친절한 면이 있었다.

    실버 등급이 되면서 제목을 세 개 볼 수 있다고 해도, 언제 어떤 뉴스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 뉴스에 맞춰서 돈을 벌 감각과 행동력을 구비해놔야 한다. 자세를 잡고 있는 단거리 주자처럼 말이다. 그래야만 ‘빵’하고 총성이 울렸을 때 총알처럼 뛰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공부를 더 해야겠어. 주식도 그렇고, 비트코인도 그렇고... 오늘은... 도서관에 가자. 가서 관련 책이라도 몇 개 빌려서 봐야겠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꼬르르.’

    배에서 고동이 울렸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일어나서, 가족들 맞이하고, 기사 읽는 동안 뭐 하나 먹질 못했다. 나는 늘 공부를 미루는 학생처럼

    ‘공부를 하려면 먼저 잘 먹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컴퓨터의자에서 일어나, 주방을 향해 걸어갔다. 주방은 어느 때보다도 깨끗했다. 어머니가 닦고, 치우고, 설거지를 했기 때문이다.

    ‘거 참 됐대도... 미안하게...’

    그런데, 밥공기 하나, 접시 하나까지 잘 정돈된 주방에 냄비 하나가 덜렁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있었다.

    ‘뭐지?’

    나는 그 냄비에 다가가 뚜껑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구수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사골국이 있었다.

    ‘이건 또 언제 해놓고 가셨대...’

    나는 잠시 방금 전까지 집에 있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와는 의견차이로 가끔 싸우긴 했지만, 세상에서 어머니보다도 나를 위해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

    그렇게 며칠. 시간은 더 흘렀다.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나는 매일 오전 8시 55분마다 메일을 확인했다. 하지만 딱히 돈을 벌만한 커다란 건수 같은 게 나타나질 않았다. 뉴스를 확인해보면

    ‘집값 상승? 하락? 어디로 가나?’

    ‘영화로 보는 과학 이야기 인터스텔라’

    ‘배구여제 이연경 중국리그 MOM’

    과 같이 돈이 되질 않는 뉴스만이 줄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미 계좌에 5800만원, 벌어들인 돈만 3200만원이 있었으므로 전처럼 조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고 싶은 게 내 마음이었다. 최소한 얼마를 벌어 놔야, 퇴직을 할 수 있는 힘도, 명분도 생길 테니까.

    ‘아유 빨리 뭔가 떴으면 좋겠는데... 떠야 뭐든 하든 말든 하지...’

    나는 매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행이도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지난 번 유환증권 사태로부터 딱 일주일이 지난 날. 구독일이 20일 남은 금요일. 다시 한 번 더 기회가 찾아왔다.

    *

    “으아아아~암”

    나는 하품을 하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시간을 보니 8시 45분. 나는 요새는 절대 지각, 아니 지각 근처에 가는 일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일찍 와서 마음을 다잡은 다음 메일을 받아보는 게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관둘 때 되니까 열심히 다니는 거 같아서 조금 웃기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품에 눈에 고여 있는 눈물을 닦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 안은 출근 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8시 55분. 메일인 딱 이때 즈음 온다. 늑장을 부리는 다른 회사원들과 함께. 나는 메일을 받자마자 능숙하게 펼쳐보았다. 이 메일도 이제 받은지 열흘이 넘다보니 익숙해져버린 탓이다. 나는 바로 ‘경제’부터 마우스 커서를 옮겨갔다.

    ‘오늘은... 이제 뜰 때가 됐는데’

    클릭. 그런데,

    ‘세종시 부동산 이번 달도 상승률 TOP’

    이번에도 당장 쓸 수 없는 부동산 관련 기사가 나왔다.

    ‘하아... 오늘도 허탕인가... 이번 주는 빈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마우스 커서를 빠르게 옮기며 ‘탁!’ ‘탁!’ 다른 기사 두 개를 클릭했다. ‘경제’가 꽝이면 다른 건 보나마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엥?”

    나는 별 생각 없이 클릭한 기사에서 절대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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