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4화 (14/198)
  • # 14

    하늘을 올려다 보는 개미

    “야 덕분에 잘 먹었다. 다음번에는 내가 쏠게. 빵빵!”

    최 사원은 손가락으로 총을 만들어서 나를 두어 번 쐈다. 나는 피식 웃고는 그에게 말했다.

    “뭘 됐어. 네가 쏜다고 하고 진짜 쏜 적 있냐.”

    “에헤이~ 나를 뭘로 보고 내가 살게. 다음 월급날에.”

    다음 월급날. 그때까지 내가 이 회사에 붙어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알았다고 했다.

    “알았어. 먼저 들어가 봐. 나 화장실 좀 들렸다가 갈게.”

    최 사원은 반쯤 몸을 숙여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아 볼일 보시고 오십쇼. 회장님.”

    밥 한 번 샀다고 호들갑은. 재미있는 친구다. 어찌되었든 그를 먼저 올려 보낸 나는 회사 로비 화장실에 들렀다. 변기 안쪽에 자리를 잡은 다음 휴대폰을 꺼냈다. 그런 다음 MTS를 켜보았다. 유환증권 주가는 –3~4%를 오가고 있었다.

    ‘기사에서는 분명 -3%수준에서 끝났다고 했지... 그럼 더 욕심 부리지 말고 여기서 팔고 나가자. 배당 사고니까 오늘 하루 일은 해프닝이라고 쳐도... 회사에 악재는 악재니까. 앞으로 며칠 더 떨어질지도 몰라.’

    확실하지 않은 곳에 승부를 걸지 말라. 유명한 도박 격언이다. 특히 지금처럼 미수를 풀빠따로 휘두른 경우에는 하루 이틀 욕심내는 것도 위험하다.

    ‘그럼 망설임 없이 매도.’

    나는 적당한 가격에 모든 주식을 팔았다. 아침만 해도 2600만원 밖에 없던 내 계좌에는 3200만원이 불어 5800만원이 되어 있었다.

    ‘됐다.’

    이것으로 빚을 다 갚고도 한 달 구독 값 천만 원이 확보되었다. 단 한 큐에 돈을 불릴 지렛대 위에 선 셈이다.

    ‘이거 이대로라면 곧 1억 10억 100억 모으는 것도 금방이겠군... 그렇게 되면 뭘 한다? 집 좋은 곳으로 옮기고... 외제차 그래 차하나 끝내주는 걸로 뽑아야 겠다. 아니 아니지 한 대만 뽑을 필요 있어? 두 대, 세 대씩 가지고 다녀야지. 잘나가는 힙합스타들 그렇게 살 잖아? 그리고... 아 맞아 등급도 올려야지 골드 등급으로.’

    지금 받아보는 실버 등급도 나쁘진 않지만, 골드로 올라가면 뭔가 돈을 쓸어 모을 뭔가가 더 있을 것만 같다. 주식을 매도한 다음 나는 시계를 보았다. 아직 점심시간이 10분가량 남아 있다.

    ‘굳이 먼저 가서 일을 할 필요는 없지. 허팀장이랑 같은 공기 마시면서 말이야.’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 근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았다. 그런 다음 휴대폰을 터치해 포털사이트의 유환증권 커뮤니티에 가보았다. 커뮤니티에는 무수히 많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도 그럴만하다. 평소 100억 매매가 될까 말까한 종목이 하루 만에 8천억이 매매가 되었으니.

    와 아까 뭐임? 주문 실수? 어떤 부자가 숫자 잘못 써넣었나?

    누가 하한가에 실수로 팔아버린 듯... 그 때 주은 사람만 노나게 생겼네.

    누구냐 대체... 4만원짜리를 2만8천원에 판 바보가?

    아직까지는 배당 실수로 인한 사고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듯 했다. 뉴스를 찾아보니 뉴스마저도

    ‘유환증권 현재 하한가 근처에서 매매. 숨겨진 악재?’

    ‘유환증권 급락. 주문실수로 인한 것으로 알려져’

    헛다리를 한참 짚고 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누군가가 단순한 클릭 미스나, 매매가를 잘못 기입해 난 사고로 알고 있었다. 뭐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 있는 일이긴 하다. 일본에서도 어떤 증권사에서 61만 엔짜리 주식 1주를 시장에 매도 한다는 게 1엔으로 61만주를 매도해서 엄청난 손실을 떠안은 사건도 있었으니까. 나는 글을 더 읽어보았다.

    아 오늘 하한가 갔을 때 몰빵 했어야 되는데 그 때가 인생 절호의 기회였는데. 못 샀네 젠장.

    헤헤 난 –15%일 때 좀 샀지롱

    난 –7%... 좀 더 일찍 봤어야하는데...

    몇몇 사람들은 싸게 샀다고 좋아라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가소롭다.

    ‘하하. 난 하한가에 주워서 이미 팔았다. 이놈들아.’

    나는 댓글을 더 내려 보았다. 이 난장판에도 침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묻지마 하한가에서는 보통 줍기 힘들죠. 웬만한 강심장 아니고서는, 어떤 악재가 터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맞아 보통 이럴 때 잘못 주웠다간 그 날 하한가뿐만 아니라 다음 날도 다음 날도 하한가 간다. 결국 상장폐지 한다니까 그래도 결국 주은 사람이 위너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사는 건 어떨까요? -3%인데... 3%라도 먹으면 꿀 아닌가...

    그건 오바죠. 아직 몰라요 이거. 어떤 숨겨진 악재가 있을지.

    사람들은 오늘 있었던 일 가지고 저마다 떠들어댔지만, 이 일이 전체적으로 왜 일어났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눈을 감은 채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고 기둥이라고 하고, 허리를 만지며 벽이라고 하며, 꼬리를 만지고 밧줄이라고 하고 있는 격이다. 그들이 이번 사건의 전말을 알려면 몇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거... 개미가 괜히 개미가 아니구나... 딱 코 앞만 보고... 하늘은 올려다 보질 못 하니.’

    사실 어쩔 수 없긴 하다. 개미라는 게 괜히 개미는 아니니까. 지금 나처럼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개미는 몇 없다. 나도 기연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예전에 대학생 때 멋모르고 주식을 했던 게... 참 무모했단 말이야...’

    내가 주식 커뮤니티를 눈팅을 하는 사이 점심시간이 끝나갔다. 나는 빈 커피 캔을 휴지통에 던지고, MTS를 끄고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회사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우웅~’

    휴대폰이 한 번 더 울렸다.

    ‘뭐지?’

    나는 휴대폰을 들어보았다. 휴대폰에는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보낸 사람은 ‘엄마.’

    ‘내일 선영이 돌잔치란다. 네 아버지랑 서울 올라가서 네 집 먼저 들리마.’

    여기서 선영이는 사촌형의 딸이다. 사촌 형 결혼식 갔다 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딸이 돌이라니.

    ‘내일 오랜만에 엄마 얼굴 보겠네... 잘 됐다. 어차피 퇴사하려고 하면 엄마 아빠한테 말해야되는데... 내일 눈치 봐서 운이라도 띄워놔야 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회사로 복귀했다.

    *

    다음 날 아침.

    “끄으~응”

    나는 알람 없이도, 아침 일찍 일어났다. 평소 토요일은 늦게까지 잠을 자는 게 내 기본 셋팅인데, 요상하게 오늘은 잠에서 일찍 일어났다.

    ‘왜 이러지?’

    생각해보니 지난주에도 그랬다. 메일 받으려고.

    ‘아 그렇군.’

    오늘은 왠지 텐션이 떨어진다.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그랬다. 주식할 때. 토요일 일요일은 장이 열리질 않으니 재미가 없는 것이다.

    ‘...경마하는 사람들은 경기 열리는 주말에만 재밌고 주중에는 재미가 없다더니... 주말에는 경마라도 해 봐? 아니 생각해보면 경마 결과도 기사에 나올 거 같은데... 경마 결과 표는 어디서 나오지? 문화? 생활? 스포츠?’

    이쪽 생각을 하다 보니 아예 생각 전부가 도박 쪽으로만 가는 것 같다.

    ‘어휴... 이거 이러다가 나 큰일 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뒤집어 생각을 해보면 그게 맞다. 내 인생은 큰일이 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에서 죽을 때까지 일하다가 쫓겨 날 것이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흙수저가 그렇다. 이런 인생 한방 없이는 학자금대출에, 주택담보대출, 대출, 대출, 대출 이자내다가 하류 인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 한 번도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보지 못하고 남의 일만하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마인드를 바꾸기로 했다.

    ‘그래. 큰 일 나면 좋지. 게다가 나는 기연까지 얻었잖아. 이걸로 인생 바꿀 거야. 누군가의 노예로 일하는 것에서 누군가를 부리는 삶으로 그렇게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은~ 주식시장도 안 열리고 뭘 봐야하나... 일단 문화 생활에 로또 한 자리 주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때,

    ‘띵~동~’

    원룸 벨이 울렸다. 나는 그제야, 오늘 부모님이 오시기로 했던 것을 떠올렸다.

    ‘아~ 참 딱 비즈니스 하려는 찰나에...’

    나는 주섬주섬 츄리닝만 대충 차려 입은 다음 문을 향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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