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돈을 버는 진동소리
나는 주저 없이 그 기사를 클릭했다. 곧 주르르 기사의 본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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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환증권 주가가 가격제한폭까지 하락했다가, 복귀하는 사건이 있었다. 오늘 오전 9시 장이 열리고 약보합상태를 유지하던 유환증권은 오전 9시 30분경 급락해 가격제한폭인 –30%까지 폭락했다가 저가 매수세에 진정세를 되찾아 –3%까지 반등 장을 마감했다.
오늘 있었던 급락은 당시 누군가의 주문 실수로 여겨졌으나, 취재 결과 배당실수로 인한 해프닝으로 알려졌다. 유환증권이 직원들에게 배당을 하는 과정에서 주당 배당금 1000원을 지급하는 대신 실수로 주당 배당주 1000주를 지급한 것이다.
유환증권 직원들은 주당 1000원이 아니라 3500만원치의 주식을 지급받았던 것이다. 오늘 있었던 하한가는 수백억 원대 주식을 배당받은 몇몇 직원들이 받은 주식을 시장에 매도하면서 나왔던 결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조사한 금융감독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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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사를 읽고 종합했다.
‘음... 어처구니없는 사고로군. 그러니까 실수로 직원들한테 대량으로 주식이 풀려서 직원들이 그걸 매도했다는 거로구만. 그런데 어이가 없네 증권사 직원이라면 이게 실수라는 것을 몰랐을 리도 없는데... 당장 계좌에 수백억이 찍혀 있으니까 눈이 뒤집혀서 팔고 본 거구만...’
하지만 누가 잘못했든 누가 잘했든 그건 금융감독원이나 경찰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나는 이 사건을 가지고 돈만 벌면 된다.
‘팩트만 보자면 9시 30반에 물량이 대거 출현해서 하한가를 찍었단 말이로군. 그 다음 반등에 성공해서 –3%정도에 끝났다라...’
단순히 생각하면 27%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8시 58분. 주식시장이 열리는 9시 2분 전.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기 32분 전이다.
‘빨리 준비해야겠군.’
나는 휴대폰을 조작해 어제 대출했던 2400만원을 증권계좌로 이체했다. 본래 통장에 있었던 200만원 역시 탈탈 털어 증권계좌로 이체했다. 이제 증권을 살 수 있는 돈은 2600만원.
장전을 완료한 나는 곧바로 휴대폰의 MTS(Mobile trading system)를 켰다. 이것은 컴퓨터의 HTS를 그대로 휴대폰에 옮겨 놓은 시스템이었다. 4년 전엔 안 그랬는데, 워낙 간편하다보니 요새는 HTS보다 이 MTS를 쓰는 사람의 비중이 크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나는 휴대폰 위에 유환증권을 현재가에 올려놓았다. 아침 9시가 되며 거래가 시작. 유환증권은 –0.8% 약보합을 기록하며 매매를 시작했다. 평범한 시작.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주식은 30분 내로 하한가를 기록하게 된다.
‘곧 있으면 지옥이 펼쳐진다.’
하지만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지옥은 그걸 사려는 사람에게는 천국이다. 주식은 본래 그런 게임이다. 사람과 사람의 희비를 갈리게 하는 잔인한 게임. 나는 먼저 유환증권의 개별선물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아쉽지만 선물시장에는 상장되어 있지 않다.
‘그럼... 매도는 못하겠군. 대신 하한가 매수를 노린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매수 버튼을 눌렀다. 아 그전에 확인해야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나는 한 번 더 기사를 확인했다. 기사 하단에는
‘오늘 거래량은 2천만주로 무려 8천억에 달하는 금액이 매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대금이 쓰여 있었다.
‘8천억!’
생각보다 큰 액수다. 내가 사는 금액은 1억이 채 되지 않으니 바다 속의 오줌물이나 같다. 내 주문이 거래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단 소리다. 나는 주저 없이 주문을 넣었다. ‘미수’를 클릭한 다음 ‘적정최대가’로 하한가인 3만5천원에 매수를 걸었다. 주식투자자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로 알려져 있는 ‘미수몰빵’.
여기서 ‘미수’란 내가 가진 돈을 가지고 신용으로 주식을 더 사는 행위를 말한다. 내 계좌에 2600만원이 있으면 그걸 증거금으로 더 많은 주식을 살 수 있게 해주는 행위. 보통 변동폭이 작은 우량주일수록 미수를 많이 쓸 수 있게 해준다.
유환증권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나가는 증권회사 중 하나였기 때문에 30%의 미수를 쓸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말인즉, 내가 가진 돈의 3.33배의 돈 만큼 주식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2600만원 중 2400만원은 은행에서 빌린 돈이었으니, 빚으로 빚을 내는 셈이었지만. 증권사는 내가 대출을 해서 돈을 마련했든 월급을 모아 돈을 마련했든 집을 팔아 돈을 마련했든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3배의 돈을 빌려줬다.
이번 증권 사태에서 볼 수 있지만, 애초에 증권사라는 건 개미의 손실 따위는 1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돈을 잃고 계속해서 돈을 퍼 붓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기들도 수익이 나니까. 은행이 유혹의 손짓을 내짓는 소악마라면, 증권회사는 직접 영혼을 빼앗아가는 대악마나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보통 미수몰빵은 한강 가는 지름길이다. 난 악마의 손아귀를 벗어날 묘책이 있으니,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이었지만.
‘8658만원치... 매수.’
나는 내가 가용할 수 있는 금액의 최대치를 하한가에 매수를 걸어놓았다. 그 때, 허 과장이 우리를 불러 모았다.
“이봐 다들 주목. 5분 뒤에 이번 달 실적 향상 건에 대해서 회의할 테니까 다들 아이디어 준비해와 알았지?”
‘으 저 꼰대새끼... 회의만 한다고 아이디어가 나오나?’
허 과장은 책상에만 오래 앉아 있으면 성적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꼰대 마인드의 주인이었다. 저런 상사를 두고 일하다니, 아니 일했다니, 정말 끔찍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가 넣은 주문 물량을 확인 한 다음 업무에 복귀했다. 아직 회사에 매인 몸이다 보니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곧 나는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잠시 후,
“이번 실적이 악화된 것은 타 사의 결합 상품 때문입니다...”
“산업 구조적인 문제라서 조금 어렵습니다만 이럴 때일수록...”
회의가 이어지는 도중 나는 내 주머니에서
‘위잉~’
아주 짧은 진동을 느꼈다. 회의 중이다 보니, 나는 휴대폰을 들어 볼 수는 없었다. 나는 대신 회의실 안의 원형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마침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남들 모르게 피식 웃었다. 방금 있었던 그 진동이 말하는 것은, 내가 돈을 왕창 벌어들이고 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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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유가 된 점심시간, 나는 MTS를 켜서 휴대폰을 확인해보았다. 유환증권 주가는 급락 후 급등해 –4%대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하한가에 매수가 됐다면...’
나는 내 주식잔고를 찾아보았다.
보유 주식 3092주
매수가 28000원 (-30%) 매입금액 86,576,000
현재가 38400원 (-4%) 평가금액 118,732,800
아침대비 손익 +32,156,800
제대로 터졌다. 하루에 3200만원 수익. 진짜 내 돈이라고는 200만원 밖에 없는 걸 생각하면 16배 수익을 올린 거나 다를 바 없었다. 천만원짜리 실버 등급 구독을 신청한 뒤로 5일 동안 마음고생 했는데 하루 만에 그걸 만회하고도 남을 돈이 생겼다.
‘됐어!’
나는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 때, 점심친구인 최 사원 다가와 말했다.
“이봐 한상훈. 오늘은? 오늘도 나가서 먹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가자. 오늘 내가 쏠게.”
“쏴? 무슨 일로.”
“이유는 됐고. 그냥 사줄 때나 먹어. 뭐 먹고 싶냐?”
“오... 그래? 정말 아무거나 먹어도 돼?”
오늘 번 돈만 해도 3200만원이다. 내 연봉보다도 큰 금액.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엄 오늘은 형이 쏜다 맛있는거 먹자 맛있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