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2화 (12/198)
  • # 12

    돈 냄새

    “음...”

    나는 삐딱하게 앉은 채로 모니터 위의 커서를 뱅글뱅글 돌렸다. 모니터 앞에는 다시 그 메일이 띄워져 있었다.

    *

    Silver 등급 회원 메일 구독기간 29일 남음

    ‘정치’ ‘경제’ ‘사회’ ‘생활/문화’ ‘세계’ ‘IT/과학’ ‘연예’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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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고민은 하나였다.

    ‘경제 스포츠... 그리고 뭘 고른다?’

    주식의 재료를 주는 경제와, 소~중박을 노릴 수 있는 스포츠와 함께 나머지 하나를 고르는 것.

    ‘정치...는 당장 돈 될 일이 없고... 생활문화는... 로또 추첨을 하는 주말에나 고르면 될 거고... 세계? 그건 너무 멀어. 나중에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그럼 IT과학이나 연예 둘 중 하나를 봐야 할 거 같은데... IT과학으로 하자 뭔가 돈 되는 이야기가 나올 지도 모르니까.’

    결론을 내린 나는 ‘경제’, ‘IT과학’, ‘스포츠’ 셋을 골랐다. 먼저 경제 뉴스 제목은 이러했다.

    ‘대현자동차 노조, 파업 계속돼. 최악의 상황 이어져’

    대현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는 우리나라 굴지의 자동차그룹이다. 이 회사의 특징 중 하나는 강성한 노조. 그래서 파업도 자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바로 검색 창을 켜보았다.

    ‘음... 나쁜 뉴스로군. 파업이 얼마나 된 거지?’

    중요한 것은 이 뉴스가 주식에 ‘악재’로 작용을 하느냐다. 호재 뉴스도 좋지만 악재 역시 돈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개인 투자자는 개별 주식의 공매도는 불가능하게 만들어놨지만, 선물이나 옵션을 통해서 비슷하게 주가가 내리는데 베팅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뉴스는 그다지 좋은 재료는 아니었다.

    ‘대현자동차 임금 협상 결렬. 전면 파업. 장기화 예상돼.’

    파업을 한 것은 2주일 전이었다. 나는 이번엔 파업 뉴스가 나온 날 주가를 보았다. 그날 주가는 그저 –2%. 악재긴 해도 크게 영향도 주지 못했다. 아무래도 매년 파업을 하다 보니 투자자들이 그런가보다 하는 식으로 넘기는 모양이었다.

    ‘이건 꽝이로군.’

    이 뉴스 가지고는 주식을 살수도 팔수도 없다.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나는 이어서 IT과학을 클릭했다.

    ‘스페이스Y 우주여행 시대 여나?’

    아. 이것 역시 꽝이다. 클릭하나마나 10년 뒤, 20년 뒤 있을 일 가지고 공상 과학을 하는 내용일 것이다. 우주 좋아하는 과학자나 SF덕후들이나 볼만한 기사다.

    ‘다음.’

    역시 남는 건 스포츠다. 나는 마지막 기대를 거기에 걸었지만

    ‘알리스타 존스 약물 검사에서 양성 반응’

    마지막 뉴스조차도 나를 물 먹였다. 프로토와 상관없는 UFC. 그것도 금지 약물을 복용한 선수에 관한 기사다. 당연히 돈 한 푼 벌 데가 없다.

    ‘더러운 약쟁이 새끼들! 나까지 엿을 먹이네...’

    오늘은 완전히 꽝이다. 이런 날이 올 것이란 건 예상은 했지만 막상 마주치고 나니 조금 허탈하다. 오늘 일과를 하지 않은 느낌. 나는 메일을 닫으며 스스로를 달랬다.

    ‘조급해하지 말자. 조금 더 기다리면 분명 호재가 올 거야.’

    *

    “어이 한상훈 오늘은 같이 먹을 거지?”

    “아아 미안. 오늘도 나 약속이 있어서.”

    나는 오늘도 점심 파트너 최 사원을 밀어 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뭐야 여자 친구라도 생겼어 회사 근처에?”

    “아니.”

    나는 그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고는 회사를 빠져나왔다. 그 다음 직진을 한 것은 주거래 은행인 S은행. 나는 오자마자 대출창구 번호표를 뽑아들었다. 남은 인원은 2명. 점심시간 내에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자리에 앉아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앉아서 기다리다보니

    ‘주식 하려고 돈을 빌리다니...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제 밤새 HTS를 만지작거리며 모의 투자를 해본 나는 결국 직장인 신용대출을 받기로 했다. 왜냐하면 주식은 퍼센테이지 게임이기 때문이었다. 100만원을 가지고 10%를 먹어봐야 20만원 밖에 되지 않지만 2000만원을 가지고 5%만 먹어도 100만원이 된다. 그러니까, 이긴다는 보장만 확실히 있다면 풀 베팅을 해야 한다. 대출을 끌어 모아서 라도.

    ‘프로토로 모으면 그게 편하긴 한데...’

    잠시 우리 집 근처 그 불법을 넘나드는 로또 판매점을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나는 차라리 법을 지키고 대출을 받는 편을 택했다. 나중에 수백 억 부자가 될 텐데 그 시작을 불법으로(지난 번 모르고 한 건 어쩔 수 없지만)하고 싶지는 않다. 대출 받아서 주식투자를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불법은 아니니까.

    ‘띵동~’

    알림이 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번호표를 들고 살짝 긴장한 채로 대출창구 앞에 섰다.

    ‘혹시나 대출이 안 되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대출 심사가 지난 지 10분여. 대출은 생각보다 쉽게 진행되었다.

    “...완료되면 문자 가실 거예요. 오늘 중으로요.”

    “오늘 중이요?”

    “네. 아마 한 시간 내?로 문자 가실 거예요.”

    인터넷 기사에서는 가계부채가 문제다 뭐다 했지만 은행은 재직증명서와 연말정산기록만 보여주면 이렇게 하루 만에 대출을 해주는 듯 했다. 하긴 은행은 본래가 이자 놀이로 먹고 사는 곳이다. 은행이 대출을 해주지 않는 다는 건 장사꾼이 상점을 열고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대출 명은 직장인 신용대출이고...”

    특히 나 같은 직장인들은 좋은 먹잇감이다. 우리 직장인들, 회사의 노예들은 떼먹힐 염려도 적고, 오히려 빚 때문에 퇴직은 생각도 못하고 일을 계속 하게 되니까. 피 같은 이자를 내면서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눈앞의 깔끔한 단발머리를 한 여직원이 달콤한 유혹을 하는 여악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빨간 매니큐어가 발라진 손가락으로 이곳저곳 가리키며 설명을 해주었다.

    “여기 마이너스 통장이에요. 잔고는 0원이지만 출금 가능금액은 2400만원. 확인 되셨지요? 금리는 4.5%인데...”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면서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나는 딱 며칠만 빌리는 거야. 주식 단타를 칠 하루 이틀만. 그럼 거의 이자도 없다고.’

    나는 발급된 마이너스 통장을 받고는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점심시간이 10분가량 남아 있었다.

    ‘토스트라도 먹을 수 있겠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은행을 빠져나왔다. 품안에 2400만원의 실탄을 가지고.

    *

    그 뒤로, 나는 매일 8시 55분마다 메일을 확인했다.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하지만 기대했던 경제 기사는 물론이고 IT과학은 물론 스포츠마저 별 다른 기사가 나오질 않았다. 무슨 마가 끼었는지,

    ‘AAA투자펀드 수수료 인하’

    ‘석기시대 인간과 동일한 수준. 높은 지능의 원숭이 집단 발견’

    ‘유진현의 탄식 잘 던져도 못 이겨. 타선이 조금만 도와줬으면’

    같은 돈과 인연이 없는 기사만 줄줄이 떴다. 이쯤 되니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아니 예전에는 그렇게 돈 되는 기사만 나오더니 갑자기 왜 이래? 이미 기사 받는데 천만 원이나 썼는데. 대출은 2400만원이나 받아 놨는데!’

    하지만 어디다가 불만을 표출할 곳이 없었다. 이 메일을 보내는 곳이 천국의 정원인지 지옥의 구덩이인지 나로선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던 중 마침내 금요일이 되었다.

    ‘Silver 등급 회원 메일 구독기간 25일 남음’

    나는 맨 위에 있는 그 메시지를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5일이 지났는데 건진 거라곤 하나도 없네... 이거 그냥 천만 원 날리고 끝나는 거 아니야?’

    나는 살짝 발을 떨며 ‘경제’란을 클릭했다.

    ‘유환증권 배당 사고. 1000원이 1000주로 입력되어. 장내 일시적 하한가.’

    나는 다른 때와 달리 물끄러미 그걸 보았다. 이건 분명 돈 냄새가 나는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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