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1화 (11/198)
  • # 11

    내 손 안의 미래

    “어디보자아... 있네. 아직도.”

    나는 컴퓨터 구석에서 주식용 홈트레이딩시스템HTS(Home traiding system)의 아이콘을 발견했다. 나는 그걸 두 번 클릭했다. 그러자 곧 안내메세지가 나왔다.

    ‘구 버전입니다. 새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주십시오.’

    역시 그렇다. 거의 몇 년간 쓰질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다. 나는 메시지의 안내에 따라 새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놓고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HTS를 켜게 된 게 근... 3년? 4년만인가?’

    내가 주식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병장 시절이었다. 시간은 남고 할 일은 없고 하던 나는 부대 도서관에서 아무 책이나 가져다 읽었는데, 그 중에 주식 관련 책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주식을 ‘패가망신의 지름길’정도로 묘사하지만 이 책을 쓴 사람의 견해는(책 파는 입장에선 당연하겠지만)달랐다.

    ‘...주식은 결국 미래를 예측하는 게임이다. 미래에 어떤 기업이 매출이 신장되고 사업이 확장되면 자연스럽게 주가도 오르게 되어 있다... 혹자는 운을 시험하는 도박이라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주식은 도박적 요소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건 그리 큰 부분이 아니다. 길게 보면 주식은 결국 현명한 자가 승리하는 게임이다.’

    그걸 보고 나는

    ‘미래를 예측하는 게임... 현명한 자가 승리하는 게임이라...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군대를 제대한 뒤, 복학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던 나는 그 시간을 활용해 알바로 돈을 벌었다. 그런 다음 복학까지 모은 돈이 100만원. 나는 그걸 가지고 주식시장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곧 깨달았다. 나를 주식의 길로 이끈 사람은 주식이 도박이 아니라고 했지만, 내 생각에는 도박이 맞았다. 국가가 운영하는 합법 도박.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 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도박이다 이건. 카지노 주인이 국가인 도박이야... 딜러대신 대신 국가가 세금을 떼 것만 다르잖아.’

    그리고 도박의 핵심은 재미에 있었다. 세상에 도박만큼 재밌는 게 또 있을까. 몇 십 만원 날린 날은 밥맛이 없을 정도로 우울했지만 상승을 한 날은 한 없이 기뻤다. 평소 다른 게임을 즐기던 나였지만 주식을 시작한 이후로 다른 게임은 거들 떠 보지 않게 될 정도가 되었으니 말 다했다.

    그 뒤로, 나는 학교를 다니며 치열하게 주식을 했다. 급등주를 사서 상한가를 먹어보기도 하고, 묻지마 매수를 했다가 하한가를 맞아보기도 했다. 작전주를 사서 롤러코스터를 타보기도 하고, 우량주를 사서 조용히 묻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계좌에 남은 금액은 딱 110만원. 10%수익을 올렸다. 초심자 치고 나쁜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 잘했다고 할 만한 수준도 못됐다. 그해 코스피 코스닥 시장수익률이 딱 10%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원숭이한테 아무 종목이나 고르게 시킨 거랑 비슷하잖아...’

    결과만 두고 보면 조금 실망스러운 결과였지만 그래도 얻은 것은 있었다. 주식을 하면서 자본주의가 뭔지 이해하게 되었고, 사람들의 욕망과 공포, 희망과 절망을 맛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무엇보다도 주식은 재미가 있었다. 즐겁게 게임을 하고 10%수익도 맛봤으니 어찌 보면 대단히 성공한 게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더 하고 싶은데...’

    하지만 딱 1년 나는 거기서 주식을 끊었다. 4학년에 올라가고, 취직준비를 시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게 벌써... 4년 전이구나... 시간 참 빠르네...”

    내가 과거를 회상하는 사이 컴퓨터에는 새 HTS의 설치가 완료되었다. 나는 그걸 더블클릭하여 그 안으로 들어 가보았다. HTS는 새 버전인 만큼 인터페이스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달라지지 않은 게 있었으니 ‘관심종목’의 목록같이 내가 직접만진 세팅은 그대로 있었다.

    ‘어디보자... 잘 있나들?’

    나는 종목을 둘러보았다.

    *

    관심종목

    LC전자 106,500

    컴투빌 172,400

    안드로메다게임즈

    PJY엔터테인먼트 21,250

    섬상물산 114,500

    강금철강 4,635

    유러피안TV 29,350

    *

    관심 종목에 있는 종목은 내가 한번이라도 매매를 해본 종목이었다. 나는 맨 위에서부터 하나씩 기억을 뒤져보았다. 먼저 LC전자 우리나라 양대 가전기업 중 하나다. 증권사 추천을 받아 샀는데, 그닥이었다. 세탁기나 TV, 에어컨 같은 가전제품은 세계적 레벨의 회사이지만 최근 중국 회사들의 추격이 거세 조금 힘든 점이 반영이 된 듯하다.

    두 번째 종목은 컴투빌.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종목이다. 컴투빌은 모바일게임제작사인데, 당시 나왔던 ‘서머너즈 배틀’라는 게임이 대성공을 거둬 주가가 급등했다. 평소 게임에 관심이 많았던 나 역시 게임을 해보고 ‘재밌다’싶어 투자. 30만원정도 투자 2배가량의 수익을 냈던 기억이 난다. 사실상 내가 샀던 주식들 중 에이스.

    세 번째 주식은 안드로메다게임즈. 이것 역시 컴투빌의 대상승에 편승해 모바일게임을 내놓으면서 주가가 올랐다. 나 역시 컴투빌처럼 주가가 오르길 기대하며 샀는데 웬걸. 나온 게임이 망하면서 조금 손실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상하게 안드로메다게임즈는 주가가 쓰여 있질 않다.

    ‘뭐지? 버그인가?’

    더블클릭을 해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HTS는 새로 깔았는데 왜 이러지? 혹시...’

    나는 검색창에 ‘안드로메다게임즈’를 검색해보고 나서야, 왜 그렇게 됐는지 알게 되었다.

    ‘안드로메다게임즈 4년 연속 적자 누적. 감사의견 부적정 판결’

    ‘안드로메다게임즈 상장폐지 심사 결과... 코스닥에서 폐지키로.’

    ‘중견 게임사 안드로메다 역사의 뒤안길로’

    “헐.”

    안드로메다게임즈는 연속 적자를 내다가 상장폐지가 되었던 것이다.

    ‘4년이 지나니까 별별 일이 다 있구나.’

    더더욱 놀라운 것은 다음 주식 PJY엔터테인먼트였다.

    ‘엥 이만 원? 이게 그 때... 오천원정도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차트를 찾아보았다. 내 기억이 맞다. 4년 전 오천원정도 하던 PJY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근 2년 동안 매일같이 상승을 하면서 이만 원을 찍은 것이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기사를 찾아보았다.

    ‘더블 업 걸즈 이번 싱글도 초대박행진’

    ‘일본 멤버들의 대활약 더블업 걸즈 오리콘 차트 1위’

    ‘더블 업 걸즈 대표인 PJY과 콜라보레이션’

    더블 업 걸즈 나도 아는 걸그룹이다.

    ‘아 더블 업 걸즈 여기가 PJY엔터테인먼트 애들이었구나.’

    데뷔한지 3년 즈음 되는 초인기아이돌 그룹이다. 한국, 일본, 대만 멤버로 이루어진 다국적걸그룹인 더블 업 걸즈는 최근에는 일본에도 진출해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었다.

    ‘아 더블 업 걸즈가 이 회사 소속인줄 알았으면 나도 사는 건데...’

    나는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문득, 내가 처음 읽었던 주식 책에 쓰여 있던 문구가 생각이 난다.

    ‘주식은 결국 미래를 예측하는 게임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미래. 예측할 필요도 없다. 미래는 내 손안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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