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0화 (10/198)
  • # 10

    전환점

    ‘띠리리리’

    알람이 울린다. 모니터를 보던 나는 사무실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전 열두시. 점심시간이다. 허 과장이 먼저 말한다.

    “밥 먹고들 합시다. 밥 먹고들.”

    회사에 있으면서 그나마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때라면 이 때, 딱 먹을 때뿐이다. 점심시간,

    “끄~응”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길게 스트레칭을 했다. 점심 같이 먹는 최 사원이 다가와 말했다.

    “어이 한상훈 뭐 먹을래 오늘은?”

    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 나는 오늘은 따로 먹을 게. 선약이 있어서.”

    “선약?”

    “미안 먼저 나가볼게.”

    고개를 갸웃하는 그를 두고 나는 먼저 회사를 밖으로 빠져나왔다. 오늘 밤 경기. 프로토를 사기 위함이었다.

    ‘음... 유타 재즈가 103대 95로 LA레이커즈에 승리...’

    나는 핵심적인 정보만 추려서 머릿속에 기억한 다음, 회사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있는 프로토 가게를 향해 걸었다. 어차피 곧 나올 회사긴 했지만.

    ‘로또 사더니 갑자기 퇴사했더라.’

    라는 식의 이야기가 주변에 퍼지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길을 가다가 나는 먼저 토스트 집에 들러서.

    “야채랑 치즈 그리고 햄 추가요. 아 콜라 대신 커피로 주시고요. 얼마죠?”

    토스트와 커피를 산 다음 그걸 우걱우걱 먹으면서 길을 걸었다. 아무래도 회사에 메여 있다보니 프로토 한 장 사는 것도 불편하다.

    ‘이거 빨리 퇴사를 하든가 해야지.’

    마음 같아서는 한시라도 빨리 퇴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돈이었다. 곧 부자가 될 나라고 해도, 그건 미래의 일이었다. 당장 수중에 200만원 밖에 없는데, 혹시라도 무슨 일(길가다 사고라도 당한다던지) 때문에 구독기간 30일 동안 돈을 벌지 못한다던지 한다면 그대로 거지가 되기 때문. 최소한 구독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천만 원은 벌어놓고 퇴사를 할 셈이었다.

    둘째 이유는 부모님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요즘 같은 취업난을 뚫고 취직을 한 나를 대단히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퇴사를 한다고 하면 두 분은 엄청나게 충격을 받을 게 뻔했다. 그래서 두 분이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조건을 갖춰 놔야 부모님에게 사실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혹시나 대출이 필요할까봐. 혹시나 엄청난 대박 정보가 들어왔을 때, 대출을 일으켜서라도 몰빵이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결과 직장인은 연봉의 60~70%까지는 쉽게 대출이 가능했다. 내 연봉은 3000정도니까. 2000만원까지는 대출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학자금 대출과는 무관하게.

    ‘혹시나 뭔가 확실한 승부가 있다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몰빵한다.’

    라는 것이. 내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신용 유지를 위해서라도 회사는 다니고 있어야 한다. 아직은 말이다. 나는 토스트를 씹으며 길을 건넜다. 마침 내 앞으로

    “비~잉~‘

    낮은 차체의 람보르기니가 대낮의 테헤란로를 지나쳐간다. 어느 집 돈 많은 자식인지, 부럽다. 나는 남아 있는 토스트를 모두 입에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기다려라 곧 간다. 람보르기니든, 페라리든, 벤트리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프로토 가게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새로 간 곳은 주인이 맞이해주는 밝은 분위기의 가게였다. 우리집 근처의, 원룸촌 안에 있는 어두침침한 그 가게보단 훨씬 났다.

    ‘흠 그래. 장사를 하려면 이래야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로 프로토 쪽으로 가보았다.

    ‘어디보자... 유타 재즈... 대 LA레이커즈...’

    그런데 배당률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유타 재즈 승에 1.8배. 순위표를 보니 유타 재즈와 LA 레이커즈 모두 중상위권에 속한 팀이었다. 전력이 비등비등 하다 보니 배율이 높지 않게 나온 것이다.

    ‘어쩔 수 없나...’

    나는 입맛을 다셨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 레알 마드리드 패 같은 극적인 경기는 자주 있는 건 아니니까.

    ‘뭐 그래도 그런 게 나올 때까지 일단 자금을 불려가면 되겠지. 하루하루 천천히 말이야.’

    나는 먼저 유타 재즈 승에 건 다음, 다른 종목을 찾았다. 1배에 가까운 확실한 종목.

    ‘음... 있다. 전북 현대 대 전남 드래곤즈... 전북 현대 승에 1.2배라...’

    1.2배. 낮은 배당이긴 하지만 레알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처럼 매우 낮지는 않았다. 뒤집어 말하자면 전남 드래곤즈가 이길 확률도 있다는 소리. 나는 순위표를 보았다. 전북 현대는 K리그 1등 팀이고 전남 드래곤즈는 뒤에서 2등 팀이었다. 우리나라는 외국처럼 압도적인 차이는 나지 않는 모양이다.

    ‘1.2배인데... 걸어보자. 어차피 1.8배는 먹고 가는 거니까. 설마 1등 팀이 뒤에서 2등 팀한테 지겠어? 혹시라도 오링 나면 대출이라도 받으면 되잖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전북 현대’에다가 마킹을 한 다음 주인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이곳 주인아저씨는 순둥순둥한 외모에 미소를 살짝 달고 있었다. 우리집 근처 아저씨랑 매우 대조된다.

    “네 이렇게 해드릴까요? 손님?”

    “네.”

    “얼마치 해드릴까요?”

    나는 예전과 똑같은 금액을 말했다.

    “백만 원이요.”

    그런데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아... 손님 백만 원은 안 됩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왜요?”

    “프로토는 일인 당 베팅 한도가 십만 원까지입니다. 손님. 그 이상은 위법이에요.”

    “네에?”

    나는 한바 터면 ‘다른 곳에서는 해줬는데요?’라고 말할 뻔 했다. 그런데 그 전에, 아저씨는 내가 마킹했던 OMR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보시죠.”

    OMR카드 하단에는 분명 ‘일 회당 십만 원까지만 베팅 가능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뭐야 그럼 그 때 거기는... 아...’

    지금 생각해보니 뭔가 아귀가 다 맞아떨어진다. 얍삽하게 생긴 아저씨, 어울리지 않는 금고에 현찰, 도박에 찌들어 있는 것 같던 단골까지. 아무래도 수상했는데. 거긴 뭔가 한참 불법적인 곳이었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드릴까요? 십만 원만 해드릴까요?”

    나는 얼떨결에

    “아... 네 그렇게 해주세요.”

    그렇게 대답했다. 곧 그 아저씨는 십만 원치 영수증을 뽑아다 주었다. 나는 그걸 들고 그곳을 걸어 나왔다.

    *

    “하아... 진짜네.”

    그날 밤. 나는 집에서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프로토에 관한 내용을 모조리 찾아보았다. 내린 결론은

    ‘십만 원 이상은 불법이지만 암묵적으로 그 이상의 금액을 해주는 곳이 있다.’

    라는 것. 그러니까 웬만한 곳에서는 십만 원 이상 베팅을 받아주지 않는 단 것이었다. 그 이상을 해주는 것은 불법이고.

    ‘십만 원 이상 하고 싶은데 그러면 어떻게 하나요?’

    라는 질문에는

    ‘가입 즉시 현금 5만원 지급’

    ‘확실한 지급 먹튀 없음’

    ‘타 사이트와 배당률을 비교해보세요.’

    와 같은 불법도박사이트들 광고가 줄줄이 튀어나왔다. 지난번엔 잘 모르고 법의 경계를 넘어버렸지만, 나는 불법은 저지르면서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 돈 벌다가 먼저 경찰에 잡혀갈 지도 모를 일이다.

    ‘하아 그럼 어쩐다? 프로토로 몇 천만 원 정도는 땡겨 두려고 했는데...’

    물론 나도 프로토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생각 따윈 없었다. 단지 종자금만 마련하려고 했을 뿐. 즉시 현금이 들어오는 방법은 이게 쉽고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바로 다음 레벨로 넘어가야할 것 같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워밍업 하는 겸 해서... 지금부터 시작해볼까 그럼...’

    나는 윈도우 버튼을 눌러서 프로그램 목록 중 아이콘 하나를 찾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내가 지웠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