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8화 (8/198)
  • # 8

    천만 원(2)

    내가 놀란 이유는 다름 아니었다. 메일의 ‘스포츠’란을 클릭하자, 거기에는 익숙한 기사 내용 대신 다른 내용이 떴기 때문이었다.

    *

    브론즈 등급 무료 구독 기간이 끝났습니다.

    구독을 연장하시려면 월정액 상품에 가입하세요.

    월정액 가입 방법

    N은행 계좌 777-7777-7777-77 예금주 777으로

    금 10,000,000원을 입금하시면

    즉시 월정액 서비스에 가입되며

    실버 등급 회원 서비스를 받게 됩니다.

    실버 등급 혜택

    일일 당 세 개의 카테고리를 고른 뒤

    제목을 보고 원하는 기사를 클릭해 볼 수 있음

    골드 등급 회원 서비스를 신청 할 수 있음

    *

    ‘뭐라고? 브론즈? 실버? 등급?’

    뭔가 어디 게임에서 나오는 개념 같다.

    ‘나오던 기사는 안 나오고 이게 뭐야... 이 녀석들이 지금 장난치나...’

    나는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그런데, 혹시나 이 메일도 사라질까봐 걱정이 되었다.

    ‘아... 그건 안 돼. 혹시라도 뒤로 가기를 했다가 영영 이 메일을 받지 못하게 되면...’

    그러면 내 꿈도 희망도 모두 사라지게 된다. 나는 침을 삼키고 다시 한 번 내용을 정독했다.

    ‘무료는 끝났다... 이제 기사를 보려면 일십백천... 천만 원을 내라고?’

    천만 원. 딱 오늘 번 금액이다. 그런데 그걸 고스란히 내란 말인가. 게다가 받는 계좌도 가관이다. N은행이라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은행이름이지만 777이 주욱 나열된 계좌번호는 요상하기 이를 데 없다. 아니 그보다 예금주 이름이 더 문제다. 777이다. 계좌번호는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숫자로 된 예금주. 그건 정말 말도 안 된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뭐야 이게? 애들 장난?”

    하지만 애초에 이 메일을 받게 된 경위를 돌이켜보면, 비슷한 수준의 일들을 수 없이 많았다. 알 수 없는 찌라시에, 웃기는 전화번호, 보낸 사람 없는 이메일까지.

    ‘...일단 더 읽어보자...’

    나는 그보다 시선을 내려 보았다. 먼저 월정액 서비스란 말이 눈에 띈다.

    ‘월정액이라는 건... 천만 원만 내면 한 달 간 보여준다는 거겠지... 한 달에 천만 원... 그렇다면... 매우 싼 값이다.’

    물론 받아 보는 기사가 매일 돈이 되리란 보장은 없다. 내가 처음 받아봤던 로저 잭슨 사망 기사 같은 경우 어디서 돈이 나올 곳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어제 받았던 기사 ‘레알 마드리드 충격패’ 같은 기사 한 개만 뜬다면, 천만 원을 회수하는 것은 단 하루면 된다. 나는 머리를 굴렸다.

    ‘어젠 운이 좋았다고 해도... 한 달 동안 기사를 받다보면 그런 것 두, 세 개 즈음은 걸리지 않을까?’

    그것뿐만 아니라, 이틀 전 받았던 ‘한화 대 롯데’와 같은 경기도 결과를 알면 두 배 혹은 세 배를 버는 베팅을 쉽게 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래. 그런 거 생각하면... 매우 싼 가격도 아니야. 무조건 해야 하는 가격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기사를 내려 보았다. 이어서 보이는 건 실버 등급 서비스.

    ‘세 개의 카테고리를 고른 뒤 제목을 보고 고를 수 있다라... 그렇다면...’

    그렇다면 기댓값은 더더욱 올라간다. 로또 당첨번호가 나오는 ‘생활/문화’란. 워낙에 낮은 확률이어서 클릭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여분의 기회가 생긴다면 찍어볼만 하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최종보스라고 생각했던 ‘경제’란에도 기회가 생긴다. 나중에 군자금이 더 늘어나면 보기 시작하려고 했지만 일단 여기서 미리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좋아 입금하자.’

    나는 마음을 굳힌 나는 천만 원을 이체할 방법을 찾았다.

    ‘천만 원을 이체하려면... 집에 있는 OTP 인증기가 필요하다.’

    나는 보다 빨리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와중에 마지막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골드 등급 회원 서비스를 신청 할 수 있음’

    나는 옆 이마를 긁으며 생각했다.

    ‘뭐야... 브론즈 다음 실버 실버 다음 골드인 건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골드 등급에 들면 더 혜택이 많아질 것 같다.

    ‘그럼 골드 등급은 어떻게 신청하는 거지? 골드 위에도 더 등급이 있나?’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지금 당장은 더 알 수 있는 정보가 없다. 골드 등급 신청 자체가 실버 등급의 혜택 중 하나니까 일단 월정액부터 가입을 해야 할 것 같다. 집에 돌아온 나는 컴퓨터를 켜고, 책상서랍에서 은행인증용 OTP를 꺼냈다. 주로 쓰는 인터넷뱅킹 사이트에 가서 로그인을 하고 계좌이체 서비스를 신청했다.

    ‘이체 금액은 천만 원. 그리고 받는 계좌번호는...’

    777 7을 연타하다보니

    ‘그나저나... 이 바보 같은 계좌번호는 진짜 있는 건가?’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나는 지금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온 엘리스야. 모자장수가 이상한 곳으로 안내를 한다고 해도 따라 갈 수밖에 없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모든 7을 써냈다. ‘받으시는 분’ 창에 예금주 ‘777’이 뜬다.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맙소사... 이게 대한민국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나는 내 손으로 이미 OTP를 통해 비밀번호를 받고 있었다.

    ‘741503’

    여섯 자리 OTP비밀번호를 집어넣고 나니 ‘인증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뜬다. 이제 이체버튼만 누르면 나는 실버 등급으로, 월정액 서비스를 받게 된다. 나는 마우스 커서를 이체버튼에 가져갔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이거 일종의 사기나 꾀임 아닐까? 어떤 악마 같은 게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벌게 시켜서 회수하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과정이 순탄하긴 했다. 기사 세 번 받고 돈 천만원을 벌기까지.

    ‘여기서 취소를 누르고 천만 원을 챙겨간다면...’

    그러면 깔끔하게 현실로 돌아와 남은 학자금대출을 갚을 수 있다. 그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그런데 그 때였다.

    ‘위잉~’

    핸드폰이 한 번 울렸다. 문자메시지가 온 것이다. 보낸 사람은 ‘허과장’

    ‘이봐 한 사원. 내일 갑자기 세미나 일정 잡혔어. 메일 보냈으니까 확인하고 포트폴리오 준비해와. 제대로 해와. 안 그럼 인사고과에 반영할 테니까. 평가 따라서 연봉 오가는 것도 알지? 이미 업무시간 중에 야구시청한 건 반영 됐으니까 그거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응? 제대로 해오라구 알았지?’

    그 메일을 보니 울컥 화가 차오른다. 나는 휴대폰을 컴퓨터 책상에 던진 후 마우스 커서를 한 바퀴 돌렸다.

    ‘그래. 이건 사기가 아니야. 미래를 알려주는 기사 그건 진짜였잖아. 이건 기연이야. 신이 내게 주신 기회라고. 저 새끼한테 벗어나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나는 주저 없이, 좌클릭을 했다.

    ‘777님에게 금 천만원 이체 완료되었습니다.’

    그러자 동시에, 던져놨던 핸드폰이 한 번 더 울렸다.

    ‘위잉~’

    나는 그걸 들어보았다. 허 과장의 메시지 위로 메시지 한 개가 더 올라왔다.

    축하합니다. 한상훈님. 실버 등급 서비스에 가입되셨습니다.

    이제 한달 간 매일 오전 8시 55분에 선택적으로 메일을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골드 등급 서비스를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엄청나게 이상한 것 같기도 한 그 문자 메시지를 보면서 나는 탁 긴장이 풀려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단 하나. 이제 내 삶은 이전과는 꽤 달라질 것이라는 것 정도는 분명, 육감으로 알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