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7화 (7/198)

# 7

천만 원

나는 지갑을 열었다. 만 원 짜리 한 장과 천 원 짜리 몇 장. 들어 있는 지폐는 한쪽에 옮기고 나머지 빈 곳에 프로토 영수증을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지갑을 츄리닝 바지에 넣고, 지퍼를 올린 다음 집 밖을 나섰다. 주머니 안에 천만 원이 넘는 돈이 들어있다 생각하니 조금 긴장이 된다.

‘어후... 백만 원도 들고 다녀 본적이 없는데...’

어제 잠에 들기 전, 인터넷을 찾아본 결과 프로토 당첨금 환급은 두 군데서 할 수 있다고 했다. 복권을 산 복권방. 그리고 신한은행. 하지만 오늘은 일요일. 은행은 문을 열지 않는다. 나는 하루 참고 은행에 갈까 생각도 했지만, 복권방에 가서 오늘 당장 당첨금을 찾기로 했다. 하루라도 빨리 돈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천백만원은 내게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너무 오바하는 거 아냐? 한상훈? 천만원가지고... 남들은 몇 억 정도 돼야 그럴걸? 게다가 복권 집은 우리 집에서 1분 거린데?’

나는 그런 식으로 나를 속이며 집 밖을 나왔다. 나는 마치 내 집을 털고 나온 도둑처럼 주변을 살폈다. 다행이도 일요일 아침 동네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빨리 가자.’

나는 거의 뛰듯이 걷기 시작했다. 1분 거리에 있는 복권상점에는 30초 만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보니 오늘은 주인아저씨와 손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있었다. 어제만 해도 내게 신경도 쓰지 않던 주인아저씨는 오늘은 나를 보더니 바로 반응을 했다.

“오 학생! 왔는가?”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나도 경기 봤어! 촉이 대단하던데? 자네?”

“아 네... 뭐...”

OMR카드 앞에서 볼펜을 들고 머리를 긁적이던 손님도 그 소리에 나를 쳐다보더니, 주인아저씨에게 말했다.

“뭐야 정씨 이 친구 좀 땄나 보지?”

주인 아저씨를 정씨라고 부르는 걸 보니 꽤나 이 곳 단골인 듯 하다.

“응. 어제 프로토 처음 했는데 11배를 먹더라고”

“오... 그래? 11배를 땡겼다고?”

나는 살짝 기분이 상했다.

‘아니 남의 당첨 사실을 그렇게 말해도 되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손님 아저씨는 내게 말했다.

“오 젊은 친구가 축구 좀 봤나봐?”

나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아저씨들하고는 그다지 친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주인아저씨는 인상이 조금 얍실해 보이는 게 좀 신뢰가 안가고, 손님인 아저씨는 조금 수염이 덥수룩 한 게 도박중독자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빨리 당첨금만 받고 나가자. 여긴 다시 오지 말아야지.’

애초에 나는 이 방식으로 돈을 벌더라도 이곳저곳 복권방을 돌아다니면서 프로토를 살 생각이었다. 한곳에서 매번 거금의 당첨을 받으면 이상한 오해를 살지도 모르니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영수증을 꺼내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주세요. 당첨금”

“아 그래. 당첨금. 그렇지”

그는 내가 건넨 영수증을 받아서 기계에 넣고는

“네 레알 마드리드 패에 바르셀로나 승. 11배 확인됐습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가게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따라오게.”

나는 그를 따라 들어갔다. 가게 안쪽에는 조금 작은 금고가 있었다. 그걸 본 나는 그제야

‘생각해보니 이거 좀 이상한데? 나라에서 파는 복권 당첨금을... 이렇게 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끼릭 끼릭’

금고 문을 만지작거리던 아저씨가 금고를 열었을 때, 슬쩍 금고 안에 보이는 것들을 보고 그런 생각을 잊어버렸다. 금고 안에는 현찰 다발이 엄청나게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저게 얼마지? 대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아저씨는

“백 만원치가 11배... 천백만원...”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금고에서 지폐 뭉치를 꺼냈다. 노란색 5만원짜리가 묶여 있는 지폐 뭉치 두 개를.

“이게 5만원짜리 100장 묶음이야. 두 개면 천만 원 맞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지폐 뭉치를 받았다. 종이로 만든 지폐라고 해도 꽤나 묵직하다. 나는 그걸 허공에 두어번 살짝 던져보았다. 자연스레

‘근데 이거 200장 맞나?’

그런 생각이 든다. 아저씨도 내 생각을 느꼈는지 금고를 닫으며 말했다.

“아 세 보고 싶으면 세 봐도 돼. 여긴 누가 보는 사람 없으니까”

나는 다시 한번 지폐 뭉치를 보았다. 지금 보니 ‘한국은행’이라 쓰인 띠가 벗겨지지도 않은 채다. 나는 아저씨를 믿기로 했다. 관상은 그닥 별로였지만 금고 안에 들어 있던 현찰은 진짜였으니까.

안에는 내가 들고 있는 다발보다 더 커다란 현찰묶음도 있었다. 5만원 몇 장 슈킹하며 장사를 한다면 저렇게 거금을 가지고 장사를 하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왼쪽 오른쪽 주머니에 오백 만원씩 천만원을 집어넣었다. 아저씨는 나머지 백만 원만 직접 5만 원짜리 스무 장을

“하나 둘 셋 넷...”

세서 건네주었다. 나는 그걸 챙겨 받고 바로 복권방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손님인 아저씨가 말했다.

“아 자네 오늘은 뭘 걸 건가? 나도 좀 알려줘. 자네 덕 좀 보자. 난 어제 꼴았단 말이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요. 전 오늘은 안 할 거예요.”

내가 베팅을 하지 않는다 하니 주인 아저씨도 살짝 놀란다.

“그래? 오늘은 더 베팅 안할 거야? 주말에 유로파리그 있는데”

여기 있으면 더 부추김을 당할 것 같다. 나는

“나중에 할게요.”

그렇게 말하고는 복권방 문을 열고 나섰다. 복권방 바로 옆에는 365자동인출기가 있는 은행이 있다. 주로 쓰는 은행은 아니었지만 입금하는데는 상관이 없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이도 눈치를 볼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나는 카드를 집어넣고, 입금 버튼을 눌렀다.

‘끼이~’

돈 넣는 곳이 열리고, 나는 왼쪽 주머니에서부터 5만원 짜리 다발 백 개를 집어넣었다.

‘위~잉~’

돈 세는 소리가 들린 후,

‘500만원 입금 하시겠습니까?’

물음이 떴다. 역시 주인 아저씨는 얍삽하게 생기긴 했지만 사기를 치는 스타일은 아닌 듯 하다. 나는 당연히 ‘확인’버튼을 눌렀다.

‘입금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오른쪽 주머니에서 두 번째 다발을 꺼내 그 일을 반복했다. 그런 다음 마지막 5만원짜리 20장 마저도 입금을 한 다음 잔금을 확인했다.

‘12,284,321원’

어제까지만 해도 2백만 원밖에 없던 내 계좌는 순식간에 천만 원이 늘었다.

“됐어!”

누가 보든 말든 나는 혼자서 어퍼컷을 날렸다. 일을 마친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막 오전 8시 58분을 지나고 있었다.

‘아 오늘 뉴스도 왔겠네. 이미.’

나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집으로 걸어갔다. 여기 올때와는 달리 매우 느릿한 발걸음으로. 내 메일함에는 오늘도 역시

‘12시간 뒤’

라는 메일이 와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다시 한 번 ‘스포츠’쪽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당장은 프로토로 돈을 더 벌 셈이었던 것이다.

‘오늘은 무슨 뉴스가 들어오려나... 레알 마드리드 패 같은 대박 뉴스가 한 번 더 왔으면 좋겠는데...’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그걸 클릭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나는 이어진 화면을 보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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