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6화 (6/198)
  • # 6

    프로토 이렇게 하면 됩니다.

    ‘띵~ 동~’

    벨소리가 한 번 울리고,

    “치킨 왔습니다.”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준비해두었던 지폐를 들고 현관문으로 나갔다.

    “순살 반반에 생맥 600cc요.”

    “22000원 맞지요?”

    “네 맞습니다.”

    나는 배달원에게 지폐를 건네주었다.

    “맛있게 드십쇼.”

    배달원이 떠난 뒤, 나는 치킨과 맥주를 들고 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긴장해서인지 살짝 목이 탄다. 나는 치킨보다 먼저 맥주가 담긴 페트병의 마개를 열었다.

    ‘치이...’

    탄산이 나오며 경쾌한 소리를 낸다. 나는 병을 기울여 머그잔에 그걸 따랐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맥주는

    ‘끌떡 끌떡 끌떡’

    소리를 내며 흘러나왔다. 거품이 살짝 잔에 넘치려는 찰나, 나는 거기에 입을 갖다 대고 맥주를 흡입했다. 단숨에 원샷.

    “크하~”

    시원하다. 맥주 한잔을 원샷하고 나니 조금 긴장이 풀린다. 나는 이번엔 천천히 잔에 맥주를 따르면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모니터에는 두 개의 창이 떠 있다. 하나는 레알마드리드 대 데포르티보의 경기를 중계해주는 창이고, 나머지 하나는 바르셀로나 대 라스팔마스의 경기를 중계해주는 창이다.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치킨박스를 열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예상대로만 된다면... 오늘 당장 천만 원을 벌게 된다.’

    천만 원. 상상만 해도 좋다. 내 연봉은 삼천만 원 정도. 또래에 비해서 많이 받는 편이지만 그래도 세금 떼고 월세에 생활비를 하고 나면 일 년에 이천만원 모으기도 쉽지 않은데, 축구 경기 90분동안 천만 원을 벌게 된다면 그야말로 돈벼락을 맞은 거나 다를 바 없다.

    ‘천만 원이면 남은 학자금 대출 따윈 시원하게 갚아버릴 수 있겠어...’

    아니 그런데 생각해보니, 빚 따윈 갚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이렇게 벌 수만 있다면 천만 원은 일억 원이 되고, 일억 원은 십억 원이 되고, 십억 원은 백억 원이 될 것이다. 얼마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미래를 알면 백억 원도 그다지 어려울 게 없다. 그러면 남아 있는 빚 따윈 몇 달 이자면 갚을 것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백억 원을 가지게 되면... 일 년 이자 2%만 잡아도 2억원. 12개월로 나눠도 한 달에... 천육백? 천칠백? 정도 들어오겠네.’

    몇 달 걸릴 것도 없다. 백억 원을 쥐게 되면 학자금 대출 천만 원 남은 것 따위는 한 달 이자면 갚고도 남게 된다. 그런 상상을 하니 기쁘다. 나는 반은 맥주에 취해서, 반은 그런 상상에 취해서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킥 오프. 같은 라 리가 경기여서 그런지 두 경기는 1분 차이 정도만 둔 채로 동시에 진행되었다. 나는 먼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음... 기사에서는 분명... 초반에는 경기를 리드하다가 14분에 페페가 퇴장당했다고 했지...’

    기사 그대로, 레알 마드리드는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며 상대팀을 압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당연한 것이다. 길을 걷는 20대 남자애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이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우세할거라고 할 것인 수준이니까.

    아무래도 기점이 되는 것은 페페의 레드카드 그리고 패널티킥 헌납이다. 그 정도 패널티가 아니면 레알 마드리드는 본래 지지 않는 팀이다. 특히 홈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는 말이다. 아직 경기 시작한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나는 바르셀로나 쪽으로 시선을 옮겨보았다. 바르셀로나 역시 상대 팀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예전 티키타가 시절은 지났다곤 하지만 여전히 정확한 패스와 팀워크로 거의 점유율을 내주지 않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예언대로 된다고 하고... 바르셀로나 너는 이겨 줘야한다. 꼬옥.’

    나는 닭다리를 잡은 채로 속으로 기도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 운명의 시간대가 되었다. 현재 시간은 12분. 앞으로 퇴장까지 2분 남았다. 나는 살짝 긴장을 한 채로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보았다. 바르셀로나 경기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아무래도 이쪽이 더 신경이 쓰인다.

    ‘과연... 다시 한 번 예언이 실현될까...’

    긴장을 할 때마다 나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12분, 13분, 14분. 마침내 운명의 14분이 되었다. 나는 바르셀로나 경기는 아예 제쳐두고 레알 마드리드 화면을 풀로 띄어놓았다. 마침 패스를 받은 데포르티보의 공격수가 레알 마드리드 진영을 향해 드리블을 하기 시작했다.

    ‘왔다.’

    나는 맥주가 담긴 머그잔을 꽈악 쥐었다. 빠르게 쇄도를 하는 공격수에 레알 마드리드 주전 수비수 페페가 달려든다. 당장이라도 거친 파울을 할 것 같다. 그런데, 공격수는 페페와 닿기도 전에 슛을 해버렸다.

    ‘중거리 슛? 이러면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는데?’

    날아간 골은 정확하게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순간, 나는 차라리 그 골이 들어가지 않기를 바랬다. 그게 들어가면 내 베팅은 맞아떨어질지 몰라도, 본 기사가 거짓말이 되기 때문이다.

    ‘안 돼! 내 백억이!’

    다행이었다. 골키퍼는 가까스로 그걸 쳐내는데 성공했다. 코너 킥. 나는 한숨을 돌렸다.

    ‘됐다. 골은... 아니 파울은 살아있어!’

    나는 다리를 달달 떨면서 경기를 지켜보았다. 선수들은 코너킥을 하기 위해, 그에 대비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문제는 그 와중에도 경기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초조하게 경기 시간이 지나는 걸 지켜보았다. 전반 14분 48초, 49초, 50초.

    ‘젠장 빨리빨리 차란말이야.’

    나는 경기의 감독이라도 된 듯 소리쳤다. 한참 뜸을 들이던 키커는 마침내 코너킥을 찼다. 그리고 잠시 후.

    ‘피~~~~~익~~~~~’

    정확히 14분 58초에, 긴 휘슬이 울려 퍼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뭐가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다. 단지, 심판이 페페에게 다가가 꺼내는 카드의 색은 분명하게 보였다. 빨간색 카드. 나는 원룸이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됐다! 됐어!”

    페페는 처음에는 심판에게 항의를 하다가도 그게 먹히질 않자 머리를 감싸 쥐고 퇴장을 했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홈 팀 관중들도 허탈한 표정이다. 페널티킥 라인에 들어오는 데포르티보 선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제 그 기사의 정확성은 완전히 신뢰 하게 되었다. 로저 잭슨의 사망 때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정신이 없어서 깨닫지 못했고 지난 번 야구 경기 때는 직장 일 때문에 허 과장 방해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이렇게 라이브로 내 두 눈으로 기사가 실현되는 것을 보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들어간다. 분명.’

    내 외침이 그대로 실현되기라도 하듯, 공은 키커의 발을 떠나 골대 좌하단에 꽂혔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치이!”

    이제 이 경기는 사실상 다 본거나 다를 바 없다. 후반부에 어떻게 2:0이 되겠지만 나는 이제 그건 관심이 없었다.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나는 이제 바르셀로나 경기를 메인 화면에 띄워놓았다. 이곳 경기는 아직 0:0이었다. 아직 경기 시작한지 15분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해할만은 하다. 하지만 그래도 빨리

    ‘혹시나...’

    하는 내 걱정을 덜어줬으면 좋겠다. 나는 치킨을 뜯고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제발! 힘내라! 바르셀로나!’

    우리나라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천만 원이 걸려있는 판이다 보니 ‘대~한민국’ 외치며 월드컵 응원하던 때보다도 바르셀로나를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곧 나는 응원의 보답을 받았다. 전반 23분. 이니에스타의 패스를 받은 메시가 정교한 슛으로 상대방의 골망을 가른 것이었다.

    “좋았어 메시! 역시 메시! 고맙다 메시야!”

    나는 그에게 두 손을 모으고 감사인사를 했다. 내 감사 인사가 통했는지, 메시는 그 이후로 전반에만 두 골을 더 넣으며 해트트릭을 해버렸다. 나는 이제 아예 그의 광신도가 되버렸다.

    “크 역시 축구의 신. 메시 신님. 메갓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나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치킨에 배는 부르고, 맥주에 기분은 알딸딸했다. 나는 잠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스마트폰으로 오늘 있던 경기 결과를 보았다.

    최종 스코어

    레알 마드리드 대 데포르티보 0:2

    바르셀로나 대 라스 팔마스 6:0

    지금 내 손에는 천백 만원치 프로토 영수증이 쥐어져 있다.

    ‘됐어. 이 흙수저로 태어나 노예생활을 하는 것도 오늘로 끝이야. 이 돈을 가지고, 이 정보를 가지고 이제 뭘 해야 하지?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내가 뭘 하든 뭘 해도 될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할 것 없이 나는 모든 종류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남들보다 12시간 빨리.

    ‘이것만 있으면 나는 부자가 될 수 있다. 엄청난 부자가!’

    그런 생각을 하니 환희에 가득 찬다. 나는 그렇게 살짝 취한 채로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다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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