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5화 (5/198)
  • # 5

    프로토 이렇게 하면 됩니까?

    “띠리리~ 띠리리~”

    알람이 울린다.

    “끄응...”

    나는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나 내 스마트폰을 보았다.

    ‘토요일 아침 8시 30분.’

    토요일이라고 하면 평소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을 자던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아침 일찍 알람을 맞춰놓았다. 왜냐하면 곧 ‘그 메일’이 오기 때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 밤늦게까지 야근을 한 탓인지 허리며 등이며 목이며 뻐끈했다.

    ‘회사 생활하면 얻는 거라고 허리디스크에 거북목 밖에 없다더니...’

    나는 거기에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기를 갖다 대며 통증을 달랬다.

    ‘상훈아 조금만 참자 어쩌면 오늘 나, 인생 역전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나는 샤워를 마치고 마치 출근을 하는 사람처럼 경건하게 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지금 시각은 오전 8시 50분. 그 메일이 오기까지 5분이 남았다. 시간이 남은 나는 잠시 포털사이트의 뉴스란에 가보았다.

    [‘정치’ ‘경제’ ‘사회’ ‘생활/문화’ ‘세계’ ‘IT/과학’ ‘연예’ ‘스포츠’]

    뉴스는 그 메일이 보내주는 카테고리와 정확히 동일했다.

    ‘마음 같아서는 로또를 노리고 싶은데...’

    어제 퇴근을 하며 찾아본 바로는 로또 당첨 번호는 ‘생활/문화’카테고리에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있었으니, ‘생활/문화’카테고리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로또 번호가 나올 확률이 매우 낮다는 점이었다. 혹시나 ‘생활/문화’카테고리를 선택했는데

    ‘오늘의 리빙 포인트 – 음식이 싱거울 때는 소금을 넣어보세요’

    같은 게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기사가 뜨면 내가 얻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니 아무리 미래 일을 보여준다지만... 이거 너무 불친절 한 거 아니야?’

    나는 그렇게 궁시렁궁시렁 대며 메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곧

    ‘8시 55분.’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오래된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12시간 뒤]

    왔다. 나는 그걸 클릭해보았다. 메일의 내용은 동일했다.

    [‘정치’ ‘경제’ ‘사회’ ‘생활/문화’ ‘세계’ ‘IT/과학’ ‘연예’ ‘스포츠’]

    [하루에 한 뉴스만 구독해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실적인 것은 스포츠다. 토토 프로토! 가능성 있는 한방! 말이지.’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뒤 스포츠 면을 클릭했다.

    ‘뭐가 나올까...’

    이번에 나온 기사의 제목은

    [레알 마드리드 데포르티보에 충격 패!]

    ‘레알?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축구 뉴스다.

    [레알 마드리드가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라리가 2R.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원정팀 데포르티보를 만난 레알 마드리드는 압도적인 전력 차를 증명이라도 하듯 경기 초반부 데포르티보를 강력하게 압박했으나 전반 14분 주전 수비수 페페가 레드 카드를 받고 패널티 킥을 내주며 퇴장하면서 급격히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패널티 키커로 나선...]

    나는 빠르게 기사를 훑었다. 지하철 타고 출퇴근 할 때마다 이런 기사나 웹소설 같은 걸 자주 읽었기 때문에 나는 모르게 속독이 늘어 있었다. 요약하자면 강팀 레알 마드리드가 약체 데포르티보를 만나서 쉬운 승리가 예상되었지만, 경기 초반에 주력 수비수가 레드카드를 받아 패널티킥까지 내주면서 경기가 반전. 후반부에 한골을 더 내주면서 2:0으로 게임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오케이 그럼 이제 토토를 사러 가볼까.’

    간단히 외출복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도 토토를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는 단 한 번도 이 토토, 프로토를 사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정보를 가지고 매장에서 이것저것 물어본 다음 가장 좋은 베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츄리닝에 반팔 티를 입은 나는 집 밖을 나섰다.

    내가 사는 곳은 낙성대입구역 근처 원룸. 회사는 역삼인데 왜 여기 사냐고 묻는 다면 답은 간단하다. 싼 월세 때문. 하여간 이 세상은 모두 돈이다. 어찌되었든 이 동네에도 내 원룸 근처에도 로또 판매점이 하나 있었다. 나는 몇 걸음 걷지 않고도 로또 판매점에 도달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 보니 안에는 얼굴이 검고 얍실하게 생긴 아저씨 하나가 매대를 지키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대충 인사를 건넸다. 그닥 친절한 사람은 아닌 듯하다. 나는 먼저 혼자서 로또 프로토 사는 곳에 섰다. 앞에는 복잡하게 생긴 OMR카드와 경기 시간표가 놓여 있었다.

    ‘이게 다 뭐야 대체?’

    처음 와본 입장에서는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나는 주인 아저씨를 불렀다.

    “아저씨.”

    “네”

    내가 부르니까, 아저씨는 그제야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내게 관심을 보인다.

    “여기... 레알 마드리드 경기에 베팅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아...”

    그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뭘 사시게. 레알 마드리드... 라리가는 토토는 없고 프로토를 사야 되는데.”

    “프로토요?”

    내 원초적인 질문에 그는 먼저 배당을 확인했다.

    “오늘 밤 경기가... 있네. 레알 마드리드 대 데포르티보. 이기는데 1.08배. 비기면 3.01배. 지면 10.4배.”

    내가 그걸 보며 말했다.

    “음... 이걸 사면되는 거군요?”

    “그렇지. 근데 나는 이건 비추야.”

    “왜요?”

    “이건 이겨봐야 1.08배 밖에 주질 않으니까. 십 만원치 사봐야 고작 팔천 원밖에 벌지 못한다고 학생.”

    나는 1.08배 대신 옆의 10.4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신에 지면 10.4배잖아요.”

    “에이 그건 그래도, 이건 가능성이 그만큼 낮으니까 그런 거지. 데포르티보는 지금 꼴지인가 뒤에서 2등인가 그래. 레알 마드리드가 질 리가 없지.”

    지금 보니 재료가 참 좋았다. 확률이 낮은 레알 마드리드의 패배. 그것은 높은 배당금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까. 아저씨의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이거 살게요. 레알 마드리드가 지는데 10배.”

    “그래? 정말로?”

    “네 저는 대박이 좋거든요.”

    “그래 뭐 그럼... 근데 프로토는 두 경기를 묶어서 사야 되는데... 다른 것도 하나 골라봐.”

    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네에? 다른 경기도 묶어서 사야 된다고요?”

    “우리나라 법이 그래 법이. 한 경기에만 베팅할 수는 없어. 레알 마드리드 경기랑 다른 것도 하나 묶어서 베팅을 해야 돼.”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내가 확실히 아느 것이라고는 오늘 밤 레알 마드리드가 진다는 것 밖에 없는데.

    “아... 저는 다른 건 베팅하기 싫은데...”

    내가 머뭇거리자, 그 아저씨가 말했다.

    “그럼... 이건 어때? 바르셀로나 대 라스팔마스. 이거 묶어서 사면 대충 넘어갈 수 있지.”

    바르셀로나. 역시 레알마드리드와 어깨를 견주는 강팀이다.

    “바르셀로나 승에 1.06배. 이거 고르면 뭐... 억지로 묶는 거지만... 프로토 하는 사람들은 고를 게 없을 때 이런 확실한 곳에 걸어서 대충 넘기려고 하지.”

    1.06배 레알 마드리드 승리의 1.08배보다도 배당이 낮다. 그러니까 이길 확률이 더더욱 높다는 뜻이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레알 마드리드는 확실히 진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몰라... 아무리 강팀이라고 해도... 이변이 일어날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렇게 이변이 하루에 두 번이나 일어날까?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동시에 이기지 못하는 일이?’

    그렇게 생각하니, 이건 한 번 베팅을 해볼 만한 것 같다. 나는 아저씨 말을 듣기로 했다.

    “좋아요 그럼. 바르셀로나 승. 레알마드리드 패에 걸게요.”

    “그럼 이 OMR카드에다가...”

    나는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서 오늘 밤 바르셀로나가 이기고, 레알 마드리드가 지는데 베팅했다. 최종 배당률은 10.4배 곱하기 1.06배해서 11.0배 짜리 베팅.

    ‘좋아 바르셀로나만 제대로 해준다면 11배를 먹는 거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아저씨에게 표를 건넸다. 표를 받아든 아저씨는 내게 물었다.

    “얼마나 사게?”

    “백만 원이요.”

    백만 원. 내 통장에 있는 금액 절반에 해당하는 돈이다. 그런데 내 말에, 아저씨가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다시 한 번 묻는다.

    “백만 원?”

    “네.”

    그는 나를 잠시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더니.

    “그래 알았어. 백만 원치 뽑아 줄게.”

    영수증 백만 원치를 뽑아다 주었다. 나는 그걸 받아들면서

    ‘왜 저러지...’

    그렇게 생각하고는 말았다. 내가 프로토 일인당 1회 베팅이 10만원까지만 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이런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공공연히 일어나는 암묵적인 행위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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