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2화 (2/198)

# 2

12시간 뒤

메일 안에는 단 두 줄만이 쓰여 있었다.

[‘정치’ ‘경제’ ‘사회’ ‘생활/문화’ ‘세계’ ‘IT/과학’ ‘연예’ ‘스포츠’]

[하루에 한 뉴스만 구독해 볼 수 있습니다.]

위에 8개의 카테고리는 딱 봐도 어디 신문사의 카테고리였다. 색이 진한 푸른색으로 되어 있는 것이 클릭하면 이동하는 링크 같다. 나는 무심코 맨 위에 있는 ‘정치’ 위에 커서를 움직여 보았다. 그런데 그 아래 쓰여 있는 문구가 신경이 쓰인다.

[하루에 한 뉴스만 구독해 볼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하나만?’

단지 한 줄의 설명. 다른 설명은 없다. 나는 한 손에 턱을 괸 채로 커서를 좌우로 움직였다.

‘하나를 봐야만 한다면...’

나는 별 생각 없이 ‘연예’를 클릭해보았다. 그러자 곧, 링크된 기사 하나가 윈도우 창 위에 떴다.

[팝의 황제 로저 ‘나이트’ 잭슨 사망 원인은 약물 과다 투여로 추정]

[팝의 황제 로저 잭슨이 오늘 한국 시간 오후 8시경 사망한 채로 발견 되었다. 미 당국 검시관의 검시에 따르면...]

‘뭐? 로저 잭슨이 죽었다고?’

나는 깜짝 놀랐다. 팝의 황제 로저 잭슨. 예명인 ‘나이트 Knight’로 더 잘 알려진 그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중 하나였다. 나 역시 그의 팬으로 그의 히트곡 중 하나인 ‘Blue Rain’은 그를 알게 된 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뮤직 플레이어의 플레이리스트에서 빠져 본 적이 없었다.

‘...정말?’

나는 기사를 내보낸 언론사를 찾아보았다. 가끔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타블로이드(특히 미국)에는 말도 안 되는 낚시 기사도 자주 올라오니까. 그런데, 이상했다. 이 뉴스는, ‘언론사 이름’, ‘올린 시각’등등, 뉴스 내용 말고는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뭐야...’

나는 기사를 맨 아래로 내려 보았다.

[...전 세계에서 그를 기리는 팬들의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기사의 끝맺음에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도 이메일도 없다. 황당하다. 기사란 기본적으로 내보낸 사람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UFO나 911음모론 같은 소설을 사실처럼 써내는 타블로이드 뉴스지도 어디서 내보낸 기사라든지 누가 썼다거나 하는 것 정도는 명시를 한다. 하지만 이 기사는 아예 그런 게 없었다.

‘뭐야 이게.’

나는 그 뉴스를 켜 놓은 채로, 새 창을 클릭해서 다른 창을 꺼냈다. 그런 다음 검색 엔진에다가 ‘로저 잭슨’을 쳐보았다. 곧 그에 관한 기사가 주르르 튀어나왔다.

[로저 나이트 잭슨 내한 콘서트 3시간 만에 매진. 유니온뉴스]

[노장은 죽지 않았다. 로저 잭슨 월드 투어로 4천만 불 수입. 오늘미디어]

[내한을 앞둔 팝스타 로저 잭슨. 신곡 공개 일주일 앞으로. 고려일보]

기사 대부분은 내한 콘서트에 관한 이야기, 신곡에 관한 기사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단 한 줄 기사도 쓰여 있지 않았다. 나는 알트 탭으로 본래 기사로 돌아왔다. 기사는 분명 로저 잭슨의 죽음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상세하게.

[로저 잭슨은 아편진통제 계열의 펜타닐을 과다 투입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이상하네...’

나는 기사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가짜 뉴스였다. 그것도 아주 잘 만들어진 가짜 뉴스.

‘가짜 뉴스라면 이렇게 잘 만들 필요가...’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문득

‘아차! 바이러스!’

든 생각에 나는 급하게 창을 꺼버렸다. 가짜 뉴스를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걸 보면 이건 틀림없는 스팸 메일이다. 클릭과 동시에 바이러스와 같은 이상한 프로그램이 설치되어서 컴퓨터를 파괴하는. 하는 창을 끔과 동시에 바로 백신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어쩌지? 업무 문서들이 날아가면...’

다급한 마음이든 나는 먼저 인터넷 선을 빼버리고 업무용 USB를 컴퓨터에 꽂고 쓰고 중요한 문서들을 옮겨두었다. 그런 다음 발을 떨면서 백신프로그램이 컴퓨터를 모두 검사하길 기다렸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검출된 바이러스가 없습니다.]

각자 다른 백신 프로그램으로 세 번. 바이러스 검사를 시켰던 나는 모니터의 메시지를 보면서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바이러스는 없겠지.’

이 정도면 아무리 찾기 힘든 바이러스라도 그물에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오히려 드는 의문이 있다.

‘그럼... 바이러스도 아니었으면... 그 기사는 대체 뭐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이봐 한상훈”

역시, 입사동기 김 사원이었다. 나에게 허 과장 입원소식을 알려줬던.

“응 왜?”

“허 과장 오늘 저녁에 바로 퇴원한대. 면회 갈 필요 없어졌으니 퇴근하고 입사 동기들끼리 같이 한잔이나 하러 가자.”

한동안 허 과장 눈치 보느라 제대로 마셔 본 적이 없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좋지.”

*

나는 잠에서 깼다. 그러면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이고 머리야”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나는 침대에 앉은 채로 어제 일을 돌이켜 보았다. 맥주집에서 1차. 근처 곱창집에서 2차. 노래방에서 한 타임 쉬었다가. 민속주점에서 3차. 그 때 부터는 기억이 잘 없다. 나는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침대 주변에는 내 핸드폰과 지갑, 그리고 출근용 서류가방이 모두 있다. 이럼 안심이다. 어제 과음하고도 별일 없이 집에 잘 들어 온 모양이다.

‘후우... 어제는 맥주에 소주에 막걸리에... 너무 섞어 마셨어’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으며 일어났다. 속이 쓰리다. 나는 배를 부여잡은 채로 주방에 와서 노란색 놋쇠 냄비에 물을 올렸다. 자취 8년 차. 이제 라면은 눈감고도 끓일 수 있다. 소파에 누워 있다가, 물이 끊는 소리에 라면 스프와 면을 넣고 익기를 기다렸다. 라면은 곧 완성되었다. 나는 그걸 들고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 수저 국물을 떠 마셨다.

“크흐...”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놓고 이제 젓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꼬들꼬들한 면을 젓가락으로 집고 왼손으로는 핸드폰을 켜서 인터넷 창을 띄웠다. 그런 다음 면을 입으로 가져가서 씹으려는 찰나.

“푸흡”

먹던 면발을 내뱉고 말았다. 포탈사이트의 1면에 뉴스가 도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팝스타 로저 ‘나이트’ 잭슨 집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

‘로저 잭슨 사망. 원인은 약물’

‘끝나지 않을 Blue rain 전 세계에 추모 물결’

바로 내가 어제 보았던 그 뉴스가.

0